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56. 밤의 여신.
56. 밤의 여신.
연못을 보고 선 고종환은 내리치는 햇살을 노려봤다.
다스리기 어려운 지금 이순간의 감정이 풀어져 나오는 시선, 그 눈길을 연못으로 내렸다.
아들 고재춘이 자신의 과천집 연못을 흉내 낸 것, 잉어들이 노닌다.
‘갈아 마신다, 내가 반드시 네년을 잡아서 갈아 마시고야 만다……!’
연못과 잉어를 노려보며 고종환은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귀신에 이어 그년을 잡아 죽여야 한다.
아들 고재춘을 살해한 년, 밤의 여신이란 년.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있었어.’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년은 딸 고초희가 귀신에게 당한 진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그건 세경에, 고종환 자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한 거다.
‘양석훈 사건의 배후에 대해 의심하라고?’
온라인상에 퍼지고 있는 이야기다.
김부장의 보고에 의하면 그년이 사건의 이면과 숨겨진 흑막이 있다고 떠든다는 거다.
돈벌이가 된다면 어디든 몰려다니는 쥐새끼 같은 유튜버 놈들이 그년 말을 받아 떠드는 거다.
‘왜? 누군데?’
눈썹을 부들거리며 고종환은 상대를 그렸다.
보이지 않는 얼굴과 정체를 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김부장이 꼬리를 못 잡듯이 모호할 뿐이다.
명확한 건 밤의 여신이란 그년이 적의를 가졌다는 것, 아들을 죽였다.
“회장님.”
등 뒤로 다가온 김부장을 돌아보지 않고 고종환은 물었다.
“어디?”
잠시 주저한 김부장은 대답했다.
“아드님 차에 모셨습니다.”
이후는 어떻게 할지 고종환은 묻지 않아도 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아들과 며느리의 시체를 보관할 거다.
당장은 박전무가 아들의 역할을 대신 할 거고, 때가 되면 아들과 며느리의 죽음을 세상이 알게 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연출이 될 것이다.
자살이든 추락사든 살인은 아닌 거다.
경찰의 개입은 없을 것이다.
세경 사장 고재춘과 그 아내의 장례로 마무리 한다.
그런데 그 흐름대로 될지 의문이다.
그년이 진실을 떠벌린다면.
“밤의 여신이란 년이 지껄일 상황에 대비는 되는 거냐?”
고종환은 가슴이 조이는 걸 느끼며 물었다.
정말로 그 부분이 걱정이다.
아들 며느리를 참혹하게 살해한 년, 영상 같은 걸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방해를 놓는 게 확실한 그년이 그런 걸 뿌린다면 만사휴의인 거다.
“그 부분은……”
뺨에 주름이 지게 이를 물었다가 푼 김부장은 목소릴 이어냈다.
“닥치는 상황에 맞출 수밖에 없겠습니다.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밤의여신이란 그년이 제가 살인범인 게 드러나길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한다면 막을 방법이란 없습니다. 그러진 않을 거란 예상으로 대응할 밖에요.”
김부장답지 않은 대응의 대답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그렇단 걸 알기에 고종환은 다른 반응을 내지 않았다. 다만 처절한 맹세만을 뱉을 뿐이다.
“수배자 따위로 만들지 마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알아서도 안 되고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의지, 고종환은 맹세한다.
“내가 그년 심장을 꺼내서 씹어 먹을 거다.”
연못을 보고 선 고종환의 등을 응시하던 김부장은 돌아섰다.
* * *
영등포의 복잡한 도심을 누비던 차는 구주택가로 들어섰다.
전화로 약속을 잡은 공성훈씨의 점포는 거의 다 왔다.
형제보육원 출신자, 그들에게서 진실의 파편을 찾아내기 위한 걸음이다.
그런데 생각은 딴 데 있다.
‘밤의 여신.’
온라인상에 양석훈 사건의 진실을 알린다는 존재다.
사건을 쫓아다니는 유튜버들은 정말로 여신을 섬기듯 하고 있다.
그녀가 주장한 내용은 진실이다.
유튜버들은 모르지만 최재우 자신은 안다. 명확한 진실이다.
‘배후와 내막이 있지.’
양석훈은 자살한 게 아니다. 차미경을 죽인 것도 아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강제를 당해 오산까지 간 거다.
양석훈이 거길 간 이유는 상황을 해결하려고가 맞을 거다.
정말 해결됐다. 그 자신이 살해당하면서다.
‘의자에 올라가서 목을 맨 게 아니야, 전부 연출된 살인.’
양석훈은 올가미를 쓰고 의자를 차며 매달린 게 아니다. 누군가 서까래에 매달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신체능력자가 잡아 당겨 죽인 거다.
‘그들이, 살인자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가 의문.’
현장인 청석골엔 양석훈과 차미경의 차만 있었다.
그들과 같이 차를 타고 온 게 아니라면 살인자들의 차량도, 그 이동흔적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게 없다.
예측하는 이동로는 1킬로 떨어진 생태습지 공원이다.
‘이어진 길은 없지만 야지로 이동이 가능해.’
살인자들이 들고난 경로가 그곳이라면 추적이 사실상 어렵다.
운동하러 오는 인근 주민들과 관람하러온 행락객들 전부를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곳은 대중교통편이 이어진 곳이다.
‘밤의 여신.’
다시 정체 모를 여자 생각으로 돌아간 최재우는 의도를 더듬었다.
‘해가 되는 일만 하고 있어.’
여태까지 한 일이 그렇다.
귀신의 범행을 밝혔으니 귀신의 적이다.
그런데 세경과 온누리가 하는 일에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목적이 무엇일까.
“저기네요.”
운전하는 유지건의 목소리에 최재우는 현실로 돌아왔다. 차가 멈춘 좁은 골목길, 다세대건물 일층 상가에 간판집이 보인다. 그가 나와 있다.
‘공성훈.’
형제보육원에서 탈출한 다섯 명 가운데 한사람이다. 합수부의 조사 이후에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또 찾아왔으니 당연한 일일 거다.
“실례합니다.”
차에서 내려 정중하게 인사한 최재우는 들고 온 음료수박스부터 내밀었다.
* * *
“간다고?”
조웅의 물음에 장철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명료한 그 반응에 조웅은 더 묻지 않았다. 귀신이 결정했다면 그렇게 하는 거다.
‘여러가지로 시끄러운 상황인데, 그걸 오히려 이용하는 건가?’
장철의 의도를 헤아리며 돌아서려던 조웅은 다시 입을 열었다.
“밤의 여신이란 그년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데.”
귀신 장철의 움직임을 예측할리는 없겠지만, 아니 예상은 세경이든 온누리든 하고 있으니 그 여자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하지만, 정확한 시간은 귀신만의 것인 거다. 그렇다고 해도 찜찜하게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우선 근처에 가는 것뿐이야.”
그렇다는 거다.
당장 행동에 나서는 게 아니라 가평으로 가서 목표인근의 상황을 살핀다는 거다.
눈과 몸으로 직접 지형지물을 확인하고 동정을 살피는 거다.
그래야만 돌발변수에 대해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복장이 필요하겠네? 아니면 캠핑?”
장철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조웅은 정말로 돌아섰다. 적막이 다시 찾아든 방안에서 장철은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다.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 * *
화장실에서 나온 피터 윤은 눈썹을 곤두세웠다. 곤잘레스가 캔맥주를 마시고 있어서다. 바로 다가가서 박살을 내듯이 후려쳐 날려버렸다.
“shit!”
격하게 욕을 토하며 반응한 곤잘레스의 손은 벨트의 나이프를 잡았다. 그 순간 고든 와일리가 끼어들었다. 곤잘레스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젓는다.
“갈증 나는데 맥주 하나도 못 마시나!”
거칠게 항의하는 곤잘레스에게 피터 윤은 차갑게 대답했다.
“우린 할 일이 있다. 그걸 위해서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잊은 적 없다!”
“그런데 술을 마시나? 긴장이 풀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고든 와일리에게 팔과 어깨를 잡힌 채로 곤잘레스는 소리쳤다.
“뭐가 긴장이야? 놈은 오지도 않잖아! 애초에 계획을 잘 못 세운 거라고!”
피터윤의 눈동자에 스산한 빛이 어렸지만 곤잘레스는 계속 떠들었다.
“술에 취하는 것도 아니고 맥주 하나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야! 아프카니스탄에선 40도짜리 독주를 마시고도 싸웠어! 이렇게 살아 있다고!”
피터윤은 차분하고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예측은 빗나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빗나가면 끝인 거야.”
곤잘레스는 다시 소리치려했지만 피터윤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우린 돈 받은 만큼의 결과를 내야 한다. 놀러온 게 절대로 아니야. 일이 끝나고 나서는 어디서 뭘 하든 상관없지, 상관 안 해. 그런데 지금은 일이 진행 중이다. 내가 리더로서 일을 하는 동안 차질은 용납 못한다.”
곤잘레스의 입을 고든 와일리가 틀어막으며 밀고 갔다. 아예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 광경을 다른 동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피터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긴장이 풀어지는 상태를 막기 힘들 거란 생각이다.
‘귀신.’
오지 않는 적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것이다.
동료들은 전장에서는 맹수지만 이런 환경에선 달라진다.
참고 기다리는 것도 전장에서다.
그런데 지금 여기는, 이일은 많이 다른 거다.
‘차라리 계획을 변경 하는 게……’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더듬던 피터 윤은 그를 봤다.
창을 통해 식당의 상황을 지켜보다 말없이 돌아서는 자, 최길준 실장의 눈이 차갑다.
‘제길.’
대상 모를 분노를 숨으로 뿜어낸 피터 윤은 뜨겁게 중얼거렸다.
“귀신, 반드시 잡는다.”
* * *
“별관치료라고도 하고 비밀치료라고도 하고 특별치료라고도 했습니다.”
공성훈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은 흉악한 상처다.
“원장이 지목하면 별관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최재우와 유지건과 송치호는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걸 모르는 채 이야기를 들었다.
“그걸 정확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정신병 치료 같은 게 아니었나 합니다. 아니 정신병은 아니고 정신치료, 그런 거죠. 정신이 이상 있는 아이들한테 한 짓이 아니니까요.”
유지건의 시선을 느낀 공성훈은 바로 말한다.
“명지훈, 그 친구 같은 경우는 해당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처음 보육원에 왔을 때보다 그 비밀치료를 받고나서 더 상태가 안 좋아졌습니다. 개새끼라고 우리들이 이름대신 부르던 형이 있었는데, 그 형 같은 경우는 별관치료 후에 더 잔인하고 강해졌습니다. 예, 강해졌지요.”
“강해진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최재우의 물음에 시선을 맞췄던 공성훈은 간판자재들로 어수선한 점포 안을 응시했다. 그 눈길이 기억을 더듬는 것이라는 걸 세 형사는 알았다.
“별관의 비밀치료…… 그건 말하자면 일종의 최면술 같은 거였습니다. 마음에 병이 든 우리들을, 고아가 된 아이들을 치료한다고 원장은 말했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그걸 하고난 아이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졌죠.”
“변화가 생겼다는 말입니까? 강해졌다는 건 그 변화중 하나고요?”
예감을 뱉은 최재우에게 시선을 고정한 공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별관에서 그걸 겪었습니다. 한번이었죠.”
생각하기 싫은 얼굴로 공성훈은 말을 이었다.
“미국인들이 와서 몸에다 전기장치를 붙이고 시작합니다.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거라고, 명상 속에서 채널을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요.”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공성훈은 후하고 숨을 토해냈다.
“그건 고문이었습니다.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원장은 비밀리에 시체를 처리하고 아이의 기록 자체를 지워버렸죠. 그걸 알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계속 있으면 결국 죽을 것 같았죠. 그럴 바엔 도망치자고 마음먹고 도망쳤습니다. 잡혀서 죽으나 다를 게 없으니까요.”
고통스러워하는 공성훈의 얼굴을 보며 최재우는 단어 하나를 곱씹었다.
‘채널.’
형제보육원 별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한 건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유추하면 일종의 최면술과 같은 정신자극행위를 한 거다. 무엇을 목적으로 한 건지, 미국인들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장철이 가장 잘 견딘 아이였습니다.”
장철의 이름이 나온 순간 최재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보육원에 온 날부터 형들에게 맞기 시작했죠. 작은 아이들이 괴롭힘 당하는 걸 막았기 때문입니다. 원장은 장철의 마음에 깊은 병이 있다면서 별관에 들여보냈습니다. 원장이 장철을 특별하게 봤기 때문일 겁니다.”
왜 그런지 이유가 이어져 나왔다.
“거의 전부 초죽음이 돼서 나오는데 장철은 안 그랬습니다. 힘들어 하긴 했지만 며칠씩 앓아눕거나 하지 않았죠. 그리고 점점 강해졌습니다.”
두 번째로 나온 말, 강해졌다는 의미를 최재우는 뜨겁게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