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44화 (44/200)

황혼의 살인자. 44. 반격의 서막.

44. 반격의 서막.

-개백정이란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함진웅은 스물한 명을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확인된 것만 그렇습니다. 경찰은 현재 피살자들의 정확한 신원파악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승진마켓의 냉장고 안……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눈과 귀를 박은 이왕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이 만든 사건이 빚어낸 결과여서다.

함진웅 같은 극악한 범죄자를 처단한 것은 마음으로는 좋다.

안 그랬으면 저런 범죄는 묻혔다.

그러나 귀신은, 장철이란 사내는 살인자다.

그가 계속해서 살인을 하도록 놔 둘 수는 없다.

하지만 그를 잡을 길도 보이지 않는다.

초임형사시절 그가 피를 뿌린 서영나이트 현장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귀신이다.

‘움켜잡을 수가 없는 귀신.’

소리 나게 한숨을 내쉰 이왕길은 폰을 들었다가 놨다. 최재우에게 상황을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일이 아닌 거다. 물어보나 마나한 거고 피곤하게만 하는 거다. 합수부는 온누리그룹의 꼬붕으로 역할을 할 뿐이다.

‘자유겨레당 양석훈이로 물 타기 하려다가 망쳤어.’

그 일이 온누리와 세경이 뒷배경임을 확신한다.

갑툭튀로 그런 사건이 터져 나온 것이 그렇다.

집권여당 대표쯤 되는 인물이 제 주변을 관리 못 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정확한 내용이 언론에 터진 건 공작인 거다.

‘양석훈이가 여직원을 호텔로 불러내 관계하던 동영상……’

피해자인 여직원은 대담하게도 그 상황을 촬영했다.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사용하게 될지 몰랐지만 증거가 될 거란 생각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걸 그들이 손에 넣어 사용한 거다.

여직원은 거금을 쥐었을 거다.

‘무서운 세상이야.’

복잡한 감정이 든다. 피해자의 입장에서야 당하고만 있을 수 없으니 당연한 대웅이고 보복이다. 백번 천번 공감이 간다. 그런데 한편 답답하다.

세상은 칼날처럼 변해가고 있는 거다. 죽고 죽이는 정글처럼 돼 간다.

‘나 어릴 때 같던 시절은……’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다 알고 살던 시절이다.

옆집누나는 내 누나였고 동생은 내 동생이었다.

놀다가 저녁을 먹게 되면 그 집에서 한식구로 먹었다.

부침개를 하면 어머니는 늘 옆집들에게 들고 갔었다.

그런 시절, 동네 끝에서 끝까지 휩쓸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안하던 시절, 소리 지르다 아저씨에게 꾸지람 들으면 엄마 아버지에게 꾸중 듣는 걸로 생각하던 시절, 골목냄새가 정겹던 그런 시절은 이제 없다.

‘뻑하면 죽이고 불 지르고 강간하고.’

그런 세상이 됐다.

온라인상엔 괴이한 종자들이 넘쳐난다.

그런 것들이 오프라인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인천에선 참혹한 사건도 일어났었다.

어린 아이를 살해한 청소년들, 그것들은 그 일을 사냥이라고 불렀다.

“미친 세상.”

한숨으로 중얼거림을 뱉은 이왕길은 폰을 다시 잡았다.

검색 때문인지 저절로 뜬 유튜브 영상, 망설이다가 클릭했다.

실시간 라방이 진행 중이다.

장소는 온누리병원, 취재진이 진을 친 곳을 배경으로 잡아내고 있다.

-온누리에서 으뜸가는 병원이 바로 이곳 온누리 병원입니다. 예, 누구도 부정 못할 겁니다. 바로 이곳에 온누리그룹의 셋째아들 한진수가 누워 있습니다. 그놈만 누워있냐고요? 당연히 세경개발 고초희도 여기 있죠.

유튜버는 비속어를 섞어가면서 상황을 전하고 있다.

온누리병원에 취재진이 저렇게 진을 친 이유.

귀신장철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벌인 사건들을 거론하면서다.

양석훈 사건도 밟고 오른 그야말로 핫이슈다.

-정말 엄청난 사건입니다. 누구라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사건이죠. 그런데 양석훈 사건이 터졌습니다. 예, 자유겨레당 대표 양석훈, 그가 여직원을 성폭행하고 회유와 협박을 한 사건입니다. 대형사건이죠. 이 사건도출을 두고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때린 거란 거죠.

이왕길은 눈에 힘을 줬다.

-귀신에게 자식들이 공격당해 산시체가 된 온누리그룹과 세경개발에서 투척한 폭탄이란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말그대롭니다. 양석훈이 여직원을 성폭행한 사건, 그 내용을 파악하고 증거까지 가지고 있던 그들이 터트렸다는 겁니다. 그럼 왜 그랬냐고요? 귀신 때문이죠.

귀신 때문, 그 말이 천둥처럼 귀에 박히는 느낌에 이왕길은 흠칫했다.

-내막은 이런 겁니다. 온누리그룹과 새경개발은 사적복수를 맹세한 겁니다. 경찰 등 치안기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구제를,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세간의 이목이 너무 집중되면 불편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물 타기하려고 이 사건을 터트린 겁니다. 하지만 뭐되고 말았죠.

이어지는 내용은 어제 사건이다.

그 내용을 이왕길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유튜버가 확신으로 뱉은 이야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보가 빠른 세상이라고 하지만 저런 걸 어떻게 알고 있을까?

저런 내용까지 알 수 있나?

-양석훈사건은 뇌피셜이라고요?

화면 속 유튜버는 코웃음을 친다.

-진실은 이미 온라인상에 퍼졌습니다. 정보근원자는 언론사에 제보한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의왕시 백운호수사건도 제보했으며, 드러나지 않았던 상계동 직업소개소 사건도 제보했다고 합니다. 모두 확인된 팩트입니다. 양석훈 사건의 가설을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만……

유튜버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달려간다.

-뭔가 중요한 상황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어지러워진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이왕길은 앰뷸런스를 둘러싼 취재진의 고함치는 물음을 들었다. 그 소리는 모니터 속 뉴스에서도 들린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한진수씨를 옮기는 게 맞습니까?

숨을 경직한 이왕길은 폰을 내리고 모니터 속 뉴스에 빠져들었다.

* * *

-자기 피곤해서 어떻게 해?

걱정 가득한 아내 유인주의 목소리를 들으며 최재우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걱정 마, 그래도 뜨밤할 체력은 남겨둘 거니까.”

-어머, 뭐래?

정색한 목소리로 반응했던 유인주는 헤실헤실 웃는 소리를 이어낸다.

-아라떠, 장어 준비해 놓을게.

아내의 얼굴에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순간 경직했던 최재우는 얼른 마무리했다.

“현장 봐야 해. 그만 끊을게.”

사랑해, 라는 아내의 목소리를 귀에 담고 최재우는 통화를 끝냈다.

‘여기가 귀신이 허물을 벗은 곳.’

혜화동로터리를 아래쪽으로 둔 지역이다. 위로, 북쪽으로 이동하면 서울과학고와 경신중고, 홍익사대부고등이 오르막 지형에 존재한다. 유명한 간송박물관도 근처다. 동쪽으로 이동하면 한성대역, 삼선교지역이다.

‘중화요리 무한리필 식당.’

귀신이 두 번째로 허물을 벗은 곳이다. 문 닫은 갤러리에서 두루마기를 떨궈 놓고 청소원 복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다시 그 복장을 벗었다.

‘그리곤 종적이 사라졌어.’

인접한 주변 골목길과 이면도로 어디에도 수상한 인물은 포착되지 않았다. 아니 포착된 사람들을 모두 확인하고 있지만 귀신은 아닌 거다.

‘허물을 벗은 장소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었어.’

이곳들을 택한 이유, 조웅이 직업소개소를 하며 파악한 정보가 맞을 거다. 일용직들을 공급하면서 파악한 것이다. 상계직업소개소에서의 직접공급이 아니었다고 해도 정보는 공유됐다. 그걸 토대로 귀신이 움직였다.

‘여기서 밖으로 나간 정황이 없다는 건……’

잔뜩 찌푸린 미간을 꿈틀거린 최재우는 위를 올려다봤다.

생각이 솟은 순간 바로 움직였다.

식당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에 붙어 옆 건물을 봤다.

도움닫기로 달려가 점프한다면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설마, 정말로 이렇게 했다고?’

스스로의 생각에 황당해 하면서도 최재우는 옥상 바닥을 살폈다.

‘하……!’

먼지가 쌓인 바닥에 선명한 발자국이 있다. 최재우 자신의 추측대로 뒤에서부터 달려와 뛴 흔적이다. 옆 건물로 넘어간 거다. 그리고 또 넘고.

‘의심 범위를 넘어서 가버린 거야.’

허탈한 눈으로 최재우는 건물들 너머를 응시했다.

다닥다닥 붙은 작은 상가건물과 다세대들, 귀신은 옥상에서 옥상으로 이동한 거다.

뛰어넘기 힘든 곳은 로프 같은 걸 이용한 거다.

식당 창고 안에 그런 게 있었다.

‘확인해 보나 마나.’

그런 일이다, 귀신의 종적을 찾을 길이 없다는 걸 알고서도 여길 혼자 왔는데 결국 이거다. 도주방법을 찾은 것 같긴 하지만 종적은 못 잡았다.

때맞춰 울어주는 폰으로 인해 최재우는 현실로 돌아왔다.

-변화가 생겼다.

역시 밑도 끝도 없이 상황을 전하는 박인수 경정.

-온누리 병원에서 한진수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최재우는 미간을 뒤틀어 올렸고 박인수는 목소릴 이어냈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는데, 온누리측에서 취재진에게 곧 내용을 밝힌다고 한다. 아무래도 뭐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최팀장은 그게 뭐 같아?

깊은 숨을 내쉰 최재우는 짧게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일단 온누리 측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어봐야겠습니다.”

박인수경정과 통화를 끝낸 최재우는 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실시간 뉴스채널에서 온누리병원 현장 영상을 보내주고 있다. 누군가 앞에 나섰다.

-환자를 더 특별하게 케어할 수 있도록 이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온누리그룹 측의 인사인 게 분명하다. 단정한 양복차림에 신뢰가 가는 얼굴, 전형적인 대변인의 모습이다. 언론을 담당하는 부서가 나선 거다.

-온누리병원보다 더 환자를 위한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이 당연합니다만, 주지하다시피 한진수씨의 상태는 현대 의학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제 회장님의 결단은 자식을 안온하게 돌볼 수 있는 곳으로……

최재우는 미간을 강하게 곤두세웠다.

‘이거?’

박인수의 말대로 냄새가 난다. 말인즉슨 가망 없는 한진수를 사람 없는 곳으로 데려가 돌보겠다는, 그러다 평화롭게 죽음을 맞도록 하겠다는 비통한 심정의 토로이자 결심인 것 같은데, 진정한 속내가 있는 거다.

‘혹시 함정을 파겠다는?’

뇌리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게 그거다. 그렇다는 내용이 이어 나온다.

-회장님께서 막내 아드님의 곁을 지키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실 겁니다.

기자들이 바로 질문공세를 한다.

-장소가 어딥니까?

-회장님도 지금 함께 이동하시는 겁니까?

혼잡하다고 해야 맞을 병원 앞 기자회견장으로부터 카메라는 이동했다. 앰뷸런스를 비춘다. 취재진을 뚫고 병원을 나가는 그 뒤로 대형세단들이 움직인다. 그 차들마저 나가가 언론사 취재차량들도 부리나케 나간다.

‘그렇게 한다고?’

짐작이 거의 맞는 것 같다.

온누리 그룹은 병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귀신을 맞으려는 거다.

귀신이 찾아올 수 있도록 친절하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취재진이 따라 붙었으니 장소가 어디인지는 바로 드러날 거다.

‘귀신,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어금니를 문 최재우는 폰을 내렸다. 푸름이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 * *

양치질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장철은 조웅이 부르는 소리에 거실로 나갔다. 조웅의 긴장한 눈동자가 왜인지 tv에서 이유가 나오고 있다.

-온누리그룹은 한진수씨를 모처로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화면은 앰뷸런스와 대형세단들이 달리는 광경이다. 취재차량이 뒤따르는 중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불분명했던 가운데 차량들은 현재 가평군에 진입했습니다. 가평일대에 온누리그릅측과 관련한 시설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만, 드러나지 않은 시설이나 별장 같은 곳일 것으로 추측 됩니다.

이어지는 뉴스 내용은 상황 설명이다. 온누리병원에서 한진수를 빼 이동하는 이유, 한대건 회장이 곁에서 직접 돌보겠다는 거다. 유난히 막내아들 사랑이 지극했던 아버지, 은퇴한 회장의 마지막 할 일이란 거다.

“구린내가 진동하네.”

조웅의 차가운 목소리, 장철은 tv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조웅의 말대로 숭상한 수작인 게 눈에 보인다.

갑자기 저럴 이유가 없다.

있다면 장철 자신이다.

꼬리를 잡지 못하는 적을 잡는 게 아니라 유인하는 거다.

“지켜봐야겠다.”

진중한 긴장의 든 조웅의 시선을 장철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현관 앞에 섰다.

“어디 가냐?”

묻는 조웅에게 장철은 명료하게 대답했다.

“공원에 운동하러.”

조웅의 시선을 뒤로 두고 나온 장철은 계단을 내려가 도로를 건너갔다. 드넓은 공원과 운동시설이 말끔하다. 푸른 하늘이 보듬은 그곳으로 들어가 운동을 시작했다. 온누리그룹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몸을 혹사했다.

‘부른다면 간다. 그런데 너희가 원하는 때엔 아니다.’

런지로 공원을 돌고 돈 장철은 푸쉬업과 밀어올리기를 쉬지 않고 이어갔다. 총상에 이어 봉합한 어깨의 상처가 비명 지르는 것도 잊고 움직였다.

몸은 뜨겁고 마음도 뜨겁고, 봄을 품은 하늘의 해도 뜨겁게 비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