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71화 (71/200)

황혼의 살인자. 71. 채널링(Channeling).

71. 채널링(Channeling).

-내일 오후면 도착하게 될 거야.

귀를 파고든 동생 한경수의 목소리에 한용수는 가늠했다.

워싱턴은 지금 정확히 몇시일까.

꼬박 하루하고도 한 시간의 시차가 나니까 아직 일요일이다.

한국은 지금 4월 11일 월요일, 한경수가 있는 곳은 일요일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다 취소했어.

그렇다, 동생 한경수는 온누리자동차의 보스로 미국에 갔다.

조지아주에 신설하는 자동차공장과 관련해서다.

정관계 인사들과 미팅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한대건 총회장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은 거다.

‘슬프진 않아.’

동생 한경수 회장의 가슴에 그런 것은 없다는 걸 한용수는 알았다.

목소리의 기색을 가늠하나 마나다.

감정을 숨기고 억눌러서가 아니라 그런 거다.

한용수 자신과 달리 동생 한경수는 분노 같은 감정도 없는 거다.

‘그게 우리 가족이니까.’

폰을 귀에 댄 체 한용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 한대건회장이 젊은 여자를 사랑하는 걸 바라보던 시절, 그 여자가 배다른 동생 한진수를 낳고 죽을 때 비통해 하던 아버지를 보며 동생은 말했었다.

[난 울지 않을 거야.]

그 말의 의미를 나중에 알았다.

아버지가 사랑한 젊은 여자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인 거다.

동생이 말한 것은 다른 죽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안 운다는 거였다.

-귀신이라는 자는 아직도 꼬리조차 못 잡고 있는 거지?

이어 나온 한경수의 물음, 한용수는 현실로 돌아와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 정말 귀신같은 놈이다.”

-맞아, 그러니까 귀신이라고 불렀겠지. 애초에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린 거야. 진수 그 새끼가 언젠가 이런 사고를 칠 줄 알았어. 날 때부터 알았지. 에미를 잡아먹고 태어나더니 이젠 아버지가 까지 잡아먹은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한용수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자신에게도 그런 감정과 생각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진수는 정말 암덩어리였다.

-진수 그 새끼가 사고를 치면 늘 전전긍긍했었지, 그룹의 이름에 똥물이 튈까봐. 우린 그냥 앉아서 똥바가지를 뒤집어쓰게 되는 거잖아. 형도 그랬을 거야. 전자야 생활가전 선전이 매일 나가니까 정말 신경쓰이지.

“우리가 한 게 뭐 있냐, 뒤치닥거리는 늘 아버지가 했지.”

정작 큰 피해는 없었다는 의미로 말했지만 한용수는 새삼 넌덜머리를 냈다.

가슴 속에 늘 한진수에 대한 염오(厭惡)가 가득했다.

부친 한 대건회장만 아니면 어떻게든 치워버렸을 존재다. 그러고 싶어 몸서리쳤었다.

-어떻게 보면 귀신이 우리 암덩이를 떼 준거야. 그렇지 않아?

한진수의 죽음을 이르는 말, 한용수는 대답은 안했지만 십분 공감했다.

정말로 바라마지 않던 일인 거다.

그 일이 생겼다.

한진수가 귀신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인지했을 때, 사건 초기엔 짜릿한 전율을 삼켰었다.

‘처음엔.’

그런데 좋아만 할 수 없었다.

그룹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현실인 거다.

역시 한진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윤진건설의 아들 같은 놈에게 제가 한 짓을 덮어씌운 거다.

정말로 그놈다운 짓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진실을 알 수가 없는……’

세경의 고초희란 년이 끼어 있다.

밤의 여신이란 정체모를 존재가 언론에 제보하고 온라인에 퍼트린 내용에 의하면 사고의 핵심 주체는 고초희다.

그 고초희도 한진수처럼 귀신에게 당했다.

결과를 보면 진실이다.

그런데 진실 따위는 상관없다.

만들어진 결과와 그로인해 닥친 현실이 중요할 뿐이다.

한진수라는 암덩이로 인해 부친 한대건회장이 살해된 결과, 이건 더 이상 묵과하고 돌아서 있을 수 없는 거다.

복수해야 한다.

-형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나는 반대야.

정말 현실적인 냉정함으로 한경수의 목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할 게 뻔하지. 귀신을 잡아 복수하겠다는 거.

한용수는 찡그린 미간을 꿈틀거렸고 한경수는 계속 말했다.

-형은 아버지하고 입장이 달라. 그걸 냉철하게 인식해야 해. 이제 온누리그룹의 총회장은 형이 하게 되는 거야.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라고.

입장이 다르다는 말을 한용수는 인정했다.

자신은 부친 한대건회장이 아니다.

배다른 동생 한진수에겐 손틉만큼도 애정이 없다.

그의 죽음은 언급했던 표현처럼 암덩이가 떼어진 후련함이다.

귀신에게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만 아버지 한대건회장은 아니다.

피를 갈라주시고 생명을 주신 분이다.

온누리그룹을 주셨다.

그런 분을 죽였다.

한대건이란 이름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온누리 그 자체다.

이 빚은 갚아야 하는 거다.

‘그 누구도 온누리란 이름 앞에서 고개 들지 못하도록.’

어금니를 무는 한용수에게 한경수의 목소리가 다시 건너왔다.

-귀신은 세경이 상대하게 그냥 둬. 신경쓰지 말라고.

단호하게 주장을 뱉은 한경수는 한층 신중한 목소리를 이어냈다.

-솔직히 귀신을 잡든 말든 난 상관 안 해. 더 이상 그룹과 관련되기를 바라지 않아.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아버지는 당신이 자초한 일로 그렇게 되신 거야. 진수 그 새끼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끝내는 게 맞아.

맞는 말이다. 한용수 자신도 알고 있다. 그런데 입에선 다른 말이 나간다.

“귀신이 총알을 피하더라.”

-뭐?

“가평현장에서 짧은 영상이 찍혔다. 최실장이 미국에서 불러들인 용병들과 싸우는 모습이지. 용병 리더인 피터윤이란 자와 귀신이 붙었는데……”

영상을 떠올리며 한용수는 새삼 한기와 소름을 삼켰다.

그건 정말이지 놀랍다는 걸로 모자란 광경이었다.

분명 귀신은 피터윤의 총격을 피했다.

-무슨 소리야? 총알을 피하다니?

재촉하듯 나온 한경수의 물음 뒤로 한용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분명히 그래, 귀신은 총격을 피했다. 수미터 거리였다. 난사되는 총탄을 피하고 목표에 접근했지. 전투를 업으로 삼은 용병을 개처럼 잡았다.”

그 순간이 전광석화 같았다는 걸 한용수는 새삼 상기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피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났어.”

-제정신이야? 몇미터 거리에서 총격을 피하고 쏜 놈을 죽였다고?

“미친 소리 같지만 그건 가능하다.”

-뭐어?

황당한 반응을 내는 한경수에게 한용수는 나직하게 뒷말을 냈다.

“온누리정신연구소, 거기서 그런 걸 연구하고 있었다.”

* * *

생각해 보니 점심 먹을 시간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최재우는 시장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인규 교수와의 대화, 그가 보여준 자료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제 확실하게 장막이 걷혔다. 뭐가 뭔지 비로소 알겠다.

“이런 연구를 우리나라에서도 했다는 말입니까?”

최재우의 숨 넘기는 물음에 나인규 교수는 마른 뺨을 손으로 비비며 대답했다.

“채널링, 그것과 유사한 형태의 연구는 국내외적으로 아주 많습니다. 뭐 국내는 역사라고 할 것도 없이 일천하고 데이터도 거의 없지만 해외는 다르죠, 특히 미국은요. 그들은 비공식적인 연구와 데이터가 많습니다.”

“비공식적이라면……?”

“사적인 연구모임, 종교를 통한 시도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미국인들은……”

나인규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최재우에게 들은 내용을 언급한다.

“형제보육원이란 곳에 드나들었다는 미국인들의 정체는 아무래도 미군 쪽이지 싶습니다. 서산이면 오산하고 가깝죠? 아마 거기서 왔을 겁니다. 아시죠? 탄저균 연구 같은 것도 거기서 한다는 거? 그것들이 그러죠.”

그것들이 그런다, 남의 나라에서 위험한 짓을 하는 거다, 허가 받지 않고 몰래 하는 거다. 미국은 그래왔다. 어떠한 짓들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미국과 관련된 거라면 자료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죠. 오산기지에 들어가서 뒤지지 않는 이상.”

“뒤진다고 해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요? 수십 년 전의 일이니까요?”

“그보다는 그때 형제보육원을 출입한 미국인들은 기지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을 겁니다. 본토에서 특명을 받고 와서 연구하다 간 자들이겠죠. 오산기지에 뭘 남겼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 연구는 철저히 기밀이니까요.”

철저한 기밀, 그 의미를 곱씹던 최재우는 진정한 의문을 물었다.

“도대체 이런 실험을 통해서 얻으려는 게 뭡니까? 얻어지긴 하는 겁니까?”

나인규는 다시 또 마른 뺨을 쓰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다양한 의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미군에 의한 행위라면 목적은 뚜렷하죠. 군사역량의 강화, 비대칭 전력의 확보, 그런 겁니다. 얻어지는 결과가 있냐면 말하기가 애매합니다만, 인간의 정신은 무궁무진하죠.”

무궁무진, 들은 말을 이 사이에 문 최재우는 이어 나오는 이야길 들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83년 9월에 대한항공 KAL 007기 격추사건이 있었죠.”

최재우는 미간을 좁혔다. 83년이면 자신이 세 살 때다.

지금 나인규 교수가 언급한 사건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기억은 없다.

그런데 그해에는, 83년에는 사건이 많았다.

미얀마 폭발, 또 다른 KAL기 폭발.

“전두환군사정권 시절이죠. 지금도 미스테리가 풀리지 않고 있는 사건입니다. 당시 비행기는 정해진 경로가 아닌 구소련의 영공을 침범해 비행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수호이 전투기들이 출격해 미사일을 날렸죠.”

“탑승했던 민간인승객들이 전원 사망했다고 압니다.”

“그랬죠, 269명이 전원 희생됐습니다. 해당 비행기는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이륙해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해 김포로 오는 경로였습니다. 그런데 사할린 섬 근처에서 미사일을 맞은 거죠. 소련의 주장은 해당 비행기가 민간여객기가 아니라 위장한 미군정찰기였다는 겁니다. 교신을 시도했지만 KAL기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하죠. 미스테립니다.”

사건 전체가, 라는 말은 나인규의 입에서 작게 이어져 나왔다.

“그런데 그 사건에 무슨……”

나인규는 응접 테이블을 응시한 모습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소련의 비대칭 전력에 의한 사고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

시선을 들어 최재우의 눈을 응시한 나인규는 뒷말을 이어냈다.

“미국과 소련은 당시 군축 협상 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뒤로는 서로를 이길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죠. 그런 것 중 하나가 바로 휴먼웨폰, 인간의 정신연구입니다. 알려진 음모론 중의 하나입니다만, 대한항공 여객기는 소련 초능력자에 의해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확인된 게 손톱만큼도 없는 이야깁니다.”

“예에?”

황당한 반응의 최재우를 무시하고 나인규는 계속 말했다.

“미국과 소련은 초능력자 양성과 같은, 황당하지만 현실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영역의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튜브엔 관련된 영상들이 있습니다만, 그런 허위가 아닌 진실의 문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런 게 정말로 있었다는 겁니까?”

“자료를 보여드렸잖아요? 최팀장님 눈 아래 있는 그 자료들에 다 있습니다. 채널링을 통해 보통 인간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행동을 만든 사례들, 종교적인 것들이 아니어도 아주 많습니다. 그게 확인 가능한 거죠.”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하고 삼킨 최재우는 본직의 의문을 뱉었다.

“채널링 이란 거, 그걸 하게 되면 뭐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니 인간의 정신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정말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접촉하게 되는 겁니까? 그런 일을 통해서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겁니까?”

나인규는 피시시 웃음을 흘려냈다. 그게 비웃음이 아니란 걸 알지만 최재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은 의문투성이인데 저렇게 빙글거려서다.

“아 미안합니다. 생각해 보니까 나도 우스워서요. 이런 문제를 가지고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게요. 관심을 가진 사람이 오랜만이거든요.”

나인규 자신도 묻어두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최재우가 찾아온 거다.

“이게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분신사바게임 아시죠?”

최재우는 더욱 찌푸리는 데 나인규는 개의치 않고 말한다.

“그게 일종의 채널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인간적인 존재와의 접촉, 그로인한 탈인간으로의 결과의 바람, 그건 인간의 역사 속에 늘 있어온 겁니다. 그래서 방법들이 모색되고 만들어진 거죠. 채널링은 그겁니다.”

탈인간,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이쳐 최재우는 이를 물었다.

‘귀신.’

장철이 바로 그렇다.

그는 보통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영화에서처럼 초인간적인 능력을 보인 건 아니지만 그가 만든 결과가 그렇다.

보통사람이라면 총 든 자들과 싸울 수 없다.

이미 죽었어야 한다.

‘다른 인간.’

귀신 장철은 분명히 그런 존재다.

“더 이상은 말해 드릴게 없네요.”

나인규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최재우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더는 나인규 교수에게서 얻을 게 없음이다. 그러자면 미군기지로, 오산으로 가야한다. 거기도 뭐가 없을 테지만 진입 자체가 안 되는 거다.

“시간내주시고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일어서는 최재우를 따라 일어선 나인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귀신이라는 그 사람,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나인규의 눈을 응시했던 최재우는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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