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52. 포식자들의 밤 2.
52. 포식자들의 밤 2.
[어느 누구에게도 행적을 알리지 말고 찾아오십시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제어하며 양석훈은 문자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폰이 아닌 차명폰으로 거듭 들어오는 메시지는 세경 고회장의 지시다. 그쪽도 기밀을 위해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거다.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수습만 된다면야 뭐든 못할까.’
시간은 벌써 8시를 넘어 9시가 되고 있다.
서울을 벗어나 오산의 이런 외곽지역까지 온 건 처음이다.
선거 유세 때 출마자들을 돕기 위해 돌아다닌 적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너무 많이 기억도 잘 안 난다.
‘주소가 여기 어딘데?’
외진 길로 차를 몰아간 양석훈은 마침내 내비의 음성을 들었다.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길안내를 종료하겠습니다.]
차를 멈춘 양석훈은 라이트 빛 안에 들어온 한옥건물을 바라봤다.
제대로 지은 한옥이 아니라 작은 집이다.
시골에 흔하던 저런 집들을 리모델링하는 게 유행이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개축한 집이다.
‘카페? 민박집?’
딱 봐도 그런 느낌이다.
촌캉스라는 게 유행한다더니 그런 집인 모양이다.
그런데 숙박시설로 등록했으면 내비에 상호가 나왔을 건데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직 등록전이거나 영업을 안 하는 것일 수 있다.
‘오늘 마무리 지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킨 양석훈은 차문을 열고 나갔다. 밤바람이 서늘하게 목을 더듬는 걸 느끼며 입구로 다가갔다. 그런데 다른 차가 안 보인다.
‘아직 안 온 건가?’
옅은 의구심과 긴장 속에서 양석훈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나무문은 새것처럼 때를 벗고 단장된 모습으로 반겨준다.
묵직한 그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내부의 조명이 확 잡아끄는 것처럼 퍼져 나온다.
“이제 오십니까.”
표정 없는 얼굴로 반겨주는 자.
퉁퉁한 모습의 저 양복쟁이를 양석훈은 안다.
세경그룹의 이인자, 고종환 회장의 심복이다.
김부장이라는 호칭 외엔 아는 게 없는 인물, 저 자가 얼굴을 보였으니 고회장도 오는 거다.
“앉으시지요.”
김부장이 권하는 테이블을 향해 양석훈은 어색한 미소로 다가갔다. 출입문처럼 오래된 고재들을 가져다가 새롭게 생명을 준 목재 테이블이다.
‘카페가 맞는 것 같은데.’
주변에 같은 테이블들이 있다.
안쪽은 미니바처럼 돼 있고 그 너머가 주방이다.
김부장은 바 앞에 서 있다. 두 손을 배 앞으로 모은 모습이다.
“같이 앉읍시다.”
양석훈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상대가 서 있으니 불편하기도 하고 어색해서다. 그런데 저렇게 서 있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고회장이 있는 거야.’
이 안에 있거나 최소한 지금 도착할 거란 방증.
‘어떻게 될지……’
자꾸만 입 안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양석훈은 김부장의 형식적인 겸양에 미소로 반응했다.
생각은 오직 한가지다. 오늘 이 자리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다.
양석훈 자신을 이렇게 외진 곳으로 은밀히 부른 이유가 있다.
‘고회장이 이렇게 불렀을 때는 이미 거의 다 된 건데.’
한발만 더 나가면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처지였다.
아니 한발이 아니라 시간만 조금 더 흐르면 딛고 있던 바닥이 무너질 판이었다.
그런데 이젠 살게 됐다.
고회장이 나선 거다. 하지만 대가가 있을 것이다.
‘뭐든, 원하는 게 무엇이든 살려만 준다면……!’
집권여당의 대표, 지금과 같은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면 못할게 없다. 그러니 세경에서 원하는 게 뭐든 협조할 수 있다. 고회장이라면 솔직히 못할게 없을 거다. 하지만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하는 게 이 길인 거다.
‘이 줄을 놓치면 안 돼……!’
속엣 말을 입 밖으로 낼 뻔했던 양석훈은 김부장의 움직임에 흠칫 반응했다.
폰을 잠깐 귀에 대더니 문을 열고 나간다.
문이 열린 순간 차 소리가 내부로 들어왔다.
고회장이 도착 한 거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김부장은?’
양석훈 자신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다른 차는 없었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김부장은 어떻게 왔던 걸까?
타고 왔던 차가 돌아간 걸까?
그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지만 뭔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알바 아니다.
‘내 일만 해결하면 돼.’
소리 나게 침을 삼키며 양석훈은 문을 바라봤다.
김부장이 다시 들어온다. 그 뒤로 건장한 남자 한명이 따라 들어왔는데, 어깨에 누군가를 멨다.
‘뭐?’
레인코트로 감싼 누군가, 축 늘어진 사람이 누군지 양석훈은 알아봤다. 흔들리던 머리가 이편으로 돌았는데, 저 얼굴을 못 알아 볼 수가 없다.
“차미경!”
부지 간에 이름을 부르며 의자를 밀고 벌떡 일어선 양석훈.
“앉아.”
김부장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차갑게 날이 선 칼날 같은 명령이다.
* * *
“으……”
의식이 돌아오는 흐릿한 시야로 고재춘은 상황을 분간했다.
천장과 벽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정상적이지 않은 이 현실의 원인이 뭔지를 붙잡았다.
안방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 그 손이 쏜 테이져 건을 맞았다.
그런데 테이져건에 맞아서 이렇게 되진 않는다.
이건 분명히 약물이 원인이다.
쓰러진 고재춘 자신에게 마취성분의 약물을 주사한 거다.
그래야 할 이유라면, 역시 손발이 묶여 있다. 침대 네 귀퉁이에 결박돼 있다.
‘이거 풀어!’
분노를 폭발시키며 고재춘은 소릴 질렀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소리치지 못했다.
엄청난 고통이 피어나서다. 벌려서 소리쳐야 할 입에서다.
정확하게 입술이 위아래로 달라붙어 있다.
“해봐, 찢어질 거야.”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 드리운 거울.
‘뭐!’
고재춘은 눈을 부릅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 입술은 꿰매져 있다.
“꿰매는 동안은 아프지 않았지?”
상냥한 눈웃음과 목소리, 고재춘은 전신에 소름을 피우고 진저리를 쳤다.
“피는 꽤 나왔어.”
터진 바지를 꿰매준 거야, 같은 어투.
“으!”
고재춘은 발작처럼 몸부림쳤다. 그러자 여자의 미소 짓던 얼굴이 돌변했다. 침대에 기대뒀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소방용의 커다란 도끼다.
“닥쳐!”
격한 고함을 터트리며 여자는 도끼를 찍어 내렸다. 고재춘의 오른팔이다.
* * *
후다닥 뒤로 물러나던 양석훈은 나뒹굴었다.
김부장의 옆으로 선 건장한 남자, 그가 어깨에 메고 있던 차미경을 던져서다.
그 몸뚱이를 받아내며, 아니 충돌해서 쓰러졌다.
하지만 본능적이고 필사적으로 일어섰다.
“컥!”
옆구리에서 피어난, 아니 터진 강력한 충격에 휘말리며 양석훈은 주저앉았다. 숨이 끊긴다. 차미경을 메고 와 던진 놈의 발길질에 맞아서다.
“그냥 가려고 온 건 아니잖아?”
김부장의 목소리, 칼날이 등골을 훑는 것 같은 느낌에 양석훈은 몸서리쳤다. 그래서 감히 돌아볼 생각도 못하는 데 머리가 잡혀 홱 들린다.
“악!”
개처럼 잡아끌린 채 앙석훈은 김부장의 앞으로 갔다.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놈의 완력은 엄청나다. 저항하면 머리가죽이 벗겨질 것 같다.
“간절하게 청하더니 마음이 달라진 건가?”
내려다보는 김부장의 얼굴, 저 눈에 든 잔혹함을 양석훈은 읽었다.
“왜, 왜 이러는 거요? 어쩌자고 나를……!”
양석훈은 거기서 말을 그쳤다.
건장한 놈의 주먹이 그렇게 만들었다.
뒤로 쓰러진 채 안면의 충격을 뒤늦게 느꼈다.
입술이 찢어지고 이빨이 나갔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신다.
전신이 부들거리고 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양석훈은 애원했다.
이제 이 현실이 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이들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거다.
감히 집권여당의 대표를, 삼선의 국회의원을 죽이려는 거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할 수 있는 자들이다.
“뭐, 뭐든 시키는 대로, 크악!”
애원하며 몸을 일으키던 양석훈은 다시 쓰러졌다. 건장한 놈의 구둣발이 옆구리를 찍어서다. 이미 맞은 반대쪽이다. 숨 쉴 수 없는 격통이 치민다.
“너희 정치인이라고 하는 것들 말이다.”
김부장은 무릎을 접고 양석훈을 무심히 바라봤다.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그렇게 다시 무릎을 세우고 일어서 남은 결론을 던진다.
“네가 원하던 해결이다.”
부들거리는 경련 속에서 양석훈은 봤다.
건장한 놈이 장갑 낀 손으로 잡은 칼이다.
놈은 그걸 양석훈 자신의 오른손에 쥐게 하고 힘을 준다.
“안 돼!”
양석훈은 저항했다. 발악했다. 하지만 뒤에서 목을 팔로 감고 힘을 주는 건장한 놈의 힘을 당해 낼 수가 없다. 바닥에 쓰러진 차미경에게 밀려갔다. 칼을 쥐고 잡힌 오른손이 올라간다. 그 손이 차미경을 내리친다.
“끄어……!”
숨 쉴 수 없는 고통과 분노 속에서 양석훈은 칼 쥔 손을 계속해서 내리찍었다.
* * *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오른팔에서 피어오른다.
그게 도끼에 팔이 찍혀서라는 걸 고재춘은 알았다.
침대가 만들어낸 탄성 때문에 팔은 잘리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도끼질이 닥쳐왔다, 콱하고 팔이 잘려나갔다.
“으으으!”
꿰매진 입 때문에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고재춘은 부들거렸다. 오른 팔이 잘려 그쪽이 자유로워진 상태지만 그걸 인지할 수가 없다.
“기분이 어때?”
여자의 얼굴엔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눈동자는 이글거린다.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는 기분.”
고재춘은 여자의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신을 경련케 하는 고통 속에서도 지금 들은 말의 의미를 파악했다.
이런 기분인지 이제 알았다.
“즐겨 봐.”
시간은 아주 많으니까, 라는 말이 여자의 입술에 맴도는 걸 고재춘은 알았다. 그래선지 여자는 다른 일을 시작했다. 아내의 사체를 분해한다.
“이여자도 쓸 만큼 썼잖아? 갈아치울 생각이었지?”
도끼질을 하면서 여자는 태연하게 목소릴 이어냈다.
“재수 없는 년이었어. 안 그런 척 하면서 꼽 주던 년이지. 아, 눈깔을 뽑아버릴 생각이었는데.”
도끼를 손에서 놓은 여자는 드라이버를 쥐었다. 그걸로 아내의 눈을 파내기 시작했다. 얼굴에 피가 튀는 대도 즐거운 일을 하는 것처럼 웃는다.
‘저……!’
고재춘은 현실을 부정했다.
지금 자신이 겪는 일은 악몽이라고, 깨어나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님을 안다.
지금 겪는 이 일은 예정된 것이었다는 것도 안다.
그때, 귀에 들어왔던 그 말대로 되는 거다.
널 죽일 거야.
기억속의 말, 저주를 떠올린 고재춘은 진저리를 쳤다.
그 순간 오른 팔이 자유롭다는 걸 알았다.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왼팔을 풀어야 손이 없다.
잘려나간 오른팔에 붙는 오른손은 침대위에 생선토막처럼 있다.
“뭐하게?”
생글 미소를 던지며 돌아서는 여자, 그 손에 잡혔던 드라이버가 떨어지고 다시 도끼가 잡히는 걸 고재춘은 바라봤다. 난데없이 딸꾹질이 나온다.
* * *
피 묻은 칼을 양석훈은 놓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건장한 놈의 의지다.
목을 감고 있던 놈의 팔도 풀어졌다.
숨이 쉬어졌지만 쉴 수가 없다.
차미경을 잔혹하게 살해한 장본인 양석훈은 이제 자살하는 것이다.
‘이건가.’
극의 마지막이 그렇다는 이제 확실히 안다.
양석훈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피해, 아니 반발해 비극적인 결말을 만든 것이다.
이 결말이 허무하다, 지나온 인생이 허탈하다.
이러자고 정점을 향해 달린 건가.
‘꼭두각시에 불과한, 그런데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굴었어.’
권력에 취해 살았다.
법위에 군림하는,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벌 받지 않는, 영원한 삶을 살 걸로 여겼다.
실제로 그렇게 했고 살아왔다. 하지만 영원한건 아니었다.
이제 그 대가를 받는 거다. 뿌린 씨를 거둠이다.
“너희는 영원 할 것 같으냐?”
양석훈은 김부장을 향해 물음 아닌 물음을 던졌다.
김부장은 대답했다.
“이 나라의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양석훈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김부장이 명령했다.
“마무리 해.”
건장한 놈이 즉각 움직였다.
로프를 서까래에 던져 넘겼다.
반대쪽, 올가미를 양석훈의 목에 씌우고 잡아 당겼다.
양석훈은 떠올라 몸부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