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68. 남은 자들의 일.
68. 남은 자들의 일.
“씨바 미친 거 아니야?”
운전대를 거칠게 돌리는 유지건의 목소리엔 정말로 화가 들었다.
합수부에서 떨려난 현실인데다 귀신은 흔적도 못 잡고 있는데 엉뚱한 일이 괴롭힌다.
그나마 조웅을 추적하던 와중인데 그것도 못하게 하는 거다.
“싫다는 데 왜 데려간다고 지랄하는 거야?”
거듭 튀어나온 유지건의 거친 목소리, 조수석의 송치호는 찡그린 얼굴로 창밖만 본다. 그런 두 사람의 뒷자리에서 최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기 돼지 삼형제.’
갑자기 걸려온 나눔자리의 전화를 받고 이렇게 셋이 뭉쳐가는 지금 그 동화가 떠오른다. 현재의 처지와 매칭되는 게 전혀 없다. 그런데도 셋이 이렇게 뭉쳐 다니는 걸로 연상한다. 동화에서도 삼형제는 따로 살지만.
‘효율이고 비효율이고 간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팀장과 팀원 둘이 한데 뭉쳐 다니는 현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명확한 목표가 있으면 찢어져서 수사를 하고 수확을 거둬들일 텐데 그게 안 된다. 그나마 조웅이 흔적을 더듬던 참인데 나눔자리에서 sos가 왔다.
“가족이라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
룸미러로 눈을 맞추는 유지건의 물음에 최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명지훈을 데려간다는 여동생의 주장은 권리다.
‘막자면 소송을 해야겠지. 명지훈이 금치산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자기주장을 할 수 있고 정상적으로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임을 밝히자면 그 방법뿐이다. 현재로선 후견인의 지위가 직계혈족인 여동생에게 있다. 그 여동생이 오빠를 데려간다는데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오랜 세월 방임한, 그런 것들을 밝히는 것도 역시 소송.’
찡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던 최재우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어느새 나눔자리에 도착했다.
화난 심정처럼 거칠게 차를 세운 유지건이 제일 먼저 차문을 열고 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듯 나눔자리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이 돌보는 걸 왜……”
옆에서 중얼거리던 송치호가 입을 닫는 마음을 최재우는 짐작했다.
‘돈.’
그것 때문이란 걸 안다.
그렇다, 오직 돈이다.
이 세상은 그것으로 돌아가고 그것의 가치로 재단되며 그것이 만든 정의로 숨을 쉰다.
누군가는 월세 낼 돈이 없어 외롭게 숨을 거두고 누군가는 썩어나서 뿌려댄다.
“저 차인 모양인데요?”
유지건이 뒤늦게 돌아보며 차 한 대를 가리킨다.
최재우 자신의 팀이 차를 세운 반대편에 주차된 승용차, 단종된 모델로 낡은 은회색 세단이다.
차로서 타는 사람을 가늠하는 건 아니지만 저 상태로 짐작이 된다.
“들어가자.”
두 형사를 뒤로 달고 최재우는 나눔자리 내부로 발을 들였다. 기다리고 있던 원장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온다. 그의 시선은 바로 안쪽으로 간다.
명지훈의 방, 복도 끝을 향해 가며 최재우는 생각했다.
어쩌다 자신이 이런 일에까지 휘말리게 됐는지다.
이곳 나눔자리 원장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해서다.
그런 이유는 그의 진심과 이곳의 진실을 알아서다.
‘오지랖.’
그것임을 안다. 강력계 형사 팀장이 할 일이 아니다.
해본 적도 없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일이다.
다급한 원장의 전화로 오긴 했지만, 명지훈의 여동생을 만나보겠다는 수락은 했었지만, 모르겠다.
“으어어.”
열린 방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명지훈이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옷을 갈아입히려는 여동생, 중년 여자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는 광경이다.
“오빠, 제발 그러지 말라고……!”
명지훈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 여동생의 이름을 최재우는 불렀다.
“명혜선씨.”
흠칫하며 돌아보는 중년여자와 최재우는 눈싸움하듯 서롤 바라봤다.
* * *
올란도에 올라탄 장철은 동서울터미널을 벗어나가고서야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운전하는 조웅은 이렇다 할 말없이 강변도로를 질주했다.
침묵 속에서의 주행이 한강대교에 이르렀을 때 조웅은 입을 열었다.
“온누리그룹엔 아직 아들 두 놈이 남아 있다.”
장철은 알고 있단 의미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놈들이 복수하겠다고 덤빌 것 같으냐?”
장철은 모르겠단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조웅이 지금 던진 물음, 자신 역시도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남은 자들, 그들이 어떻게 할지다. 그에 따라 할 일이 정해지는 거다.
“포기하고 멈춘다면 끝이다.”
나직하게 차안을 울리고 나온 장철의 뒤늦은 대답.
조웅은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지금 들은 말의 의미를 명확히 안다.
말 그대로 온누리가 여기서 멈춘다면 장철도 멈추는 거지만, 그게 아니라면 진짜 끝장이다.
‘너희 하기에 달린 거다, 그걸 알지 모르겠지만.’
한대건회장의 두 아들, 온누리전자의 한용수회장과 온누리자동차의 한경수 회장, 그들이 이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짐작은 된다. 전자회장 한용수는 아비를 빼닮았다는 인물이다. 그는 복수를 하려들 거다.
“고종환의 소재는 파악이 되는 거냐?”
장철의 물음이 나오자 조웅은 상념을 밀어냈다.
고종환회장, 그는 남은 목표다.
과천 집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건 모른다.
온누리회장 한대건이 당했으니 이젠 바싹 긴장하고 조심할 터, 쉽지 않다.
“알아낼 거다, 숨 좀 돌려라.”
투덜거리듯 대답한 조웅은 되물음을 냈다.
“장비는 현장에 다 버린 거지? 또 필요하겠네?”
장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생각했다.
조웅의 말대로 현장에 버린 무기들, 조웅은 원하는 대로 또 구해줄 것이다.
그것들의 출처를 밝히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경찰은 지금쯤 알 터다.
“어떻게 된 건지 안 묻냐?”
조웅을 돌아본 장철은 담담히 물었다.
“어떻게 된 건데?”
“하 참, 옆구리 찔러 절 받지. 내가 이렇게 무사한 얼굴로 널 데리러 올 거라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한 거냐? 지난밤에 죽었으면 어땠겠냐?”
장철을 힐긋 돌아본 조웅은 실소를 흘려냈다.
“핫, 그랬으면 귀찮고 짜증나는 거지 란 얼굴이구만. 그래, 고맙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 너 안 힘들게 해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인상 구기던 조웅은 장철의 덤덤한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나도 힘들었어.”
“뭐?”
“가평에서 죽을 뻔했지, 그랬으면 어땠겠냐?”
“그거야 뭐……”
“힘들고 귀찮은 일 더는 안 해도 되겠지. 그래서 내가 살아 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뒷말까지 들은 것 같아 조웅은 장철을 노려봤다. 하지만 장철의 시선은 이미 창밖으로 돌아갔고, 하마터면 사고날뻔했다.
“힉!”
아슬아슬하게 차선을 바꿔 사고를 피한 조웅은 앞만 봤다. 그러다 피식거렸다. 장철의 대응, 그것이 농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아서다. 사람을 잡아 죽이는 무서운 살인자 귀신, 저 가슴에도 아직 뭔가 남아 있다.
“가자. 집에 가서 삼겹살에 소주한잔 때리자.”
속도를 높이는 조웅을 돌아보지 않은 채 장철은 단어를 곱씹었다.
‘집.’
그 의미가 가슴에 너울진다. 과연 돌아갈 집이란 게 있는 것일까.
* * *
강남대로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통유리 앞에 서서 한용수는 물음을 던졌다.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를 뭐라고 생각하나?”
물음을 받은 자, 최길준은 당황했다. 가평을 벗어나 이곳 온누리전자 사옥에 들어선 지금, 회장 한용수의 등을 바라보며 받은 질문은 당혹스럽다.
대답할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런 대화를 할 때인가 해서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지.”
여전히 등을 보인 모습으로 한용수는 말을 이어냈다.
“사물인터넷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형 혹은 무형의 객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개별 객체들이 제공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느릿하게 돌아선 한용수는 당혹한 얼굴의 최길준을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할 거야, 아니 이미 변하고 있지. 모든 전제제품을 스마트폰 하나로 제어하는, 도로를 다니는 차는 자율주행으로 운전자가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은 이미 도래했어. 그런데 겨우 그 정도가 끝일까?”
한용수는 걸음을 옮겨 커다란 데스크 위의 생수를 잡았다. 와인잔과 같은 유리잔에 가득 부어 느릿하게 마셨다. 그리곤 최길준을 향해 말한다.
“뭐가 더 있을까? 그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 있지. 여기에서도.”
유리잔든 손으로 한용수는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몸짓으로 잔에 든 물이 찰랑거리는 게 넘치지 않을까 불안한데 용케도 넘치진 않았다.
‘머리?’
한용수가 의미하는 게 머리란 걸 알지만 정확한 의미를 최길준은 알 수 없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하려는 건지 짐작이 안 된다.
“미지의 영역이야.”
다시 목소릴 낸 한용수는 차가운 눈동자를 빛내며 이야기했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까지 알아낸 건지 조차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지.”
머리, 인간의 뇌에 관해 말하는 것임을 최길준은 이제 명확히 알았다.
한용수의 말대로 인간의 뇌, 정신에 관한 연구는 어린 아기 걸음 수준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한대건회장이 살해당한 지금 무슨 상관일까.
“우리 온누리그룹이 이뤄내야 할 과제로, 목표로 그것을 아버지께 말씀드렸지. 그래서 만든 곳이 온누리정신연구소야. 아버진 그곳에 의자를 놓고 은퇴하신 것으로 세상이 알고 있지. 맞아, 그런데 거긴 내 자리야.”
미간 좁힌 최길준은 이어지는 한용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그냥 앉아만 계셨던 거야. 연구소의 정확한 내면을 알진 못하셨지. 내가 알려드리지 않아서기도 하고, 나한테 맡겨두셨기 때문이고.”
그래서 지금 하려는 말이 뭔데, 란 최길준의 의문에 한용수는 미소만 던졌다.
차갑게 빛나는 미소, 섬뜩한 느낌까지 주는 웃음, 다시 말한다.
“결과를 알면 아버지가 기뻐하셨을 거야.”
최길준은 침을 삼켰고 한용수는 물음을 던졌다. 다른 주제로, 현실을.
“귀신이 고종환을 노리겠지?”
최길준은 거듭 침을 삼켰다. 저 물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다.
“다음 순서는 그 늙은이잖아? 귀신을 잡을 기회, 그렇지?”
이제 명확해진 의미, 최길준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물론 한용수의 눈엔 보이지 않게다. 동시에 걱정을 품었다.
한용수가 지금 하는 생각은 한대건회장도 했던 거고 고종환회장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장님……”
한대건을 부르는 게 아닌, 온누리전자 한용수를 부르는 현실을 삼키며 최길준은 말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시든 이제까지의 결과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한용수는 차가운 눈빛을 흘려냈고 최길준은 목소릴 이어 냈다.
“귀신은 반드시 잡아야 할 놈이지만 결코 쉽게 잡히지 않을 놈입니다. 큰회장님을 모시던 자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지껄이는 게 송구스럽고 죽고만 싶은 심정입니다만, 남아계신 두 분 회장님들이 무사하셔야……”
“장례 준비를 해.”
짧은 말로 최길준의 목소릴 자른 한용수는 돌아섰다. 강남대로를 내려다보는 통유리창 앞에 선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최길준은 뒤돌았다.
* * *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쉰 최재우는 나눔자리 밖 탑동계곡을 바라보며 섰다. 봄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와 몸을 치는데, 마치 씻겨주는 것 같아 개운하다.
방금 전 명지훈의 여동생 명혜련과 나눈 이야기도 씻기는 것 같다.
“그래, 당신은 잘못이 없지.”
명혜련의 주장, 그건 현실이고 진실이다.
오빠를 외면한 그녀를 손가락질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이해하고 나눠질 자가 아니면 그럴 수 없다.
그녀는 울면서 자신의 고통을 말했다.
‘배달을 하다 사고가 난 남편 대신 가장노릇을 해야 하는……’
골목치킨집을 운영하는 그들의 삶이란 건 너무 빤한 것이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땅이라도 파야 할 형편, 그런데 돈이 생긴 것이다.
‘십억.’
타협안은 받아들여졌다.
명지훈은 나눔자리에 남고 명혜련이 십억을 가져가는 걸로 마무리했다.
범죄수익금으로 한 푼도 쓰지 못할 수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과, 나눔자리의 진심과 명지훈의 마음을 받아들인 결과다.
‘산사람들은,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사는 거니까.’
후하고 소리 내 다시 숨을 뿜어낸 최재우는 결의를 새롭게 삼켰다.
“남은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지.”
닭백숙집을 찾는다며 계곡으로 간 유지건과 송치호를 최재우는 커다랗게 불렀다. 그 소리는 계곡을 지나는 바람에 실려 멀리 멀리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