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39. 응보의 칼날.
39. 응보의 칼날.
반자동권총을 움켜쥔 감각으로 윤종대는 소름을 털어냈다. 지금 이 순간, 원수가 찾아와 자신을 죽으려는 현실과 그 원수를 죽이려는 자신의 의지에 전율했다. 권총을 손에 넣은 때부터 예정돼 있던 순간이 온 거다.
‘죽인다, 아니면 죽는 거야.’
명료한 그 결론을 윤종대는 뜨거운 침과 함께 삼켰다.
지금 이 현실은 그것이다.
죽이거나 죽거나다.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다.
함진웅을 부른 때 귀신이 찾아온 일이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 상관없다.
‘죽이자는 거니까.’
서로의 목적이 그거다. 그것만 하는 거다.
귀신이 아무리 무섭지만 저런 개백정이 옆에 있다.
함진웅, 저놈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오늘에야 명확하게 알게 된 저놈의 과거는 역사를 피로 물들인 것이었다.
‘그것도 상관없지.’
귀신만 죽이면 된다.
함진웅이 과거에 뭘 했건 지금 일만 잘하면 된다.
과거에 그런 놈이었기에 잘할 거라고 믿는다, 아니 확신이 든다.
그래서 궁금하고 소름이 돋는다. 귀신과 개백정이 붙으면 어떻게 될까하고.
‘함진웅, 네가 귀신을 잡고 시간을 끌어주면 돼.’
바라는 건 그거다.
귀신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함진웅이 해줄 일, 진정 바라는 거다.
그렇게 만 해주면 마무리는 윤종대 자신이 지을 거다.
사격연습장에서 쌓아온 실력을 발휘하는 거다. 이 공간 안에서면 가능하다.
‘네가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부득 이가는 소릴 낸 윤종대는 함진웅의 어깨가 꿈틀하는 걸 봤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열려 있는 문밖을 바라보며 미동 없이 서 있다.
* * *
두 번째 칼을 상대의 목에 후린 장철은 그대로 몸을 던져 굴렀다.
머리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는 백인놈의 뒤로다.
그 순간 총격이 날아왔다.
머리 없는 백인놈의 몸통에서 피가 튀고 내부 문에 구멍이 났다.
정확한 연사로 공격한 놈, 장철 자신이 백인을 공격하는 순간을 노린 놈이 달려온다.
하지만 멈춘다. 목 잘린 백인의 쏟아낸 피와 쓰러진 몸 때문이다.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장철은 바닥을 빠르게 기었다.
백인이 쓰러진 사무실과 사무실 사이의 내부 문 바로 옆 벽에 붙었다.
이편으로도 흘러들어오는 피를 보며 숨을 골랐다.
동시에 감각을 집중했다.
벽 너머 놈이 어디쯤인지를 가늠했다.
‘지금 위치, 벽 바로 뒤.’
놈도 장철 자신처럼 벽에 붙었다.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느껴진다.
석고보드와 합판으로 공간을 가린 벽, 거기 붙은 적의 존재가 알아진다.
이순간의 상황과 조건들이 놈의 행동을 만든 거지만, 예감이 포착한다.
‘지금!’
무릎을 세워 일어서며 장철은 중도를 벽에 꽂았다.
석도보드를 관통한 칼날은 인간의 육체까지 쑤시고 들어간 느낌을 강렬하게 줬다.
찌른 칼을 놓고 두 번째 칼을 양손으로 잡았다.
벼락처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벽은 갈라졌다. 그 틈으로 붉은 색이 번진다.
벽 너머에서 허물어지는 두 번째 놈의 피다.
놈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문을 돌아갔다.
바닥에 주저앉은 놈이 옆으로 기우는 게 보인다. 엎어진 상체의 등이 갈라졌다.
저절로 뽑힌 칼을 회수하려 장철은 다시 옆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러며 다른 놈들의 동정과 기척을 살폈다. 7층 내부로 퍼진 다섯 놈 중에 백인 놈과 아랍 놈을 처리했다. 나머지 세 놈은 숨죽이며 움직이고 있다.
‘기회가 여의치 않았지.’
중동 놈처럼 백인 놈이 당하는 순간을 이용하는, 그런 기회가 용이하지 않았음이다. 장철 자신이 벼락처럼 끝냈기 때문, 상대적으로 다른 세 놈은 거리가 있었던 까닭이다. 총소리 후의 정적으로 놈들은 알 것이다.
‘와라. 아니, 내가 가마.’
장철은 귀신처럼 움직였다. 흐린 비상등만이 켜진 윤진건설 사옥의 7층 내부,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사격음이 벽에 스며든 공간 안을 이동했다. 샌드백을 치는 것 같던 그 소리의 울림에 놈들도 반응하고 있음이다.
‘복도.’
미세한 기척, 아니 그런 건 없다.
그렇지만 이 순간 피부에 닿는 공기의 흐름이 말해준다.
누군가의 움직임으로 밀려왔다.
그 누군가가 들어온다.
복도로 통하는 사무실 문을 향해 장철은 맹수처럼 돌아서 달려갔다.
문을 밀고 들어온 흑인이 눈을 치뜨며 권총을 겨눈다.
총구섬광의 아래로 파고들어갔다.
양 손에 잡은 중도를 안에서 밖으로 뿌리듯 휘둘렀다.
장철은 흑인의 몸통을 달려가던 힘 그대로 받았다.
어깨 위에 올린 형국이 된 흑인의 두 팔, 움켜잡은 권총이 연속해서 섬광을 토했다.
하지만 사무실 안으로 사라질 뿐, 흑인은 황소에 받힌 것처럼 복도로 날아갔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흑인은 떨어졌다.
복부가 기울어진 십자로 갈라진 채 부들거린다.
자신을 죽인 자의 얼굴을 눈에 넣고 경련하다 늘어진다.
바로 그 순간 옆에서 날아온 위험을 장철은 감지했다.
몸을 돌리며 중도를 후렸다.
회오리처럼 날아온 것이 사무실 벽에 박혔다.
석고보드 벽을 파고 들어간 것은 쿠크리다. 장철 자신도 사용하던 무기, 커다랗다.
‘제 몸처럼 쓰던 놈이구나.’
다른 손에 남은 또 하나의 쿠크리를 가볍게 돌리며 다가오는 놈.
동남아인이다. 쿠크리를 잡고 다루는 모습이 한눈에도 전문가다.
오랫동안 저 칼을 사용했고 많은 피를 흘렸다. 표정 없이 응축한 눈은 맹수 같다.
장철은 놈을 향해 걸음을 내려다 뒤로 물러났다.
총을 버리고 쿠크리로 대적할 것을 분명히 보인 놈에게 기회를 줬다.
놈은 벽에 박힌 쿠크리를 뽑았다.
죽어버린 흑인을 힐긋 보더니 장철을 응시하며 미소 짓는다.
장철은 그 순간 움직였다.
뒤로 물러났다 멈춘 걸음을 다시 앞으로 내면서, 동남아놈의 눈동자가 확 응축하는 걸 인지하면서, 놈의 전투본능이 쿠크리로 퍼져 나오는 것에 전율하면서, 중도 두 자루의 섬광을 뿌렸다.
* * *
“합수부에서 다 훑어서 뭐가 없는 것 같은데요?”
피곤해 하는 유지건의 투덜거림 같은 목소리를 최재우는 무시했다. 장철이 머물렀던 공간, 그가 딸과 손녀와 살던 집안을 말없이 응시했다.
‘뭘 건지려고 온 게 아니야.’
그렇다, 그런 건 없다.
장철은 이 집안에 증거가 될 만한 건, 범죄행위와 연관됐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련 없이 떠난 거다.
이곳은 그가 딸과 손녀와 평범하게 살던 곳이다. 그냥 집이다.
‘여길 온 이유는……’
벽에 가로막혔을 때는 원점에서부터라는 소리로 온 거지만, 유지건의 심정대로 단서 같은걸 잡을 것 같진 않다. 여길 온 진짜 이유는 확인하려고가 맞을 거다. 장철이란 인물이 정말로 원하던 삶이 무너진 심정을.
‘저렇게 살고자 한 건데……’
벽에 걸린 액자들 속의 사진은 행복한 웃음으로 차 있다.
장철과 딸 장민지와 손녀 장영의 웃음이다.
어린이집 재롱잔치 때 함께한 행복한 한때, 놀이공원에서의 즐거운 순간, 세 사람의 저 환한 웃음은 사라졌다.
“이집, 매매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두는 겁니까?”
송치호의 의문에 최재우는 즉답을 못했다.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는 건 매매대금이 장민지의 병수발에 거의 다 들어갔단 거다.
“곧,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매수자가 들어와 살게 될 거란 건지 다른 건지, 애매한 소리를 한 최재우를 보며 송치호와 유지건은 말없는 시선만 교환했다. 그런 속에서 최재우는 조웅을 생각했다. 그를 잡아채야 하는데 방법이 없는 거다.
‘나눔자리도 더는 아는 게 없어.’
조웅의 신원에 대해 원장이 아는 건 들은 것까지 뿐이다.
조웅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과 신뢰를 쌓아왔다.
진심,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왜 그런 곳에?’
조웅이 장애인 시설을 찾은 이유가 뭔지 모른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위해, 유리함과 이득을 위해 그랬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결과가 그렇다.
명지훈의 신분을 도용해 살아왔다. 하지만 마지막엔 대가를 치렀다.
‘이유가 있는 걸까?’
장애인에게 관심을 둘만한 그의 개인적인 삶의 배경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다.
조웅은 이름만을 알았을 뿐이지 실제 신원을 모른다.
공식적으로 그는 없는 자다. 출생지, 부모, 아무것도 모른다.
‘형제보육원 기록만 남아 있었어도……’
아쉬움을 삼키며 최재우는 한숨 쉬었다. 동시에 암담함을 느꼈다.
사방이 벽이어서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온누리와 세경은 저희 멋대로다.
이 현실을 잡고 있기가 힘들다.
“팀장님 이게 뭘까요?”
송치호의 목소리에 현실로 깨어난 최재우는 욕실로 향했다.
욕실 안 거울을 보고 선 송치호가 미간 좁힌 얼굴로 돌아본다.
손은 거울을 가리킨다. 그 손가락이 짚은 거울 표면에 글자가 있다.
물때로 인해 보인 글자다.
‘특별치료?’
손가락으로 거울에 쓴 글자다. 욕실에 증기가 가득 찼을 때, 그래서 거울이 뿌예졌을 때 쓴 거다. 그 후로 거울을 닦지 않아 윤곽이 드러났다.
“특별치료 라고 쓴 거네요? 저게 무슨 소리죠?”
유지건의 의문은 송치호와 최재우의 것이기도 하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도 같은 예감.
어떠한 단서도 없는 장철의 집에서 발견한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최재우는 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딸 장민지의 치료를 뜻하는 건가?’
폰에 잡혀 들어간 사진 속 글자, ‘특별치료’를 보며 최재우는 장철을 떠올렸다.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고 싶다.
* * *
쿠크리를 받아친 순간 장철은 포탄처럼 몸을 던졌다.
두 팔이 벌어진 동남아 놈의 경악한 눈, 미간사이에 이마를 박았다.
쩍 하는 소리를 내며 휘청거리는 놈을 쫓아가며, 두 손을 내려치듯 중도를 강력하게 내리쳤다.
동남아 놈의 두 팔이 몸통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순간 회전하며 점프한 장철은 뒷차기를 뻗어냈다.
피스톤처럼 터져나간 발은 이미 부서진 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복도를 굴러간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와.”
절명한 자의 너머를 향해 장철은 짧은 말을 던졌다.
그 말을 알아들은 건지 어떤 건지, 섬뜩한 미소를 품은 동양인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한국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니다, 중국인인 게 확실하다.
휘잉, 휘잉, 중국 놈의 손에서 돌아가는 쇠사슬을 장철은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쿠크리를 사용한 동남아 놈처럼 이놈도 권총 대신 저걸 택했다.
그만큼 자신 있는 무기란 소리, 평생 연마하고 살인에 사용한 거다.
‘이십사절곤.’
스물네 개의 쇠마디로 이뤄진, 그 끝에 칼날이 달린 무기를 보며 장철은 자세를 낮췄다. 직전까지 상대한 놈들보다 훨씬 강한 상대임을 깨달았다.
‘기회는 한번.’
양손에 움켜잡은 중도에 힘을 주는 순간 공격이 터져 나왔다.
스물네 마디의 쇠막대가 회오리로 돌며 벽과 바닥과 천장을 파헤친다.
복도 안쪽 사무실 벽들은 휘날렸고 복도의 시멘트벽은 불꽃으로 패여 들어갔다.
엄청난 스피드와 위험한 파워를 퍼트리며 다가오는 공격.
그 안으로 장철은 들어갔다. 오른손의 중도를 휘둘렀다.
회오리로 내리쳐오는 사슬을, 철곤을 휘감았다. 그런데 철곤은 중도를 감고 어깨에 칼날을 박았다.
섬뜩한 감각이 터지는 그 찰나 장철은 오른 손을 잡아당겼다.
중국 놈은 확 딸려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의 얼굴, 사슬 같은 철곤이 얽히는 순간 이런 상황을 예측했겠지만, 이처럼 딸려갈 줄은 예상 못한 거다.
장철은 놈에게 왼손을 내리쳤다.
경악한 중국놈의 눈, 그 사이로 칼날은 내려갔다.
* * *
“전부 뒈졌군.”
함진웅의 나직한 목소리에 윤종대는 미간을 확 좁혔다. 책상 뒤에 몸을 숨기고 권총을 움켜쥔 채 숨을 몰아 내쉬던 순간, 숨을 멈추고 말았다.
‘죽었다고? 전부?’
함진웅이 데리고 온 살인자 놈들, 다섯 놈이 다 죽었다는 거다.
보지 않았지만 함진웅이 저렇게 말할 때는 이유가 있는 거다.
그렇다면 이제 함진웅 뿐이다.
저 개백정이 기회를 만들어 줄 거라고 여기지만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
세경과 온누리에 알리는 거다.
아니 그건 늦다. 경찰에 먼저 알리는 게 맞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기회가 사라질 거다.
귀신을 직접 죽여야 한다.
“이 새끼야!”
윤종대의 생각을 박살내는 고함이 함진웅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엽총이 불을 뿜었다. 열려있는 회장실 문 밖 복도 벽은 벌집이 됐다.
“와봐!”
함진웅은 미친 듯 엽총을 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