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58화 (58/200)

황혼의 살인자. 58. 바람의 노래.

58. 바람의 노래.

낡은 suv에서 배낭을 꺼낸 장철은 폰으로 띄운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가평군 북면, 화악산이다.

북면사무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타고 계속 올라가면 정상을 넘어 강원도 화천, 삼일계곡이 된다.

‘화악계곡.’

현재 위치는 그 중간쯤이다. 도로가 오르막으로 시작하기 직전, 작은 다리를 건너가면 온누리그룹 한대건 회장이 웅크린 곳이 있다. 소형리조트개념으로 공사하다 부도가 났던 곳이라는, 숲에 가려 건물 머리만 보인다.

‘취재진은 거의 없고 유튜버들만.’

다리를 기점으로 포진해 있는 일단의 무리는 대부분이 유튜버들이다.

썩은 음식을 찾아 꼬인 하이에나, 아니 파리떼가 연상되는 건 저들의 행태 때문이다.

오로지 금전적 이익이 목적인 무리, 현 세태의 상징과 같다.

‘경찰도 거의 철수.’

처음엔 합수부와 가평경찰서에서 출동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합수부는 온누리의 요청으로 진즉 가버렸고 가평서 인원들은 시늉만으로 남았다.

귀신장철을 대비하는 게 아니라 유튜버와 취재진을 막는 역할이다.

“이 시간에 산행하면 새벽별 보기 좋지요.”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응하며 장철은 고갤 돌렸다.

주차비를 주고 차를 대기로 한 펜션주인이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육십이 넘은 게 확실한 세월의 주름은 민박집이라고 해야 맞을 집과 같이 진하고 선명하다.

“요 며칠 여기가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나아진 겁니다.”

뒷짐 진 펜션 주인은 건너편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쯧, 왜 하필 여기로 와 가지고 동네 시끄럽게 만드는지.”

온누리그룹, 한대건 회장에 대한 불만이다.

비수기라서 조용하기만 하던 동네가 때 아닌 몸살을 앓은 거다.

언론사 취재진과 유투버들이 들끓었다.

어제 오늘은 확연하게 달라지긴 했지만 예전처럼 되진 않은 거다.

“귀신인지 뭔지 하는 살인자 때문이라던데……”

찌푸린 미간으로 계곡 건너편 리조트쪽을 바라보는 주인은 제 생각을 말했다.

“그게 시작은 저 사람들 잘못이더군요. 귀신인가 하는 사람의 손녀를 차로 치어 죽인 거 아닙니까? 그것도 대낮에 마약에 취해서요? 그 아이가 다섯 살인가 그렇다던데, 그런 죄를 지었으니 천벌을 받는 겁니다.”

이런 소리하면 날 욕할진 몰라도, 라는 주인의 중얼거림은 작게 흘러나왔다.

“등산로 입구까지 가는 길은 아시죠? 도로 따라 올라가다 좌측편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건 가평 특산 잣막걸린데 정상에서 한잔 하시구랴.”

다시 친절한 미소로 막걸리 봉투를 내미는 주인에게 장철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산행 잘 하시고.”

돌아서는 주인은 다시 푸념처럼 중얼거린다.

“돈 있고 힘 있는 것들이 쥐고 흔드는 세상, 저런 것들도 당해봐야지.”

화악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는 오르막 도로를 응시하며 장철은 움직였다. 주인이 준 잣막걸리 봉투를 손에 쥐고 배낭을 등에 메고 걸음을 냈다.

‘지나온 길은 소법리.’

도로를 따라 올라가며 장철은 현재 위치와 주변 지형을 머리에 그렸다. 가평 시내를 지나 북면을 거쳐 온 소법리 바로 위가 지금 위치다. 목동유원지에서 갈라지는 길로 갔다면 명지산으로 향하는 명지계곡 길이다.

‘화악산에서 서쪽.’

명지산의 남쪽은 칼봉산, 명지산을 넘어가면 운악산이다. 이 일대는 온통 높고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 할 터다.

‘이 도로 위쪽, 정상까지 가기 전에 애기봉을 돌아내려간다.’

지도를 보면 등산로 입구로 진입해 천도교수련원을 북측으로 두고 우회해야 한다. 유턴을 하듯이 돌아 내려와야 리조트다. 그 길을 오늘 파악하고 익히는 거다. 지금 모습은 누가 봐도 봄밤산행을 하는 등산객이다.

‘막걸리는……’

주인의 호의를 받아 마실 수는 없다. 이렇게 들고 다닐 수도 없다. 막걸리 냄새가 지금도 은은하게 풍긴다. 개들이 아니라고 해도 맡을 거다.

‘미안하지만.’

장철은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봉투를 놨다. 쓰레기투기를 한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손도 씻어야 한다.

‘저기가 등산로 입구구나.’

흐린 조명이 존재를 보여주는 등산로 입구를 향해 장철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럴듯하게 지어놓은 펜션들을 지나 다다랐다.

등산로 위쪽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화악계곡물 지류에 손을 담가 깨끗하게 씻었다.

‘응?’

쪼그리고 앉아 손을 씻던 장철은 문득 지나는 바람에 고갤 들었다.

울창한 산을 더듬으며 다가온 밤바람, 피부를 자극하며 소름을 돋게 만든다.

들어.

깊은 곳의 울림에 반응하며 장철은 일어섰다.

몸을 치며 지나가는 바람, 그 울음을 듣기 위해 오감을 열었다.

바람의 노래, 그것을 들었다.

* * *

“무슨 용건인데?”

덤덤한 목소리로 조웅은 물었다.

뜻밖의 전화지만 크게 이상할건 없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 의사는 믿을 만한 자고 염려할 부분도 전혀 없다.

“내가 어딨는지 궁금해서 전화한건 아닐 테고, 아 그게 맞나?”

이젠 내가 누군지 대강 알 테니까, 치료해준 자가 누구인지 알았을 테니까 란 조웅의 목소리에 대답이 건너왔다. 억눌리고 경직된 목소리다.

-초, 총상이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으면, 음, 뒤탈이 생길 겁니다.

조웅은 미간을 좁혔다.

도용조라는 이름의 의사,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온 용건이 뭔지 잠작이 안 되는 것처럼, 목소리가 뭔가 이상하다.

‘뭐야 이거?’

태연한척 꾸미는 것 같은 목소리, 하지만 떨리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게다가 뒤탈이라는 말이 귀에 명확히 박힌다. 정말 전하고자 하는 의미처럼.

-걱정이 돼서 전화했습니다. 총상은 정말로 제대로 돌봐야 하거든요. 갑자기 폐업하고 이동하셔서 어째야 하나, 그냥 모른척해야 하나 하다가 아무래도 그건 아니다 싶어서요. 처리 방법만이라도 알려드려야죠.

“아 그래? 고마운 말이네.”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미쓰리의 시선을 곁에 두고 조웅은 태연히 말했다.

“다행히 아직 덧나거나 그런 건 없는데, 아무래도 계속 살펴보긴 해야겠지. 그래, 어떻게 해야 하나? 소독약 같은 거 말고 항생제 같은 게 있어야겠지? 그때 준 게 아직 있긴 한데 더 필요한 상황이면 곤란하긴 하지.”

-몇가지 약이 필요합니다만, 구하려면 어렵진 않으시겠지만 그럴 상황이 안 될 수도 있겠네요. 처방전이 있으면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죠.

“그렇지. 그런데 생각보다 친절하게 신경 써 주는군.”

-예 뭐, 몇 번 뒤탈이 생긴 경우가 있어서요. 곤란해지면 정말로 곤란하잖습니까. 이 짓도 직업인데 생계가 차단당하는 일이 생기면 죽는 거죠.

뒤탈, 곤란이란 말이 거듭된 느낌을 조웅은 확실히 인지했다.

‘죽는 거다.’

이어진 말이 주는 확실한 감을 조웅은 뜨겁게 삼켰다.

‘정말 뒤탈이 생겼구나. 곤란한 상황, 죽을 지도 모를.’

도용조란 이름의 의사, 잘나가다가 인생을 말아먹은 이 남자는 이렇게까지 할 자는 아니다.

말 그대로 뒷거리의 의사다.

돈 받고 처치해주면 그뿐, 이런 후속서비스는 없다.

그런데 전화를 했다.

그래야 해서다.

‘똑똑한 놈이라 아는 거야.’

어차피 자신은 역할이 끝나면 죽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이렇게 전화를 하게 한 놈들에게.’

그래서 절박한 가운데 선택을 했다.

조웅 자신에게 알리는 거다.

그 선택을 확실히 한다.

-아무래도 제가 상처를 직접 보는 게 좋긴 합니다만,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는 건 어려울 걸로 생각됩니다. 아, 영상으로 환자 상태를 봐도 좋겠네요. 그렇긴 한데 처방전을 드리자면 역시 직접 만나야 하겠군요. 그건 뭐 편하신 장소를 정해 주시면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그게 좋겠죠?

조웅은 힘이 들어간 어금니 사이로 침을 넘겼다.

* * *

등산로를 벗어나자 산은 험악하게 걸음을 붙잡는다. 하지만 장철은 그걸 무시하듯 빠르게 이동했다. 겨우내 쌓였던 낙엽들 위를 건너 뛰어 바위와 돌만을 밟았다. 지그재그가 되는 움직임은 그래도 아래를 향해 갔다.

‘들려.’

달리는 것과 진배없는 움직임 속에서 장철은 들었다.

바람의 노랫소리다.

황홀한 음악 같고 음울한 장송곡과도 같은, 그 소리가 전신에 공명한다.

* * *

“예, 예예, 그러시죠.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김부장이 폰을 대준 의사놈, 제법 태연하게 해내고 있다. 안 그러면 죽을 거라는 걸 알기에 사력을 다한 거다. 하지만 결국 죽여야 할 놈이다.

‘관계된 놈들은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거다.’

결심을 거듭 맹세한 고종환은 김부장이 돌아서 던지는 눈빛을 받았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는 눈, 들고 있는 폰에 이제 문자가 들어올 터다.

“확신하긴 이릅니다. 수작을 부린 걸 수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 확인의 방법이 의사놈인 걸 고종환은 안다.

그러니 저놈을 아직은 죽일 때가 아니다.

귀신의 친구 조웅이란 놈이 문자로 알려올 주소지로 데려가야 한다.

조웅이란 놈이 안심할 때 싸그리 잡아 죽이는 거다.

“준비시켜라.”

지시하고 고종환은 돌아섰다.

김부장은 고개 숙이고 정대리에게 눈짓했다.

의사놈을 준비시키라는 명령, 저 몰골로 놈들에게 갈순 없는 거다.

“일어서.”

정대리에게 잡혀 일어난 도용조는 지하실 한쪽으로 끌려갔다.

영화에서나 보던 사각의 욕조, 타일로 표면이 이뤄진 그 안에 들어갔다.

곧바로 찬물이 날아왔다.

정대리란 놈이 쏘는 호수의 물, 맞으면서 생각했다.

‘우선은 됐어……!’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건 막았다. 조웅에게 갈 때까지는 산 거다. 그자의 이름이 조웅이란 것도 이제 알았다. 그런데 거기서부터가 문제다.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조웅이 알아야 한다.

지금 이렇게 잡혀 있고 죽이러 가기 위해서란 걸 알아야 한다.

상대는 귀신이다.

그 존재가 만든 일들을 생각하면 가능할 수 있다.

아니 불가능해도 살 가능성은 그뿐이다.

이건 기호지세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죽은 거지만……!’

정대리가 쏴대는 찬물 속에서 도용조는 소릴 들었다. 김부장이란 자가 쥔 폰에 도착한 메시지 알림음이다.

* * *

산을 누비는 호랑이처럼 움직이던 장철은 멈춰 섰다.

진동으로 해놓은 폰이 몸부림쳐서다.

조웅이 전화를 해 왔다.

무슨 일인지 예감이 안 좋다.

“말해.”

통화를 하자마자 던진 명료한 장철의 목소리에 조웅도 분명하게 대답했다.

-꼬리가 잡혔다.

꿈틀, 눈썹을 뒤튼 장철은 이어지는 조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는 가운데도 산을 치고 지나가는 밤바람은 끊이질 않았다. 바람의 노랫소리가.

* * *

-한회장, 드디어 잡은 것 같다.

고종환의 득의한 목소리를 들으며 한대건은 침을 삼켰다.

-신명시야. 귀신 그놈은 대담하게도 제가 살던 동네로 기어들어가 숨어 있었어.

이어지는 고종환의 이야기를 한대건은 숨죽여 들었다. 고동치는 심장과 끓어오르는 피의 요동을 억지로 다스리며, 이제 해야 할 일들 들었다.

-의사놈이 얼굴을 디밀고 조웅이란 놈과 접촉할 거야.

다른 수작을 부렸거나 숨어서 지켜보다 도망친다면 헛일이기 때문.

-그것들이 안심하고 얼굴을 보일 때 한회장의 용병들이 움직이면 될 거야.

뜨거운 숨을 토하며 고종환과의 통화를 마친 한대건은 최길준을 돌아봤다. 역시 숨죽인 채로 긴장해 있던 최길준, 참지 못하고 물음을 낸다.

“김부장과 협조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한대건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귀신을 치료한 의사놈을 데리고 올 거다.”

말해놓고 한대건은 새삼스러움을 삼켰다.

귀신이 부상을 당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분명 김부장이다.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할 방법도 없는, 아무도 생각 못한 그 부분에 착안했다.

결국은 의사 놈을 잡은 거다.

후 하고 숨을 내쉰 한대건은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이 움직이는 거다. 의사놈이 귀신측과 접촉하는 순간에 치는 거다.”

한대건처럼 침을 삼킨 최길준은 바로 고개 숙이고 돌아섰다.

“피터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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