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57. 어제와 다른 밤.
57. 어제와 다른 밤.
“제, 제발……”
진석환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그런데 그 말이 정말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입이 터지고 이빨은 다 날아갔다.
퉁퉁한 남자 옆에 선 건장한 젊은 남자의 주먹은 마치 해머 같다.
“아는 것 만 말하면 된다.”
퉁퉁한 남자는 계속 같은 소리다.
도대체 뭘 말하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안다. 자신이 드나들던 고어방에 대해 말하라는 거다.
그런데 온라인상의 일을 말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하지만 말 안하면 죽는다.
“로드킬킹……! 그 새끼하고 오프라인에서 만났습니다……!”
부들거리는 목소리로 진석환은 숨겨둔 이야기를 꺼냈다. 물음을 던진 상대방이 원하는 이야기가 이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했다. 무슨 이야기든 해야 하기에, 숨겨둔 비밀을 토해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이야기 한다.
“고양이 같은 걸 태우고 죽이는 건 시시해서……”
했다.
로드킬킹놈과 비밀대화를 주고받아 의기투합해 만났다.
어택 할 대상을 물색하고 사냥에 나섰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놈을 사냥했다.
고양이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한 짜릿한 전율에 오줌발이 거칠게 나왔다.
“그게 얘기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터진 입술사이로 핏물과 침을 흘려내는 진석환, 천정에 고정된 사슬에 묶여 휘청거리는 놈, 두 팔이 올라간 겨드랑이를 김부장은 가만히 봤다.
‘사극에서처럼 저길 인두로 지지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하던 김부장은 현실에 집중했다.
진석환에 대해 판단하고 결론 내렸다.
이놈도 레이디호크, 연은수에 대해 아는 건 없다.
그년이 인천에 산다는 것도, 밤의 여신이란 것도,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놈들이 알 리가 없겠지.’
차가운 숨을 짧게 들이 내쉰 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를 인지한 정대리가 바로 움직인다.
해머 같은 주먹을 날려 진석환을 두들긴다.
잠시 만에 피투성이 고깃덩어리처럼 변한 진석환은 축 늘어져 버렸다.
“로드킬킹이란 놈이 기다릴 거다.”
진석환을 향해 던진 김부장의 짧은 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진석환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런 곳에 이렇게 끌려온 이유는 로드킬킹 때문이다.
그놈이 먼저 당하고 진석환 자신을 분거다. 이제 여기가 마지막이다.
‘왜?’
마지막 생의 반발로 진석환은 그 의문을 품었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지다.
어제처럼 게임을 하고 치맥을 즐기는 밤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어째서 오늘 밤은 이렇게 된 것일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분명치 않은 시야로 진석환은 봤다.
퉁퉁한 남자가 정대리라고 부른 건장한 놈, 그놈이 장갑을 벗고 금속으로 된 물건을 주먹에 낀다.
저걸 뭐라고 부르는 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저걸 맞으면 죽는 다는 건 안다.
“나……”
진석환의 고개가 돌아갔다.
정대리의 해머 같은 펀치가 작렬한 턱은 피와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정대리의 주먹은 속사포처럼 터져나갔다.
진석환의 옆구리를 강타해 간과 비장을 터트리고 가슴을 쳐 심장을 부쉈다.
검은 피를 토해내며 늘어진 진석환에게서 정대리가 물러나자 김부장은 시선을 거두고 돌아섰다. 지하실의 퀴퀴한 공기를 마시며 폰을 들었다.
“어떻게 되고 있는 거냐?”
폰 너머 직원은 명료하게 대답한다. 소재를 파악했고 포획을 중비중이라고.
“신속하게 해라.”
지시를 내리고 폰을 내린 김부장은 새삼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신속하게 해야 해서다. 고종환회장이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
이미 너무 많이 기다리셨다. 그러는 사이 아들 고재춘 사장까지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런 놈들 더 잡아봐야 소득이 없어.’
진석환을 향해 돌아선 김부장은 장대리가 풀어 내리는 주검을 바라봤다.
복날 개처럼 맞아 죽은 진석환, 저놈의 눈깔엔 마지막까지 회의가 있었다. 제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를, 무슨 일의 대가인지를 모른다.
‘사람을 잡아 죽인 새끼가.’
진석환은 그런 놈이다.
요즘 세상에 늘어나고 있는 위험한 종자다.
술에 취해 이유 없이 폐지 줍는 노인을 폭행 살해하는 놈, 노래방에서 시비가 붙은 부부를 흉기 들고 찾아가 살해하는 개새끼, 인간 말종들이다.
‘나도 다를 건 없지.’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김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석환을 저렇게 만들기 전에 로드킬킹이란 놈을, 그전에 다른 두 놈을 손봤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고종환 회장을 모시며 살아오는 동안 무수한 피와 죽음을 삼켰다.
‘피 묻은 손, 이손이 깨끗해지길 바라진 않아.’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려다 본 김부장은 정대리가 끌고 가는 진석환의 시체를 응시했다. 이젠 사람이 아닌 물건이다. 무감정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재미로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지하실을 울리는 그 목소리가 공허함을 김부장은 느꼈다.
* * *
메스를 쥐어야 하는데 이젠 손이 떨린다. 이렇게까지 삶이 망가지리라곤 생각해 보지 못했다. 술에 취하지 않고는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다.
“씨발.”
내쉬는 숨에 욕을 뱉어낸 도용조는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고갤 숙이니 지난날이 저절로 떠오른다.
성형외과전문의로 잘나가던 시절, 개업해서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했던 순간,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병신 같이……!’
너무 잘 나가서 그랬을까, 맞다.
앞뒤분간 못하고 오만했었다.
도박을 했고 강한 쾌락을 찾아 다녔다.
그 길은 자연스럽게 마약과 여자로 이어졌다. 결과는 패가망신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후.”
고개 숙인 채 깊은 숨을 내쉰 도용조는 주변을 돌아봤다. 포장마차의 천막 안에서 소주잔을 넘기는 사람들, 그 속에 있다. 잘나갈 때는 이런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호사스러운 바나 룸살롱에서 밤을 만끽했다.
‘다신 누릴 수 없는 밤, 어제와는 다른 밤.’
병에 남은 소주를 잔에 따른 도용조는 단번에 마시고 일어섰다.
계산을 하고 포장마차를 나갔다.
취기가 붙잡는 걸음을 옮겨갔다. 그런데 누군가 좌우 옆구리에 붙었다.
‘뭐!’
입에 대진 손수건의 냄새를 맡으며 도용조는 늘어졌다.
* * *
“수고했다. 서둘러 와라.”
짧은 통화를 마친 김부장은 고종환이 있는 vip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하실에서 뒤처리를 할 정대리를 생각하고 고종환에게 보고할 걸 생각했다. 동시에 창고건물이 세경 본사와 너무 가깝지 않은가도 생각했다.
‘서초동.’
세경이 위치한 곳이 그렇다. 낡은 상가건물이다.
그곳을 사용하는 건 걸려서 따로 창고건물을 구해 사용 중이다.
위험해질 일은 없지만 조심해야 한다.
같은 강남권역이기에 이곳 온누리 병원으로의 이동도 수월하다.
VIP룸에 멈춘 김부장은 짧게 숨을 고른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창에서 돌아보는 고종환 회장에게 고개 숙인 뒤 다가갔다. 바로 물음이 온다.
“손에 잡은 게 있는 거냐?”
고종환의 물음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며 김부장은 대답했다.
“의사놈을 잡았습니다.”
“의사?”
고재춘을 살해한 년, 밤의 여신이란 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고종환은 미간을 뒤튼다. 지금 당장 고종환이 원하는 게 그것임을 알지만 소득이 없다. 저 분노를 다스리자면 귀신에 대한 단서라도 있어야 한다.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귀신 장철이 부상을 당했을 경우, 그 치료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일을 하는 의사놈들을 추려냈고 확보했습니다. 뒷거리에선 솜씨가 좋고 입이 무거운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뒤튼 미간을 느릿하게 풀어낸 고종환은 말했다.
“직접 보자.”
예상한 일이기에 김부장은 옆으로 물러섰다. 앞서 나가는 고종환회장의 뒤를 따르며 정대리에게 전화했다. 회장님과 그곳에 다시 간다고.
* * *
또 밤이 됐다.
오늘 밤에도 귀신은 올지 안 올지 기다리며 보낼 밤이다.
산자락에 드리운 어둠은 음울한데 산새들의 울음소리마저 그렇다.
“뻐꾸기 우는 소리가 저렇게 듣기 싫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야.”
이젠 창밖을 보는 게 습관이 된 모습의 한대건, 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길준은 낮에 본걸 떠올렸다. 피터윤과 그 동료들의 불화다. 어제와는 다른 모습, 그들은 기다림에 짜증을 내고 있다. 이건 좋지 않다.
“뉴스를 보는 것도 지겹다.”
한대건은 푸념하듯 말한 목소리 끝에 조소를 지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이다.
온통 팥죽단지처럼 끊게 만든 사건, 그 주인공 양석훈은 이제 이런 밤을 느낄 수 없는 거다.
죽은 자에겐 지나간 밤만 있는 거다.
‘나도 죽는 다면 그렇겠지.’
한대건 자신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바둑돌 하나 빼는 거, 그거지.’
그렇다, 자식들은 슬퍼하는 척 하겠지만 그뿐이다.
일선에서 물러난 왕회장, 그 존재는 허무하고 가볍다. 시간이 흐르며 잊힐 것이다.
서운하진 않다.
이 손으로 일으킨 기업, 자식들이 이어가면 그게 영원한 삶이다.
“피터윤과 동료들이 많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귀를 파고든 최길준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한대건은 돌아섰다.
“흐트러져 있다?”
“기다림에 짜증이 나는 모양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한대건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귀신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상황, 이제 와서 쫓아다닐 순 없다.
그럴 방법도 없다. 귀신의 단서를 잡아야 하는데 그놈은 신기루와 같다.
“피터윤을 봐야겠다.”
걸음을 옮기던 한대건은 멈춰 섰다. 진동으로 몸부림치는 폰을 응시했다. 발신번호는 흡협귀영감 고종환이다. 미간을 좁히고 폰을 귀에 댔다.
“회장님.”
-바쁜가?
“말씀하십시오.”
-내가 뭘 하나 건졌는데, 아무래도 귀신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한대건은 눈썹을 확 곤두세웠고 고종환은 이어 말했다.
-지금 쥐어짜는 중인데 확실히 그런 것 같아. 흥분해서 먼저 전화를 걸었지. 명확하게 결과가 나오면 바로 알려주겠네. 대기하고들 있으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통화는 끊어졌다. 한대건은 부릅뜬 눈으로 최길준을 봤다.
* * *
“끄으……”
짐승의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려내는 자, 도용조란 이름의 의사를 향해 김부장은 물음을 던졌다.
“가장 최근에 치료한 놈이 상계동에서였단 말이지?”
피투성이가 된 도용조는 부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간에 다 알려주고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만 싶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도 안다.
자신이 갔던 상계동, 그곳은 귀신이 있던 곳이다.
“그놈이 귀신이란 걸 알고 치료해준 거냐?”
도용조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뜻으로.
정말이다, 돈을 받고 간 거지 귀신인지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유튜버들이 떠들어서 안 거다. 그래서 두려움을 품고 조심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됐다.
“널 부른 놈, 조웅이란 놈하고 연락할 수 있지?”
김부장은 도용조의 얼굴에 폰을 들이밀었다. 도용조의 폰, 정말 특이하게 사람이름이 아니라 숫자로 번호를 저장해 놓았다, 이중에 어느 거냐다.
“너한테 연락해온 번호가 있잖아? 그렇지?”
도용조는 피로 가득한 입안의 침을 삼켰다. 자신을 개처럼 두들기던 건장한 남자와 저편에서 말없이 시선을 던지는 늙은이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잘못하면 죽어……!’
살 방법이 뭔지, 어떻게 해야 살지를 도용조는 사력을 다해 생각했다.
“이중에 있지?”
폰을 얼굴 앞에 들이댄 김부장은 눈빛으로 뒷말을 던졌다. 걸라고, 아니면 죽는다고.
“시, 십칠번입니다.”
김부장은 고종환회장을 한번 돌아본 뒤 17번으로 저장된 번호를 터치했다. 도용조의 귀에 폰을 대줬다. 신호가 여섯 번 건너간 후 통화가 됐다.
-의사선생, 어쩐 일이야?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조웅의 목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