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60화 (60/200)

황혼의 살인자. 60. 닭장 속의 여우 1.

60. 닭장 속의 여우 1.

암시경을 통해 보이는 초록빛이 정말 싫다.

늘 경험하는 것인데 왜 그런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아마도 콜롬비아의 정글에서 겪은 일 때문일 거다.

아니 그 일이 맞다.

초록의 정글 속에 흩어져 날린 붉은 피……

“후.”

움직임을 멈춘 곤잘레스는 깊은 숨을 거듭해서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렇게 기억을 밀어냈다.

하지만 암시경의 초록시야가 그대로인 것처럼 기억도 그대로다.

오히려 더 선명해 진다.

참혹하게 살해당한 동료들 모습이.

‘오토니엘, 개새끼.’

악마 같은 마약왕의 이름을 씹어 삼키며 곤잘레스는 진저리를 쳤다.

중남미 최대마약조직 ‘걸프클랜’의 보스, 아니 왕이라고 해야 맞다.

그놈을 잡는 특수작전에 투입됐었다. 그런데 정보가 새어나가 모조리 죽었다.

‘결국 잡긴 잡았지만……!’

오토니엘은 지난 해 결국 잡혔다.

미국정부가 5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던 놈, 그렇지만 잡지 못하던 놈을 끝내 잡은 거다.

놈은 미국으로 송환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 놈에게 재판이 필요하다는 게 코미디다.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지 알 수 없는 놈.’

법의 적용이 필요한 놈이 아니다. 그런 놈은 그냥 죽여야 한다.

‘그냥 죽이면 안 되고 처절한 고통을 안겨주고 죽여야 해.’

시큰거리게 이를 문 곤잘레스는 몸의 신호를 느꼈다.

그때 작전에서 입은 총상부위가 후끈거린다. 치밀어 오른 분노만큼이나 뜨거운 반응이다.

그런데 새삼 고향 멕시코가 떠오른다.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지옥이다.

‘후아레스에선 이 밤에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겠지. 내가 알고 날 아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을 떠나서…… 난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생경한 느낌과 생각 속에서 곤잘레스는 자신을 돌아봤다.

고향 후아레스를 탈출하기 위해 선택했던 마약조직에서의 청년시절, 겁 없고 생각 없이 사람을 죽이던 시간, 그게 잘못된 걸 깨닫고 들어간 미국용병조직.

‘나도 다를 게 없는 걸까……’

오토니엘 같은 놈들, 콜롬비아와 멕시코를 지배하는 마약조직들, 그 조직원들, 사람을 개처럼 죽이고 돈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사탄새끼들.

한 때는 그 속에 있었고 후에는 그것들을 잡는 일을 했지만 뭐가 다를까.

‘지금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날아와서 이렇게.’

허탈한 숨을 내쉰 곤잘레스는 포켓 속 힙플라스크를 꺼냈다.

메스카를 넣어둔 찰랑거림이 느껴진다. 마개를 열고 크게 한 모금 마셨다.

목구멍을 훑고 내려가는 짜릿함이 정신을 깨워준다.

이래선 안 되지만 좋다.

‘피터윤, 네가 하는 소린 옳지만 나도 버틸게 필요하거든.’

리더 피터윤과의 충돌은 진심이 아니다. 곤잘레스 자신의 상태 때문이다.

갈등과 회의로 물든 마음이 일으키는 짜증과 분노로 인해서다.

이런 상태에 있다는 것이, 감정의 흔들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화나는 거다.

‘그만 해야 해.’

결론은 그것임을 안다.

이젠 손에서 총을 놓아야 한다.

조금만 더, 한번만 더,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정말로 확실하게 끝내지 않으면 끝날 거다.

끝, 그것은 곤잘레스 자신의 끝이다.

초록의 이 시야도 사라진다.

“후.”

다시 크게 숨을 들이내쉰 곤잘레스는 메스카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용설란 마게이 수액을 추출해 증류해 만든 술, 언제나 그렇듯 짜릿하다.

‘좋아.’

곤잘레스는 주변을 살피면서 힙플라스크를 넣었다. 모든 사념을 밀어냈다. 정말 마지막이 될 일에 집중했다. 이번 일만 하고 돌아가는 거다.

-긴장해라, 타깃이 사라졌다.

피터윤의 목소리가 리시버를 통해 울린다. 그 내용을 씹으며 곤잘레스는 미간을 깊게 좁혔다.

눈에 힘을 주고 암시경으로 구분되는 주변을 확인했다.

소매 속 단말기 상의 붉은 점은 그대로인데 이게 무슨 소린가.

‘이건 그럼 뭐야?’

피터윤이 확인한 붉은 점의 위치, 그게 뭔지 답이 들린다.

-나뭇가지를 기대 놨다.

곤잘레스는 황당한 숨을 삼켰다.

피터윤의 말인즉슨 귀신이란 놈이 적외선 감지장치를 인지하고 조작했다는 거다. 감지기의 보이지 않는 선이 지나는 곳에 나뭇가지를 놓았단 거다.

감지기 위치를 안다는 소리다.

‘그걸 다?’

산자락에 그물처럼 설치해 놓은 거다.

그 때문에 산짐승들로 인한 감지가 계속 됐다.

사람 허벅지 높이로 감지되도록 설치했기 때문에 고라니나 멧돼지등이었다.

적외선 카메라가 즉각 위치를 촬영해 확인해 왔다.

‘카메라에도 안 잡힌다?’

피터윤이 말한 게 지금 이 상황이다.

감지기를 모르고 이동하는 것처럼 자신을 드러냈던 놈은 마지막 위치에서 사라졌다.

나뭇가지를 놓고서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알고 혼란을 조성한 거다.

‘대체 뭔데?’

귀신이란 상대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에 곤잘레스는 긴장을 삼켰다.

그자가 했다는 사건들에 대해 알고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들이 더 강하고 스페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누구든 주변에 타깃이 보이는 자가 없나?

피터윤의 침착하지만 긴장 가득한 목소리에 반응하며 곤잘레스는 주위를 돌아봤다. 나이트비전으로 구분되는 초록시야에 붉은 열상은 없다.

작은 산짐승들의 자취만 보인다. 크고 확실한 인간의 형상은 안 보인다.

‘어디에 있는 거야? 설마 땅을 파고 들어간 거야?’

황당한 긴장을 삼키며 곤잘레스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있어야 할 존재가 안 잡힌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체온을 가진 인간이……’

그 순간 곤잘레스는 예감이 곤두섰다.

머리 위에서 엄습하는 감각, 오감을 넘은 육감이다.

솜털이 확 일어서는 순간이다.

본능으로 반응하며 돌아섰다.

총구를 올려 겨누며 봤다. 귀신처럼 낙하하는 검은 그림자를.

* * *

차문을 열고 내린 고종환은 상가 건물을 시야에 넣었다.

신도시 중심에서 떨어진 위치다. 외진 도로변의 단출한 3층 건물이다.

주변의 상가건물들은 비어 있는 게 확실하다.

저 건물 하나만 환히 불을 켜놓고 있다.

‘호수공원과 체육공원이 인접한 곳이라 활성화만 되면……’

떠오르는 생각이 느닷없는 것이라 고종환은 실소를 흘렸다.

지금 여기 온 이유와는 완전히 동 떨어진 생각이다.

돈이 되는 걸 구분하는 본능으로 인해서지만 지금은 아니다.

귀신과 조웅이란 놈이 저기 있는 것이다.

‘드디어 네놈들을 잡는 구나.’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고종환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밤바람에 열기를 식히며 냉정을 잡았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중요한 때인 거다.

“한회장은 언제 도착한다는 거야?”

뒤돌아보지 않고 던진 고종환의 물음에 김부장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안 그래도 상황을 체크하려 최길준에게 전화를 하던 중, 뜻밖의 상황이다.

“회장님, 일이 꼬인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하는 얼굴의 고종환에게 김부장은 현황을 보고했다.

“가평에 귀신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뭐?”

“지금 귀신을 잡기 위해 미국용병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그렇다고 왜 안 알려주고?”

“확실한 상황을 확인하고 연락하려고 했답니다. 이쪽은 변동이 없을 테니까요.”

“허, 이것들 보게나? 확실한 상황 확인? 거기 귀신이 나타난 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때 오겠다? 우리가, 내가 여기서 기다리는 건 상관없다?”

황당한 분노를 드러냈던 고종환은 현실을 놓치지 않았다.

‘귀신이 가평에 나타나?

온누리가 그렇다면 거의 확실한 거다.

그렇다면 지금 저 곳엔 귀신이 없는 거다.

그럼 조웅이란 놈은 왜 의사놈을 오라고 했나?

환자인 귀신이 없어도 처방전을 받기만 하면 되니까?

그게 현상황에선 말이 된다.

‘그래, 귀신이 있고 없고까지 의사놈에게 말할 필요 없지.’

통화한대로 처방전만 받으면 되는 거다.

그런데 이 흐름 자체가 뭔가 삐걱거린다.

귀신은 부상자다, 그런데 가평엘 갔다. 한회장 측을 치기 위해서다.

그럼 부상이 아닌 건가? 게다가 조웅이란 놈의 대응은 뭔가?

‘굳이 이곳으로 의사놈을 오라고 할 필요는 없어.’

은거지를 알리는 꼴이다. 물론 여기서 또 이동할 생각이라면 다르지만, 이곳으로 의사를 부를게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게 안전하다.

‘물론 다른 생각, 현재의 환경 조건으로 인해서 이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판단하고 왔지만, 뭐가 됐든 꼬리를 잡은 이상 확인해야 했기에 온 거지만, 지금 이 순간 드는 예감은 계속 찜찜했던 느낌의 자락이다.

‘만일……’

미간에 내천자를 진하게 그리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고종환은 결정했다.

“우린 우리대로 한다.”

김부장은 지시를 알아듣고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돌아서 정대리에게 손짓했다. 정대리는 승합차에 타고 온 직원들에게 지시, 그렇게 움직였다.

도로 건너편 아래쪽으로 보이는 3층 건물을 바라보며 고종환은 어금니를 물었다.

* * *

산과 같은 곳에서 구난 시에 사용하는 은박담요다. 아주 얇아서 접은 크기가 손바닥만 한, 그걸 펼쳐 걸치고 나무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눈을 감고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지나는 바람과 공명하며 체온을 낮춰갔다.

‘하나.’

드디어 한 놈이 다가왔다.

나무 아래서 술을 마신다.

새카만 특수전 복, 경찰특공대들이 입는 복장 같다.

암시경을 착용했고 기관단총을 들었다.

‘너부터다.’

마음속의 숫자가 칠십을 넘어 갔을 때 장철은 움직였다.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놈이 돌아선다. 죽고 죽이는 전장을 누빈 감각인 것 같다.

놈이 돌리는 총구를 발로 밀고 무릎을 박았다.

총탄이 옆으로 나간다.

드르르륵, 소음기 장착으로 둔탁한 총격음이 퍼지는 순간 장철은 수도를 내리쳤다.

무릎으로 가슴을 찍은 놈의 머리, 암시경 달린 헬멧이다.

콱, 하고 헬멧이 파괴되는 가운데 쓰러진 놈은 바로 옆으로 굴러갔다.

“크흑.”

신음을 뱉으면서도 권총을 잡아 뽑는 놈, 부서진 헬멧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남미 쪽이다. 이 어둠 속에서도 장철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봤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람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깊은 곳의 선물이다.

퍽.

총구화염이 터지는 순간 장철은 몸을 옆으로 틀었다.

화끈한 총탄의 궤적이 간발의 차이로 지나가는 걸 느꼈다.

형용하기 힘든 전율의 감각이다.

‘바람이 알려주는 길.’

두 번째 총탄이 날아오는 순간 장철은 움직였다.

고개를 틀어 왼쪽 귀 옆으로 총탄을 흘려보내고, 눈을 부릅뜨는 남미놈에게 이기각을 차 넣었다.

위로 도약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며 터트린 장철의 발.

발끝이 곤잘레스의 턱을 파고들었다.

세 번째 총탄은 허공에 뜬 장철의 발아래로 지나갔고, 머리가 들린 곤잘레스는 나무에 부딪쳐 늘어졌다.

“끄……”

부들거리는 곤잘레스, 턱 아래가 뚫렸다. 장철의 발이 들어갔다 나온 결과다.

“하나.”

숫자를 센 장철은 은박블랭크를 던지고 다시 움직였다.

* * *

3층 상가 건물을 향해 접근한 정대리는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자신처럼 소음기를 낀 권총으로 무장한 직원들은 건물을 완전히 포위했다. 외부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하고서다. 그 상태에서 의사놈이 건물 앞에 섰다.

‘전화 해.’

정대리의 손짓을 본 도용조, 부어오른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어 왔나? 문 열려 있으니까 들어와.

“아예, 그럼.”

조웅의 친근한 목소리를 확인한 도용조는 폰을 내리고 건물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정대리가 움직였다. 다른 직원들과 같이 맹렬히 달렸다.

유리현관문을 밀치고 들어간 정대리는 계단을 박차고 올라갔다.

불이 켜진 3층을 향해서다. 그런데 먼저 올라가고 있어야 할 도용조가 없다.

의문을 곱씹을 사이 없이 정대리는 3층에 올랐다.

열려 있는 주인세대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멈춰 섰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서다.

‘이거……’

거실을 구둣발로 가로지른 정대리는 안방을 거칠게 열어 확인했다, 연이서 작은 방들도 열어 봤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 순간 환영인사가 왔다.

쾅, 엄청난 충격이 덮쳐왔다.

주방에서 터져 나온 강력한 충격.

바람에 휘말린 낙엽처럼 정대리는 날아갔다. 거실창 앞에 떨어져서 계속 들었다.

쾅, 쾅, 쾅, 연이은 폭음이 건물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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