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42화 (42/200)

황혼의 살인자. 42. 발을 디딘 곳은.

42. 발을 디딘 곳은.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이영숙은 이불을 밀고 일어났다.

커튼을 친 창문 사이로 외부의 빛이 스며들고 있다.

다가가 커튼을 젖히고 그 빛을 맞았다.

상가건물 바로 앞의 도로 가로등 불빛, 애상을 돋우며 퍼지고 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런 처지가 됐다.

도망자 아닌 도망자다.

집에 갈 수가 없다.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다.

아니 못 돌아간다. 폰을 통해 뉴스 등을 검색했고 대강의 상황을 짐작하고 있다.

‘그 남자가 물어본 내용.’

이영숙 자신을 때린 남자, 흉악한 기세가 개처럼 잡아 죽일 것 같던 그 남자가 찾아온 이유를 안다. 사장님 때문이고 근본 원인은 사장님 친구 때문이다. 친구, 그 사람이 바로 뉴스에서 말하던 귀신이란 남자다.

‘역삼동 연합회에 문의한 내용이 역으로 온 거야.’

사장이 그 일을 했다는 걸 안다.

이영숙 자신에게 굳이 알리지 않았기에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그 무서운 남자에게 당하면서 확실한 내용을 알았다.

사장은 세경개발 딸 고초희의 정보를 훑었다.

그 결과가 온 거다.

‘사장님 친구, 그 사람이 고초희를……!’

어떻게 했다.

그 어떻게가 죽음인지는 확실치 않다.

세경개발 측에선 근거 없는 루머라고 부인하고 있는, 법적대응까지 하겠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라고 유투버들은 떠든다.

온누리병원에 있단 거다.

‘온누리그룹 한진수처럼 돼서.’

숨을 쉬지만 죽은 존재, 다시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될 수 없는 산 시체가 됐다는 거다. 그렇게 만든 존재가 바로 귀신 장철이란 남자란 거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손녀와 비통하게 자살한 딸의 복수를 한다는 거다.

‘그런 일을 당하면……’

이영숙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파악했다.

이영숙 자신이 지금 이렇게 숨어 있게 된 이유의 시작은 그 사건이었다.

3월 24일, 장영이란 아이가 차에 치여 숨진 사건.

‘윤완규, 한진수, 고초희.’

그들이 차를 몰았다. 윤완규 한진수는 마약에 취한 상태였다고 한다. 물론 한진수는 산시체가 돼서 그걸 입증할 수 없는 상태지만 합리적 의심에서 이어진 판단이 된다. 함께 있던 고초희가 아닐 리도 없음이다.

‘윤완규가 한진수를, 한진수가 고초희를……’

귀신은 그렇게 그들의 입을 열고 복수했다.

아무도 모르던 진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뻔했던 범죄다.

귀신은 스스로 그걸 밝혀내고 응징했다.

그 자체가 범죄지만 그 사람은 했다.

‘그 사람 때문에 위험해졌지만 그 사람이 구해줬어.’

아이러니한 이율배반의 감정을 이영숙은 창밖도로를 노려보는 것으로 달랬다. 신명시 신용지구의 화려한 야경이 저편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상대적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위치의 도로변 상가, 주변은 공원이다.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데……’

새벽 4시가 조금 못된 시간, 조금만 더 있으면 거리를 벌리고 존재하는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나올 것이다. 바깥을 정확히 다녀보지 않아 모르지만 이곳은 도시 자체가 공원이라고 해도 되겠다. 정말로 신도시다.

‘이런데다 이런 건물을 마련해 둔 사장님은…… 그 이름이 아닐 거야.’

이영숙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곱씹었다. 자신이 아는 이름, 사업자등록증상의 명지훈이란 성명의 존재가 사장이 아니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귀신이란 범죄자와 오랫동안……’

사장이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이제 알겠다. 살인청부업자의 동료였던 거다. 그런데 지난 육년간을 돌이켜보면 사장에게 수상한 점은 없었다.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동안 이상한 점은 없었어.’

언제나 성실하게 현업에만 열중하던 사람이다. 다른 얼굴이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본 모습은 따로 있었던 거다. 이번에 드러났다.

‘귀신 장철, 그 사람이 그 일을 당하고 나서.’

가짜뉴스의 온상, 유튜버들의 방송을 믿을게 못 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 전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알게 해 주는 측면도 있다.

이번 일이 그렇다. 귀신의 스토리를 자세하게 알게 해준 게 그들이다.

‘97년에 사라졌던 귀신.’

귀신은 사라졌었다. 그런데 다시 나타났다.

복수를 위해서다.

그를 불러낸 건 윤완규와 한진수와 고초희다.

그들이 어린아이를 죽였기 때문이다.

피에는 피라는 당연한 인과응보, 유튜버들이 말하는 게 그것이다.

‘법으로 이뤄지지 않는.’

알 수 없는 감정의 격정으로 이영숙은 고갤 숙이고 입술을 물었다.

귀신 장철, 그 사람의 딸과 손녀가 떠오른다.

뉴스방송과 유튜브에서 본 사진 속 그들은 어여쁘고 천사 같았다.

그 웃음과 생명력은 사라진 거다.

“하.”

다시 한숨을 내쉰 이영숙은 안방 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갔다. 냉장고의 물을 따라 마셨다. 그리곤 그들의 방을 돌아봤다. 사장과 귀신이 자는 방, 그들은 지금 없다. 이 밤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무슨 일인가 한다.

‘사장님은 날 믿어, 내 판단을 신뢰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이영숙 자신을 혼자 두고 나갔다. 경찰은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란, 현진에게 당한 것처럼 세경과 온누리에게 위험해 질 현실이다.

‘사무실로 넷북을 가지러 돌아가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사장과 귀신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그들은 무슨 짓이든 할 자들이었다. 그러니 이영숙 자신이 폐업한 직업소개소의 여직원에 불과한 존재라고 해도 그들의 손을 피할 순 없었을 거다. 하지만 강도는 달랐을 터다.

‘실제로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곤욕 한번 치르는 걸로 끝났을 거다. 사장은 그 부분도 예상하고 일을 처리한 거다. 생각보다 많았던 퇴직금은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큰 액수도 아니었다. 그 자체가 의심이 됐을 테니까.

“후.”

답답한 가슴을 비워내듯 숨을 뿜은 이영숙은 거실 tv를 켰다.

“어머?”

본능적으로 뉴스채널을 누른 이영숙은 숨을 경직했다.

놀랄만한 사건을 보도되고 있다.

-윤진건설 윤종대회장을 살해한 범인은 귀신인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리모컨을 움켜쥔 채 이영숙은 숨을 부들거렸다.

저 일인 거다, 저런 결과를 만들려고 사장과 귀신은 나간 거다.

피살자는 윤완규의 아버지다.

-경비원의 증언을 취재진이 입수한 덕분에 합수부는 전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노인으로 변장한 귀신이 윤진건설 사옥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다시 나와서 이동하는 모습을 인근 카메라에서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사옥 내에서 전원을 내리기 전의 모습을 일부 공개했습니다.

숨죽인 이영숙의 귀에 현장 기자의 목소리는 꽂히듯 파고들었다.

-윤진건설 사옥 내에서 살해된 사람은 윤종대회장만이 아닙니다. 7층에서 다섯 명이, 회장실에서 한명이 더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이들의 정확한 신원이 어떤지 알 수 없으나 귀신을 상대하기 위한 윤회장의……

뉴스에 눈과 귀를 박고 있던 이영숙은 소리를 들었다. 띠리리, 현관문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다. 반사적으로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을 돌아봤다.

두 사람, 귀신과 사장이 표정 없는 얼굴로 들어서고 있다.

* * *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내비가 말하고 있다. 그 소리를 환청처럼 들으며 최재우는 생각했다. 오늘 사건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다. 윤종대가 귀신을 잡기 위해 부른 살인자들을 귀신이 죽인 일, 필연은 맞을 것이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니까.’

그런데 그 시기가 공교로운 거다. 그걸 알 길은 없다.

귀신을 만나서 그에게 듣지 않는 이상 모른다.

윤종대 측에서도 예측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귀신이 윤진건설로 공격해 올 걸 알아서 직원들을 퇴근시킨 게 아니다.

‘함진웅과 다른 놈들을 대면하는 시간.’

윤종대가 회장실 책상 위 메모판에 휘갈겨 놓은 내용이다.

불안과 의구심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함진웅이 데리고 온다는 외국인 살인자들이 귀신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확인해야겠다는 불안이었다.

‘개백정.’

함진웅의 이름 밑에는 그렇게 써놓고 진하게 밑줄을 휘갈겼다.

윤종대회장이 함진웅이란 인물을 판단하고 결론 낸 단어다.

이제 도착할 곳이 그곳이다. 함진웅이 승진마켓이라는 업장을 운영하는 곳, 분명 복마전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의 여자 목소리가 울리고 차가 멈췄다.

유지건과 송치호와 함께 최재우는 차문을 열고 나갔다.

셔터를 내린 중소형 마트엔 이미 안산서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다.

피곤과 긴장과 짜증이 든 시선들 속으로 들어갔다.

‘분명 유착이 있겠지.’

짐작을 품은 최재우는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여느 마트와 다를 바 없는 매장을 지나 사무실로 향했다.

도착할 때까지 손대지 말라는 합수부의 명령은 주효한 모양이다.

함진웅의 책상서랍과 캐비닛을 뒤집어 깠다.

‘응?’

바닥에 떨어진 다이어리 사이에서 사진이 튀어나왔다.

낡은 다이어리만큼이나 낡은 사진이다. 집어 들고 보니 군복차림의 함진웅이다.

동료들과 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뒤엔 80년 광주라고 써 있다.

‘이거……’

예감, 아니 확실한 정황을 잡은 최재우는 송치호가 부르는 소릴 들었다.

다이어리와 사진을 들고 창고로 향했다.

유지건과 송치호가 보고 있는 창고 안쪽의 또 다른 문 앞에 섰다.

대형자물쇠가 채워진 강철문이다.

“열어.”

최재우가 명령하자 송치호의 지시를 받은 현장 경찰들이 움직였다.

절단기로 자를 수가 없어 산소용접기를 동원해 자물쇠를 잘랐다.

뜨거워진 문에 찬물을 부어 식히고 개문했다. 열자마자 악취가 코를 파고들었다.

“으.”

유지건이 인상 쓰는 앞으로 걸어 들어간 최재우는 냉장고를 향해 다가갔다. 업소용 대형냉장고, 때가 끼어 스텐 재질의 표면이 흐릿한 문을 열었다.

뒷골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순간의 느낌 속에서 내용물을 봤다.

파란색 비닐로 싸여 있는 것들, 그중 하나에 손을 뻗어 비닐을 풀었다.

“으헉!”

유지건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송치호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개 같은……!’

최재우는 부들거리는 손을 제어하려고 손을 뗐다. 하지만 시선을 떼진 못했다. 파란 비닐 속에서 정체를 드러낸, 사람의 머리를 보며 떨었다.

‘도살장에 발을 디뎠구나……!’

개백정이라고 윤종대가 휘갈긴 걸 이제 확실하게 깨달았다.

함진웅은 정말로 개백정이었던 거다.

이곳은 그놈이 사람을 죽이는 도살장인 거다.

“감식반 불러.”

이 악문 목소리로 지시를 던진 최재우는 비로소 물러났다.

* *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깊은 저 눈이 한대건은 마음에 들었다. 미국에서 전문 인력을 데려온다는 최길준의 의견을 처음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가 저 눈을 보고 결정했다. 화상으로 봤던 눈동자는 똑같다.

“상황이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자, 피터 윤을 향해 한대건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인 2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 그래서 한국말이 서툴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많은 단어를 알고 구사한다.

“윤진건설 윤회장이 귀신에게 죽었어. 윤회장이 부른 걸로 보이는 놈들 여섯이 같이 죽었는데, 외국인들이야. 제나라에서 죄를 짓고 온 불법체류자들이지. 사람을 죽여 본, 그런 일을 하던 놈들이었던 걸로 추정돼.”

한회장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던 피터 윤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한번이면 끝납니다.”

한번, 그 의미를 알기에 한대건은 새삼 주변을 돌아봤다.

병원 지하의 이 특별한 공간에 머무르는 자들, 피터 윤과 일곱 명의 동료들은 스페셜리스트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이들이 움직인다면 두 번은 필요 없다.

‘그래, 너희라면 확실히 두 번은 필요 없지.’

그런데 그 한 번의 움직임을 위한 여건 조성이 안 되고 있다.

귀신을 치자면 놈이 어디 있는 지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놈의 종적을 잡기가 어렵다. 윤종대를 친 것처럼 불시에 칼을 휘두르고 사라진다.

“디코이(decoy)가 필요합니다.”

한대건은 눈썹을 움찔했다.

‘미끼?’

그게 필요하다는 피터 윤의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힘이 실려 있다.

이대로 기다리는 건 싫다는 소리가 아니다.

귀신이란 사냥감을 잡기 위해선 쫓아갈게 아니라 찾아오게 해야 한단 거다.

그 생각은 품던 것이다.

“계획이 있나?”

한대건은 물음을 던졌고 피터 윤은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같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다시 눈 밑을 움찔한 한대건은 그 순간 뒤로 다가온 최길준의 목소릴 들었다.

“회장님, 방송사에 제보가 또 들어갔습니다.”

뜨악한 얼굴로 돌아선 한대건은 이어지는 최길준의 보고를 들었다.

“상계직업소개소에서 벌어진 사건이 귀신사건이라는 제보가 들어갔습니다. 오동진이 사망한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강남역 그 여자로 확신됩니다.”

미간을 일그러뜨린 한대건은 분노를 밀어냈다.

“어차피 우리 의도는 윤종대의 죽음으로 무너졌다.”

자유겨레당 대표 양석훈 사건으로 물타기 하려던 의도.

“이젠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어.”

피터 윤을 향해 돌아선 한대건은 남은 말을 뱉어냈다.

“그러자면 미끼를 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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