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61. 닭장 속의 여우 2.
61. 닭장 속의 여우 2.
소음기를 통해 나간 총탄의 울음과 섬광을 향해 피터윤은 맹렬하게 달려갔다. 몸을 치는 잡목들을 거칠게 헤치며 산비탈을 전진하다 멈춰 섰다.
‘곤잘레스!’
nut pine(잣나무) 앞에 쓰러져 있는 곤잘레스, 목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암시경을 통해 보이는 바디는 아직 붉은 색이지만 식어가고 있다.
“이……!”
분노를 벗겨내듯 피터윤은 나이트고글을 벗었다. 동료들에게 알렸다.
“곤잘레스 다운.”
침묵의 숨소리로 대답하는 동료들, 그들에게 피터윤은 경고했다.
“나이트고글이 소용없는 상황인 걸로 판단된다. 긴밀히 통신유지하며 움직인다.”
짧은 동료들의 대답을 들으며 피터 윤은 곤잘레스의 죽음을 다시 살폈다.
mp5를 발사했다. 그런데 타깃이 아닌 나무들에게다.
그건 총을 놓친 상황, 그 후에 권총을 뽑아 발사했다.
두발의 총성을 정확하게 들었다.
‘근접거리에서……’
적은 곤잘레스의 총격을 맞았을 확률이 높다.
권총사격엔 따를 자가 없는 명사수이니 거의 백프로다.
그런데도 곤잘레스를 저렇게 한건 방탄조끼를 착용했다는 이야기다.
이 상황과 결과는 그렇게밖엔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방탄조끼를 착용했다고 해도 총탄이 주는 물리력은 무시할 수 없는 건데? 그대로 곤잘레스는 공격했다? 뭘로 턱을 뚫어버린 건데?’
놀랍고 황당하다.
상대는 이런 자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귀신이란 이름부터가 마뜩치 않았었는데 정말로 알겠다.
이 사내는 진짜 귀신인 거다.
‘이건……’
늘어진 곤잘레스의 형상을 피터윤은 자세히 살폈다.
암시경이 달린 헬멧은 뭔가의 충격을 받아 부서졌다. 귀신의 공격으로 인해서란 건 당연하다.
그것만으로도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었을 텐데 곤잘레스는 싸웠다.
‘두발의 총성, 그게 마지막.’
귀신을 향해 권총을 두발 쏘고 곤잘레스는 당했다.
귀신은 뭔가 강력한 가격으로 곤잘레스의 턱을 뚫었다.
그게 뭔지 알 것 같다.
옆으로 이어진 발자국이 있다.
피 묻은 족적, 그러나 몇 개 뿐, 숲으로 사라졌다.
‘발.’
뜨거운 숨을 삼긴 피터윤은 발자국이 이동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다시 암시경을 썼지만 역시 보이는 건 없다.
황당한 긴장이 더욱 팽배한다.
귀신은 적외선 열상장치를 피하는 준비를 했거나 정말 귀신이거나다.
‘네가 뭐든 오늘 여기서 죽는다. 아니 죽인다.’
이 악문 숨을 뿜어낸 피터윤은 어둠의 숲을 헤치고 나갔다.
* * *
현관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폰이 울어댔다.
계단을 올라가다 폰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위층으로 꺾어지는 계단참 아래 쪽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긴장으로 숨을 참고 있는데 폭음이 연이어 터진다.
‘헉!’
두려움과 놀람 속에서 도용조는 입을 틀어막았다.
건물을 흔드는 폭음, 이것은 조웅이 준비한 것이다.
도용조 자신이 칼을 달고 온다는 것을 안 거다.
첫 통화 때 언급한 경고가 역시 헛되지 않았다.
그런데 무섭다.
‘어떻게 될지……!’
자신을 겁박한 무리는 승합차 두 대로 여기에 왔다.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누구이냐가 문제다.
귀신장철을 잡으려는 자들.
유튜버들이 떠들어대는 온누리 그룹과 세경개발이다.
‘정말로 귀신을 잡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유튜버들의 자극적인 음모론을 진실로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아니 공적인 뉴스보도 보다도 그걸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이지만, 온라인상의 이야기처럼 저들은 진짜 귀신을 잡아 죽으려 한다.
‘나하곤 상관없던 일이……’
도용조 자신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상계동에서 총상환자를 치료하고 휘말렸다. 사건 중심에 확실하게 발을 디딘 거다. 환자가 귀신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 하지 못했다. 암흑가의 일로만 여겼다.
‘귀신의 부상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없었어.’
뉴스에도 온라인상에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귀신사건 자체를 부정했기에 더욱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그것에 착안하고 도용조 자신을 특정했다.
과연 온누리와 세경이라고 할 만 하다.
“헛!”
몸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폭음의 진동에 도용조는 외마디 소릴 냈다, 바로 입을 막고 경직 속에서 숨을 멈췄다. 하지만 쪽문을 여는 자는 없다.
* * *
눈을 부릅뜬 고종환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김부장의 지시로 움직인 직원들이 들어간 건물, 저곳에서 터지는 폭발로 인한 소리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다.
완성직전에 있던 도자기가 깨지는 소리다.
‘덫이었구나……!’
부들거림이 일어나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종환은 휘청거렸다. 평소 같으면 김부장이 곁에 있다가 부축했을 텐데 그는 지금 건물로 달려갔다. 그 대신 운전직원이 바로 다가와 부축한다. 그 손을 움켜잡았다.
‘당했어.’
귀신의 친구 조웅이란 놈은 처음부터 눈치 챈 거다.
그래서 도용조를 이곳으로 오게 했다.
내도록 찜찜하던 예감의 결과가 이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왜 실수를 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
‘한회장 너는……’
귀신을 잡으려 한다는 한대건, 그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곳에 나타나 그들을 붙잡아 둔 게 정말로 귀신이라면 다를 게 없을 거다.
여기처럼 잡는 게 아니라 잡히는 거다.
귀신은 닭장 속에 들어간 여우가 된 거다.
‘작정하고, 마음대로,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을 때까지 닭들을 잡아먹는.’
등골에 돋는 소름을 털어내며 고종환은 그 생각을 했다.
터무니없다고 여기면서도 부정하면서도 했다.
한대건이 미국에서 불러들인 용병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정말로 맹수들이다.
그렇지만 귀신에겐 닭들이다.
“이……!”
진절머리를 내는 사람처럼 분노를 부들거리던 고종환은 폰울음을 들었다.
포켓 속 폰을 빼보니 모르는 번호다.
이런 시간 상황에 무슨 전화인가?
“누구냐?”
통화를 터치하자마자 거칠게 토한 고종환의 음성, 대답은 낭랑하다.
-아빠, 나야.
고종환은 얼어붙었다.
* * *
폰으로 보이는 영상은 더 이상 없다.
건물 내부에 설치해 뒀던 초소형카메라들, 폭발로 인해 파손됐거나 작동불능이다.
상관없다. 애초에 이럴 걸 알고 한일, 결과가 만족스럽다.
찾아온 손님들을 찐하게 맞아줬다.
“자 이젠 물러가야지?”
차창 밖 어둠 저편을 망원경으로 보며 조웅은 차가운 미소를 흘려냈다. 호수공원 옆 주차장인 이곳에서 지켜보는 광경은 짜릿하고 흥미진진했다. 허탕치고 역공 당한 걸 안 놈들은 경찰이 오기 전에 가야만 한다.
‘덮어버리기야 할 테지만.’
그래도 시체와 부상자들은 치워야 한다.
외진 곳이라고 해도 섬광과 폭음이 퍼졌다.
조웅 자신이 신고를 했지만 다른 신고도 들어갔을 것이다.
‘이제 소방서에서 출동하고 경찰이 올 거다. 그 전에 해야겠지.’
쾌재의 미소를 짓던 조웅은 문득 미간을 찡그렸다.
‘미쓰리는 괜찮은 거야?’
고갤 돌린 조웅은 공원화장실에 들어간 미쓰리를 걱정했다.
긴장과 두려움 때문인지 화장실을 찾아갔다.
주변 카메라에 손을 써 놨으니 이 상황과 모습이 찍힐 일은 없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면 차도 처리 할 것이다.
‘귀신, 너만 무사히 끝내고 오면 된다.’
다시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린 조웅은 망원경을 눈에 붙였다.
* * *
주체할 수 없는 충격과 분노 속에서 김부장은 정대리의 최후를 봤다.
주방 쪽에서 터진 폭발에 직격 당했다.
온몸에 가시처럼 박혀 들어간 것 못이다.
조웅과 귀신은 사제폭발물을 설치해두고 원격으로 터트린 것이다.
‘죽일……!’
치떨리는 격노를 숨과 함께 삼키며 김부장은 박살난 창문 밖을 봤다.
저 어둠 어딘가에서 놈들은 보고 있다. 아니 귀신이 가평에 간 게 확실하다면 조웅이다.
이편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보고 있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그래, 너희가 이겼다. 이번은.”
감정 없는 목소리를 중얼거린 김부장은 바로 전화를 넣었다. 경찰 고위층, 석연치 않아하지만 세경개발의 부탁을, 명령을 무시하진 못한다.
“그렇습니다. 그룹과 관계된 장소인데 알려지면 곤란합니다. 가스가 폭발해서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수습할 겁니다. 출동만 좀 늦추도록 합시다.”
상대방의 흔쾌한 대답을 들은 김부장은 통화를 마치고 소리쳤다.
“부상자들 옮기고 시체 치워라!”
아직 멀쩡한 직원들은 참담한 충격 속에서 바삐 움직였다. 그 속을 거친 걸음으로 빠져나온 김부장은 생각했다. 먼저 들어 간 도용조에 대해서.
‘어디로 사라진 거야?’
분명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없다.
건물 안에 쓰러져 있는 건 직원들뿐이다.
그놈이 귀신이 아닌 이상 이 안에 있다.
그럼 어딘가?
‘출동하기 전에……’
소방서와 경찰에서 오기 전에 찾아야 한다. 그런데 전화가 운다.
“회장님……!”
참담한 심정으로 전화를 받은 김부장은 고종환의 이해 못할 명령을 들었다.
-철수 한다.
* * *
키 낮은 잡목들 속에 앉은 장철은 느끼고 인지했다. 바람의 노래가 전해 주는 주변의 움직임, 그로인한 공기의 파동과 미세한 소리, 발자국을 딛음에 의해 땅이 내는 가냘픈 진동, 눈을 감고서도 전부를 봤다.
‘너.’
잡목 숲 앞으로 은밀하게 다가오는 자, 백인이다.
고글을 벗은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고 있다.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라는 걸 알 수 있다.
내 뱉는 숨이 느껴진다.
바람의 노랫결에 흘러온 저 감정은 끓고 있다.
‘다른 놈들과의 거리는 삼십미터 이상.’
어둠 속의 유령처럼 움직이는 상대를 응시하며 장철은 그림을 그렸다.
두 번째 목표인 저 백인을 처리하는 순서다.
삼십미터 밖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이젠 바람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까.
장철은 일어섰다. 바람의 노래 속에 몸을 싣고 움직였다. 어둠이 되어, 그렇기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인지하지 못하는 백인의 뒤로 다가갔다.
“핏.”
장철은 아주 짧은 숨을 뱉어냈다. 미세한 휘파람 소리처럼. 그 소리에 반응하며 백인이 돌아선다. 몸을 던지면서다. mp5의 총구가 겨눠진다.
장철은 동시에 움직였다.
상대가 몸을 돌리며 던지는 그 찰나에, 모든 걸 느끼며 응시하던 그 흐름 속에서 나가 장권을 내리쳤다.
총신이 바닥으로 돌아가 총탄을 뿌릴 때, 파이팅 스틱은 휘돌려 이격을 후려갈겼다.
쾅, 헬멧이 박살나 떨어져 나갔다.
등을 땅으로 하고 쓰러진 백인은 경련을 내고 있다.
이마부터 머리가 함몰된 충격, 신의가 와도 살릴 수 없다.
“둘.”
숫자를 뱉은 장철은 카바나이프를 뽑아 백인의 목을 그었다.
* * *
전략기획실 직원들의 긴장한 숨소리를 들으며 최길준은 모니터를 뚫어지기 응시했다. 피터윤과 그 동료들이 설치한 열상 카메라 영상이다. 리조트처럼 산자락에서 설치했던 조명을 켰었지만 움직이면서 모두 껐다.
‘이래서야……’
뭐가 뭔지 분간이 되질 않는 상황이다.
차라리 처음처럼 조명을 모두 켜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런데 피터윤과 그 동료들이 대응액션에 나섰다. 저들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점점 불안이 커져만 가고 있다.
‘잡는 거야?’
총격전이 확실히 일어났다.
아니 귀신을 잡귀 이해 피터윤 팀이 대응한 사격이다.
그런데 아직이다.
귀신을 잡았으면 계속 저러고 있진 않을 거다. 당연히 아직 못 잡은 거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잡기만 해라. 돈 받는 값을 하라고.’
초조한 분노를 침과 같이 넘기며 최길준은 지시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움직일 준비들 해라.”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내린 명령, 직원들은 긴장을 삼켰다.
* * *
고든 와일리의 시체 앞에 선 피터 윤은 숨을 부들거렸다.
‘이게 무슨……!’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곤잘레스에 이어 고든와일리까지 죽었다.
총격을 인지하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불과 삼십미터거리였다. 그런데 남은 건 고든 와일리의 죽음뿐, 귀신은 그림자도 없다.
“전원 모인다.”
동료들에게 통신을 전한 피터윤은 어둠을 노려보며 고글을 벗었다.
아무 소용없는 장비를 집어 던졌다.
그러노라는 데 바람이 분다.
서늘하게 목덜미를 더듬고 지나가는 산바람, 귀신의 손길 같아서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