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67. 모두가 아는 진실.
67. 모두가 아는 진실.
-방송뉴스 같은 건 믿지 마십시오. 바로 이곳 현장에서 생생하게 진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제 영상 속에 다 있습니다. 귀신이 침투해 총격전이 벌어진 정황, 안에서 난리가 난 상황, 그리고 경찰특공대가 출동……
유튜버의 신이난 목소리와 얼굴에서 시선을 뗀 이영숙은 폰을 끄고 tv를 켰다. 온라인만큼이나 뜨거운 뉴스의 열기는 앵커의 목소리로 느껴진다.
-그야말로 초유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평군 북면에 위치한 온누리그룹 소유의 리조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희생자는 다름 아닌 한대건 회장입니다. 아들 한진수씨를 간병하던 그가 귀신에게……
귀신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이영숙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목뒤에 돋는 소름을 털어내고 장철의 얼굴을 떠올렸다.
늘 무심한 표정과 눈동자의 그 남자는 복수의 끝장을 이뤘다.
온누리그룹 부자를 해치웠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한진수를 그렇게 만든 건지도 몰라.’
살아있지만 죽은 게 맞는 상태였던 한진수, 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었다. 아버지 한대건이 보는 앞에서다. 그렇단 얘긴 안 나오지만 그게 맞다.
-귀신의 존재와 그가 얽힌 사건배경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상황입니다. 시작은 지난 3월 24일 신명시의 교통사고입니다. 손녀를 치어죽게 만든 윤완규와 한진수를 향한 귀신의 복수, 팩트입니다.
복수라는 말에 힘을 주는 앵커, 보던 이영숙은 소파에서 일어섰다.
귀에 박히는 뉴스소리를 들으며 주방으로 갔다.
커피물을 올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렇게 새삼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의 환경을 되새겼다.
‘포천.’
선단리라는 곳이다. 전원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그 안의 단층 전원주택이다. 사장 조웅은 정말 수완이 좋은 사람이다. 도망쳐서 또 이런 곳에 들었다. 이런 장소를 얼마나 더 품고 있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다.
‘여기도 임대한 걸까?’
조웅이 아닌 다른 신분으로.
사장은 여태 그렇게 해 왔다.
상계직업소개소도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명지훈이란 이름은 누구인지 모른다.
-온누리그룹은 현재 아무런 공식반응이 없는 상황입니다.
거실을 향해 돌아선 이영숙은 뉴스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9시가 돼 가고 있다.
장철을 데리러 간 조웅이 떠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어디서 만나는지 모르지만 오전이 가기 전에 돌아올 것이다.
-합수부역시 이렇다 할 공식발표가 없는 가운데……
소파로 돌아간 이영숙은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돌렸다. 사건보도를 주로 하는 시사프로그램이 나온다. 패널들이 침을 튀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엄청난 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사적복수가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이 나라의 공권력이 깡그리 무시된 상황입니다. 검경은 뭐하고 있던 겁니까? 합수부는 무슨 종이인형입니까? 귀신이란 범죄자가 날뛰고 있는데……
벌써 커피물이 끓는 소리가 난다. 이영숙은 싱크대로 돌아갔다. 믹스커피를 컵에 타고 물을 부었다. 다시 tv앞으로 돌아와 호록거리며 마셨다.
-온누리그룹의 대응이 귀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정말 그랬을까요? 그런데 실패한 걸까요? 경찰특공대가 상황발생 직후에 출동한 걸 봐선 준비된 정황이……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진행자의 유도에 패널들이 반응한다.
-일각에서 그런 추측과 가설을 주장하긴 했습니다만 아니라고 봅니다. 온누리그룹은 만일의 사태를 준비한, 그러니까 경호의 측면에서 대비했던 거라고 봅니다. 건실한 기업인으로 존경받던 한대건 회장이 그런……
-눈 뜬 장님 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공격하듯 말을 자른 패널을 말하던 패널이 노려본다.
아랑곳 않는 패널은 목소릴 잇는다.
-온누리그룹 전략기획실에 대해서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온누리그룹의 오늘을 만든 기반이 바로 그곳이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간 일을 다 하는 조직, 그들이 귀신을 잡으려 했다는 건 안비밀이죠.
진행자가 말을 받는다.
-그런 조직을 운용하던 온누리그룹인데도 결국 당하고 만 결과라는 거군요?
진행자는 제법 길게 뒷말을 이어낸다.
-그렇다면 귀신이란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현장에선 총기가 사용된 걸로 온라인상에 퍼지고 있는데요? 앞서 루머라고 치부되는 백운호수 사건도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사건은 공식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맨 이영숙은 커피를 호록 마셨다.
-합수부에서도 부인했고 세경그룹에서도 루머라고 부정한 사건입니다만, 온라인상에선 진실로 알려진 사건인데요. 예, 언론에 제보한 밤의 여신이라는 신원미상의 제보자에 의해 밝혀진, 아니 주장되는 이야깁니다.
진행자의 시선이 건너가자 패널이 입술을 혀로 핥으며 입을 연다.
-결국 이게 복수 아니겠습니까? 핵심이 그겁니다. 귀신으로 알려진 장철이란 인물의 손녀가 당한 안타까운 사고, 그 일을 만든 윤완규와 한진수에 대한 복수, 이거지요. 자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것이 바로 세경이란 이름입니다. 고종환회장의 딸 고초희도 연루된 게 확실하다면……
“한대건과 한진수처럼 되는 거지.”
또 중얼거린 이영숙은 어느새 다 마셔버린 커피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진실인지 루머인지 모르지만 모두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진실과 거짓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하죠. 그 차이를 가늠하기 이전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걸로 생각됩니다. 귀신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무섭고 불안한 현실을 치안당국은 하루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진행자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던 이영숙은 리모컨을 눌렀다.
* * *
“하, 제대로 구워버렸네.”
유지건의 조롱기 든 목소리를 뒤로 두고 최재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송치호과 홍인구가 한쪽에서 얘기하는 걸 돌아보고 다시 안을 봤다.
유지건의 말대로다. 진짜 제대로 불태웠다. 사제폭발물로 인한 결과다.
‘이곳에 발을 들인 때부터 준비했어.’
귀신일행, 조웅이 한 걸로 추측된다. 아니 폭발물 제작과 설치는 귀신이 했을지도 모른다. 어떠했든 이곳에서 터트린 건 조웅, 그는 사라졌다.
‘귀신처럼.’
평상시에 이 건물로 드나들던 승합차 영상을 홍인구가 찾아냈다.
바로 추적에 들어갔지만 소득이 없을 것이다.
귀신처럼 꼬리를 자르고 숨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염두에 뒀었는데 그런 흔적을 못 자를 리가 없다.
‘이게 어떻게 일어난 일일까.’
마음속의 의문을 최재우는 곱씹었다.
세경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이곳을 급습했다.
그들은 이곳이 귀신의 근거지란걸 어떻게 알아낸 걸까?
‘온누리는 가평에서 귀신을 상대했으니 세경이 맞아.’
그들은 가평의 상황을 인지하면서 이곳에서 행동했던 걸까?
가평의 귀신출몰을 모르는 채 이곳을 공격한 걸까?
어떠했든 여길 어떻게 안 걸까?
‘조웅은 또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친 거야?’
의문에 의문을 삼키면서 최재우는 현실을 새삼 절감했다.
가평에서 이곳으로 달려와 현장을 보는 처지다.
합수부에서 겉도는 처지, 말 그대로 왕따가 됐다.
가평에선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할 수도 없어 여길 왔다.
‘이렇게 무력한 상황이라니……’
애초부터가 그랬다. 의자가 없이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합수부다. 그런데다 귀신이란 존재는 발자취만 더듬게 하고 있다. 좌절만 삼키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어떤 주체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복수의 반은 성공했어.’
좌절의 숨을 밀어낸 최재우는 현실의 결론을 상기했다.
이 결과가 그런 것이다.
온누리그룹의 한대건 한진수 부자를 귀신은 죽였다.
윤완규와 한진수를 손댄 건 복수의 시작일 뿐이었던 거다.
이제 세경이 남았다.
‘처음 윤완규를 죽이고 그 아비 윤종대를 죽인 게 스타트.’
다음 스텝이 이뤄졌다. 산 시체가 된 한진수의 곁에 있던 한대건회장을 죽였다. 아들을 미끼로 삼아 귀신을 잡으려던 게 분명한 그가 당했다.
‘필연적으로 이런 흐름이 될 걸 알고 있던 거야.’
완전한 끝장이 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것이란 것.
‘온누리와 세경도 복수하려 들 테고 그렇게 했어. 귀신은 시작부터 이런 그림을 머리에 그리면서 칼을 휘둘렀어. 어느 쪽이든 죽어야 끝나는.’
이제 남은 건 세경이다.
고초희가 귀신에게 당한 게 맞다면 고종환회장 차례다.
그런데 그게 끝일까?
한대건회장에게는 아들 둘이 남아 있고 고종환회장에게도 아들이 있다.
그들도 역시 복수에 나설까?
아닐까?
‘진실은 하나.’
입술을 혀로 물었다 풀며 최재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인과응보.”
원인이 있었으니 결과가 있는 것이다.
이 일의 시작은 장철의 손녀 장영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그 진실을 덮으려한 자들에게 내려진 응징이다.
그런데 인과응보는 그것에만, 그들에게만 해당될까? 귀신에게는 어떤가?
후우, 하는 소리로 무거운 숨을 토한 최재우는 돌아섰다.
* * *
과천의 공기가 새삼 달다는 걸 느끼며 고종환은 연못에 사료를 뿌렸다.
“많이들 먹어라.”
혈육에게 하는 것 같은 목소리와 시선으로 고종환은 사료를 거듭 뿌렸다.
비단잉어들은 느릿한 움직임으로 몰려와 배를 채운다. 저 모습을 보노라니 문득 시장하다. 구십평생 먹고 살아왔으니 이젠 그만 먹어도 될 텐데.
‘그럼 죽는 거지.’
죽음, 그 의미를 고종환은 음미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았으니 이제 죽음은 코앞이다.
그런데 자연사가 아닌 다른 죽음이 닥쳐왔다.
한대건이 죽은 것처럼 귀신에게 죽는 거다. 그놈의 다음 목표는 자신이다.
“네놈 손에는 안 죽는다.”
거칠게 비튼 입술로 목소릴 뱉은 고종환은 새삼 한숨을 내쉬었다. 고초희를 떠올려서다. 살아 있는 걸 확인한 기쁨보다 딸이 품은 마음이 두렵다.
‘초희야, 너는……’
아들 고재춘을 죽였다고 말한 딸 고초희, 그녀의 마음을 알 것도 같으면서 모르겠다.
아니 안다, 확실하게 안다, 그녀는 정상이 아니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아비인 고종환 자신에게 연락한 것도 희롱의 일환이다.
‘널 그 지경으로 만든 게 나라는 걸……!’
진실, 그것을 고초희는 알리려는 거다.
아버지가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했다면 이렇지 않았을 거란 걸, 돈만을 쫓아 산 흡혈귀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건 고초희의 복수이며 유희, 귀신이란 존재를 지렛대로 시작했다.
“회장님.”
늘 그렇듯 소리 없이 다가온 김부장을 향해 고종환은 돌아섰다.
“연은수는 잘 처리했습니다.”
이미 손댄 고어방 것들과 같이 소각될 것이다. 흔적은 안 남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뤄지는 일, 모두 실종자가 될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날 보자고 하지 않더냐?”
회장 고종환의 물음, 온누리전자 한용수에 대한 것이다.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오늘 중으로 한대건회장의 사망을 공식발표할 모양입니다. 장례식장은 온누리병원이 될 걸로 예상됩니다.”
음 하는 소리로 고종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그곳엘 가야겠군 하는.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
한용수의 반응, 아버지 한대건이 귀신에게 살해당한 결과에 대한 대응.
“온누리자동차회장 한경수와 달리 한용수회장은 거침이 없습니다. 장남이어서도 그렇겠지만 부친 한대건회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들 하지요.”
“그래, 그래서 온누리전자를 세계제일로 만들었고.”
“당한 걸 참을 인물이 아닙니다.”
“역시 그렇겠지?”
“여태까지 방관한건 부친 한대건 회장이 주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고, 원인이 이복동생 한진수 때문이었을 겁니다. 거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다고 소문이 났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이복동생 때문에 부친까지……”
“그놈에게 무슨 수단이 있을 것 같으냐?”
김부장은 즉답을 못했다.
한대건회장과 같은 대응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인데, 그처럼 하진 않을 거란 확신이 든다.
그럼 다른 뭐가 있을까.
“우린 뭘 할 수 있는지,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둔거냐?”
이어 나온 고종환의 물음에 김부장은 경직했다. 현실을 절감해서다.
“다음은 내 차례다.”
맞다, 한대건회장의 죽음은 귀신이 처음부터 그린 그림이다.
당연히 놈의 칼날은 고종환회장에게로 올 것이다.
이제 시간은 열두시 오분전이다.
“귀신, 그놈이 모르는 게 있지.”
연못으로 돌아선 고종환은 나직하게 뒷말을 흘려냈다.
“초희가 무사하다는 거.”
아침 해의 기운을 받은 바람이 지나가는 속으로 고종환은 짧게 말했다.
“전국회의를 소집해라.”
움찔하며 고개를 든 김부장은 다시 고개 숙였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