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45. 숨어 있는 눈.
45. 숨어 있는 눈.
-가평군 북면 깊은 곳에 위치한 시설입니다. 본래 소형리조트의 개념으로 건축 되다가 부도를 맞아 건축이 중단, 인근의 흉물로 수년간 방치됐던 곳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완공이 돼서 관심을 모았다고 합니다.
화면 속 기자는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킨다. 계곡 건너 나무들이 빽빽한 숲속에 건물머리가 비죽 보인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봉쇄 돼 있다.
“저런 데 들어가서 자식 임종을 지키겠다는 건가요?”
유지건의 불만 든 목소리에 최재우는 반응하지 않았다.
송치호가 반응했다.
“돈이 넘쳐나는 족속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그지?”
유지건은 바로 대꾸하지 않고 주변을 힐긋 돌아본다. 합수부가 차려진 강남서로 돌아온 상황, 다른 형사들의 현재 반응과 표정들을 눈에 넣는다.
“그러게요. 가평 산속 깊은 저런 곳에서 저러고 살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
“그 정도가 아니지. 저 일대가 다 온누리그룹 소유라는 거 아니냐? 관련기업이 명의자로 돼 있다지만 결국 온누리 꺼지. 이런 때 쓰려고 숨겨뒀던 거야. 음, 자식이 산시체가 된 마당이니까 이런 때는 아닌가?”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최재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해는 기울고 있다.
이제 곧 어둠이 거리를 물들일 것이다.
뉴스화면 속 가평의 울창한 산도 한진수와 그 아버지가 든 리조트건물도 그 속에 든다.
‘밤, 귀신의 시간.’
새삼 등골에 소름이 돋아 올라 최재우는 어깨를 경직했다.
어젯밤에 장철이 윤진건설에서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는 정말로 귀신의 짓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놓고 밤귀신처럼 사라졌다.
밤은 그의 시간이다.
-보이는 바와 같이 리조트 쪽으로 접근이 불가한 상황입니다. 유일한 출입구인 계곡 위 다리를 온누리그룹측의 경호인력들이 막고 있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저곳엔 필요한 의료인력과 장비가 갖춰진……
유지건이 바로 반응한다.
“돈이 넘쳐나는 데 뭐가 안 되겠어?”
송치호는 유지건의 뒤통수를 가볍게 치려다가 뉴스에 눈을 고정한다.
-한진수와 한대건회장이 들어간 저편 건물지역을 리조트라고 해야 할지는 마땅치 않습니다만, 편의상 그렇게 호칭하겠습니다. 오후 3시경에 도착한 온누리그룹 측은 현재 일체의 외부연락을 끊고 전략기획실과……
유지건이 다시 입을 열려는 데 박인수 경정이 왔다.
“최팀장 보고내용에 반응이 제각각이야.”
합수부회의를 막치고 나온 박인수, 그 얼굴에 든 옅은 곤혹을 최재우는 읽었다. 합수부 자체에 대한 불신에 자신의 직분에 대한 책임의식의 충돌이다. 또한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흐름의 결과에 대한 회의다.
‘무엇을 하는지,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최재우의 마음을 아는지 박인수는 씁쓸한 미소로 다시 입을 연다.
“윤진건설에서 귀신 장철이 도주한 루트, 지나친 가설이라는 반응도 있었고 믿기 힘들지만 상당히 신뢰할만하다는 반응도 있었지. 그리곤 끝이야. 해결의지가 없는 합수부의 머리를 잘라내지 않고서는 이대로인 거지.”
강경한 의사를 뱉어낸 박인수는 유지건과 송치호가 긴장한 채 바라봤다.
장소가 강남경찰서, 한쪽에 이렇게 책상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한 마당이다. 그런데 박인수가 다가와 이런 말을 하는 건 더 그렇다.
“눈치 볼 거 없어. 내가 편애 하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합수부 인력들이 그렇다는 거다. 박인수가 최재우팀에게 각별한 대우를 하고 있음을 이런 모습으로 모를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인 거다.
검경합동수사체인 까닭에도 그렇지만 계파별로 삐걱거리는 게 합수부다.
“부정하는 건 검찰 쪽인데, 한두 번은 그렇게 건너뛴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가능하겠냐는 거야. 안전범위까지 그런 식으로 이동한다는 건 무리란 거지. 로프를 이용했다는 증거와 족흔이 있는데도 불신만 하고 있어.”
찌푸린 미간으로 다시 목소릴 낸 박인수는 한숨으로 말을 이었다.
“사건해결, 상황종결이 저들의 목표가 아니야. 정치를 하려는 거지. 합수부에 발을 들인 환경 자체를 어떻게 이득으로서 활용할까가 우선인 거야. 온누리와 세경 같은 힘을 미래에 활용가능하다면, 이런 생각으로.”
최재우는 물음을 냈다.
“상황이 이정도면 법무부나 행안부에서도 두고만 보고 있지는 못하지 않겠습니까? 강력사건이 빈발해서 민심이 흔들리는 건 정권에 악영향을……”
“그보다 양석훈 사건에 먼저 반응하고 있다.”
박인수는 깊이 가라앉은 눈동자를 서늘하게 빛냈다.
“귀신사건이야 합수부가 있는 거야. 그런데 양석훈 사건은 아니지, 이 나라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인 거야. 여당대표라는 자가 성폭행에 회유와 협박까지 했지. 그 범죄행위가 담긴 동영상까지 존재해. 그게 퍼지면 정말로 일파만파지. 그래서 신속하게 마무리하려고 대응하는 거고.”
“여성단체에서 들고 일어났던데요?”
툭 끼어든 유지건을 힐긋 본 박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귀신사건 밑으로 묻힐 뻔했다가 다시 부상했지.”
미간에 내천자를 그린 박인수는 진중한 숨으로 말을 이어냈다.
“아다시피 이 건은 귀신사건에서 세간의 이목을 돌려놓으려던 의도가 확실해. 그런데 결과가 그렇질 못했지. 게다가 이젠 따로 굴러가는 중이고.”
“양석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또 유지건에게 시선을 돌린 박인수는 덤덤히 말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어. 소환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질 거야. 실형을 면치 못하겠지. 증거가 워낙 확실하니까. 당연히 의원직은 상실할 테고. 그래서 자유겨레당은 비상이지. 당대표가 범죄자가 된 정당이니까.”
유지건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도 성폭행범.”
박인수는 이번엔 옅은 미소를 품었다. 눈치를 본 송치호가 유지건의 뒤통수를 치는 걸 보면서다. 그 시선을 다시 최재우에게 돌리고 말했다.
“숨어 있는 눈이 있어.”
최재우는 바로 알아들었다.
‘언론에 제보한.’
백운호수 사건, 상계직업소개소 사건, 아니 사건 발생 초기부터 처음부터 언론에 알렸다. 윤완규가 살해된 직후 기자들이 몰려든 이유다. 제보자는 강남역 별다방에서 오동진을 만난 여자, 그 여자의 정체를 모른다.
“귀신사건에 깊이 관련된 인물이 분명해.”
명료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연 박인수는 확신에 찬 눈빛을 흘려냈다.
“사건발생 초기부터 어른거렸어. 누구이고 뭘 얼마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윤완규 한진수 고초희의 관계와 그들의 범행내용을 알고 있었어. 오동진과 만나서는 귀신에게 갈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지.”
최재우는 속에서 나오는 말을 뱉어냈다.
“외부인이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맞아. 그래서 더 황당한 거야. 온누리와 세경 측에서도 비슷한 반응인 것 같아.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에 고초희가 있어 귀신에게 공격당했다는 내용, 상계직업소개소에 귀신이 있을 거라는 거, 어떻게 알았을까?”
“그거야 역삼동 직업소개소 연합회를 통해서…… 어, 그게……”
유지건이 말하다가 어물어물 입을 닫았다.
“맞아. 오동진은 거길 거쳐서 상계동으로 귀신을 잡으러 갔지. 온누리 전략기획실도 그랬어. 타운하우스에서 일하던 일용직들을 통해 넘어간 정보 때문인걸 알아서야. 그런 걸 강남역 그 여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박인수는 바로 목소릴 이어냈다.
“고초희가 그곳에 있다는 게 알려진 건 스스로 말해서지. 내가 세경개발 고종환회장의 딸이다, 이 타운하우스는 세경개발 소유다, 가사도우미들이 그걸 들었어. 그래, 귀신을 유인하려고지. 그래서 현진 오동철과 다른 놈들이 거기서 기다렸고. 결과는 참혹한 죽음이었지만 성공했어.”
성공, 귀신을 유인한 결과다.
“귀신이 찾아왔으니까 고초희의 의도는 들어맞았지. 그러자고 떠들었으니까. 상계직업소개소의 조웅이 가스를 뿌려놓지 않았더라도 소문이 퍼질만한 일이야. 그런데 말이지, 그러한 내용을 강남역 여자가 알고 있는 건 다른 문제야. 빠르고 정확하게 언론에 제보했지. 지켜본 것처럼.”
박인수는 최재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길이 물음이란 걸 최재우는 알았다.
여자가 누구인 것 같으냐는 물음, 대답 못할 물음이다.
“여자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지만 귀신과 적대적인 건 분명합니다.”
대답 아닌 최재우의 대답, 박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동진에게 알려준걸 보면 확실히 그렇지.”
“양석훈사건이 터져서 귀신을 향한 이목이 흐려지는 걸 또 다른 제보로 저지했습니다.”
“그래, 확실하게 귀신을 향한 적대적 의도가 있어.”
그래서 그게 누구냐는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낼 수 없는 상황, 한숨만 이어내게 되는 사이로 유지건이 끼어들었다.
“커피들 하시죠? 여기 별다방 커피가 맛있다던데요. 제가 사오겠습니다.”
허락도 떨어지지 않았건만 유지건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인수가 너털웃음을 흘렸고 송치호는 최재우와 고갤 저었다.
* * *
씽크대에 붙어 삶은 계란을 깐 장철은 접시에 담아 소파로 갔다.
tv를 응시하며 계란을 먹었다. 그 모습을 미쓰리가 조심스레 곁눈질하며 싱크대로 간다.
저녁준비를 하려는 움직임, 장철은 신경쓰지 않고 tv를 봤다.
-한대건회장이 아들 한진수씨를 간병하기 위해 들어간 저곳은 산속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보다시피 주변이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저곳으로 접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주변 산림의 지형이 험하고 가파른 지형인데다 수림의 울창함이 방벽과 같습니다.
자체 경비도 삼엄하다는 기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장철은 계란은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잘 먹어야 한다. 매일 운동하고 매일 영양가를 섭취해야 한다.
-온누리그룹측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 대비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어젯밤 윤진건설이 당한 불의하고 충격적인 사건이 영항을 미친 결과입니다. 귀신 장철이 접근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현지 경찰과 긴밀한……
빈 접시를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장철은 어금니를 물었다.
‘찾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는 걸 안다.’
저게 다 개수작임을 알고 있다.
진정한 바람은 장철 자신이 찾아오는 거다.
가평경찰서의 협조와 경비, 합수부와의 긴밀한 조응 같은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이다.
진면모는 저 안에 숨어 기다리는 맹수들이다.
‘날 잡아 죽이려고 만전을 기하고 있겠지.’
tv를 노려보는 장철의 눈동자에선 시퍼런 불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장철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냉철하게 현실을 곱씹었다.
‘조심해야 할 건 따로 있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
언론 제보자다.
누구이지 모르지만 사건 내막을 알고 있다.
장철 자신이 상계동에 있다는 걸 오동진에게 알렸다.
양석훈 사건이 터져서 이목이 흐려지자 그런 내용을 언론에 제보했다. 상계동현장은 귀신의 현장이고 그곳에서 오동진이 죽었다는 진실을.
‘백운호수의 타운하우스에서도.’
그때도 상세하게 제보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후가 문제다.
고초희가 꾸민 함정의 역을 되짚는 방법을 오동진에게 알린 건데, 외부인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고초희가 그렇게 의도해 꾸몄다는 걸 알아야 가능하다.
‘찜찜해.’
고초희를 결과 짓고 돌아섰을 때처럼, 볼일을 보고 뒤를 닦지 않은 것 같은 불쾌함이 계속 고개를 든다. 숨어 있는 눈이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너를 알지만 너는 나를 알 수 없을 거야 라는 놀림처럼.
‘끝까지 내 눈밖에 숨어 있을 수는 없을 거다.’
찾아내서 죽인다, 라는 말을 장철이 속으로 삼키는데 조웅이 돌아왔다. 마트에서 장을 봐온 박스를 내려놓는다. 그 중에 분유통 같은 걸 내민다.
“핫하다는 단백질파우더다.”
조웅은 재빠르게 눈치 채고 준비했다. 장철이 부상도 무시하고 운동하는 이유를 알기에, 필요한 게 뭔지를 깨닫고 사왔다. 그게 제 역할이란 듯.
“저녁엔 샤브샤브 해 먹자.”
장본 박스를 들고 조웅은 씽크대의 미쓰리에게 갔다.
내용물을 살피며 미쓰리가 잔소리 비슷하게 늘어놓자 조웅은 대꾸한다.
그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던 장철은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더 깊이.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퍼지는 이 울림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다시 손에 피를 묻히고 몸을 쓰게 되면서부터 들리는, 어린 시절 형제보육원 별관에서 들은 소리다.
특별치료, 그것이 이 울림의 근원이다.
‘이젠 외면하지 않는다. 들어간다, 깊게.’
장철은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귀신의 삶을 버리고서는 잊었던 깊은 곳의 부름.
귀신일 땐 반응하지 않고 외면하며 살았던 거다.
더 깊이.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승철이 형처럼.’
장철 자신을 알아본, 맞을 때 몸을 보호하면서 맞는 다는 걸 간파한 유일한 인물, 그 형은 깊은 곳의 부름을 좇아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 형의 사체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모른다.
원장은 도망쳤다 했다.
‘이젠 상관없어.’
승철이 형처럼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해야 할 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것이다.
다만 돌아오지 못하게 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
깨끗이 끝내고 딸 민지와 손녀 영이에게 가는 거다.
“후우.”
깊은 숨을 내쉬며 장철은 깊은 곳을 향해 가라앉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