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38. 피할 수 없는.
38. 피할 수 없는.
전기가 나간 걸 깨달은 순간 함진웅은 바로 명령했다.
다섯 명의 외국인들, 살인자들은 바로 대응에 나섰다.
준비해온 무기들을 지니고 나갔다.
회장실 밖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눈을 치뜬 윤종대는 전율했다.
‘왔구나!’
귀신이 왔다.
윤종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온 거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예감하던 일이다.
아들 윤완규를 죽였으니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하면서도, 귀신이란 존재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품고 있었다.
‘정말로 왔어!’
안면이 떨려 시야까지 흔들리는 속에서 윤종대는 현실을 뜨겁게 삼켰다.
아들을 죽인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 온 거다.
찾아야 할 수고를 덜어줬다.
그러니 놈을 죽이면 되는 거다.
아무도 없으니 환경은 최상이다.
‘함진웅이……’
총신 자른 엽총을 움켜쥐고 열린 회장실 문을 보고 있는 함진웅.
저 개백정 같은 자를 믿지만, 저자 밖에 방법이 없어서 불렀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될까란 의문이다.
현진도 박살났고 세경과 온누리도 헤매는 터다.
“걱정 되시는 모양이군.”
흐릿한 미소로 돌아보는 함진웅의 시선을 윤종대는 읽었다.
지금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고 던지는 눈길과 미소다. 동시에 즐기는 눈깔이다.
확실하다, 지금 상황을, 긴장을, 보게 될 피를 기대하는 개백정의 얼굴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던가요?”
함진웅은 미소가 아닌 환한 웃음을 짓는다. 정말로 이 상황을 즐기는 모습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함진웅의 말은 틀리지 않다.
‘죽이려던 놈이 왔어.’
죽여야 한다.
놈을 피해 도망갈 일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직전에 한 말처럼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면 무슨 대가라도 치를 결심이다.
‘피할 수 없는 일.’
정해진 일이었다. 귀신은 윤종대 자신까지 죽이려고 마음먹었던 거다. 처음부턴 아니었을지 몰라도 현진을 겪으면서 결심한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죽이려고 왔다.
저놈 손에 죽을 순 없다.
죽여서 복수해야 한다.
“흐, 그때처럼 피가 곤두서……!”
함진웅의 중얼거림, 밑도 끝도 없이 나온 말에 윤종대는 미간을 좁혔다.
두 손으로 자른 엽총을 쥐고 선 함진웅은 부르르 소름을 털며 웃는다.
“흐흐흐흐.”
등골에 뭔가 달라붙는 것 같은 웃음소리, 그 뒤로 함진웅은 또 중얼거린다.
“80년 광주, 그때 같아.”
좁힌 미간을 확 찌푸리는 윤종대를 함진웅이 돌아봤다.
“사옥내의 이상일 경우는 없습니까?”
갑자기 전기가 나간 상황, 함진웅이 묻는 경우가 아니다.
창밖의 주변은 그대로다. 윤진건설 사옥만 전기가 나간 거다.
이건 누군가 전기를 차단한 거다.
관리실을 포함해 전원 다 퇴근 시켰으니 상황을 알길 없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사옥내 관리시스템은 무인일 경우에도 무리 없이 돌아가도록 돼 있어. 이렇게 갑작스런 정전은 특이상황이지.”
윤종대는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함진웅은 다시 미소를 흘린다.
“좋아.”
정말로 좋아한다. 지금 이 상황을, 귀신이 찾아온 걸로 확실시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거다. 개백정으로서의 본능이 전신으로 온다.
“내가 80년 5월에 광주에 있었소.”
두 번째 듣는 광주, 그 말을 뱉은 함진웅을 윤종대는 응시했다.
“11공수여단 소속이었지.”
짧고 명료하게 나온 함진웅의 뒷말에 윤종대는 어깨를 경직했다.
‘광주에……!’
무슨 소린지 이제 알겠다.
80년의 광주, 그곳에선 지옥이 생겨났었다.
전두환 살인마집단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후에 벌인 극악한 만행이다.
“실종자들이 사백 명이 넘는 다던데, 그 숫자에 내가 일조를 했지.”
불빛이 보이는 회장실 문밖 복도를 응시하는 함진웅은 눈에 핏발이 서는 것을 윤종대는 깨달았다.
“처음에 하나를 죽였을 때는 실감이 나질 않더라고.”
함진웅은 이제 확실한 반말로 목소리를 이어냈다.
“여름에 개를 잡잖아? 딱 그 느낌 정도였어. 그래서 하나를 더 죽여 봤지. m16에 장착한 대검으로 푹 쑤셨어. 비틀어 뽑으니까 창자가 딸려 나오더라고. 순대알지? 막 뽑은 그것처럼 김을 피워 올리는데, 그때 감이 왔지.”
함진웅은 윤종대를 돌아봤다.
“이거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얗게 미소를 피워내는 함진웅에게서 윤종대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피가 곤두서고 심장이 요동치더라고.”
함진웅의 미소는 더할 수 없는 희열을 풀어냈다.
“개돼지 잡듯이 죽일 수가 있구나. 나는 그래도 되는 구나. 나라의 명령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니까 이건 죄가 아니구나. 미칠 것 같았지.”
좋아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서.
“거긴 정말 천국 같았어.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지. 나라에서 빨갱이로 몰아 죽이려는 것들, 죽으면 되는 거였어. 파묻어 버리면 끝이었고.”
함진웅은 악마 같은 미소 속에서 허공을 응시했다.
“정확히 몇이나 죽였는지 몰라. 어디다 묻었는지도 기억이 흐릿해. 찾는다고들 하던데, 지금도 못 찾는 거 보면 앞으로도 못 찾아. 광주인근을 다 뒤집어 깐다면 가능하겠지. 그렇게 하겠어? 해도 나하곤 상관없고.”
떨리는 눈에 힘을 주던 윤종대는 함진웅의 허리를 봤다.
가죽 벨트에 착용돼 있는 칼날이 시린 빛을 내고 있다.
정글도 만한 크기인데 모양은 중식도 같다. 도폭이 좁고 도신이 더 길다는 것만 빼면 딱 그거다.
‘백정의 칼.’
윤종대의 생각과 느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함진웅은 또 입을 연다.
“윤회장, 당신도 나하고 같은 부류라는 걸 처음 봤을 때 알았지.”
이건 무슨 소린가 하며 윤종대는 함진웅의 눈을 응시했다.
“아니라고 할 건가? 당신 와이프, 귀신에게 뒈진 아들을 낳은 여자, 실종된 걸로 돼 있는 그 여자를 죽였잖아? 아니야? 당신 눈에 보이는데?”
“무, 무슨 소리야!”
윤종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가슴의 동요를 억누르면서다.
“당신하고 일 시작할 때 나름 알아봤는데, 아들 낳아놓고 얼마 안 있어서 여자가 바람이 났잖아? 우울증 치료 받으러 다니던 병원 의사하고 말야? 그 의사는 차사고로 죽었지? 혼자 한 것 치곤 제법 잘했어?”
혼자 한 것, 그때를 떠올린 윤종대는 부르르 소름을 털었다.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 이유가 윤종대 자신 때문이라는 것,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 마음을 감싸 주지 못한 결과다. 분노에 사로잡혀 그 일을 했다. 말대로 혼자서 해냈다.
“그때는 나도 만나기 전이고 현진놈들하고는 훨씬 후에 만났잖아?”
비릿한 미소로 함진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그런 인간이라니까?”
그래서 네가 누군지를 알아봤다는 함진웅의 눈은 강한 빛을 냈다.
“헛소리 말고 귀신이나 잡아 죽여!”
버럭 소리친 윤종대는 책상으로 돌아갔다. 서랍을 열고 권총을 꺼냈다. 그런 윤종대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함진웅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죽일 거야. 그러려고 온 거니까.”
* * *
비상계단을 달려 올라가던 장철은 위쪽의 기척을 감지했다. 빠른 속도로 계단을 달려 내려오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역시.’
윤종대는 혼자 있지 않았다.
사옥 내에 직원들이 남아 있지 않도록 모두 퇴근시킨 정황은 이유가 있어서다.
저러한 자들을 불러 함께 있었다.
‘날 추적해 상대할.’
7층 방화문 앞에서 멈춘 장철은 감각을 열고 집중했다.
위에서 비상계단을 내려오는 자들의 숫자를 가늠했다.
적어도 셋 이상, 다섯을 넘지 않는 것 같다.
이대로 맞는 건 아니다. 유리한 공간에서 대적해야 한다.
몸을 돌린 장철은 방화문을 열고 7층 안으로 들어갔다.
* * *
“와, 이게 무슨 일이래요?”
유지건은 황당한 얼굴로 폰을 본다. 송치호도 마찬가지다. 최재우 자신도 다를 바 없다. 차에 올라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에 상황을 인지했다.
[여당 대표 양석훈의원 여직원 성폭행.]
기사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집권여당의 수장이 이십대의 계약직 여직원을 집무실로 불러들여 성폭행했다는 사건이다.
한번이 아니라 장소를 바꿔가면서 수차례 걸쳐 이뤄졌다.
회유와 협박도 이어졌다.
‘ks모바일월드에 정규직으로 꽂아준다 했다고?’
계약직이란 불안한 신분의 여직원에게 처음 회유한 내용이다.
ks모바일은 국내 선두를 다투는 통신기업이다, 누가 원하는 꿈의 기업이다.
그렇지만 양석훈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켜도 불법이지만 어쨌든 그랬다.
“시벌새끼가 협박하고 약질하면서 계속 여자를 찍어 누른 거네.”
송치호는 거르지 않고 욕을 뱉어냈다.
얼마나 화가 난건지 알게 해 준다.
장가 못간 노총각 짭새의 마음이런가, 양석훈을 거듭 씹어 뱉는다.
“이런 개좆같은 것들이 정치한다고 설쳐대는 나라니 늘 이 모양이지.”
유지건이 바로 맞장구친다.
“성비위 사건으로 서로 성적을 다투는 건가요? 여당이고 야당이고 진보고 보수고 할 것 없이 애들 이 지랄일까요? 아, 전부 잘라 버렸으면 좋겠네. 저런 죄 지은 놈들은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헤, 내가 해버릴까?”
유지건의 뒤통수를 탁 친 송치호가 최재우를 돌아본다.
“이거 좀 냄새가 나는데요?”
“무슨 냄새요?”
운전대 잡다 돌아보는 유지건의 시선까지 받은 최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밍이 그렇지?”
“그렇죠. 벡운호수에 이어 상계동까지 덮는 마당이지만 제대로 덮이지 않을 건 뻔하죠. 그런 때 이런 빅사건이 터진 건 아무래도 의도 같습니다.”
“의도요?”
유지건의 의문이 든 시선을 마주 본 송치호는 이야기했다.
“세경과 온누리는 더 이상 사건이 알려지고 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거다. 시작이야 어쩔 수 없었고 합수부 결성도 흐름으로 된 일이지만, 한진수가 당하고 바로 고초희까지 당한 결과에 달리 대응하려는 거지.”
“그게…… 지들이 해결하는 거요?”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그러네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면 더 이상 지들 이름이 언론에 나오는 건 좋지 않고, 내막이 더 알려지는 것도 싫고, 그러니까 물타기를 한다?”
“여직원이 호텔에서 당할 때의 영상까지 있다는 게 확실한 것 같다.”
“오우, 그러네요. 여자가 아무리 피해증거를 잡기 위해 준비했다고 해도, 그런 걸 제출할 정도로 용기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시간도 제법 흘렀고요. 그런데 만약 누군가 거액을 제시한다면, 엄청난 돈을……”
“온누리 전략기획실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지.”
“그죠? 그것들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잖아요? 특히 정관계에요?”
“필요한 걸 찾아내서 필요한 때 쓴 거야.”
최재우는 폰을 내리고 말했다.
“장철의 집으로 가자.”
유지건과 송치호는 눈을 맞췄다. 지금 시간이 10시 반인데, 퇴근은 또 물 건너갔네, 하는 시선을 교환하고 몸을 돌렸다. 차는 바로 출발했다.
* * *
개발실이라고 써진 공간으로 장철은 들어갔다. 문 바로 뒤에 붙어 복도의 기척을 살폈다. 그러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손거울을 발견했다.
여직원의 자리인 모양, 놓고 간 손거울을 잡고 문밖으로 살며시 내밀었다.
‘다섯.’
비상계단에서 안으로 들어온 놈들은 다섯이다.
비상등 빛에 드러난 외모는 각양각색, 전부 외국인이다.
하나같이 총기를 들었다.
대한민국도 총기사고 뉴스가 끊이질 않는 곳이지만, 저렇게 총들이 넘쳐나고 있다.
‘고스트건.’
뉴스에서 본 내용, 해외에서 부품을 택배로 받아 조립한다는 총기다.
예전엔 부산항등에서 밀수한 총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내용을 떠올리며 장철은 호흡을 골랐다. 거울 속 놈들이 퍼지는 걸 보며 방향을 가늠했다.
‘협력 같은 건 하지 않는 놈들.’
각자 행동 한다. 상황 발생 시 달려가 목표를 제거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거다. 한국말로 소통할 것 같지도 않으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하나씩.’
결정을 내린 장철은 중도를 뽑았다.
자루를 바닥에 놓고 움직였다. 옆 사무실로 들어간 놈을 향해서다.
벽 중간에 보이는 내부 문, 저 너머에 놈이 있다.
오리걸음을 하듯 자세를 낮추고 이동한 장철은 문 옆에 붙었다.
방금 전까지 있던 열린 문쪽을 돌아보면서다.
옆 사무실에서 내부 문 여는 기척이 왔다.
스르르, 사무실과 사무실의 내부 문이 열렸다. 그러나 놈은 나오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장철이 마음속으로 센 느린 숫자가 셋이 됐을 때 놈이 걸음을 냈다.
그 찰나 장철은 움직였다.
걸음을 낸 백인 놈의 총 든 손을 중도로 쳤다.
쉬컥, 손목과 총이 잘려나가는 순간, 백인놈의 눈이 커지는 찰나 두 번째 칼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