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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살인자-66화 (66/200)

황혼의 살인자. 66. 귀신이 웃는 소리다.

66. 귀신이 웃는 소리다.

vip룸으로 들어간 고종환은 술병부터 찾았다. 떨리는 이 숨결과 제어되지 않는 감정을 다스릴 길을 찾아서다. 잔에 가득 독주를 부어 들이켰다.

“회장님.”

경색된 김부장의 목소리에 든 것, 이 엄청난 상황을 고종환은 술과 같이 삼켰다.

‘한대건이……!’

죽었다.

귀신에게 당했다.

가평엔 정말로 귀신이 나타났었다.

그놈이 한대건과 한진수의 숨통을 끊어 놨다. 그래놓고 귀신처럼 사라져버린 거다.

‘죽이겠다더니 죽고 말았어……!’

한대건은 호언장담했었다.

미국에서 불러온 용병들이 해결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이 귀신을 잡을 여건, 환경만 만들어 주면 끝나는 거라고 했다.

정말로 끝이 났다.

미국서 온 놈들도 뒈졌고 한대건도 종을 쳤다.

“한용수가 거기 있다고?”

후끈거리는 목구멍의 감각 속에 고종환은 물었고 김부장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온누리자동차 한경수 회장은 미국 출장 중이라고 합니다.”

고종환은 기억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깜짝 발표한 내용이다. 기왕의 앨러배머 공장 말고 조지아에 공장을 세운다는 얘기였다.

그 일로 미국에 간 거다. 지금쯤이면 제 아버지가 살해당한걸 알 터다.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면서 소득이 없다는 거냐?”

하나마나한 얘기란 걸 알면서도 고종환은 물음을 뱉었다.

너무나 황당한 충격이어서다.

귀신이 한대건을 죽였다는 결과도 그렇지만 또 연기처럼 사라진 결과여서다.

그놈이 정말로 귀신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거다.

“하늘로 솟은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닐 텐데 흔적도 못 잡아?”

애초에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닌 듯, 허탈한 숨으로 이어 나온 고종환은 말에 김부장은 입을 열었다.

“이동이 예상되는 가능지역을 모조리 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술잔에 술을 채우는 고종환의 등을 보며 김부장은 뒷말을 냈다.

“그렇지만 귀신은 그런 예상을 뛰어넘는 이동을 하는 거라고, 최길준 실장의 판단은 그렇습니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인데 경시한 결과라는 거지요. 리조트 구역 안에만 들어오면 끝이라는 확신이 지나쳤던 겁니다.”

술잔을 비운 고종환은 욕을 했다.

“등신 겉은 놈이 찢어진 아가리라고 말은 잘 하는 구나.”

온누리전략기획실장 최길준을 향한 욕임을 김부장은 안다. 회장 고종환이 왜 저런 욕을 하는 지도 안다. 모시는 주인을 지키지 못한 개인 거다.

“신명시 일은 별개의 일이 돼야 한다.”

다시 나온 회장 고종환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김부장은 이해했다.

귀신의 동료 조웅에게 당한 일, 그곳이 귀신사건의 또 다른 장소로 알려지는 건 안 된다는 거다. 불난데 기름을 붓는 일, 최대한 축소해야 한다.

‘우리 움직임에 장애가 안 생기도록.’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

살아 있는 걸 확인한 고초희, 밤의 여신으로 온라인상의 핫한 인물이 된 그녀가 가만히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오늘밤의 일까지 그녀가 알 리 없겠지만, 확실히 불안한 암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뭘 하려는 거야?’

미간을 찡그리던 김부장은 회장의 다른 결정을 듣고 고갤 들었다.

“연은수, 그년은 치워라.”

지금 이곳 온누리병원 특별병실에 누워 있는 여자, 고초희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최후가 결정됐다. 생명유지장치를 떼고 폐기하라는 지시다.

당연히 회장 고종환은 이곳을 떠난다.

한대건까지 죽었으니 당연하다.

“알겠습니다.”

대답하며 김부장은 연은수를, 그녀를 추적하며 알아냈던 주변 정보들을 떠올렸다.

‘살인.’

그녀는 살인자다.

최소한 두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첫 번째가 병으로 죽어가던 아버지, 두 번째가 유산을 탐내던 고모다.

물론 세상이 알지 못하는 살인이다.

그런 살인자들이 많다.

온라인상에서 교류하며 웃고 있다.

‘초희아가씨도……’

그 부류다.

연은수를 만난 것도 그런 배경이다.

그런데 고초희는 연은수나 그 꼬리를 잡기 위해 족쳤던 것들과는 다르다.

차원이 다른 거다.

연은수를 고초희 자신으로 꾸며 숨었다. 장막 뒤에서 즐기고 있는 거다.

‘이복오빠 고재춘을 죽이면서.’

목덜미에 돋는 소름을 느끼던 김부장은 회장 고종환의 움직임에 움찔했다. 갑자기 술잔을 집어 던져서다. 요란한 그 파괴 뒤로 중얼거린다.

“귀신, 그놈이 웃고 있다……!”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던 김부장은 회장이 응시하는 창을 봤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게 분명한 창문.

아래로 밀어 반만 열리는 그곳으로 바람이 치고 들어온다.

짙은 새벽어둠을 품고 소리낸다.

귀신의 소리다.

‘귀신이 웃는 소리.’

다시 돋아나는 소름 속에서 김부장은 이를 악물었다.

* * *

“뭐?”

황당한 놀람으로 반응한 최재우는 폰을 반대편 귀로 바꿔대며 물었다.

“청장라인의 지시였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이건 무슨 구린낸가 하면서 현장에 왔더니 역시 구린내가 진동합니다. 단순한 화재사건이 아닙니다. 여기서 뭔가 일이 있었습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귀신과 관련한 사건이 아닌가 촉이 섭니다.

홍인구의 확신어린 목소리를 곱씹으며 최재우는 귀신이란 의미에 집중했다.

정말이라면 진짜 생각지 못한 상황발생이다.

현장이 신명시다.

신도시 중심인 신왕지구다, 물론 중심가가 아닌 외곽, 인적드문 상가에서다.

‘살던 곳에……’

귀신이 맞다면 그런 거다. 신명시로 돌아와 머물렀던 거다. 그랬는데 꼬리를 잡혀 공격당한 정황, 그게 아니면 유인을 해서 반격한 결과일수 있다.

그런데 다 가정일 뿐이다. 무엇보다 귀신은 바로 이곳에 발을 디뎠다.

‘조웅.’

신명시에서의 일은 그가 한 것일 수 있다.

이곳 가평과 신명시에서 동시발생한 상황의 가능성이다.

홍인구의 말에 의하면 수상한 차량들의 이동이 있었다.

인접한 곳에서의 목격자들, 하지만 무시되는 상황이란 거다.

-불이 난 원인이 폭발물에 의한 걸로 추정됩니다. 연속되는 폭음을 들었다는 진술이 한둘이 아닙니다만, 전부 개무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가스폭발로 몰고 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제폭발물을 사용한 것 같단 말이지?”

-그렇죠. 귀신이 거기 가평에 있었다고 하니까 여긴 조웅이란 인물이 한 걸로 생각됩니다. 아 물론 아직까지 확인된 게 하나도 없는 뇌피셜입니다만, 이런 수상한 강력사건이 일어날 만한 요소가 따로 없잖습니까?

“건물주는 만나봤나?”

-조금 전에 만났습니다. 건물이 전소됐는데 별로 아까워하는 얼굴이 아니던데요? 화재보험에 들어놨다고 합니다. 임차인이 강력하게 권했다고 하더군요. 조웅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긴가민가했지만 맞는 것 같답니다.

조웅과 귀신 장철이 변장했을 때를 가정한 사진들이다. 합수부에서 만든 그걸 홍형사에게도 보냈었다. 그나마 그게 효과를 본 결과라고 하겠다.

-아무튼 여기 상황이 이렇습니다. 더 알아내는 대로 전화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홍인구와 통화를 끝낸 최재우는 깊은 숨을 들이 내쉬었다.

그렇게 새벽속의 현장을 눈에 넣었다.

바로 아래 7층을 딛고 선 이곳 옥상엔 그의 자취가 있다.

귀신 장철, 그는 산비탈에서 로프를 타고 왔다 건너갔다.

“귀신처럼 다녀갔군.”

허탈한 숨으로 중얼거림을 흘려낸 최재우는 유인주와 송치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감식반원들의 움직임을 피해 쭈뼛거리며 다가와 불만을 토한다.

“대놓고 따 시키고 있습니다.”

“박과장님 떨려나는 게 확실한 모양입니다.”

이제 확실하게 인지하는 내용이다. 이곳 가평 현장에 도착해서 느낀 거라면 합수부 동료들의 외면과 무시다. 지시를 받은 게 분명한 상황이다.

“우리한텐 잘된 게 같습니다. 합수부에 있어봐야 뭐하겠어요?”

유지건의 개운하단 얼굴을 최재우는 말없이 응시했다. 유지건은 바로 목을 움츠렸다.

“아니 뭐, 까놓고 말해서 그렇잖습니까? 귀신을 잡는 것도 아니고 시늉만 하는 속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정말 정신 못 차린다니까요?”

송치호가 동조하고 나선다.

“맞습니다, 이렇게 온누리그룹 왕회장이 죽은 마당인데도 의지가 없습니다. 그게 아래층에서 본 온누리전자 한용수 회장 때문인지, 그가 왕회장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는 상황이라선지 몰라도, 그냥 꼭두각십니다.”

꼭두각시 합수부. 그 의미와 현실을 최재우는 삼켰다.

‘뭘 할 수 있을까? 앞으론 어떻게 될까?’

헤아리기 힘든 감정을 삼키던 최재우는 들었다.

산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지나가며 내는 소리다.

왜 그런지 소름이 돋게 하는, 웃음인 것 같다.

‘귀신이 웃는 소리.’

최재우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 * *

피 냄새 때문에 열어놓은 창을 통해 바람이 들어온다. 창틀의 구조상 하부만 밖으로 밀어서 열게 돼 있는 터라 새된 소리가 실내로 퍼진다.

‘응?’

괴기한 느낌으로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최길준은 흠칫했다.

바람소리.

지금 귀를 파고들어 울리는 이건 마치 조롱을 품고 웃는 소리 같다.

‘귀신.’

그의 웃음소리 같다, 그렇다는 생각을 하자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그래, 알았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바람소리에 섞여 들린다.

현실로 돌아온 최길준은 목소리의 주인을 응시했다.

온누리전자 회장 한용수.

저 얼굴엔 어떤 감정도 안 보인다. 자동차회장 한경수와 통화를 마치고 또 통화한다.

‘부친과 이복동생의 죽음 앞에서……’

일체의 동요나 어떤 감정의 편린도 드러내지 않는 인물, 사십대 중반의 나이답지 않게 잘 관리한 몸은 젊은이 같다. 회색 슈트차림은 말쑥하다.

“그래, 준비 해.”

짧은 통화를 마친 한용수가 돌아본다.

그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최길준은 시선을 내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인 거다.

한대건회장의 죽음, 곁에서 모시는 자가 막았어야 했던 거다.

“미국에서 들여왔다는 물건들은?”

한용수의 물음에 최길준은 당황했다. 합수부수사관들이 주변에 있는 상황인데 저렇게 대놓고 물어서다. 그런데 물음에 든 단어의 의미가 있다.

‘물건.’

한용수는 그들을 그렇게 보는 거다. 사용하는 물건,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돈을 주고 산 물건이었다. 그런데 한번 사용하고 부서져 버렸다.

“잘 폐기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대답한 최길준, 시선 내린 그를 한용수는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다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격투가 벌어졌던 복도를 음미하듯 눈에 넣었다.

“옥상으로 침투했다……”

다시 중얼거림을 내며 한용수는 결과와 가정을 음미하고 그렸다.

귀신, 놈이 아버지를 해치는 동안 최실장은 여기 없었다.

달려왔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놈은 다시 옥상을 통해 빠져나갔다. 어디서도 못 찾고 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귀신이란 놈이 여태 한 일, 과거에 한 짓을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인 놈이 어떻게 평범할까, 수법과 결과도 그렇다.

그런데 이건 그 이상이다.

놈은 혼자서 만든 이결과는 상상초월이다.

‘죽이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전문 살인자들을 박살내고……’

제집을 드나들 듯이 왔다가 갔다.

최실장이 보여준 영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피터윤이란 미국용병들의 리더 놈과 싸우던 광경, 귀신은 총탄을 피한 걸로 보인다.

피터윤이란 놈이 잘못 쏜 게 아니면 그거다.

‘네가 정말 귀신이라면 너한테 맞는 것들로 상대해 주마.’

시리에 응축한 눈동자를 빛낸 한용수는 복도를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는 그 뒤를 최길준은 말없이 따랐다. 바람은 계속 울고 있었다.

* * *

화악산 너머 화천의 유명한 삼일계곡을 지났다. 곡운구곡의 절경을 감상할 사이 없이 계속 이동했다. 사창리를 지나가면서도 쉬지 않았다. 새벽어둠은 물러가고 동이 부옇게 터오기 시작했다. 다목리에 도착했다.

‘한 시간만 기다리면 되겠군.’

대합실에 앉아 비로소 휴식을 취한 장철은 폰을 꺼냈다.

조웅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시 폰을 끄고 배낭 안을 살폈다.

바꿔 입은 옷이 들어 있다.

피가 묻어 있으니 소각해야 한다. 조웅이 배낭채로 처리할 것이다.

‘물부터 먹어야겠다.’

매점에서 생수를 산 장철은 단숨에 다 마셨다. 그제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전방 시골의 버스터미널 모습, 세상과 동 떨어진 그림 같다.

‘좋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갑자기 든 생각에 장철은 실소를 흘려냈다. 입가에 더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귀신을 쫓는 자들이 본다면 소름 끼칠 미소, 소리 없는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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