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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살인자-36화 (36/200)

황혼의 살인자. 36. 사라진 여자

36. 사라진 여자.

느릿한 움직임으로 차에 오른 고종환은 마뜩찮은 숨을 내쉬었다. 지금 막 일별하고 돌아선 자들, 한대건이 미국에서 불러들인 용병들의 면면이 그렇다. 맹수 같은 자들인 건 분명한데 그걸로 될 것 같지가 않아서다.

“병원 지하에 요새를 만들어 뒀어.”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연 고종환은 조수석의 김부장이 돌아봤다.

시선만 던졌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회장 고종환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뭐하려고 그런 공간을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불러들인 용병놈들하고 그러고 있으니 요새라고 하는 게 맞겠지. 마땅치 않아.”

그래서, 그런 심정이어서 고종환은 지금 병원을 나가고 있다.

딸 고초희의 곁을 지키다 집으로 가는 거다.

병원에서도 가능하지만 집에서 씻고 옷도 갈아 입으려고다.

현 상황을 다르게 보고 임해야 할 필요에서다.

“한회장 계획은 간단해. 귀신의 종적을 잡으면 바로 용병들을 투입한다는 거지. 경찰특공대로 꾸민다는 거야. 경찰청장하곤 이야기가 다 된 것 같고, 검찰도 비슷하겠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대로 될 것 같지가 않아.”

용병들을 떠올리고 그 위에 귀신을 떠올린 고종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용병들의 전투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잠깐 본 것만으로도 어떤 자들인지 알았다.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밥 먹듯이 하는 자들이다.

‘킬러들, 도살자들.’

그런 자들이 귀신을 공격하면 그야말로 묵사발을 내버릴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어렵다는 거다. 과정이 이뤄져야 결과가 가능한 거다.

‘귀신의 꼬리를 잡아야, 그게 전제가 돼야 해.’

한대건은 그것을 시간문제라고 여긴다.

합수부의 수사력과 전략기획실의 능력을 믿는 거다.

귀신은 점점 구석으로 몰려 마침내 꼬릴 밟힐 거란 거다.

실제로 상계동 일은 그런 측면이 있다. 귀신도 놀랐을 만하다.

‘처음부터 대비를 하고 움직인 거라고 해도 그렇게 빨리 닥쳐올 줄 몰랐겠지. 그렇지만 오동철에 이어 오동진까지, 결국 당한 결과. 게다가 그 정보를 준 건 얼굴도 모르는 년.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은 좋지 않아.’

주름진 얼굴을 꿈틀거리며 눈동자를 빛낸 고종환은 김부장의 눈을 응시했다.

“진척이 있나?”

감정을 읽을 길 없는 시선이던 김부장은 바로 입을 열었다.

“오동진과 만났다는 장소로부터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묘령의 여인에 대한 추적결과.

“사전에 철저하게 파악하고 준비 후 그 장소를 택한 게 분명합니다. 그 부분은 기대할게 없어서 무시하고 다른 측면을 찾아봤습니다. 초희 아가씨가 꾸민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차가 부드럽게 출발해 온누리병원을 나서는 가운데 대화는 이어졌다.

“아가씨의 주변을 훑었습니다. 예, 정보출처가 아가씨라고 판단해서입니다. 아가씨가 누군가에게 알려줬거나 pc등에 기록을 남겼는데 누출됐을 경우입니다. 아가씨주변 물건들에선 이렇다할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초희가 누군가에게 알렸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가씨는 특정 sns를 통해 외부인과 교류했습니다. 아가씨의 폰을 분석해 그 부분을 확인했습니다. 오프라인 상에서 만남을 가진 것도 확인됐습니다. 당시 동행했던 경호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어디서 왜 만났는데?”

“파악 중입니다. 당시 경호팀이 기억하는 건 이십대의 젊은 여자라는 겁니다. 아가씨와 비슷한 또래에 미모도 비슷한 여자였답니다. 장소는 종각역, 두 달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후로는 sns상의 교류가 없었습니다.”

“그날 만나고 손절했다는 거야?”

김부장은 미간을 좁히고 대답했다.

“다른 연락수단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다른 연락 수단?”

“경호팀에서 인지하고 있는 폰이 아닌, 아가씨만이 가진 폰인 거지요. 두 달 전 종각역에서 만날 때 여자에게서 건네받은 걸로 생각합니다.”

고종환의 눈이 의혹으로 응축하는 가운데 김부장은 계속 말했다.

“아가씨가 만난 또래의 여자가 백운호수에 출현한 걸 찾아냈습니다. 타운하우스에서 상황이 발생하던 날 오전입니다.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놀란 표정의 고종환은 상황을 가늠했다.

김부장이 백운호수 주변의 모든 카메라 영상을 뒤졌다는 것, 여자를 특정하고 역으로 추적했다는 거다.

버스회사, 전철역 영상, 해킹이든 돈을 썼든 필요한 걸 확보한 거다.

“인천에 거주하는 걸로 파악됐습니다. 하지만 현재 사라진 상황입니다.”

간결한 결과를 말한 김부장은 바로 목소릴 이어냈다.

“아가씨와의 연결고리는 확인됐습니다. 핵심은 사라진 여자가 초희아가씨의 계획을 알고 있었느냐, 그렇다면 그걸 왜 언론에 제보했느냐 입니다.”

김부장의 눈은 깊은 차가움을 흘려냈다.

“정황상 아가씨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런데 상황이 발생하고 결과가 난 후에 언론에 제보한 의도는 모르겠습니다. 아가씨가 부탁을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만, 어떠한 필요에 의해선지를……”

평소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는 김부장의 눈을 고종환은 똑바로 응시했다.

“해야 할 말이 있으면 다해.”

시선을 잠깐 돌렸던 김부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가 이용한 특정 sns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비밀대화방에서 교류가 이뤄지는데, 동물들을 학대하거나 죽인 경험을 공유하고 영상을 올리는 그런 곳입니다. 뉴스에서도 종종 거론되는, 고어방이라고 합니다.”

고종환의 표정 변화를 살피며 김부장은 뒷말을 이어냈다.

“여러 차례 언론에 이름이 올랐던 국외업체의 sns입니다. 범죄수사를 위해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내도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가씨가 정확하게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교류했는지를 알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대강은 파악했고 그 년을 특정했군.”

“아가씨와 직접 만났으니까요.”

“그년을 초희가 왜 만났다고 생각하나? 계획을 알려준 이유는 뭐고? 언론제보는 또 뭐며, 그년이 그날 백운호수에 나타난 이유는 또 뭐야?”

김부장은 회장 고종환이 흥분을 가라앉히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날 오전 아가씨는 호수로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그 여자와 접촉하기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계획을 앞둔 시점이었으니 당연히 그 문제로 인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를 추적중입니다.”

“얼마나 걸리는데?”

여자를 잡는 시간을 묻는 고종환에게 김부장은 한 템포 늦게 대답했다.

“여자의 신원정보가 곧 파악될 겁니다. 가족과 지인 등을 훑어 나가다 보면 결과를 만들 거라고 판단합니다. 다만, 그날 오후에 인천집으로 돌아온 여자가 바로 사라진 게 걸립니다. 원룸 앞 편의점 영상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후론 집 주변 어디에서도 모습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강남역에서처럼 됐다는 소린데?”

“그렇습니다.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아가씨를 만나러 종각역에 나왔을 때의 모습입니다. 야구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위로 두른 머플러까지, 진면목이 포착된 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신원정보를 파악하면 얼굴이야 바로 드러날 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을 내린 김부장에게 고종환은 다그치듯 말했다.

“뭐가 됐든 잡아. 온누리방식으로는 귀신을 해결하기 쉽지 않아. 감이 그래. 그러니까 그년을 잡아서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모색해야지. 오동진에게 갈 길을 귀뜸해준 년, 그년이 정말 그랬다면 방법이 될 거야.”

고종환은 시트에 머릴 기댔고 김부장은 앞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김부장의 폰이 짧은 울음을 냈다.

메시지 도착음, 내용은 기다리던 거다.

“여자의 정확한 신원이 파악됐습니다.”

고종환은 기댔던 머리를 번쩍 들었다.

* * *

윤진건설 사옥이 있는 위치는 혜화동로터리에서 서울과학고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왜 이곳에 건설회사가 사옥을 마련한 건지 언듯 이해가 안 간다. 주변이 문화시설이고 관련 업종의 사업장들인데 왜 여긴가.

‘그것까진 알바 아니지.’

심중의 의문을 밀어내고 장철은 윤진건설을 향해 걸어갔다.

10층 빌딩의 외관은 어둠에 물들어 있다.

사옥 앞엔 기자들이 보인다.

대여섯 명, 원래는 더 많았을 테지만 이제 윤완규사건은 지난 일, 다른 곳으로 간 거다.

‘확실히 안에 있어.’

윤종대가 사옥 안에 아직 있음을 장철은 기자들의 존재로 확신했다. 오후에 난 기사내용대로다. 사옥에 들어간 후 두문불출이라던 내용이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사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출입구에 기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저들의 눈을 피하는 거야 어려운 게 아니지만 빌딩침투가 관건이다.

사전에 도면이라든지 여타 정보를 취득하지 못했기에 돌아봐야 한다.

‘시간이 다 흐르기 전에.’

그래서 온 거다. 상대가 대비하지 못할 시간을 노림이다.

상계동에서 도주한 걸로 돼 있는 장철 자신이 이렇게 달려들 거라곤 예상 못할 것이다.

무리한 일이 아니다.

걸리는 거라면 총상인데, 이 정도는 깨물린 거다.

‘나는 귀신이니까.’

웃기는 소리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다.

보통사람이 총에 맞았다면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급소를 피해 어깨와 옆구리라곤 하지만, 그것도 보통사람 같았으면 상태가 달랐다.

그런데 총탄은 근육에만 박혔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보통사람하고 달라진 건……’

강철의 의지로서도 가능할 테지만,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했다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장철 자신이 다른 건 다른 이유가 있다.

‘특별치료.’

기억을 떠올린 장철은 어깨를 떨었다.

본능적으로 돋아난 소름을 그렇게 터는데 기자들이 분주하다.

갑자기 이동하며 하는 소리가 뜻밖이다.

“대박이네!”

“현직여당대표가 여직원을 성폭행하고 협박했다는 거잖아!”

“씨바 양석훈이 이제 좆됐네!”

기자들은 우르르 달려가 차를 타고 사라졌다.

넓지 않은 도로변을 차지하고 있던 언론사 차들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번개같다.

‘이게……’

엄청난 뉴스가 터졌다.

기자들이 떠든 소리가 정말이라면 대 사건이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여직원을 성폭행하고 협박까지 했다면 정국이 뒤집힐 일이다. 세경과 온누리와 윤진이 얽힌 사건을 밟고 올라갈 뉴스다.

‘터트린 거군.’

너무 갑작스럽게, 공교롭게 느껴지는 사건이 터졌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예감이 곤두선다.

누군가 필요의 의해서 폭탄을 던진 거다.

그게 누구며 왜인지 전후를 가늠하던 장철은 경비원이 부르는 소릴 들었다.

“할아버지, 거기 서 계시지 말고 가던 길 가세요.”

제복의 젊은 경비원은 짜증이 밴 눈초리로 거듭 경고를 던진다.

“여긴 회사정문입니다, 그렇게 서 계시면 안돼요.”

기자들에게 하고 싶었지만 못하던 말을 뱉는 경비원, 그 눈을 향해 장철은 주름진 미소를 보였다. 손을 들어 알았다는 체로 지팡이를 내밀었다.

“씨바 기레기 새끼들, 이제 갔네.”

경비원의 욕을 뒤로 하고 장철은 느린 걸음을 내디뎠다.

낡은 두루마기를 걸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중절모 아래로 보이는 흰 수염을 흔들었다.

누가 봐도 꼬부랑 할아버지의 모습, 그런데 돌아서서 경비원을 부른다.

“저기 말여.”

“네?”

“아니 저긔, 내가 지금 급해가지고설랑.”

“무슨 소리에요?”

“급허다고, 용무가.”

장철은 경비원에게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지팡이를 급히 짚으며 다가갔다. 그 모양을 본 경비원은 미간을 강하게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가세요, 가라고요!”

장철은 경비원이 선 계단에 한발을 올렸다.

“여서 쌀 것 같은디.”

“아 이 할아버지가 왜 이러는 거야?”

“사정 좀 봐주. 뒷간 잠껀만 쓰자고.”

“아유, 저리가요!”

장철은 사추리를 손으로 잡았다.

“지금 나오게 생겼어. 어여, 어여.”

거듭 계단을 오르는 장철을 보고 경비원은 화나고 당황한 얼굴로 주춤거렸다. 그런 경비원을 밀치고 장철은 윤진건설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급허다.”

“어어, 할아버지! 거기 아니에요! 화장실은 왼쪽이라고요!”

소리치다 쫓아오는 경비원을 뒤로 달고 장철은 화장실을 향해 갔다. 지팡이 짚은 걸음이 왜 저렇게 빨라하는 경비원의 불만을 들으며 돌아섰다.

“뭐해요 안 싸세요?”

화장실 안까지 따라 들어온 경비원에게 장철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경비는 정문에만 하나 더 있고, 여긴 지금 아무도 없고.”

경비원은 장철의 목소리가 달라진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허리도 폈다.

“뭐야? 할아버지 뭡니까?”

의혹위로 험악한 인상을 드리운 경비원이 다가오는 순간 장철은 움직였다. 두 번의 스텝으로 거리를 좁히고 나아가 왼손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경비원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졌고 장철은 그 몸을 받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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