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73. 죽은 자의 목소리.
73. 죽은 자의 목소리.
해가 졌다. 노을마저 사라지고 어둠이 깔렸다.
전원주택단지엔 고즈넉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산으로 이어진 도로의 가로등과 단지를 밝힌 조명들이 봄밤의 애상을 자아낸다.
그 속으로 걸음을 낸 장철은 산을 올랐다.
‘밝을 때는 피하는 게 좋아.’
주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게 좋다. 지금 엉덩이를 붙인 전원주택엔 조웅과 이영숙이 사는 걸로 인식되도록 하는 거다. 나이차가 조금 나는 부부다, 노년을 즐기는 이들이 사는 곳에 그나마 어울린다.
“흐읍.”
숨을 크게 들이마신 장철은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소형배낭 하나를 메고 산악구보하는 군인처럼 산으로 올라갔다.
구부러진 도로를 한참 달려가니 오지재 정상이 맞아줬다.
해룡산과 왕방산의 사잇길이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동두천 자연휴양림.’
그리고 탑동계곡이다. 기억을 떠올렸던 명지훈이 있는 곳이다.
선명하지 않은 그의 얼굴을 잠깐 붙잡았다가 놓고 돌아서니 바람이 몸을 흔든다.
마치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은 느낌,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이런 곳이 있구나.’
도로를 따라 동두천 방향으로 이십여미터 아래 작은 주차장이 있다.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본래 주차장이라기 보단 도로 옆으로 올라간 해룡산 등산로 시작부분이 넓어진 공간이다. 등산객들의 차가 주차돼 있다.
이차선 도로 건너편으론 왕방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그리고 도로 위로는, 머리 위로는 다리가 연결돼 있다. 왕방산과 해룡산의 종주를 돕기 위해 놓은 다리다. 그 모습과 주변을 눈에 넣으며 등산로에 들었다.
해룡산 등산로.
입구에 화장실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쳐 시멘트도로가 깔린 오르막길을 휘어져 올라갔다.
갑자기 우측으로 확 터지듯 평지가 나타났다.
산을 깎은 게 확실한 공간, 아마도 군부대 훈련장인 것 같다.
‘좋네.’
확 터진 전망, 저 멀리의 산자락과 밤하늘을 응시하며 장철은 공터로 발을 들였다. 포장도로가 아닌 흙바닥의 감각을 느끼며 바람을 맞았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은 산을 스치며 속삭인다.
깊은 곳으로.
장철은 배낭을 벗고 그 자리에 앉았다.
별이 뜬 밤하늘을 머리 위로 두고 산을 깔고 앉아 눈을 감았다.
바람의 노래가 손짓하는 대로 따라갔다.
깊고 고요한 적막, 별빛이 내리치는 밤의 숨결, 그 속에서 장철은 침잠했다. 깊은 곳으로, 아직 내려가지 않았던 계단난간을 잡고 발을 내렸다.
오감이 열린다.
별이 쏟아내는 빛의 감촉이 피부에 느껴진다.
산이 뱉어내는 숨결의 진동이 몸을 울린다. 그 속에 든 모든 것들의 생이 인지된다.
더 깊게.
마음속에 울리는 바람의 속삭임을 따라 장철은 더욱 깊은 곳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던 한순간 멈췄다.
바람의 속삭임이 변해서다.
살랑이며 간질이는 것 같던 그것이 울음으로 바뀌었다.
원한에 찬 통곡이다.
부르르, 미간을 경련한 장철은 뭔지 깨달았다.
눈을 뜨려고 해도 떠지지 않는 지금 이 순간, 통곡으로 일어선 주변의 그림자들.
이것은 원혼들이다. 원귀들이다.
장철 자신이 여태 죽여 온 자들, 그들이 달려든다.
‘이!’
흉악한 기세로 달려드는 원귀들을 피해 장철은 달렸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던 계단은 사라지고 평지다.
달려가는 앞에 건물들이 있다.
등을 잡으려는 원귀들의 손을 피하며 그곳으로 달렸다.
어딘지 알았다.
‘형제보육원.’
그곳이다.
불이 솟구친다. 별관에서 솟구치더니 가동에서 터져 오른다.
원장사택에서도 확산한다. 그 속에 장철 자신이 서 있다.
원귀들이 둘러쌌다.
시뻘건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그들이 비통한 원한으로 소리친다.
왜 죽였어. 우릴 왜 죽였어.
사방에서 뻗어오는 원귀들의 손을 보며 장철은 부들거렸다. 피와 불길로 물든 그 손들에 쥐어뜯기면서, 원한에 찬 울음에 흔들리면서 물었다.
‘왜 죽였지?’
자신에게 물었다.
그날, 형제보육원에 불을 지른 날, 왜 그렇게 했는지.
‘죽여야 했어.’
그래서 죽였다.
불을 질렀다.
죽이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했다.
그렇다, 그날 가동의 형들을 그냥 뒀다면 나동 동생들이 죽었다.
‘원장.’
그 악마 때문이다. 그놈이 준 술 때문이다.
그건 술이 아니라 약이다.
미국인들이 특별치료를 하며 투약하던 것이다.
그걸 원장은 가동 아이들에게 술에 타서 줬다.
이미 그것에 오염돼 있던 가동 아이들이다.
‘살인충동.’
약물의 이름이 뭔지 모른다.
그 약이 체내에 들어오면 폭력과 피를 갈구하게 된다.
그걸 제어할 방법으로 전기치료가 병행됐다.
뇌와 신체의 변화를 미국인들은 체크했다.
어떻게 제어가 되는지, 안되는지 기록했다.
‘돈 때문에.’
원장이 약을 풀어버린 이유는 그것이다.
미국인들의 비밀실험과 연구에 협조하는 대가로 받아 챙기던 돈.
그런데 그게 끊기게 생긴 거였다.
미국인들이 연구를 그만한다는 통보를 한 거다. 그래서 그런 짓을 했다.
‘미국인들도 하지 않은 일을 한 거야.’
가동 아이들에게 전부 약을 투약한 거다.
술이라고 주면서 그렇게 한 거다.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 버린 거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모르고 의식하지도 않고 노린 거다.
‘결과가 생기면 미국인들이 계속 할지도 모르니까.’
결과, 예측하기 힘든 결과, 그걸 장철 자신은 예측했다. 약물을 경험해봤기에 알고, 의식이 없는 것처럼 눈을 감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제어 할 수 없는 약.’
그 약물은 그런 거였다.
투약기준량을 무시하면 그런 일이 생긴다.
그 일은 미국인들도 차마 하지 않은 거다.
결과를 감당하기가 두려워서다.
피실험자의 목숨을 물론이고 주변까지 위험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원장, 개새끼.’
인간이 아닌 그 존재는 그날 그 일을 저질렀다. 장철 자신은 주어진 술을, 그걸 마시는 척 하고 버린 후에 결정했다. 반드시 끝장내야 한다고.
“그래서야.”
장철은 명료하게 말했다. 자신을 쥐어뜯고 흔드는 원귀들에게 말했다. 너희를 죽인 이유가 그래서라고, 나동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살기 위해서.”
화르르, 목을 잡고 있던 원귀의 손이 흩어진다.
원한에 차 통곡을 토해내던 얼굴도 사라진다.
끔찍한 저 얼굴이 누군지 기억난다.
장철 자신을 처음부터 괴롭히던 형 중의 하나, 원통에 찬 형상은 무로 돌아간다.
하나하나 흩어졌다.
기억 속에 있던 얼굴들, 원귀들이 재처럼 휘날린다.
그들의 원한도 사라진다.
존재를 옥죄던 원한의 기운은 바람에 날린다.
깊은 곳으로.
마음속의 울림을 따라 장철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 * *
드디어 통보가 왔다. 정식절차를 밟은 것도 아니고 문자로 온 통보다. 합수부에서 잘라내는 고지, 허탈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개운하기도 하다.
“시원합니다. 여기가 원래 우리자리 아닙니까.”
유지건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책상을 탕탕 친다. 신명경찰서 강력계, 원래 자리다, 원래대로 모였다. 최재우와 홍인구와 송치호와 유지건이다.
“합수부는 어쩌려는 걸까요?”
송치호가 정말 궁금하단 듯이 입을 열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이렇게 끌고 갈 수 있다고 보는 걸까요? 죽은 자들이 몇인데, 상계동에서 사망한 오동진 같은 경우는 어떻게 처리하려고요?”
홍인구가 바로 반응하며 입을 연다.
“그건 이미 포장 덮었잖아? 오동진이가 거기서 죽었다는 걸 아는 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뿐이데, 그 입들을 단속하는 게 어려운 일인 아니지. 음 어렵나? 뭐 아무튼 결국 비밀이 샌다고 해도 루머가 되는 거니까.”
“이미 루머죠, 온라인에서만 떠드는.”
유지건의 흥, 하는 맞장구 뒤로 송치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동진의 시체를 온누리그룹에 넘겼다고 해도, 확인한건 아니지만 그게 확실한 건데, 그것들이 언제까지 숨기고 어떻게 처리 한다는 거야?”
“짐작이 안돼서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정말 그러냐, 란 홍인구의 눈빛에 송치호는 인상구기며 입맛을 다셨다.
“뭐 사고 같은 걸로 위장하기야 하겠지만.”
듣고 있던 최재우가 느릿하게 목소릴 냈다.
“합수부가 이 지경인건 의지가 1도 없기 때문이다.”
송치호와 홍인구와 유지건은 최재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들은 오로지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 싸움밖엔 관심이 없어.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재갈을 물릴 방법을 찾아서 혈안이 돼 있을 뿐이지. 견원지간, 그거다. 귀신 사건 같은 건 손 밖의 문제인 거야. 아프지 않은.”
무거운 숨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홍인구가 조심스레 말한다.
“그래도 온누리그룹 한대건이 같은 자가 죽었는데 뭔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정부차원에서 대응한다든지요?”
바로 받는 송치호에 이어 유지건의 눈까지 응시한 최재우는 답했다.
“그러면 합수부가 더 눈치보고 요령부리겠지. 윗자리가 나선다면.”
찌푸려지는 형사들의 표정을 보며 최재우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귀신, 장철에 대해서 알아낸 게 있다.”
다시 시선을 모은 형사들, 그 눈이 반짝이는 이야기를 최재우는 이어냈다.
“형제보육원에선 특별치료, 비밀치료라는 게 별관에서……”
* * *
긴장한 숨을 삼킨 김부장은 폰을 노려보듯 응시했다.
스무 명의 전국 조직보스들 중 해오름파 구천동과 오성파 전두칠, 남천파 지경호만 남았다.
고종환회장과 그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중에 나온 이유는 이것이다.
-온누리병원에서 앰뷸런스 한대가 외부로 이동했습니다. 응급출동이 아닙니다. 병원 내부에서 환자를 싣고 나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영상을 보며 김부장은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자신의 지시로 이뤄진 일, 연은수를 병원 외부로 빼는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 저렇게 촬영했다.
-밤의 여신님이 알려주신 진실입니다.
밤의 여신, 그 말이 머리통을 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다.
-자 그러면 진실이 무엇인지 이제부터 까보이겠습니다.
과장된 치장과 표정의 유튜버는 병원을 배경으로 서서 이름 하나를 뱉었다.
-연은수, 앰뷸런스에 실려나간 환자의 이름입니다.
김부장은 숨을 멈췄고 유튜버는 계속 말했다.
-연은수가 누구냐고요? 글쎄요, 모릅니다. 밤의 여신님에 따르면 연은수는 인천에 거주하는 이십대의 아가씨입니다. 현재 어딨는지 모르는 상태고요. 가족이 없어 실종신고도 안 된 모양입니다. 신고 돼도 경찰은 아시죠? 예, 짭새들이 뭘 하겠습니까? 늘 그렇듯 시늉만 하고 말겠죠.
유튜버는 화면에서 사라지고 앰뷸런스 영상이 다시 나왔다.
-중요한건 이겁니다. 왜 환자를 도둑질 하듯이 몰래 병원에서 빼냐는 거지요. 아예, 이건 뺀 게 맞습니다. 연은수란 환자가 온누리병원에 입원한, 머물렀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병원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다가 그런 환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죠?
왜 거짓말인지 바로 말한다.
-밤의 여신님이 알린 진실과 배치되는 거짓인 겁니다.
미간을 찡그리면서 김부장은 계속 들었다.
-과연 어디로 데려간 걸까요? 연은수란 환자가 이송된 다른 병원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디로 갔죠? 누가 그녀를 병원 밖으로 뺀 걸까요? 무슨 의도로요? 애초에 연은수란 환자의 정체는 뭐고요? 아무것도 모릅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건 연은수가 온누리병원에 온 날입니다.
김부장은 숨을 멈췄다.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에서 사건이 벌어진 날, 바로 그날입니다.
* * *
바람의 숨결이 사라졌다. 그 대신에 다른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내려가는 계단의 아래, 깊은 곳에서가 아니라 위로부터다.
낭랑한 소리, 왜 그런지 조롱하며 흥겨워 하는 것 같은 소리다.
그 울림이 잡아당기고 있다.
미간을 찡그린 채 어깨를 떤 장철은 긴 숨을 토해냈다. 동시에 눈을 떴다. 밤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현실을 자각했다. 지금 어딨는지를.
‘날 불러올린 웃음은……’
기이하게 돋아 오르는 소름 속에서 장철은 알 수 없는 분노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