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48화 (48/200)

황혼의 살인자. 48. 짐승의 피.

48. 짐승의 피.

땀으로 젖은 운동복은 짜면 물이 흐를 정도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그걸 밟고 서서 샤워기 물을 틀고 찬물을 맞았다.

“후.”

전신을 적시는 차가운 느낌에 장철은 전율했다.

총상과 자상의 어깨와 옆구리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더는 씻지 않고 견딜 수 없다.

몸이 만들어 내는 변화를 인지하기에 하는 거다.

상처는 급속도로 아물어 가고 있다.

‘나는 뭘까.’

샤워기에서 떨어져 거울 앞에 선 장철은 자신을 봤다.

오십 중반의 늙어가는 남자,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그렇지만 몸은 아니다.

근력증강 운동을 시작해선지 펌핑된 육체는 전혀 다르다.

예전부터 그랬다.

‘그 소리, 울림을 듣고부터.’

열세 살의 그해 그 겨울.

형제보육원에서 치러야 했던 그 지독한 신고식은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맞다가 정말로 죽는 게 아닐까.

그건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두 분은 죽어서 어떻게 됐을까.

‘할머니.’

마지막이 기억난다. 어머니가 자살하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던 할머니, 방문 밖에서 본 할머니의 마지막은 아주 작고 초라했다.

모로 누워 계시던 꼬부라진 몸뚱이, 할머니는 손자를 버리고 가셨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할머니를 향해,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거울 속 자신에게 장철은 그 말을 던졌다.

기억하기 싫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다.

열세 살의 겨울, 별관에서 시작한 비밀치료가 살게 해 준 거다.

‘아니, 그것으로부터 사는 방법을 찾아냈지.’

어금니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던 장철은 깊은 숨으로 모든 감정과 생각을 밀어냈다. 현재에 집중했다. 해야 할 일만을 생각하며 씻었다.

‘운동시간과 휴식시간을 더 늘려야 해.’

깊은 곳으로의 결정이 이뤄내는 몸의 변화, 그것에 맞춰야 한다. 새벽 운동 때보다 강도를 더 높였던 오전 운동처럼, 휴식과 점심 후엔 조금 더 높이는 거다. 그리고 또 휴식하고 저녁 운동, 몸은 맞춰지고 있다.

샤워타월에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낸 장철은 꼼꼼하게 몸을 씻었다.

찬물로 식은 몸을 미지근한 물로 마무리 한 후에 욕실을 나갔다.

벗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 단백질파우더를 우유에 타서 느릿하게 마셨다.

그사이 미쓰리가 나왔다.

조심스레 장철 자신의 눈치를 보며 점심준비를 한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여전히 사건 보도가 뜨겁게 나오고 있다.

-익명의 제보자에 의하면, 그 제보가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본다면,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경개발 측이 은폐하고 있다는 겁니다. 세경 고종환회장의 딸 고초희가 귀신 장철에게 보복을 당해……

띠리리 소리가 나며 조웅이 들어온다. 손에는 역시 장을 봐온 것들이 들렸다.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은 안했지만 그런 눈으로 사 온다.

“뉴스 보냐?”

장철의 시선을 한번 응시한 조웅은 주방의 미쓰리에게 간다.

무심한 얼굴로 장철은 tv뉴스를 계속 봤다.

언론은 의혹을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

-현진써큐리티 대표 오동철은 현재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윤진건설 회장 윤종대 회장의 비서 오동진 역시 마찬가집니다. 제보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백운호수와 상계동에서 귀신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자신이 처치한 자들의 떠올리며 장철은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합수부는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동철 오동진 형제는 사건 현장과 관련이 없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관계없는 개인들인 행적을 합수부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합수부의 능력과 목적의식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tv를 끈 장철은 방으로 들어갔다. 점심 식사가 준비되기 전까지 휴식에 들어갔다.

* * *

엎어진 남규덕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도 뭔가 해야겠더라고.”

여자가 발로 미는 힘에 남규덕은 천장을 보고 누웠다.

여전히 화사한 웃음을 입가에 물고 있는 여자는 앙증맞은 백팩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도끼와 회칼이다. 그것들을 바닥에 늘어놓고 더 환한 미소를 풀어낸다.

“귀신이 말이야. 윤완규를 죽일 때하고 고초희를 죽일 때, 아니 그 애는 아직 완전히 죽진 않았지. 아무튼 이런 걸로 해버렸더라고. 짐승을 잡을 때처럼. 그래, 그거였어. 귀신은 봐버릴 대상을 짐승으로 잡은 거지.”

회칼을 잡고 시퍼런 그날을 음미하듯 응시한 여자는 남규덕에게 시선을 내렸다.

“나름 알아봤어.”

건드리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회칼의 날을 여자는 남규덕의 뺨에 댔다.

“윤완규를 병원에서 빼 낼 때 당신이 한 역할 했던데? 불려가서 조사도 받았고? 그런데 무혐의로 풀려났지. 그게 분명히 아닌데 말야? 디테일한 전체를 다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현진하고 이어진 거잖아? 맞지?”

남규덕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죽어가는 경련 속에서 생각했다.

눈앞의 이 여자가 누군지, 도대체 이년이 누구길래 나한테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친구 민중태의 이름을 댄 걸 보면 생판 끈이 없는 건 아닌 거다.

“많이 궁금했어. 병원에서 윤완규를 뺄 때 왜 그렇게 당한 건지.”

여자는 남규덕의 흐릿해져가는 눈을 응시하며 계속 말했다.

“그래서 물어봤지. 자세하겐 말 안 해 줬는데 대강은 말하더라고. 현진에 삼총사라나 뭐라나, 그 중에 한명이 부린 놈이 있다는 거. 거기까진 계획대로 됐는데 귀신이 그렇게 접근할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다는 거지.”

무슨 소린지 남규덕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물어봤다는 건지, 알고 있는 자들에게 들었다는 소린데 그럼 그들이라는 건지, 이년이 누구길래 그게 가능한 건지, 지금 결과는 뭔지.

“다 죽었잖아?”

생글 미소를 뿌린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졌다.

“신경질이 나더라고. 나도 화풀이 할 데가 있어야지, 그렇지? 그래서 찾아온 거야. 현진 삼총사 중의 한명인 민중태가 부린 놈, 병원에서 추돌사고를 일으킨 놈, 전과가 나름 화려한 놈. 너 강간이 특기중 하나지?”

여자는 회칼을 빙글 돌려 역으로 잡았다.

그 눈을 남규덕은 봤다.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분명하게 인지되는 저 악의와 광기.

짐승의 눈이다.

“맞아, 내 혈관 속엔 짐승의 피가 흘러.”

고저 없는 음성으로 그 말을 낸 여자는 나직하게 뒷말을 뱉었다.

“원한 적 없지만.”

여자가 내리찍는 회칼, 그 찰나의 번득임을 보며 남규덕은 눈을 감았다.

* * *

‘여기 어딘데?’

내비에 찍힌 주소지를 찾아가던 홍인구는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란 여자 목소리를 듣고 차를 멈췄다. 이런 목소리로 속삭여주는 애인이 있다면 하고 생각하며 눈을 힘을 줬다. 원룸 건물들이 들어선 곳이다.

‘세창원룸.’

주소지와 건물 현관에 붙은 명패를 보고 확인한 홍인구는 차 세울 곳을 찾았다. 주말도 아니고 금요일인데 차 댈 곳이 없다. 빙글빙글 돌다 겨우 차댈 공간을 찾아 주차했다. 원룸 건물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집에 있겠지.’

폰으로 전화를 걸며 홍인구는 원룸 건물 앞에 다다랐다.

신호는 가는데 남규덕은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눈썹을 곤두세우는데 원룸에서 젊은 여자가 나온다.

스키니진의 몸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삐 걸어간다.

‘죽이네.’

여자의 뒷모습을 보던 홍인구는 대답 없는 폰을 귀에서 뗐다.

“이 새끼가.”

원룸 건물을 노려본 홍인구는 바로 올라갔다.

302호 앞에서 숨을 돌린 후 벨을 눌렀다.

역시 반응이 없다.

미간을 찡그린 채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했다.

미리 전화를 하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면 도망갈까 봐서였다.

‘응?’

홍인구는 냄새를 맡았다.

익숙해 질만도 한데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이거?’

쇠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 비릿한 냄새.

이건 분명 피 냄새다.

“썅!”

돌아선 홍인구는 미친 듯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차를 향해 전력질주 해 가서 트렁크의 쇠지레를 꺼냈다. 다시 302호로 달려가 문을 땄다.

문은 연 홍인구는 얼어붙었다.

남규덕, 그는 피바다 속에 누워 있었다.

* * *

“명지훈씨가 원했던 일입니다.”

나눔자리 원장은 나직하지만 분노가 밴 목소리다. 그러나 분노만은 아니다. 비애가 깃들어 있다. 명지훈과 그 여동생에게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 때문에 고생했다고, 꼭 주고 싶다고 해서 2억을 보낸 겁니다.”

그랬는데 여동생이 찾아왔고 원장을 고발했다. 오빠 명지훈의 계좌에 들어 있는 나머지 거액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친족으로서 당연한 주장이다.

그런데 여태 버려뒀던 오빠다. 돈이 있으니 이젠 데려간다는 거다.

“이게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

송치호의 답답한 물음에 유지건은 신경질 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모르죠, 소송으로 갈 것 같은데.”

소송이라는 말을 귀에 걸고 최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이게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조웅이 상계동 건물을 판돈, 그게 범죄수익금이라면 다 헛짓이다.

하지만 입증도 어렵고 최재우 자신이 손을 뗐다.

‘명지훈이 수십 년간 명의자였고 조웅이란 인물이 대리 경영을 한 게 되는 결론. 세금문제도 전혀 없는 상태. 하지만 역시 밝히고 까면……’

건물을 마련하게 된 자금형성의 시초와 배경, 조웅의 범죄사실 등이 명확한 증거로서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역시 어렵다.

“명지훈씨는 어떤 상태입니까? 대면이 가능하겠습니까?”

최재우는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여동생과 돈문제는 솔직히 모르겠고 개입할 건도 아니다. 하지만 드러난 진실, 형제보육원 이야기는 다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만……”

원장은 최재우와 두 형사를 보고 한숨 쉬었다. 이들이 명지훈을 만나기 위해 왔다는 걸 안다. 지금 거절한다고 될 현실이 아니란 것도 안다.

“가시죠.”

일어서는 원장을 따라 세 형사는 복도로 나섰다.

복도 끝 쪽의 방으로 걸어갔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휠체어에 앉은 이가 보인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앞이다.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모습, 명지훈이다.

“형사분들이 오셨어요.”

원장은 온화한 목소리로 알리고 휠체어를 돌린다.

그렇게 세 형사는 명지훈을 봤다.

중증장애인의 얼굴, 흐릿한 눈동자는 아무것도 안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다 아는 눈이다. 그래서 저런 소리를 한다.

“구신…… 나랑 가치…… 별가네서……”

무슨 소린지 모를 목소리, 하지만 최재우는 확실히 알아들었다.

‘귀신.’

명지훈은 지금 그 단어를 말했다.

귀신을 아는 거다.

귀신이 만든 사건들을 아는 거다.

어떻게 아는지 알겠다. 벽에 tv가 걸려있다.

이 방에서, 저렇게 휠체어에 앉아 매일 뉴스를 본 거다.

경찰들이 온 이유도 안다.

“명지훈씨, 귀신 장철과 조웅에 대해서 아시는 겁니까?”

확 다가선 최재우는 원장의 염려스러운 얼굴을 무시하고 물었다.

“그들에 대해 아시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기울어진 얼굴을 경련하듯 명지훈은 입술을 벌렸다.

* * *

공원과 이어진 야산은 아직 개발 정리가 안 된 곳이다.

야산이라고 하기엔 뭐한, 조금 높은 언덕줄기라고 해야 맞을 산이다.

그 산 어귀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있다. 그래선지 인근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반대편까지.’

산자락 오르막을 오르며 장철은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점점 높여 전력질주를 했다.

소나무와 밤나무들이 우거진 야산 속으로 길이 나 있다.

특수학교가 세워지기 전 사람들이 트레킹 하던 길, 가마니도 깔려 있다.

산악구보라고 하긴 지형이 수월한, 그 속을 장철은 미친 듯이 달려갔다.

십분 만에 반대편 정자에 다다랐다.

다시 처음으로 달려갔다 돌아오길 다섯 번 반복했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달랜 후 정자에 올랐다.

정자 천장을 본 장철은 점프에서 서까래에 매달렸다.

두 손으로 몸의 무게를 느끼며 풀업을 시작했다.

서까래에 가슴이 닿을 듯 끌어올린 몸을 내리고 다시 끌어 올리고를 반복, 육십회로 나누어 십세트를 끝마쳤다.

열탕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몸의 열기를 만끽하며 장철은 다시 달려갔다. 야산을 치고 들어오는 바람을 헤치며, 생각은 가평을 더듬으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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