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64화 (64/200)

황혼의 살인자. 64. 반갑다.

64. 반갑다.

차문을 열고 나가며 김부장은 혀끝을 깨물었다가 놨다. 앞서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고종환의 뒤를 따르며 현상황을 다시 헤아리고 곱씹었다.

‘초희아가씨가……!’

살아 있다.

회장은 그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밤을 가로질러 병원으로 돌아왔다.

의정부를 거친 자동차전용도로와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달리는 동안 교통카메라가 계속 터졌지만 문제될 건 없다.

그런 건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다.

신명시의 신도시 구역에서 벌인 오늘밤의 행사도 마찬가지다.

문제라면 이렇게 다급하게 돌아오게 된 이유다.

죽은 줄 알았던 고초희가 살아 있다.

그럼 병실의 그녀는 누구인가.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순간 김부장은 흠칫하며 생각을 털어냈다.

귀신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 모든 사건의 원천, 그 존재를 속으로나마 언급하는 것도 불길하다.

‘초희아가씨라고 여겨온 여자는 도대체 누군 거야?

생각을 현실로 돌린 김부장은 다급히 걸음을 놀렸다.

온누리병원은 고즈넉한 정경 속에 있다.

그 속을 파헤치듯 들어가는 고종환은 걸음이 빠르다.

그래도 구십노인의 걸음이 얼마나 빠를까마는, 말없이 뒤따랐다.

‘회장님.’

저 심정이 지금 어떠할지를 헤아리며 김부장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안보는 척 살핀 회장 고종환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다.

고초희가 정말 살아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터, 그런데 그것만도 아니다.

땡,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고종환은 역시 앞서나갔다. 그 뒤를 따라간 김부장은 유리벽 안 병실에 누워 있는 그녀를 봤다.

고초희, 그녀라고 여겨온 존재는 그대로다. 미라처럼 얼굴을 붕대로 둘렀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지만……’

혈액형도 같았다. 그렇지만 정말 고초희가 맞는지 DNA검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할 이유가 없었다.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에 은신해 있던 고초희다.

그곳에서 귀신에게 공격당해 산 시체가 된 여자, 당연히 고초희다.

‘귀신을 불러들이는 계획을 세운 장본인.’

고초희는 그렇게 했다. 그렇다는 증거 동영상을 아버지 고종환에게 남겼다.

왜 그랬는지 안다. 고초희이기에 그런 거다. 정상적인 인격체가 아닌, 반사회성향의 비이성적 존재라서다. 그 상황을 즐겼다. 그리고 당했다.

‘그런데 초희아가씨가 아니다?’

유리벽 안 환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김부장은 고종환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기 누워 있는 게 연은수다.”

이름을 듣고 깨달은 순간 김부장은 경직했다.

그렇게 그림이 그려졌다.

고초희와 연은수가 얽힌 그림, 알 수 없던 앞뒤의 연결흐름이 뭔지 알았다.

‘그랬던 거구나……!’

사건 당일 연은수는 백운호수엘 왔다.

고초희는 호숫가를 산책했다.

둘은 어딘가에서 접점을 만든 거다.

그로인해 연은수는 고초희가 되고 고초희는 연은수가 된 거다.

언제나 얼굴을 숨겨온 고초희이기에 가능했다.

‘모자와 마스크와 선글라스.’

체형이 같고 외모도 비슷한 두 사람이 존재를 바꿔치기 한걸 아무도 모른 거다. 고초희를 경호하는 가드들도 그녀의 진짜 얼굴을 제대로 본적 없으니 생긴 일이다. 그러면 과연 접점은 어디일까? 공원화장실이었을까?

“저 애가 연은수인 걸 알면서도 여기로 달려온 건 확인하려고다.”

다시 귀를 파고든 고종환의 음성엔 헤아리지 못할 무게가 있었다.

“초희가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걸…… 그 애가 뭘 하려는 지를……”

무슨 소린지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김부장에게 고종환은 시선을 돌렸다. 깊고 깊은 무저갱처럼 꺼져 내려간 눈동자, 그 깊은 울렁임으로 말한다.

“밤의 여신이 초희다. 재춘이를 죽인 게 그 애야.”

김부장은 숨을 멈췄다.

* * *

옥상문을 부순 소리로 인해 건물 내부의 온누리 놈들이 반응한다.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장철 자신을 향해 달려온다.

총이 아닌 정글도 같은 칼들을 들었다.

총기는 밖에서 처리한 놈들로서 충분하다고 여긴 걸까?

계단 벽을 차고 나간 장철은 파이팅 스틱과 카바나이프를 양손에 쥐고 휘돌았다.

목을 치는 적의 칼을 피해 돌며 안면을 박살내고, 연이은 흐름으로 나이프를 찍었다.

두 놈을 그렇게 해치우고 복도를 뚫고 나갔다.

‘저기.’

온누리놈들이 막아서는 이 복도 저편, 저 곳에 목표가 있다.

한진수와 그 아비 한 대건이다.

이제 그것들을 볼 시간이다.

아들놈은 이미 봤지만 아비와 같이 보는 거다.

이건 아주 특별한 기획, 정말로 보고 싶었다.

눈동자를 파랗게 번득이며 장철은 나아갔다.

벽을 찍고 바닥을 긁는 칼날들의 불꽃 속에서 부수고 박살냈다.

막아서는 온누리 놈들을 쓰러뜨리고 복도를 달렸다.

마지막 병실 앞의 놈은 귀신처럼 붙어서 휘돌렸다.

장철이란 중심을 놓고 돌아가는 컴퍼스의 다리처럼 놈이 돌아갔다.

문을 박살내며 들어갔다.

그 순간 총격이 터졌다. 작은 천둥 같은 소리다.

안으로 던져진 놈이 총격을 맞고 꿈틀거리는 걸 장철은 지켜봤다.

여섯 발의 총성 후에 멈췄다. 리볼버 권총이다.

안으로 걸음을 들였다. 그렇게 상대와 눈을 맞췄다.

다급하게 재장전을 하는 자, 아비 한대건이다.

“반갑다.”

고저 없는 그 한마디를 던지고 장철은 파이팅 스틱과 카바나이프를 바닥에 버렸다. 그 대신 벨트의 카람빗을 잡았다. 두 개의 초승달 칼날을.

여섯 발의 총탄을 퍼부은 상대는 귀신이 아니다.

경호를 서던 전략기획실 산하 직원이다.

피를 흘리던 생의 마지막 움직임도 사라졌다.

그 죽음 앞으로 걸어 들어오는 존재, 귀신이다.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말한다.

“반갑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실린더의 탄피를 쏟아낸 한대건은 총알을 삽입했다.

손끝이 떨려 제대로 들어가질 않는다, 뒤로 물러나면서 미친 듯 넣었다. 그러며 생각했다. 귀신 저놈이 지금 한말, 반갑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최실장이 올 거야!’

그러면 살길이 열린단 생각으로 한대건은 벼락처럼 총을 겨눴다.

해머가 후퇴하는 걸 눈에 넣으며, 총구가 겨눈 귀신을 보며 의구심을 품었다.

어째서 저놈이 저러고 서 있는 건지, 왜 바로 공격을 하지 않은 건지.

‘기다려?’

터무니없지만 그런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

한대건 자신이 다시 총탄을 채우길 기다려 준 거다.

말도 안 되는 거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죽어!”

한대건은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을 삽입하고 겨눈 순간 당긴 방아쇠는 이미 해머를 후퇴시켰던 터, 힘차게 앞으로 때려냈다.

총성과 섬광이 터진다.

거리는 불과 4미터 정도, 귀신은 이제 피를 뿜으며 쓰러질 거다.

‘뭐?’

한대건은 눈을 부릅떴다. 연속해서 총을 발사하면서 경악했다.

귀신이 움직였다. 아니 총탄을 피했다.

서 있던 자리에서 한발자국, 고개를 흔들, 몸을 비틀었다.

그런 움직임으로 여섯 발의 총탄을 전부 흘려보냈다.

‘무슨!’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한대건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런데 벽이 막는다.

* * *

숨이 막히는 느낌 속에서 김부장은 사건 현장을 떠올렸다.

구기동 고재춘의 집, 그곳은 피바다였다.

회장 고종환의 아들 고재춘과 그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한 현장이다.

그 살인엔 끔찍한 악의와 조롱이 있었다.

‘초희 아가씨가……!’

회장 고종환은 범인이 고초희라고 한다. 그녀가 전화로 말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린다.

구기동 고재춘의 집 보안 시스템을 해제하고 들어간 결과다.

고초희니까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거다.

물론 고재춘과 고초희가 그런 걸 서로 알려주고 묻고 하는 사이가 아니지만, 고종환회장이 아는 걸 고초희가 아는 흐름이라면 이상할 게 없다.

‘고사장을 죽인 이유는……’

고초희가 고재춘에게 품고 있던 감정이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짐작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고초희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드러낸 적 없다.

중학교 때 커터칼을 휘둘렀을 때처럼 웃으며 죽였는지 모른다.

‘밤의 여신.’

고초희가 그 존재다.

그 역시 회장 고종환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그런 행위를 하는 건지에 대해선 아직 듣지 못했다.

정말 궁금하다.

세경에게, 아버지 고종환에게 불리하고 위험한 일이다.

어째서 그러는 걸까?

“아가씨는 이제 어쩌신다는 겁니까?”

가슴 속의 의문과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김부장은 물음을 냈다.

고초희가 이제 어쩌려는 건지 정말로 궁금하다.

연은수를 자신으로 꾸며놓고 숨어버린 그녀가 하려는 건 정말 뭘까?

전화한건 돌아온다는 건가?

“몰라.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부장은 휴대폰 위치추적을 떠올렸다. 하지만 바로 털어냈다.

고초희가 그런 걸로 종적을 드러내지 않을 걸 알아서다.

전화건 폰은 버렸을 터다.

그렇다, 회장 고종환을 빼 닮은 건 고초희다. 그녀는 지금 웃고 있다.

“그렇지만 알 것 같아.”

작게 이어 나온 회장 고종환의 목소리, 끊어지지 않고 또 이어진다.

“난도질 하고 싶은 거야. 전부.”

* * *

장철은 벽을 향해 다가갔다.

건물 아래쪽에서부터 다가오는 거친 숨소리들을 느끼면서 한대건에게 갔다. 그 걸음을 멈췄다. 침대의 한진수 옆에서다.

호흡기를 달고 누운 놈, 그 모습을 돌아봤다. 한대건이 소리친다.

“그러지 마!”

시선을 한대건에게 돌린 장철은 웃었다. 소리 없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내가……”

목소릴 내며 웃음을 지운 장철은 뒷말을 던졌다.

“정말 보고 싶었다.”

장철의 손에 있던 초승날 모양의 칼, 카람빗이 움직였다.

한진수의 목을 지나갔다.

호흡기와 다른 선들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피가 터져 올랐다.

“진수야!”

발작 같은 외침을 터트리는 한대건, 하지만 아직도 벽에 붙은 그를 향해 장철은 다시 걸음을 냈다. 목이 갈라져 숨이 끊어진 한진수를 뒤로 두고 나갔다.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 아래 입술은 다시 열리며 말을 낸다.

“지금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내가 가졌던 그 비통을 돌려주고 싶었어.”

장철은 피스톤이 나가는 것처럼 앞으로 움직였다. 발을 뻗어 한대건의 복부를 강타했다. 쓰러지는 그의 턱에 어퍼컷을 치듯 왼손을 올려쳤다.

핏, 하는 소리가 한대건의 턱에서 났다. 그와 동시에 피가 터졌다. 카람빗의 칼날이 올려친, 갈라버린 턱을 잡지도 못하고 한대건은 무너졌다.

“그……”

무릎을 접고 무너진 한대건은 앞으로 쓰러지지 않았다.

장철이 발로 어깨를 밀어서다.

그 상태로 바닥에 피를 쏟았다.

수도꼭지처럼 흘려냈다.

“반가웠다.”

장철은 오른손의 카람빛을 한대건의 정수리에 내리박았다.

* * *

내일을 위해서라며 마지막 잔을 비운 후 잠자리에 들었다. 작은방에 들어간 처남 유한상의 가벼운 코골이 소리가 들린다. 아내 유인주도 술기운 때문인지 이내 잠들었다. 하지만 온갖 생각이 밀려와 잠이 안 온다.

‘귀신, 당신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무의미한 의문이고 물음이다.

그는 당연이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 유인주가 한말이 자꾸 귀에 맴돌이친다.

장철의 손녀 장영을 해친 놈들이 모조리 죽어야 한다는, 그 말이 가슴에 울린다.

“그렇게 되고 있어. 귀신이 그렇게 만들고 있어.”

천정을 노려보며 작게 중얼거린 최재우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최길준은 얼어붙었다. 눈에 들어온 광경에 숨을 쉬지 못했다.

회장 한대건이 죽었다.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모습으로, 정수리엔 칼이 박혀 있다.

그리고 한진수도 죽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그대로, 목이 갈라졌다.

‘귀신……!’

부들거리는 나오는 숨을 제어하지 못한 채 최길준은 소리쳤다.

“잡아! 산을 다 뒤져! 가평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미 합수부에 전화했다.

그들이 오기 전에 가평서에게 먼저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할 일은 알리는 거다.

회장 한대건의 죽음을 알아야 할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고회장에게, 아니야.’

고개를 흔들며 이를 문 최길준은 전화를 걸었다.

회장 한대건의 큰아들 한용수에게다.

신호는 다섯 번 건너갔다. 그리고 목소리가 넘어왔다.

-최실장이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상대가 받자마자 최길준은 격하게 목소릴 던졌다.

“큰회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온누리전자 회장 한용수, 그의 숨소리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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