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41. 귀신이 아니라 악마다.
41. 귀신이 아니라 악마다.
“으음, 이게 무슨 소리야?”
얼굴을 든 아내 유인주의 잠꼬대 같은 반응을 최재우는 뒤늦게 알았다. 비몽사몽, 잠들기 전 아내와 마신 와인에 피곤에 젖은 몸을 감아오는 아내를 안은 후유증이다. 침대 옆 협탁 위에서 울어내는 건 핸드폰이다.
“어……”
“자갸, 오뺘야.”
유인주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최재우는 완전히 잠을 밀어냈다.
얼른 폰을 잡았다.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는 합수부의 박인수 경정이다.
비상을 알리는 목소리는 냉철하면서도 흥분해 있다.
그 내용은 상상초월이다.
-윤진건설 윤종대 회장이 귀신에게 당했다.
최재우는 벌거벗은 몸인 것도 잊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가야 되지?”
하나마나한 물음,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던 유인주는 서둘러 옷을 입는다. 비상이 걸려 나가야 하는 남편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위해서다.
“귀신이 확실한 겁니까?”
아내 유인주처럼 하나마나한 물음을 내면서 최재우는 폰을 반대편 귀로 붙였다. 어깨와 턱 사이에 고정하고 허리 벨트를 조이고 양말을 신었다.
-윤종대 혼자만 당한 게 아니다. 여섯 명이 더 죽었어.
이러고 있어봐야 궁금함만 더할 뿐이란 걸 알기에 최재우는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바로 가겠습니다.”
양말을 끌어올리고 폰을 제대로 잡은 최재우는 유지건과 송치호에게 전화를 넣었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신경질을 내는 유지건에게 호통치고 한숨 쉬는 송치호를 달랬다, 그러는데 아내 유인주가 먹을 걸 내민다.
“속이 비면 힘들어.”
급하게 만든 아내표 샌드위치, 최재우는 급하게 먹었다.
“아유 좀 천천히 먹어.”
금방 다 먹어버린 샌드위치 접시를 받아든 아내 유인주를 최재우는 끌어안았다.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체온과 온기를 들이마시고 속삭였다.
“자.”
설친 잠 보충하고 늦게까지 자라는 말, 유인주는 최재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남편의 두 뺨을 감싸 쥐고 애정 가득한 눈으로 역시 속삭인다.
“다치지 말고 퇴근해, 마님 걱정하면서 기다리게 하지 말고.”
최재우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마님. 퇴근 후에 다시 뜨밤을 선사하겠습니다요.”
“이그.”
아내의 볼에 입맞춤한 최재우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다.
아파트는 정적 속에 있다.
‘귀신.’
장철의 얼굴을 떠올리며 최재우는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가까운 송치호의 집으로 향했다. 새벽도로를 달려가니 송치호는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귀신이 한 겁니까?”
흥분과 놀람으로 묻는 송치호의 얼굴엔 피곤 따윈 보이지 않는다.
“윤완규를 죽인 걸로 모자란 겁니까?”
복수는 하지 않았냐는, 이건 과하지 않느냐는 송치호의 반응.
“알고 있는 거야.”
조수석에 탄 송치호는 최재우의 단단해진 얼굴과 눈빛을 응시했다.
“당하기 전에 하겠다는 거지.”
움찔한 눈 밑의 반응을 앞으로 돌린 송치호는 뜨거운 숨을 길게 흘려냈다.
최재우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귀신은 자신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알고 있다.
세경과 온누리와 윤진, 그들에게 죽기 전에 죽인다는 거다.
“어, 저자식 저거.”
송치호는 상념을 깨고 유지건을 봤다. 도로변 편의점 앞에 나와 기다리며 컵라면을 먹고 있다. 차를 보더니 급하게 국물 드링킹을 끝낸다.
“야!”
차창을 열고 송치호가 소리치자 유지건은 얼른 편의점 쓰레기통에 컵라면 용기를 넣었다. 비호처럼 차에 올라타더니 준비한 생수를 벌컥댄다.
“아주 제대로구나 제대로야.”
뒤돌아 눈을 부라리는 송치호에게 유지건은 항의했다.
“배고픈데 어쩌라고요? 짠 거 먹었는데 당연히 물 마셔야죠?”
“그래라, 누가 너처럼 착실하게 세상 살겠냐.”
“아 좀스럽게 궁시렁은, 배고프면 하나 준비해 놓으라고 하면 될 걸.”
“이쉐키가 증말!”
유지건과 송치호의 분란을 옆에 두고 최재우는 서울을 향해 차를 달려갔다.
* * *
“윤종대가 죽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한대건은 최길준의 눈을 응시했다. 이제 막 인지한 상황, 귀신이 벌인 일에 분노하고 반응하는 눈, 깊고 서늘하다.
“명륜동 윤진건설 사옥입니다. 윤종대 외에 여섯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10시에서 자정사이에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선 한대건은 잠옷을 펄럭이며 냉장고로 향했다. 시원하게 만져지는 프랑스산 생수를 꺼내 따서 입에 박았다. 목 줄기를 차갑게 훑고 내려가는 감각으로 잠의 찌꺼기를 밀어냈다. 그렇게 현실을 봤다.
“여섯 명은 뭐야?”
냉장고에서 돌아서며 물음을 던진 한대건, 그 강렬한 눈길을 최길준은 무표정으로 받아냈다.
“합수부에서 신원을 파악 중입니다만, 윤종대가 부른 자들인 걸로 판단됩니다. 신변경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귀신을 잡기 위해서가 맞을 겁니다.”
“그런데 당했다? 귀신은 어떻게 알고 그런 건데?”
윤진건설 윤종대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윤회장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만, 오비이락의 경우도 배제할 순 없겠습니다.”
“오비이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
“선제공격의 결과로 생각됩니다.”
최길준의 대답에 한대건은 황당함을 품은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누구보다도 잘 꿰뚫어보는 자가 최길준이다.
단서나 증거가 없는 짐작과 예감이라 해도 최길준의 말이면 옳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거면 또 황당하다.
‘우리가 잡아 죽이려는 걸 알고 이런다?’
물론 당연히 알 터다. 그러니 도망가야 맞다. 하지만 반대다.
그게 윤진이면 모르겠지만 세경과 온누리란 이름이면 다르다.
그런데도 귀신은 하고 있는 거다.
그의 복수는 시작했을 뿐 끝나지 않은 거다.
이쪽에서 죽이려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
애초부터 전부 죽이려고 한 거다.
‘귀신, 이 죽일 놈이……!’
부들거리는 숨을 풀어낸 한대건은 명령했다.
“상황을 철저히 파악해. 합수부를 닥달해서 귀신의 꼬리를 잡아.”
숨죽인 회장의 지시, 그렇기에 더 큰 분노를 느낀 최길준은 고개 숙이고 돌아섰다.
* * *
-현장에 출동한 합수부는 철저한 통제 속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윤진건설 사옥 앞에서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의 얼굴은 상기돼 있다.
-어젯밤 10시에서 자정사이에 사건이 발생한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윤진건설 사옥엔 윤종대 회장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지시로 사옥 내 모든 인원들이 퇴근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관리인원도 남겨두지 말라는 윤회장의 지시로 빌딩 안에는 오로지 윤회장 한사람만……
tv를 바라보며 고종환은 작게 중얼거렸다.
“온누리에서 만든 작품을 잘도 부숴버렸구나.”
소파에 앉은 고종환의 등을 바라보며 김부장은 무거운 숨을 흘려냈다.
회장 고종환이 말한 대로다.
자유겨레당 대표 양석훈의 성폭행 사건으로 물 타기 하려던 시도는 물 건너갔다.
윤종대가 죽어 불이 살아났다.
-윤회장을 제외하면 사옥 내엔 오직 한사람의 윤진건설 관계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빌딩 현관담당 경비원입니다. 빌딩 앞에 상주하던 취재진이 물러가고 그 역시 퇴근할 순서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일층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진술에 의하면 노인에게 폭행……
화장실이 급하다며 빌딩으로 들어온 노인을 따라갔다가 당했다는 이야기다.
귀신이다.
노인으로 변장한 그가 빌딩내로 침투한 방법이 그거다.
전원을 내리기 전에 cctv에 찍힌 모습이 나온다.
영락없는 노인이다.
“저렇게 한 거지. 귀신이 귀신으로 불린 이유가 저거야.”
tv를 보며 중얼거린 고종환의 말뜻을 김부장은 이해했다. 귀신이란 존재가 암흑가의 공포로 존재하던 시절, 아무도 귀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잡지 못한 건 저런 이유인 거다. 저렇게 귀신같은 변장을 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져서 저 모습이 잡힌 거지.’
cctv가 천지사방에 깔린 세상, 그런 덕분에 귀신의 저 모습을 잡은 거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윤진건설 사옥을 나와서는 귀신처럼 꼬릴 잘랐다.
‘도주할 루트를 철저하게 확인하고 준비했어.’
귀신은 귀신같이 구멍을 찾아내는 거다. 명륜동 혜화동, 저 일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 속에서 살아나갈 틈을 찾고 만든 거다.
-경비원의 진술에 의하면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후 차량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승진마켓이라고 적힌 승합차라고 합니다. 회장실로 직행한 손님들이었다는 게 경비원의 진술입니다. 네, 사망한 이들입니다.
역시 언론사의 취재는 발 빠르다.
병원으로 이송된 경비원과 접촉한 거다.
승진마켓이라는 승합차를 검색중일 거다.
합수부에서 발표하지 않아도 언론이 말할 터다.
윤종대가 부른 자들, 그들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를.
“저놈을 잡아 죽이려면……”
고종환의 중얼거림이 김부장은 귀를 세웠다. 하지만 뒷말은 이어져 나오지 않았다. tv에 시선을 고정한 회장은 미약하게 어깨만 들먹거렸다.
* * *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승합차, 승진마켓이라고 당당히 표기 돼 있는 차량의 조회는 이미 끝났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직전에 들었다.
‘안산.’
차적지는 그곳이다. 정말로 마트의 차량이라고 한다. 승진마켓, 그곳에서 차가 출발한 것도 확인됐다. 여섯 명이 타고 이곳 윤진건설에 도착했다.
‘윤회장의 지시로 모든 직원들이 퇴근한 곳에.’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숫자판을 보던 최재우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귀신이 다녀간 현장에 발을 들이는 감정을 다스리려 숨을 들이켰다. 그래도 잘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귀신 장철은 일곱 명을 살해했다.
‘윤완규의 아버지 윤종대, 그가 부른 걸로 추측되는 여섯 명.’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윤종대회장은 귀신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직원들을 전부 퇴근시키고 그 일을 할 인원들과 만났다.
그런데 그런 때에 귀신이 들이쳤다.
알고 한 건지 아닌지를 모른다.
‘알았다면 윤종대를 다음 타깃으로 놓고 감시했다는 거고 아니라면 우연하게 이렇게 됐다는 건데…… 현실적으로 전자라고 생각하는 게 맞아. 하지만 세경과 온누리에서 눈에 불을 켜고 움직이는 마당인데 가능해?’
의문을 품고 최재우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회장실로 이어진 복도를 걸어가자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회장실 문 맞은편 벽의 탄흔이다.
‘산탄총.’
난사한 흔적을 눈에 담고 최재우는 회장실로 들어갔다.
유지건과 송치호가 움찔하는 것처럼 걸음을 멈췄다.
작업복차림의 장년 남자가 엎어져 있다.
오른쪽 겨드랑이에, 턱에서부터는 정수리를 관통한 칼을 품었다.
“함진웅이야.”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를 향해 최재우는 고갤 돌렸다.
회장 윤종대라는 명패가 떨어져 있는 커다란 책상 옆에서 박인수 경정이 바라보고 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 또 다른 죽음을 봤다.
윤종대, 머리가 쪼개졌다.
“헉.”
유지건의 반응을 송치호가 끌고 가는 걸 느끼며 최재우는 입을 열었다.
“귀신의 이동로는 파악하지 못한 거겠지요?”
박인수 경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 놓고 귀신처럼 사라졌어.”
최재우는 윤종대의 죽음을 다시 봤다.
몸통이 갈라져 장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상태에서 머리를 이차 가격 당했다.
둘로 쪼갠 흉기는 그대로 있다.
폭이 좁은 대신 길이가 긴 중식도 같은 칼, 바닥에 박혀 있다.
‘몸통을 가른 흉기는……’
엎어져 죽어 있는 자에게 시선을 돌린 최재우는 두 자루의 칼을 눈에 넣었다. 겨드랑이와 머리를 관통한 칼, 왜도처럼 보이는 짧은 칼이다.
“저걸로 귀신은 다 해치웠어. 7층에 다섯 명이 죽어 있지.”
박인수경정의 목소리에 반응한 최재우는 시선을 맞췄다.
“전부 외국인들이고 총기와 다른 무기를 소지했어. 총질을 해댔지. 그런데 귀신에게 당했어. 윤종대가 부른 살인자 놈들일 텐데 임자 만난거지.”
다시 시선 돌린 최재우는 박인수 경정이 말한 이름을 더듬었다. 분명 함진웅이라고 했다. 엎어져 죽어 있는 저 장년인에 대해 파악한 거다.
“구린 놈이야. 파보면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놈이란 게 지금의 내 감이지. cctv를 보니 윤회장머리를 쪼갠 이 칼은 저놈 거야. 회장실로 가지고 들어온 장면, 귀신이 전원을 내리기 전에 찍힌 모습을 확인했어.”
최재우는 허탈한 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일곱 명을 죽이고 귀신처럼 사라졌네요……”
빅인수 경정은 차가운 음성으로 그 말을 받았다.
“귀신이 아니야, 그자는 악마야.”
흠칫하며 어깨를 경직했던 최재우는 소름을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