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59. 덫의 덫.
59. 덫의 덫.
폰의 전원을 완전히 끝 장철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바람의 노래만을 들었다.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수초처럼 마음속의 너울짐에 공명하며 어둠을 응시했다.
깊고 울창한 수림이 펼쳐진 가평의 산자락 아래다.
‘온누리.’
그들이 있는 곳이 이제 눈에 보인다.
건물들이 자리 잡은 계곡 안쪽 산자락의 공간.
넒은 마당을 두고 세 동의 건물이 흐린 조명을 내고 있다.
저곳으로 접근할 수 없게, 접근하면 알 수 있게 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적외선 감지장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 산자락에 설치된 그것들을 장철은 인지했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다.
바람이 부딪치며 지나가는 울림의 노래가 알린다.
‘앉아서 보고 있겠지.’
리조트 쪽으로 접근하는, 이상상황에 대한 변화를 모니터 하고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물체들은 붉은 점으로 확인될 거고 적외선영상은 적을 확인해 줄 터다. 그게 무료하고 짜증이 날 시간을 노려 공격하는 거였다.
‘그럴 시간이 없어.’
이제 그렇게 됐다.
조웅의 위치가 발각됐다.
저기 어떤 놈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온누리에서 준비해 놓은 흉기들이 있다는 걸 예감하고 있다.
‘갑자기 얻어걸린 거라면.’
귀신 자신의 종적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을 거란 걸 알지만 이건 느닷없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추진한 게 아니라 행운으로 짐작된다.
‘의사.’
그자가 놈들 손에 걸렸다.
장철 자신을 치료한 자, 그로부터 일이 생길 수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 염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조웅을 믿었다.
상계동을 바로 벗어났고 종적은 끊어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혹시 몰라서.’
장철 자신이 다시 부상을 입게 되면 같은 처치가 필요한 거다.
그래서 폰을 버리지 않았다고 조웅은 말했다.
의사의 번호만 알면 다른 번호로 연락해도 됐을 텐데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일어나 생긴 일이다.
‘대응.’
그게 답이다.
현재 상황에 대한 적극적 대응만이 살길이고 해야 할 일이다.
그걸 이제 할 것이다.
조웅은 조웅대로 장철 자신은 자신대로다.
‘너희가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기 전에.’
장철은 파랗게 눈동자를 빛내며 움직였다.
배낭을 내리고 무기를 꺼냈다.
카바나이프와 카람빗을 벨트에 착용했다.
파이팅스틱은 허리 뒤로 찔러 넣었다.
총기로 무장했을 자들에게 턱도 없을 무장, 허릴 세웠다.
‘간다.’
바람의 노래가 어루만지는 산의 어둠 속으로 장철은 귀신처럼 움직였다.
* * *
“휴, 휴대폰 위치추적 같은 거 하지 않을까요?”
두려움에 물든 미쓰리의 눈을 응시한 조웅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겠지. 상대는 그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자들이니까.”
“그, 그럼 휴대폰을 여기 두고 숨어야 하잖아요?”
도망이란 말 대신 숨는다고 표현한 이영숙을 향해 조웅은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며 현재 상황을, 그 발생의 전후를 더듬었다. 도용조가 잡힌 결과, 적들은 급하게 행동하고 있다. 확신하지 못했던 결과인 것이다.
‘귀신이 부상당해서 의사의 치료가 필요했을 거란 가능성.’
그것에 착안하고 바닥을 뒤진 끝에 도용조를 낚은 거다.
확신은 없는 가능성의 영역이었을 거다.
그런데 됐다. 다급하게 위력을 행사해서 전화를 하게 했다.
위치추적은 이제 부터다. 어떠하든 놈들은 성과를 냈다.
‘역시라고 해야겠지.’
온누리그룹과 새경개발이다. 이런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터다.
나름 안심했던 건 귀신이 현장에 별다른 흔적은 안 남겼기 때문이다.
핏방울 몇 개야 남았을 테지만 그건 문제가 안 된다, 장철의 신원은 다 안다.
‘백운호수에 이어 내 업장과 윤진건설까지……’
귀신이 만든 연이은 결과를 보면 부상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없다.
다친 자가 전문살인자들과 싸우고 죽인 거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 누군가 그 부분에, 희박한 가능성에 패를 걸었다. 그게 들어맞았다.
‘장자방 같은 놈이 있긴 하겠지.’
바보들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라는 조웅의 중얼거림 뒤로 이영숙이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려움으로 흔들리지만 경험으로 인해 단단한 눈동자, 이영숙의 눈을 조웅은 응시했다. 말없는 그 눈길에 이영숙이 다시 말하려 하자 대답했다.
“찾아오는 손님을 환영해 줘야지.”
“네?”
대번에 눈을 크게 만드는 이영숙, 조웅은 흐릿한 미소로 목소릴 이어냈다.
“걱정 할 거 없어. 그동안 내가 여기서 놀고 먹은 게 아니야. 최악을 준비하는 건 몸에 배 있지. 놈들이 여길 찾아오면 화끈하게 해줄 거야.”
화끈하다는 말에 든 의미를 이영숙은 재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웅이 하던 일들이 떠오른다.
세제와 화공약품 같은 걸 섞어 배합하던 모습, 용기 안에 쇠못을 들이붓던 광경.
그런 게 준비였던 것 같다.
‘이 건물 전체에……!’
지하실부터 옥상까지 조웅이 만든 이상한 물건들이 있다.
“여긴 아까워하지 않아도 돼. 임대한 거니까.”
이어 나온 조웅의 말에 이영숙은 다시 놀람을 드러냈다.
“임대요?”
“음, 사려고 하다가 한 일 년 살아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지. 건물주도 별수 없이 받아들였고. 보다시피 여긴 신도시 중심에서 비껴나 있잖아?”
그래서 비어있던 거다. 상가가 활성화된 신용지구 중심과는 천지차이다. 이쪽으론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다른 길이 사방에 많으니까.
“시간은 충분해. 손님 맞을 준비야 원래 해 놨고, 우리만 움직이면 되는 거지.”
조웅이 소파에서 일어서는 걸 보며 이영숙도 황망히 일어섰다.
* * *
문을 열고 들어서는 최길준을 보고 피터윤은 직감했다.
‘상황발생.’
차분하고 냉정한 저 자의 눈동자가 말하고 있다.
목표를 포착했다고.
그런데 그게 함정을 파고 기다린 여기가 아닌 거다.
계획은 엇나가 버렸다.
“귀신의 위치를 찾은 것 같소.”
차갑지만 뜨거운 숨을 품은 최길준의 말에 피터윤은 바로 일어섰다.
“어딥니까?”
최길준이 이렇게 온 이유, 자신팀이 움직여야 하는 거다.
처음부터 한국에 들어온 목적이 그거다.
준비는 항상 돼 있었다. 움직이면 되는 거다.
“신명시요, 자세한건 이동하면서 말합시다.”
긴장과 흥분이 팽배한 최길준의 눈에서 돌아선 피터윤은 동료들에게 말했다.
“작전이다.”
모두의 눈빛이 일변했다.
무료한 짜증 속에 있던 눈동자들, 맹수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고든 와일리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mp5기관단총과 P7권총을 착용하고 방탄조끼와 전술조끼를 착용한 모습, 경찰특공대다.
“이제야 뭔가 하긴 하는 모양이군.”
곤잘레스의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피터 윤은 무시했다. 나머지 동료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착용하는 것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경보가 울린다.
‘응?’
붉은 점이 점멸하는 장비로 피터 윤은 바람처럼 돌아섰다. 리조트 주변 산자락에 설치해 놓은 적외선 감지장비, 그것에 뭔가 걸린 반응이다.
“나이트비전!”
피터윤이 외치자 고든 와일리가 바로 장비를 조종했다.
적외선카메라가 움직여 경보가 울린 곳을 잡았다.
녹색화면에 열상의 물체가 움직인다.
“왔다!”
피터윤의 목소리가 외침처럼 울린 가운데 최길준은 당황으로 눈을 치떴다.
* * *
“귀신이 온 것 같다고?”
의자를 넘어뜨리며 한대건은 벌떡 일어섰다.
응축해 있는 최길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지금 상황이 뭔지를 더듬었다.
세경 고회장이 귀신의 꼬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려던 중이다.
그런데 귀신이 온 거다.
긴장을 냉정으로 누른 최길준은 한대건을 살피며 물음을 냈다.
“고회장 측에 전화를 넣을까요?”
한대건은 즉답을 못했다. 석상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서 생각하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 영감이 무슨 꼬리를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하라고 해.”
최길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대건은 남은 말을 뱉었다.
“우린 여기서 귀신을 잡는다.”
최길준은 한대건이 내다보던 창밖을 응시했다.
이미 움직인 피터 윤과 동료들이 저 밖에 있다.
귀신을 잡기 위해 어둠속을 누비는 맹수들이다.
* * *
“이제 10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조수석의 김부장을 힐긋 응시한 고종환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회장 측에 연락해서 도착상황을 확인하라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어련히 잘 알아서 하려고.’
고종환 자신만큼이나 귀신을 잡겠다는 열망으로 숨 쉬는 존재가 한 대건이다.
미국에서 들여온 용병들을 데리고 달려오고 있을 터다.
그런데 그동안 가평에서 한 일이 헛일이 됐다.
귀신의 꼬릴 잡은 건 자신이다.
“쯧.”
어떤 의미인지 명확치 않은, 내 뱉는 숨과 같이 혀를 찬 고종환은 물었다.
“이상은 없는 거겠지?”
조수석의 김부장은 뒤돌아 대답했다.
“폰의 위치가 그대로입니다.”
고종환도 알고 있다.
도용조란 의사 놈이 조금 전에 통화해서 다시 확인했다.
차를 멈추고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
다른 차에 탄 놈의 귀에 김부장이 다시 폰을 대줬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한다는 내용, 이상은 없다.
‘그런데 자꾸만 찜찜한 예감이 든단 말이야.’
사십년 전 여당 정치인에게 줄을 대려고 했을 때처럼이다.
요정에서 비싼 술과 음식을 처먹이고 여자를 둘이나 붙여줬다.
그렇게 골아떨어지게 만들어 놓고 몰래 방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게 발각됐다.
여우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그놈은 역시 여우였다.
고종환 자신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역으로 함정을 팠던 거다.
덫의 덫이었다.
그날 김부장이 곁에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숨 쉬고 있지 못할 거다.
‘김부장.’
그때는 이십대의 청년이었다. 퉁퉁한 저 몸도 그때는 날렵했다.
‘고맙다.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
함께 해온 날들을 따지는 게 무용한 시간이고 사이다. 새삼 김부장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이 가득하다. 오늘 밤 이 일도 김부장이 해냈다.
‘다 끝내고 나면…… 우리도 쉬자꾸나.’
마음속의 그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부장은 달리는 차의 전방만을 주시했다.
* * *
소매를 들춰 손목에 장착한 단말기를 확인한 피터 윤은 스위치를 올렸다.
리조트 건물의 모든 조명이 켜졌다. 삽시간에 대낮처럼 환해졌다. 경비시스템을 설치한 산자락도 마찬가지다. 나무에 설치한 조명들이 환하다.
‘귀신, 너는 이제 포위됐다.’
단말기 안의 붉은 점, 적외선에 걸려 명멸하는 위치를 확인하며 피터윤은 움직였다.
동료들도 자신처럼 귀신을 향해 좁혀가고 있다.
이제 곧 놈을 볼 것이고 잡을 것이다.
한회장이 정말로 껍질을 벗길지 궁금하다.
‘거기까진 내 알바 아니지.’
움켜쥔 MP5 총구를 앞으로 내민 피터 윤은 산자락을 타고 나갔다.
* * *
환하게 불이 밝혀진 창밖을 보며 한대건은 뜨거운 침을 삼켰다. 이제 리조트 주변 산자락, 숲에서 총을 발사해도 뭔지 분간하기 어려울 터다.
‘그래도 보고 있는 것들이 있으면 저게 뭔가 하겠지만 둘러댈 말이야 많지.’
계곡 건너 유튜버들이 남아 있다.
그것들이 눈치 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귀신을 잡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 일을 하자고 여기 이러고 있던 거다.
‘흡혈귀 영감, 당신은 무슨 헛발질을 하고 있는 건가?’
부르르 떨리는 어깨, 오한인지 전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느낌 속에서 한대건은 돌아섰다. 침대에 생명유지장치를 하고 누운 아들에게 다가갔다.
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들어오지 않던 방, 이 밤엔 들어왔다.
“진수야, 이제 그놈 껍질을 벗길 거다.”
속삭인 한대건의 목소리는 아들 한진수의 침묵을 타고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