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37. 그림자의 그림자.
37. 그림자의 그림자.
어느새 10시가 넘었다.
의정부를 거쳐 신명시를 지나 연천까지 공사 중인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달려온 목적지는 저 앞에 있다.
동두천의 제법 이름난 계곡을 낀 곳이다.
음식점들과 전원주택들 뒤로 위치해 있다.
‘나눔자리.’
마음속으로 시설의 이름을 뇌인 최재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중증 장애인시설인 저곳의 현황을 어떠할지에 대한 생각에서다.
사건보도가 늘 이어지는 곳이 저런 곳이다.
장애인들을 착취하고 고혈을 빨아내는 사건들.
“와 여기 풍광은 죽이네요.”
유지건은 주변을 돌아보며 감탄한다. 말처럼 주변환경은 제법 좋다. 가기막힐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계곡이 흐르고 산자락들은 높게 이어졌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음식점을 찾고 있다.
“오, 선배 저 차 죽이죠? 저거 벤츠 신형 맞죠?”
유지건의 감탄에 송치호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반응했다.
“다들 팔자 좋구나. 코로나가 끝난 것처럼들 살고 있네.”
“뭘 그렇게 배 아파해요?”
“뭐 이새꺄?”
비죽거린 유지건이 앞서가고 송치호가 그 뒤를 쫓아가는 뒤에서 최재우는 지나온 곳을 돌아봤다. 전원주택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자산가들의 별장 같은 건 아니지만 부럽다. 노후에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도심에서 멀지 않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데 그건 최재우 자신만의 생각이다. 아내 유인주는 젊은 여자다. 도시를 떠날 생각 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다. 그러니 그저 꿈을 꿀 뿐이다.
“팀장님.”
송치호가 부르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최재우는 걸음을 재게 놀렸다.
좌우가 숲인 옅은 오르막길의 끝에서 시설의 정문에 발을 들였다. 다시 돌아보니 차를 세운 곳에서 30m 정도다. 유지건이 바로 벨을 눌렀다.
‘어떨지……’
전화로 방문하겠다고 연락은 한 상황이지만 시간이 제법 늦었다.
경찰의 거듭된 방문.
시설을 운영하는 측에선 달갑지 않은 손님인 게 분명하다.
‘그렇거나 어떻거나 명지훈이란 인물은 확인해야 해.’
애초에 장철의 집을 먼저 훑어볼 작정이었는데 조금 엇나가고 있다. 상계동에서 사건이 터져서고 이영숙의 집을 먼저 가야 했던 흐름이 지금이다.
‘나오는군.’
키 낮은 나무문 안쪽으로 제법 넓은 마당이 보인다. 그 마당을 가로질러 나오는 인물은 중년 남자다. 개량한복을 입은 모습이 전형적인 것 같다.
‘그렇고 그런 자겠지.’
장애인 시설을 적당히 운영하며 이득을 취하는 자, 선량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마인드를 가진 인물, 그런 대상이 문을 연다.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선한 미소로 맞아주는 나눔자리 원장을 보며 최재우는 생각했다.
사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곳은 이렇다 할 흠을 잡을 것이 없다.
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실상은 모른다.
무엇보다 명지훈에겐 돈이 있다.
‘조웅이 건물을 팔고 받은 잔금.’
엄청난 거액이 명지훈의 계좌에 있는 거다. 물론 조웅이 사용하던 계좌이기에 원장이 손댈 수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조웅은 통장에 돈을 남기고 사라졌다. 통장 주인 명지훈은 여기 있다.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하시죠.”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원장을 따라 최재우와 두 형사는 안으로 들어갔다.
* * *
모두다 퇴근을 시켜서인지 안팎이 고요하다.
시간은 10시가 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명륜동과 혜화동의 야경만이 찬란하다.
그래서 싫다.
윤종대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조롱하는 것처럼 밝고 화사한 모습이어서다.
“직원들 전부 퇴근시킨 것 같네요?”
소파에 앉아 묵직한 시선을 던지는 자.
함진웅을 마주 응시한 윤종대는 기억을 떠올렸다. 안산에서 재개발 아파트를 지을 때다.
반발을 잠재운 게 바로 저자 함진웅이다.
저런 놈들을 데리고 사업의 물고를 터줬다.
‘같은데 다른 놈들이군. 외노자, 불법체류자, 제나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 나온 놈들.’
함진웅의 뒤로 서 있는 다섯 놈은 각양각색이다.
러시아 놈 하나에 가나 놈 하나, 파키스탄 놈 하나에 이란 놈과 중국놈이다.
다들 눈이 다르다. 흉악한 살기가 들어 있다.
한눈에 봐도 사람을 죽여 본 놈들이다.
“회장님 혼자서 즐기는 맛도 있겠습니다.”
덤덤히 말한 함진웅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고즈넉하게 이렇듯 10층짜리 빌딩에 혼자 남아 이룩해 놓은 것들을 곱씹고 만족하는 맛을 즐긴다는 소리. 그렇지만 윤종대는 아들을 잃은 사람, 그런 심정이 아니다.
‘뱀 같은 놈.’
함진웅을 볼 때면 느끼는 감정을 윤종대는 애써 밀어냈다. 저런 자여서, 저 눈빛과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현진의 오씨 형제와 하나가 됐던 건데, 이렇게 다시 저 얼굴을 보고 있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다.
“알고 있겠지만 상대는 귀신이야.”
차가운 눈빛을 내며 입을 연 윤종대는 뒷말을 역시 차갑게 이어냈다.
“그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어떠한 거라도 감수할 생각이야. 사옥을 팔아야 한다면 그럴 거고, 내가 가진 전 재산을 내놔야 한다면 그럴 거야.”
소파의 함진웅이 눈 밑을 꿈틀거리는 걸 보며 윤종대는 계속 말했다.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어서 불렀지. 현진이 당했거든? 오동철은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자야. 오동진은 투견 같은 친구였지. 그들이 누군가에게 당할 거라곤 생각해 본적 없어. 그런데 귀신에게 다 죽었어.”
그래서 너희들을 직접 보고 판단하려고 불렀다는 소리.
함진웅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세운다.
윤종대와 비슷한 육십대 초반인데 어깨는 건장하다.
흑색으로 물들인 옛날 군복야상차림, 테이블에 놓은 물건을 잡는다.
“회장님, 내가 원래 뭐하던 놈이었는지 제대로 알면……”
손에 잡은 길쭉한 물건, 총기 케이스 지퍼를 연 함진웅은 총을 꺼냈다.
사냥용 엽총이다. 그런데 총신을 잘랐다. 훌치기를 철컥하며 웃는다.
“귀신이든 도깨비든 내가 죽이려고 작정하면 죽입니다. 나는 백정이거든?”
윤종대는 등골에 소름이 듣는 걸 느꼈다.
알고 있다. 함진웅이 원래 뭐하던 놈인지 알아봤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안산에 터를 잡고 살아온 놈이다.
정말로 개백정 같은 인간이다.
‘네 손에 죽어나간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함진웅은 제 일에 방해가 되는 자들은 죽였다.
그들은 실종자가 됐다. 그 숫자가 대략 알아낸 것만 스물이 넘는다.
안산관내에서 일어난, 함진웅의 짓이라고 믿을 만한 숫자만 그렇다.
그래서 저 인간과 끊은 거다.
‘그러라고 권한 오동진도 이젠 죽어버린 마당.’
뜨거운 침을 삼킨 윤종대는 나직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함사장의 사업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늘 궁금했지. 어쩌면 나보다, 윤진건설보다도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말이야.”
엽총을 테이블에 내린 함진웅은 미소를 흘려냈다.
“아무렴 구멍가게 하는 놈이 윤진건설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구멍가게, 중소형마트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건 말할 필요 없다.
“그래,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 진짜 중요한건……”
윤종대가 다시 입을 연 그때 전기가 나갔다.
* * *
아무도 없다. 빌딩을 관리하는 인원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쉽게 전원을 차단했다. 비상등이 들어오긴 했지만 흐릿한 수준이다.
‘뭐지, 이 상황은?’
관리실을 나선 장철은 두루마기를 벗었다.
양쪽 옆구리에 숨겼던 중도를 잡았다.
이것 때문에 여간 불편했던 게 아니다.
허리를 지나서까지 내려오는 길이였지만 두루마기라서 숨길 수 있었다.
이젠 휘두를 때다.
‘함정?’
윤진건설 사옥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을 품은 채 장철은 상황을 곱씹었다.
직원들을 일부러 퇴근시킨 정황이다.
그래야 할 이유가 뭘까?
장철 자신이 이렇게 올 것을 알고 대비했다?
덫에 걸렸다?
아니 그건 오버다.
‘다른 이유.’
윤종대의 필요에 의한 이유일 거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은 유리하다.
윤종대외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는 것, 마음 놓고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윤종대 혼자는 아닐 터다.
그는 지금 그럴 처지가 아니다.
‘분노와 두려움.’
아들 운완규를 잃은 분노에 혹시라도 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현진이 부재한 마당이니 다른 대안을 찾을 터다.
‘그런 일환일 수도.’
죽어버린 엘리베이터를 지난 장철은 계단을 박차고 달려 올라갔다.
* * *
명지훈은 정말로 중증장애인이다. 도움 없이는 혼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 모습을 먼저 보여준 원장은 원장실로 데려가 녹차를 냈다.
‘저!’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던 최재우는 녹차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조웅!’
그다, 그가 원장과 시설의 다른 사람들과 서서 웃고 있다.
“보셨군요.”
엷은 미소를 품은 얼굴로 원장은 이야기 한다.
“우리 원의 귀중한 벗이었습니다. 언제나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분이죠. 저 분이 없었다면 우리 시설은 진즉에 없어졌을 겁니다.”
유지건과 송치호도 이제 사진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귀신장철이란 흉악살인자와 동룝니다!”
두형사의 반응에도 원장은 시종 미소를 잃지 않고 녹차를 음미한다.
“뉴스에서 매일 나오는 내용이라 알건 압니다.”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원장은 최재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마약에 취해 아이를 치어죽인 사건이더군요. 재벌가의 자식들이요.”
재벌가의 자식들이란 말에 들어간 힘을 최재우는 느꼈다.
“무엇하나 부족할 게 없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왜 그랬을까요? 뭐가 부족해서 그럴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원합니다. 그런 이들이 이곳에 와서 보기를요. 여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요.”
최재우는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걸 봤다. 원장의 개량한복이 얼마나 낡았는지다. 밖의 어둠 속에선 모르던 것이 안의 환함 속에선 다 보인다.
“우리 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버려진 이들입니다. 가족에게서, 세상에게서 버려진 불행한 사람들이죠. 네, 압니다. 저런 불행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국가에서 주는 돈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압니다.”
원장의 눈엔 가시가 돋아났다.
“불행한 저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지요. 저들이 저렇게 불행한 삶을 이어가는 걸 가엾게 여겨 나라에서 주는 돈, 그것만으론 저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네, 지원과 기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돈만 주면 다일까요?”
원장의 내지 않은 말을 최재우와 두 형사는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불편하고 죄지은 것 같은 숨을 가다듬는데 원장은 예상 밖의 말을 이어낸다.
“맞습니다, 돈이 전붑니다.”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넘긴 원장은 목소릴 이어냈다.
“이 세상을 살아보니 그렇더군요. 돈이 있으면 저들의 불행을 깎아내 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돈, 언제나 어디서나 필요한 돈, 그 돈을 그분이 줬습니다. 이번엔 정말로 큰돈을 주셨습니다. 명지훈 장애우에게 줬죠.”
원장의 눈을 똑바로, 강하게 응시하던 최재우는 물었다.
“조웅과 생각보다 긴밀한 관계가 분명하군요. 연락을 받았습니까? 범죄자를 돕거나 범죄수익금을 편취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아십니까?”
원장은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압니다. 그런데 되묻고 싶습니다. 명지훈 장애우의 통장에 있는 돈이 범죄수익금입니까? 상계동에 있는 건물을 매매해서 받은 대금이 아닙니까? 그게 범죄라는 걸 입증할 수 있습니까? 저분이 범죄자라는 걸요?”
원장이 손을 뻗어 가리키는 사진 속 인물, 조웅을 돌아보지 않고 최재우는 시선만을 받아냈다. 저 말을 반박할 수가 없어서다, 이런 배경을 조웅에게서 설명 들은 게 확실하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유대관계가 있었다.
최재우가 다시 입을 열렸는데 유지건이 확 튀어나왔다.
“범죄사실은 다 밝혀질 겁니다! 원장님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명지훈씨의 신분이 도용된 게 확실한 이상 그게 원장님으로 인해서라면요!”
거듭 소리치려던 유지건은 주춤했다.
“죄가 있다면 받을 겁니다.”
다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원장, 그 얼굴을 세 형사는 바라봤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 너희 맘대로 해 보라는 눈, 담담하다.
“그 돈을 법으로 압류하겠다면 하십시오. 우리에겐 소중한 돈이지만 없어도 죽진 않습니다. 여태도 우린 돈 없이 살아왔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것만 변치 않으면 우린 살아갑니다.”
원장은 최재우의 눈을 응시하며 남은 말을 냈다.
“날 범죄자로 만들어 잡아가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꼭해야겠습니다. 명지훈 장애우는 자신의 선택으로 했습니다. 그분은 그대가로서가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우릴 도왔습니다. 그분은 우리 친구입니다.”
최재우는 말없이 긴 숨을 흘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