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63화 (63/200)

황혼의 살인자. 63. 밤에 찾아온 손님.

63. 밤에 찾아온 손님.

11시가 넘어 들어간 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아내 유인주의 오빠 유한상.

R호텔 정보를 알려줘 황태자 클럽과의 접촉기회를 만들어준 처남이다.

휴가를 냈다한다. 휴가지로 가는 길에 들른 방문이다.

“여수로 간다고요?”

맥주를 따르며 묻는 최재우를 유한상은 아직도 조금 서먹하게 대한다.

“에 뭐 그렇지.”

손아래 매제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기에 함부로 하기 어려운 어색함.

“오늘 처리해야할 잔무까지 늦게 다 마치고 떠나려니까 시간이 늦어서 말야. 신혼집에 이렇게 오는 게 실례인줄 알지만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얼굴 보겠어? 명절 때도 보기 힘든데 말이지? 그때도 얼굴은 못 봤잖아?”

그때, R호텔에서 황태자클럽을 보던 날이다. 그리고 그날은 귀신 장철이 한진수를 납치해 복수한 날이다. 그걸 생각했는지 유한상은 찡그린다.

“그날 난리가 났었지. 우리 호텔 생기고 그런 일는 처음이었어.”

정말이다. 귀신장철이 호텔 지하주차장에서 한진수를 잡아 간 범죄상황, R호텔 측에선 날벼락 같은 일인 거다. 그런 호텔에 누가 투숙하고 싶을까, 호텔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들었다.

“경영진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준비 중인 모양이야. 이미지를 쇄신하고 새롭게 영업전략을 만들어 대응하겠다는 거지. 실효적일진 모르겠지만.”

“효과가 없는 겁니까?”

자신의 맥주잔을 넘기며 최재우는 물었다. 그러며 씽크대의 아내 유인주를 힐긋 봤다. 오빠 유한상이 사온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배달음식은 절대 안 된다며 사오라고 시킨 거다. 저런 모습은 참 예쁘다.

“오십 보 백 보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한다지만 기왕에 형성돼 있는 타성을 없애는 건 어려운 일이야. 완전히 새 호텔에 새로운 환경이라면 모르겠지만 힘들지. 뭣보다 호텔시장 자체가 포화상태인 게 문제고.”

“범죄가 일어나서가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해결이 우선이다, 그런 소리군요?”

“그거지. 뭐 그런데다가 귀신 사건이 터진 건 불에 기름을 부은 거고.”

“처남은 괜찮은 겁니까?

“뭐에? 아 물갈이? 나야 뭐 중간관리직인데 물갈이 대상이 아니지. 실질적으로 호텔을 운영하는 인력이라 물갈이하기도 어렵고. 난 괜찮아.”

“안심이네요, 아무튼 대단합니다. 마흔도 안 된 나이에 그 직급까지 올라간 건 이례적인 거잖아요? 몇 년 후면 임원 되는 거죠? 한삼년 정도?”

“무슨?”

턱도 없는 소리란 반응을 낸 유한상은 짐짓 눈을 흘긴다.

“은근히 나이 말하면서 꼽 주는 건가?”

“에휴 뭔 소립니까? 자자, 드시죠.”

최재우는 유한상의 잔에 맥주를 새로 따라줬고 둘은 웃으며 잔을 비웠다.

“그나저나 귀신 사건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거야?”

진지한 얼굴로 물음을 낸 유한상은 그날의 사건을 다시 떠올리며 말한다.

“윤완규와 한진수의 영상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를 알았어.”

최재우는 눈썹을 세웠다.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다.

그 둘이 호텔의 어느 곳에 얼마나 머물렀던 건지를 모른다.

시스템교체와 업그레이드로 3월 24일 이전 영상이 지워졌다는 호텔의 주장이다.

“우리호텔 주인이 바뀐 것 같아.”

“주인이 바뀌었다고요?”

“음, 외형상의 변화는 없지만 거의 확실해. 세경개발로 넘어간 것 같아.”

“세경이요?”

“그래, 그 세경, 윤완규 한진수와 같이 호텔에 있었다고 알려진 고초희의 세경. 아니 그보다는 흡혈귀 고종환회장의 세경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그럼?”

“그런 거지. 세경에서 고초희가 사건에 연루된걸 알고 호텔영상을 손댄 거.”

어둡던 방에 환한 불이 켜진 것 같아 최재우는 뜨거운 숨을 삼켰다.

‘그렇구나. 이게 그렇게 된 거구나.’

지난 의문은 풀렸다. 체증이 된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얹혀 있던 것이 내려간다. 그렇지만 새로운 의문들이 쌓여 있다. 귀신과 관련된 의문들.

‘별관치료,’

비밀치료 혹은 특별치료라고 불렀다는 그 행위가가 무엇인지 모른다.

분명한건 그것으로 인해 장철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거다.

그때의 기억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렇다.

그건 과연 무엇인 걸까.

‘채널.’

공성훈의 말에서 가슴에 박힌 것이 그 단어다.

‘미국인들이 와서 몸에다 전기장치를 붙이고 시작했다,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거라고, 명상 속에서 채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는……’

기억하기 싫은 기억, 공성훈은 그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대체 뭘까?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며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들을 한 것일까?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음모론 같은 것일까?

이 땅에서 비밀실험을 한 걸까?

“진전이 없는 건가?”

유한상의 물음에 최재우는 현실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처남이 어디 가서 말할 사람이 아니니까 말하는 겁니다만, 귀신에 대해선 전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어요. 엉뚱한 사건들만 연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는 마당인데, 다 관련이 있고요.”

“다 관련이 있다? 엉뚱한 사건들이?”

유한상은 특유의 영민함으로 맥을 짚는다.

“자유겨레당 양석훈사건 같은 거? 의정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대번에 언급을 하자 오히려 최재우가 놀랐다.

“뭘 아는 겁니까?”

“알긴 뭘 알아? 온라인상에 다 퍼진 이야긴데.”

불숙 끼어든 아내 유인주, 전복버터구이가 담긴 접시를 놓으며 식탁에 앉는다.

“내 잔.”

유한상이 바로 잔을 놓았고 최재우는 술을 채웠다. 갈증 났던 사람처럼 시원하게 잔을 비운 유인주는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말한다.

“밤의 여신인가 뭔가, 언론에 제보한다는 그년이 까발린 얘기잖아? 귀신사건과 관련된 사건들이라고 하니까 알아서들 찧고 까불고 난리부르스지.”

최재우는 쓴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과 관련한 또 다른 의문이 바로 이거다.

밤의 여신이라는 존재, 정체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그년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결국 동티가 날거야.”

점쟁이가 단언하듯 유인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유한상은 딴지를 건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동티가 나겠냐?”

“얼래? 그럼 윤완규하고 한진수 같은 새끼들은 누군지 알았어? 그래, 윤완규야 별장에서 체포됐으니까 신상이 알려졌지만 한진수는 아니잖아? 고초희는 또 어때? 세경에선 루머라지만 귀신한테 당했다고 하잖아?”

“야, 그건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깨는 소리 하시네. 귀신이 여태 어떻게 했는지 몰라서 그래?”

입을 다문 유한상은 맥주잔을 넘겼고, 유인주는 차가운 눈으로 뒷말을 냈다.

“나는 그날 사고를 봤단 말이야.”

맥주병을 잡은 유인주는 노려보듯 잔을 응시하며 맥주를 채웠다.

“그 아이, 장영이란 애가 차에 치어 죽기 전에 마트에서도 봤어.”

최재우는 손끝을 꿈틀하며 기억을 떠올렸다. 귀신장철과 장영의 모습, 행복하게 웃고 뛰던 다섯 살 난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 천사 같던 그 모습.

“귀신이 범죄자란 건 알아.”

다시 목소리를 낸 유인주는 잔에 채운 맥주를 단번에 마셨다.

“그래도 그 아이를 해친 새끼들은 죽여 버렸으면 해.”

유인주는 놀란 얼굴을 했고 최재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 속에서 유인주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남은 말을 냈다.

“그날, 도로에서 피를 토하던 그 사람, 장철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아.”

* * *

‘뭐!’

모니터 앞에서 벌떡 일어선 최길준은 경직한 채 숨 쉬는 것을 잊었다.

드디어 잡힌 귀신의 모습, 피터윤과 싸우는 광경이다. 피터윤의 등이 가려 완벽하게 잡힌 건 아니었지만, 충격을 주는 건 그게 아닌 다른 거다.

‘어떻게?’

피터윤이 총을 난사했다.

근접거리에서다.

권총까지 뽑아 쐈다.

그런데 귀신은 피터윤에게 접근했다.

벨트 같은 걸로 손과 목을 휘감아 넘겼다.

‘내가 뭘 본거야?’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최길준은 충격만 삼켰다. 동시에 소름을 털어냈다.

분명 총을 쐈는데 귀신은 피터윤을 제압했다.

결국은 죽여 버렸다.

저 결과가 주는 충격보다도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저건 대체 뭔가?

‘총탄을 피했다?’

황당무계한 생각에 최길준은 고갤 세차게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결과가 생겨났다.

귀신은 살아 있고 피터윤은 죽었다. 다른 자들 일곱도 죽은 거다.

귀신이 혼자서 그들을 전부 죽였다.

“이……!”

부들거리는 숨으로 현실을 삼킨 최길준은 명령했다.

“모든 출구를 닫아!”

소리치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다.

가평서와 합수부에 연락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 인력으로 귀신을 상대해야 할지다.

‘회장님이 결정할 문제.’

최길준은 바로 폰을 들었다.

* * *

세 동의 리조트 건물을 응시하던 장철은 윈드점퍼 안에 십자로 둘렀던 로프를 풀어냈다. 얇지만 강한 등산용 로프, 끝에 파이팅스틱을 묶었다. 빙글 빙글 돌리다 중앙 건물을 향해 던졌다. 옥상에 정확히 넘어갔다.

‘됐어.’

로프를 당겨본 장철은 안전을 확신했다. 작은 굴뚝처럼 솟아 있는 환풍구 기둥사이, 파이팅스틱이 단단히 걸렸다. 로프를 잣나무에 돌려 묶었다.

‘간다.’

로프에 벨트를 건 장철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현재 위치가 건물 보다 높은 비탈이라 건물을 향해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옥상에 착지하며 몸을 굴렸다.

고양이가 구르듯 소리 없이 움직여 로프를 풀었다.

파이팅스틱을 챙기고 카람빗을 분리한 벨트를 허리에 감고 장철은 이동했다. 잿빛의 무게로 존재감을 흘려내고 있는 옥상문, 그 앞에 섰다.

‘잠겼구나.’

출입문을 당겨본 장철은 뒤로 물러났다가 몸을 던졌다.

온몸으로 옥상문에 부딪쳤다.

폭음 같은 쾅 소리와 동시에 옥상문은 떨어졌다.

철문과 함께 벽에 부딪친 장철은 바로 굴러 일어났다.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박차고 달렸다.

본능으로 감지한, 한진수가 있는 곳을 향해서다.

그놈이 내쉬는 숨소리가 느껴진다. 그 곁에는 아비 한대건이 있다.

‘내가 왔다.’

밤귀신의 호곡 같은 바람 소리를 뒤로 남기며 장철은 달렸다.

* * *

“무슨 소리야!”

한대건은 소리쳤다. 동시에 미간을 떨었다. 아니 몸을 떨었다.

지금 들은 이야기를, 최길준이 전화로 알리는 상황을 믿을 수가 없다.

받아들일 수가 없다. 피터윤과 동료들이 전부 죽었다는 거다.

귀신이 죽였다.

‘어떻게 이런……!’

부들거리는 숨을 흘려내며 한대건은 아들 한진수를 돌아봤다.

최길준이 이어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금 전에 아들의 숨소리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아는 거다.

귀신이 찾아왔다는 걸 알아서 그랬던 거다.

-회장님?

다급하고 경직된 최길준의 목소리가 다시 강하게 귀를 파고든다.

-어떻게 할까요? 합수부에 연락을 넣을까요?

한대건은 갈등했다. 그런데 그 순간 밖에서,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귀신!’

그가 온 거다. 정말로 왔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귀신이 복도에 있다! 합수부고 어디고 다 연락해! 어서 올라와!”

패닉 속에서 소리친 한대건은 황급히 움직였다.

테이블 서랍 속에 넣어둔 권총을 꺼냈다.

콜트 리볼버, 빛나는 실버바디를 움켜잡았다. 그렇게 문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섰다.

아들의 침대를 등지고 이를 물었다.

‘오냐 와라, 오늘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결판을 내자!’

흔들리는 손에 힘을 주며 한대건은 큰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아니 부서졌다.

반사작용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미친 듯이 총을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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