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70화 (70/200)

황혼의 살인자. 70. 전국회의.

70. 전국회의.

창밖의 정경을 응시하며 장철은 커피를 마셨다.

포천시의 선단동이란 지역, 저 아래편으로 펼쳐진 동네의 풍광은 평화로워 보인다.

등 뒤를 막아선 해룡산과 왕방산의 기운이 이 주변 마을들을 보위하는 것 같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오지재, 거길 넘어가면 동두천 탑동계곡.’

현재 위치인 전원주택단지 옆으로 도로가 이어져 올라간다. 포천의 주도인 43번 도로에서 이어진 364번 도로가 왕방산과 해룡산의 사이를 힘겹게 올라가 동두천으로 내려가는 거다. 그 사이에 탑동계곡이 있다.

‘명지훈이 있는 곳.’

그가 아주 가까이 있는 거다.

조웅이 이런 곳에 은신처를 마련한 게 그를 생각해서인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어린 시절에 본 얼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잘 지내고 있을까.

‘상계동 건물 판돈을 줬다는데……’

조웅이 말했다. 그동안 명지훈의 신분을 사용했다는 것, 그 대가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명지훈과 나눔자리를 위해 매매대금을 계좌에 넣었다는 거다. 나눔자리 원장은 다른 마음을 가질 사람이 아니니 걱정 없다면서.

‘돈이란 게 요물 같아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건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면서 장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현실을 응시하며 집중했다. 현재 위치의 안전, 조웅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마는 점검했다.

한마디로 이곳은 등하불명의 위치, 평범 속에 스며든 형국이다.

‘외진 곳이 아닌 전원주택단지.’

그런 점을 이용하는 거다.

외진 곳에 숨는 다면 오히려 더 꼬리를 잡힐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편이 현명하다.

다닥다닥 붙은 도심의 집이 아니기에 이웃들과 부딪칠 일도 전혀 없다.

‘교토삼굴이라더니, 어디 또 이런 곳을 두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교활한 토끼는 굴 세 개를 판다고 한다, 조웅은 만일의 만일을 준비하는 인물이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과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 경험 속엔 조웅이 태어나 처음으로 미래를 꿈꿨던 여자도 있었다.

‘그때 도망친 게 제대로 됐다면 잘 살았을까?’

조웅의 과거, 장철 자신이 달려가지 않았다면 죽었을 그때, 조웅의 그녀는 결국 죽었다. 그때 조웅은 혼을 잃은 사람처럼 굴며 비탄에 빠졌다.

‘우리 같은 자들의 삶이 평화로울 리가 없겠지.’

회한의 숨을 장철은 소리 없이 흘려냈다.

회한, 평생 그런 걸 품어본 적 없지만 이젠 정말로 후회를 하고 있다.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 이러고 있진 않을 텐데 하는 후회.

하나마나한 짓이란 걸 알지만 하게 된다.

‘은주, 네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다를 터다, 많은 것이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어쩌면 이런 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딸 민지와 손녀 영이와 함께 사는 거다.

그 아이들에겐 아무런 일도 안생기고 웃으며 산보를 다니는 거다.

‘영아.’

손녀 장영의 그 웃음을 다시 한 번 볼 수만 있다면.

“뉴스 봐라.”

등 뒤에서 들려온 조웅의 목소리에 장철은 숙이던 고개를 들었다. 머릿속의 사념들과 가슴 속의 감정들을 단번에 밀어냈다. 돌아서 tv를 봤다.

-온누리그룹의 공식발표가 나왔습니다.

조웅이 앉은 소파로 다가간 장철은 엉덩이를 붙이며 tv속 기자를 응시했다.

-온누리전자 한용수회장은 부친 한대건 총회장의 죽음을 공식 인정하고 장례절차를 밟는 다고 밝혔습니다. 장례식장은 온누리병원, 장지는 용인의 선산으로 알려졌습니다. 온누리그룹은 조용한 가운데 장례준비를……

조웅은 냉소를 흘려냈다.

“안 죽을 놈이 죽었나? 세상에 안 죽는 놈 있어? 호들갑은.”

장철은 침묵 속에서 뉴스만 응시했다.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막내아들 한진수씨를 간병하려 가평에 칩거 아닌 칩거를 시작한 한대건 회장은 끝내 희대의 살인마 귀신 장철에 의해 살해당한 것입니다. 온누리 그룹을 세계굴지의 기업으로 일군 한대건 회장, 그의 죽음은 재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

“과일 드세요.”

미쓰리, 이영숙이 가지고온 과일 접시로 장철과 조웅은 시선을 모았다. 옅은 계면쩍음을 아닌 체 하며 거실 테이블 곁에 앉은 이영숙은 말한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조웅은 미간을 좁혔고 장철은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뭐가 어떻게 돼?”

“저거 보세요? 온통 난리잖아요? 온누리그룹 총회장이 살해당한 사건이란 말이죠? 그동안의 사건들로 인해 일어난 결과인 거잖아요? 합수부가 차려졌지만 있으나 마나고, 국민들의 불안을 정부가 보고 있겠어요?”

이만큼이나 됐는데? 라는 이영숙의 눈을 보고 조웅은 쩝 하고 쓴 입맛을 다셨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커져버린 상황을, 사회적 동요를 정부입장에선 모르는 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뭘 어떻게 할까.

“위험해 질 것 같아요.”

이어 나온 이영숙의 목소리엔 두려움이 가득 배어 있다.

뭐가 어떻게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아 질 거라는 예감인 거다.

귀신이란 존재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대응해 온다는 위험이다.

“달라질 건 없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장철은 담담히 그 말을 냈다.

조웅이 먼저 돌아봤고 이영숙이 그랬다.

두 사람이 시선을 얼굴 왼쪽으로 받는 장철은 표정이 없다.

이영숙이 말하고 조웅이 염려하는 것 따위는 모르는 눈빛이다.

“지금까지도 비슷했어.”

지금까지, 한대건회장을 죽이기까지의 과정이다.

합수부가 귀신이란 존재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온누리그룹과 세경그룹에서 덤벼들던 일이다.

그건 이영숙이 말한 위험이다.

더 위험해져봐야 오십보백보다.

-세경그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의 기자에서 보도국의 앵커로 화면이 바뀌었다. 장철이 응시하는 tv로 조웅과 이영숙도 시선들 돌렸다. 세경이란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세경그룹은 귀신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백운호수사건의 진실이라는 내용이 온라인에 퍼져 기정사실화된 마당입니다. 고종환회장의 딸 고초희가 정말로 귀신에게 공격당한 것이라면, 한대건 회장과 같은 일이 고종환회장에게도 닥칠 것이라는……

장철은 소파에서 일어섰다.

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조웅과 이영숙은 말없이 바라봤다.

방문이 닫히자 두 사람은 다시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오빠가 자기 얼굴도 못보고 간다고 섭섭해 했어.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아내 유인주의 목소리엔 정말로 서운함이 들어 있었다. 새벽에 도둑처럼 몰래 나왔기 때문, 형사의 삶인 거다.

“처남한텐 미안하다고 말해 줘.”

-뭐 하나마나지, 매제가 짭새인 걸 어쩌겠어.

“어이구 마님, 짭새라는 말이 아주 입에 착 붙습니다요.

-뭐래 이 마당쇠가?

몇 마디 더 쏴 붙인 아내 유인주가 몸조심하라며 뽀뽀를 날린 후 전화를 끊었다.

새삼 몸조심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던 최재우는 현실에 집중했다.

한대건회장이 살해된 결과, 이후는 어떠할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정부차원의 대국민 발표라도 있을까?’

그래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이건 그냥 살인사건이 아닌 거다.

온누리그룹이라는 재벌기업의 총수가, 국제적 명망을 가진 인물이 살해됐다.

사회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귀신사건을 한시 빨리 종식해야 한다.

“후.”

한숨을 내쉰 최재우는 내비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차창 밖 전방을 응시했다.

포천시 선단동에 위치한 대학교다. 윤일한 박사가 소개해준 전문가는 이곳에 있다.

역시 대학교수, 괴짜라고 하더니 통화도 괴상했다.

‘내가 이 동네를 와 봤었나?’

기묘한 느낌, 분명히 초행인데 와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다.

‘피곤해서 이런가?’

기시감 같은 느낌을 밀어낸 최재우는 이제 봐야 할 사람을 생각했다.

‘오거나 말거나 맘대로 해라, 자기가 있으면 만나는 거고 없으면 마는 거라고?’

황당한 소리를 들었지만 왔다. 이제 괴짜교수가 뭐라고 할지 들어봐야겠다. 물론 그전에 그가 학교에 있어야 한다. 어떻든 할 일은 이것뿐이다.

차문을 열고 나간 최재우는 연구동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 * *

촤륵 촤르륵, 카메라 셔터가 연속해서 눌리는 소릴 들으며 박인수는 침을 삼켰다. 목표를 주시하는 망원카메라가 잡은 영상과 사진들이 모니터에 뜨고 있다. 현재 위치한 건물 맞은편의 한옥집, 대형 음식점이다.

‘해오름파 구천동, 네가 역시 왔구나.

전국 일위 조직의 보스다.

서울 강북과 강남을 아우른 희대의 인물이다.

해오름이란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저 놈에게 걸리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렇지만 외형은 무시무시한 조폭 두목이 아니라 기업가다.

‘다 모였어.’

예상한 대로다. 전국의 조폭두목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희대의 사건이라고 할 일이다.

저럴 수 있는 배경이라면, 저 짐승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인물이라면 역시 고종환이다.

그 흡혈귀 늙은이도 올 거다.

‘고종환, 과연 영감다운 대응이라고 해야 할까?’

심중의 감정과 생각을 박인수는 곱씹었다.

온누리그룹이 실패한 귀신의 대응, 저런 조폭놈들로 가능한 것인지 더듬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조폭들도 과거완 다르다. 회칼이나 휘두르는 시절은 이제 흘러갔다.

‘국제적으로 노는 새끼들.’

야쿠자는 물론 삼합회등과도 교류한다, 거긴 정말로 무시무시한 놈들이 우글거린다. 그런 것들을 끌어들이게 된다면 큰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도 겨우 온 거다.

‘폭력조직들의 이상동향 파악.’

그걸 주장해 서장의 허락을 받았지만 거기까지인 거다.

저것들이 저기 모인 이유와 배경에 대해선 언급하지도 않았다.

보고하나 마나란 걸 서장의 눈을 보고 알아서다.

그라고 눈치가 없을까,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합수부 차원, 혹은 이이상의 대응이 나올 때까지 엎드려 있는 거지.’

어금니에 몰린 힘을 숨으로 풀어낸 박인수는 순간 눈에 힘을 줬다.

‘왔구나!’

모니터에 대형세단이 잡혔다. 벤츠다. 커다란 한옥집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조수석에서 내린 퉁퉁한 장년남자가 뒷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나오는 자는 고종환이다. 구십의 노구인데도 꼿꼿한 허리를 펴고 들어간다.

‘흡혈귀 영감……!’

긴장한 형사들의 숨소리 속에서 박인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정갈한 윤기를 흘려내는 마루를 딛고 올라선 고종환은 안으로 걸어갔다.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하는 마담이 열어주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소리로 열린 미닫이 문 안에는 스무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다.

고종환이 멈춰 서자 스무 명의 남자들은 일제히 일어서 허리를 굽혔다.

“회장님.”

한목소리처럼 나온 인사, 전국 조폭보스들의 굽힘 앞에서 고종환은 상석으로 움직였다. 방석위에 앉아 손짓했다. 보스들은 허리를 펴고 앉았다.

일자로 놓인 긴 상의 상석에서 좌중을 주시하며 고종환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자신을 바라보는 보스들의 눈을 일일이 마주 응시한 고종환은 주전자를 들었다. 투명한 술이 찰랑이는 그걸 들고 일어섰다. 보스들의 술잔에 차례차례 술을 따랐다. 그때마다 보스들은 무릎을 꿇으며 술을 받았다.

김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술잔 채우기를 마친 고종환은 자리로 돌아와 제 술잔을 잡았다. 김부장이 얼른 술을 채웠다. 그 잔을 들고 웃었다.

“위하여.”

고종환이 술잔을 넘기고 난후 스무 명의 보스들은 술잔을 넘겼다.

* * *

“거기 앉아 기다리세요.”

눈길만 한번 준 교수, 나인규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생각보다 젊다. 마흔 안팎으로 보인다, 최재우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데 대학교수다.

‘진짜 괴짜처럼 보이네.’

다행이라고 할까, 어디 안가고 교수실에 있었다.

그런데 찾아온 손님을, 전화하고 약속한 사람을 이렇게 없는 것처럼 대하고 있다.

뭘 하는 지 문서를 탐독중이다.

안경 안쪽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수재의 전형이다.

“채널링 때문에 오셨다고요?”

툭 날아온 나인규 교수의 물음에 최재우는 흠칫하며 반응했다.

“아예, 그렇습니다.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윤일한박사님의 소개로……”

“통화했어요.”

책상을 돌아 나온 나인규 교수는 탐독하던 문서뭉치를 응접 테이블에 놓았다. 그렇게 최재우와 마주보고 앉았다. 씩 웃으며 하는 말은 놀랍다.

“이게 채널링에 관한 연구자료입니다.”

최재우는 테이블에 놓인 문서에 시선을 박았다. 드디어 길을 찾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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