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54화 (54/200)

황혼의 살인자. 54. 숨은그림 찾기.

54. 숨은그림찾기.

-의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살해된 차미경씨는 어째서 양석훈대표를 만나러 간 것일까요? 성폭행으로 고소한 가해자의 연락을 받고 오산까지 이동한 정황 자체가 의문입니다. 폰에 남은 문자메시지는 명확하게……

황당한 표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 조웅은 tv뉴스에 눈을 박았다.

새벽 운동 나간 장철을 기다리는 사이 저 사건이 터졌다.

아침 먹고 장철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점심시간이 다 돼가는 지금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물 타기 하려고 한 걸로 짐작하긴 했었는데 이건……!’

사건의 강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현직 여당대표의 죽음이다.

자살하기 전에 살인을 저질렀다.

차미경이란 성폭행피해자를 살해하고 목을 맸다.

저들이 저곳에서 만나기 위해 문자를 주고받은 폰들이 발견됐다.

-양석훈대표는 차미경에게 차명폰으로 은밀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만나기를 종용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경찰이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가족과 지인들에 대한 위해협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거액의 보상을 제시하며 사건을 무마해 줄 것을 부탁한 내용으로……

“냄새가 진동하네.”

묵직한 숨으로 중얼거린 조웅의 곁으로 미쓰리가 다가왔다. 때 이른 참외가 담긴 소반을 들고서다. 작은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묻는다.

“진실이 따로 있다는 말씀인가요?”

힐긋 미쓰리에게 시선을 돌린 조웅은 아주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미쓰리와 저런 사건을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 이젠 기호지세라는 판단으로다. 이렇게 함께 도피생활을 하는 터에 숨기고 말고 할 게 없다.

“얼핏 얘기했을 거야, 양석훈 사건의 본질.”

“네, 귀신 사건으로부터 세간의 이목을 돌려놓으려는 의도라고.”

“그랬는데 효과를 못 봤지. 그렇지만 여전히 강한 화력을 품은 장작이거든.”

미쓰리는 알아들었다.

“저 사건이 그럼 꾸며진 거란 건가요?”

“맞아, 아니 내 생각은 그래.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자들이 한 거지. 저래놔도 아무렇지도 않은 놈들, 저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새끼들.”

“그게……”

“세경과 온누리. 그중에 찍으라면 세경일 거야. 온누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지. 그런데 세경은 아니야. 고종환회장, 그 흡혈귀영감이 가진 힘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만 알아.”

이영숙은 tv로 시선을 돌렸다.

조웅의 이야기로 상황의 크기와 무게를 더 확실하게 가늠하니 심장의 고동이 강렬하다.

한마디로 엄청난 일이다.

‘현직 여당의 당대표를……!’

제물로 삼았다.

상황을 제어하고 주도하기 위해서다.

귀신이란 상대를 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귀신이란 존재는 태연하게 잠자고 있다.

-양석훈대표와 피살자 차미경의 차량에서는 별다른 유류품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이 어젯저녁 서울을 떠나 약속장소인 오산 외곽의 카페겸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동선은 확인 된 것처럼……

tv뉴스영상은 현장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작은 방에서 장철이 나왔다. 조웅과 이영숙이 보는 tv뉴스에 시선을 던진다. 아는 얼굴이 보여서다.

* * *

‘불을 불로 잡는다 이거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며 최재우는 현장을 응시했다.

저편에서 보도진 카메라들이 찍고 있는 현장, 카페겸 게스트하우스 청석골이다.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곳이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업주는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반응.’

아무래도 카메라가 자신도 찍고 있는 것 같아 최재우는 몸을 돌렸다.

감식반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카페 문 앞에 등을 보이고 섰다.

업주의 반응을 다시 곱씹었다.

젊은 사업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양석훈은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연고도 없는 곳에?’

대포폰으로 차미경에게 문자를 던져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차미경은 그 연락을 받아 들였다.

그것도 의문이다.

피해가 두려워 숨어 있던 고소인이 왜?

문자를 주고받은 대포폰은 뭐며 그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림이야.’

최재우는 확신했다.

이 사건은 양석훈의 의지로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거다.

다른 자의 의도와 계획,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다.

애초에 양석훈 사건이 터진 배경의 연장선이다.

불이 붙다 만 장작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상황을 주도하고 장악하기 위해서.’

의정부에서 남규덕이 살해당했다.

귀신사건과 아무연관이 없을 것 같던 사건이다. 하지만 남규덕이 윤완규가 살해당하기 직전 R병원에서 경찰을 방해한 자라는 진실이 드러났다.

언론은 뜨겁게 떠들기 시작했다.

‘집권여당 대표의 성폭행 피해자 살해, 그리고 자살.’

대 폭발을 일으킨 거다.

그 파편에 맞아 휘청거릴 언론과 세간의 뒤에서 귀신장철을 향한 공작을 하겠다는 거다.

이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다가가기 힘든, 잡아넣기 어려운 자들이다.

“개새끼들이……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뭘로 보고……!”

뜨거운 숨으로 분노를 흘려내던 최재우는 바로 찾아드는 자괴감에 눈을 감았다.

이 나라의 법과 질서, 그건 모두에게 공평한 게 아니다.

그렇다는 걸 최재우 자신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안다.

“팀장님.”

등 뒤에서 다가온 송치호를 돌아보며 최재우는 눈을 떴다.

“감식반의 일차 감식결과가 나왔습니다. 카페 안엔 두 사람 이상이 더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족흔을 추적하겠지만 기대할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오산경찰서 측의 입장인 거다.

청석골이란 이곳은 그동안 내부공사 등을 이유로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염순례란 이름의 최초발견자도 청소를 위해 자주 출입했다.

그들 전부를 조사하겠지만 이란 대답인 거다.

“합수부가 온 게 못마땅하면서도 긴장되고 그런 모양입니다.”

이어 나온 송치호의 짐작, 최재우 자신이 이렇게 오산까지 온 배경과 현실이다. 오산서측에선 엄청난 사건이지만 합수부가 왜? 라며 놀랐을 터다.

“언론은 합수부와 연관 짓지 않고 있는데, 알면 더 난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최재우 자신 등이 합수부소속인 걸 알면, 진실한 이면을 알게 되면.

‘그렇게 되면 이 일을 만든 새끼들은 어떤 얼굴일까?’

통쾌하게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에 최재우는 어금니를 물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박인수의 지시를 받고 이곳까지 온 것도 기밀이다.

대가리들에게도 정황파악을 위해서라고, 사안이 중대해서라고 한 거다.

“차량 이동경로는 확실하게 파악된 거지?”

“그렇습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혼란이 있을 게 없죠. 양석훈대표의 마지막 행적도 파악됐습니다. 원희철의원과 같이 있다 움직였더군요. 차미경은 면목동 빌라에서 출발한 영상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미간을 좁힌 최재우는 바로 물음을 냈다.

“혼자 타고 출발했다고?”

“에,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빌라에서 차미경의 차가 출발하는 영상만입니다. 혼자타고 출발한 건지 누군가 같이 타고 있었던 건지는 모릅니다.”

그렇게 들었다는 송치호의 얼굴을 최재우는 말없이 응시했다.

“강제력이 있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래, 내 생각은 그거야. 차미경의 입장에서 양석훈을 이런 곳에서 은밀히 만날 이유가 없어. 우리가 추측하는 대로라면 차미경은 온누리측의 비호를 받던 입장이야. 양석훈의 협박은 두렵지만 무시할 수 있지.”

“그런데도 이렇게 왔다는 건……”

“본인의 의사가 아닐 수 있지. 거의 그렇다고 본다.”

“그럼 문자를 주고받은 대포폰들은 심어진 거고요?”

“양석훈은 몰라도 차미경이 대포폰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색하지. 게다가 양석훈이 그 번호를 알고 있다? 차미경도 마찬가지고? 정말 어색해.”

송치호는 현장으로, 카페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감식반이 코로나 방역요원들 같은 복장으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 안에서 벌어졌을 사건을 머릿속에 그렸다.

양석훈이 차미경을 무자비하게 찌르는 광경이다.

“양석훈이 한 게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당한 거라면……”

중얼거리는 송치호의 말을 최재우가 받았다.

“적어도 건장한 성인남자 둘 이상이 함께 이곳에 있었다. 양석훈을 제압할 육체적 능력을 가진 놈, 차미경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놈, 같은 놈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여길 벗어난 정황을 찾을 수 없는 게 문제야.”

양석훈과 차미경을 살해했을 범인들, 그들이 들고난 모습을 찍을 카메라 같은 건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다. 카페로 오는 외길은 비포장도로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 송치호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일까요?”

세경과 온누리, 두 곳 중에 어느 곳의 작품이겠냐는 물음.

“합작이겠지.”

결론을 뱉은 최재우는 다시 치미는 감정에 뺨에 주름을 잡았다. 그 순간 유지건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낭랑하고 힘찬 젊은 목소리다.

“커피 드십쇼!”

지역에서 유명한 카피는 꼭 마셔야 한다며 사러 간 유지건, 웃으며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본 송치호는 인상 구겼고 최재우는 피식 미소 지었다.

* * *

‘이게 무슨……!’

부들거리는 손과 다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고종환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 모습이 불안한지 김부장이 연신 뒤돌아보는 가운데 차는 도착했다.

조수석에서 바람처럼 내린 김부장이 열어주는 차문 밖으로 고종환은 나갔다.

차고 안엔 아들의 벤츠가 서 있다. 며느리의 차도 반대편에 있다.

그것들을 눈에 담을 새 없이 김부장을 따라 걸었다. 집안으로 들어갔다.

겁에 질린 채 벽에 붙어 서 있는 가사도우미과 그 앞에 선 검정 양복의 직원을 힐긋 응시한 고종환은 안방으로 향했다. 피비린내가 확 하고 맡아지는 안방, 그 문턱을 넘어서 얼어붙었다. 아들 며느리를 보고서다.

“이……!”

신음 같은 외마디를 내며 고종환은 휘청거렸다.

김부장이 얼른 부축하지 않았으면 주저앉았을 터다.

바닥은 아들 며느리의 피로 온통 피바다다.

“회장님 우선 밖으로……”

부축한 김부장의 팔을 움켜잡으며 고종환은 물었다.

“누구냐?”

팔에 전해지는 회장의 감정에 흠칫하며 김부장은 대답했다.

“강남역의 그년인 걸로 판단합니다.”

꿈틀, 어깨로 반응한 고종환은 몸을 돌렸다.

안방을 벗어나 거실로 나왔다.

김부장은 검정 양복의 직원에게 눈짓했고 그가 도우미를 밀고 갔다.

소파에 앉아 손을 부들거리던 고종환은 다시 일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김부장을 뒤로 두고 방안을 응시했다.

“하다가 그만 뒀어.”

차분해진 고종환의 목소리에 감긴 감정이 뭔지를 헤아리며 김부장은 입을 열었다.

“며느님을 먼저 해친 정황입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드님을 그다음으로 해쳤습니다. 아드님을 침대에 결박해 놓고 며느님의 시신을 훼손했을 겁니다. 그러다 아드님을 살해하고 역시 훼손하다가 그냥 갔습니다.”

부들거림을 일체 보이지 않는 고종환, 그 등을 향해 김부장은 계속 말했다.

“가사 도우미가 발견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연락을 받고 회장님과 제가 이곳에 오는 동안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부수적인 그런 문제는 하등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만, 침투한 결과는 다릅니다.”

침투한 결과.

강남역의 그년이 아들며느리가 사는 구기동의 이집에 들어온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랬을까? 보안시스템은 그대로 가동 중인데.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습니다.”

침을 삼키며 김부장은 파악한 내용들을 보고 했다.

“어제 저녁 6시 40분에 시스템 언락이 이뤄졌습니다. 정상적인 출입절차였습니다. 비밀 번호를 아는 누군가가 현관을 열고 들어온 겁니다. 집안 cctv는 손을 대서 확인불가입니다만, 외부 영상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김부장은 태블릿 영상을 고종환의 앞으로 내밀었다.

시선을 내린 고종환은 아들 며느리의 집 앞길을 비추는 외부 카메라의 영상을 봤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 쓴 여자, 강남역의 그년이 집안에 들어간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냐?”

고저 없는 고종환의 물음, 어떤 감정인지 헤아리길 포기하며 김부장은 대답했다.

“현재로선 알 길이 없습니다만, 아드님이나 며느님의 주변에서 파악했거나 해킹으로 알아낸 게 아닌가 판단합니다. 중요한 건 목적이라고 봅니다.”

“목적?”

“어째서 이런 짓을 벌였느냐는 부분입니다.”

고종환은 김부장에게 돌렸던 시선을 다시 아들과 며느리의 훼손된 사체로 돌렸다.

참혹하고 극악한 광경, 저것으로 알 수 있는 건 지독한 감정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잔인한 유희다.

그런데 그걸 하다가 돌아섰다.

‘아이가 모래놀이 하다가 장난감 삽을 던지고 가듯이.’

아들 며느리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느끼는 것을 고종환은 곱씹었다. 참을 수 없는 이 분노와 슬픔과 비통 이전에 무엇을 목적하고 이랬느냐다.

‘나에게? 재춘이에게? 며느리에게?’

원한이라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전부를 목적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일, 지금은 수습이 먼저다.

이걸 경찰에 알릴 순 없다.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된다.”

돌아보며 낸 회장 고종환의 음성, 그 안에 담긴 의지와 힘에 김부장은 고개 숙였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거실로 나간 고종환은 주방의 냉장고를 열고 냉수를 들이켰다.

벌컥거리는 그 소리가 죽은 자들의 집 안에 퍼졌다.

죽음을 물어뜯는 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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