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74화 (74/200)

황혼의 살인자. 74. 장막을 걷어라.

74. 장막을 걷어라.

-기묘한 우연이 아니겠습니까? 아뇨 솔직히 말하면 소름 돋는 우연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앞뒤를 맞춰보면 그렇잖아요? 고초희가 귀신에게 공격당했다고 알려진 날 연은수가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세경은 고초희가 아무 일 없고 안전하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어딨는지 모르죠.

유튜버가 떠들어 대는 모니터를 한용수는 뚫어지게 응시했다. 적막만 남은 한밤의 회장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강남의 불빛 속에서 숨을 쉰다. 온누리병원 앞에서 떠들어 대는 저 유튜버의 말에 든 진실을 삼키며.

-물론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증거를 대라면 내 보일게 없죠. 하지만 밤의 여신님이 밝힌 내용인 겁니다. 세상이 모르는 진실을 말하는 분이죠. 우리가 보고 듣고 인지하는 것들 너머에 있는 진실을 요.

유튜버는 병원을 화면에 담아내며 계속 떠든다.

-저 병원에 연은수란 여자가 있었습니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몰래 나갔습니다. 세경의 고초희도 이병원에 있다고 알려졌었습니다. 역시 몰래죠. 그 둘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병원이란 접점과 같은 날 왔다는 공통점만이 전부일까요? 고초희는 아직 온누리병원에 있는 걸까요?

주장하려는 게 뭔지 유튜버의 입에서 이내 나왔다.

-혹시 말이죠, 연은수와 고초희는 동일인이 아닐까요? 세경에서 연은수란 신분으로 고초희를 덮어 놓고 있던 건 아닐까요? 예, 어차피 병원에 들어온 것 자체가 비밀인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초희란 인물에 대해 알려진 게 없습니다. 사진도 없죠.

한용수는 미간을 꿈틀거렸다.

‘그년에 대해서 드러난 게 거의 없긴 하지.’

한용수 자신도 고초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전략기획실에서도 불명확한 사진 몇 장 확보한 게 전부다.

고초희로 지목하고 찍은 사진 속 여자는 늘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나마도 불확실 하다.

‘진짜 고초희였는지.’

중학생시절 분명하게 드러난 사진 말고는 고초희의 사진은 없다.

세경의 흡혈귀영감이 철저하게 감춰온 결과다.

그년은 온누리병원에 있었다.

‘데리고 나갔는데, 그게 고초희가 아닐 수도 있단 말이지?’

미간을 꿈틀거리며 한용수는 찻잔을 잡았다. 늘 음용하는 녹차다. 쌉쌀한 맛이 입안을 훑고 목으로 넘어가는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모니터 속 유튜버가 하는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일지, 무엇을 못보고 있는지.

-만약에 말이죠, 온누리병원에 들어왔던 게 고초희가 아니라면, 몰래 데리고 나간 연은수라면, 고초희는 살아 있는 게 맞습니다. 무사하게요.

나름 긴장한 모습을 연출하려 유튜버는 침을 꿀꺽 삼킨다.

-밤의 여신님에 의하면 연은수란 신원은 확실합니다. 병원에 들어왔다 나간 것도 분명하고요. 자 그럼 고초희가 연은수란 신분을 덮어쓰고 있다가 당해서 병원이 있던 건지, 아니면 고초희는 무사하고 연은수가……

“고초희 대신 당한 건지.”

부지 간에 목소릴 뱉은 한용수는 다시 녹차를 음미했다. 생각의 갈피가 무섭게 일어서는 속에서 혼란 속에 빠지지 않으려 집중하고 집중했다.

‘고초희와 연은수가 연관이 있는지 조차도 불분명한 상황.’

범의 여신이란 년이 말한 걸 유튜버들이 떠들고 있는 거다.

확인된 증거들이 없다. 하지만 밤의 여신이란 그년이 문제다.

그년은 알고 있었다.

‘백운호수, 상계동.’

그년이 누군지 모르겠다.

세경이 은밀히 한 일까지 이렇게 까발렸다.

어떤 의도로 이러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저 안에 진실이 있다는 거다.

‘세경은 뭣 때문에?’

원천의 의문이다.

세경이 갑자기 고초희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갔다.

이유가 뭔지 모른다.

짐작할 수 있는 건 부친 한대건이 귀신에게 당해서라는 거다.

그 직후에 한 일이다.

고종환회장의 차례란 걸 인지하면서다.

‘그래서 데리고 갔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흡혈귀영감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부친 한대건회장이 이복동생 한진수와 같은 자리에 있다가 당한 걸 알면서 이건 뭘까?

그래서다? 병원 말고 더 안전한 장소로 가려고? 아니면 유인?

‘우리가 실패한 걸 성공한다?’

고종환회장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안다.

결코 그 늙은이의 힘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하고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힘은 온누리에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활용하고 대응하지 못해 당한 거다.

‘늙은이 당신이라면……’

어차피 귀신을 찾아내긴 어렵다. 그러니 찾아오도록 하는 게 빠른 방법이다. 그래서 고종환회장이 수를 쓰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뭔가 껄끄럽다. 입안에서 모래가 지금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만일, 만에 하나…… 세경도 몰랐다면?’

고초희가 아니라 연은수가 귀신에게 당한 거라면, 그런 결과를 세경도 몰랐던 거라면, 고초희가 무사한 거라면, 세경이 그걸 이제 알았다면.

‘무슨.’

한용수는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지나친 망상 같아서다.

병원에 온건 분명 고초희였다.

현진놈들과 같이 귀신에게 박살났다.

안면이 부서지고 머리에 칼을 박은, 그날 그곳에서 모든 놈들이 경호하던 년이다.

-이게 무슨 퍼즐조각 맞추기 같은 건 아닙니다만, 기묘하고 수상한 우연과 단서들이 굴러가고 있는 건 현실입니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라도 고초희와 연은수가 겹쳐진 존재라면, 만일 고초희가 살아 있는 거라면……

유튜버의 얼굴을 보던 한용수는 털어냈던 생각이 다시 기어오르는 걸 느꼈다. 스멀스멀, 뒷덜미를 기어오르는 그 느낌 속에서 소름을 돋웠다.

* * *

산바람을 맞으며 하산한 장철은 전원주택단지의 인기척을 살피면서,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의 눈을 피해 집으로 향했다. 거실에 불이 켜져 있다.

조웅이 아직 안자고 있는 게 확실하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다.

“이제 오냐.”

덤덤한 목소리로 맞아준 조웅, 그런데 눈동자에 든 빛이 다르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배낭을 내려놓는 장철의 반응에 아주잠깐 주저했던 조웅은 말했다.

“고초희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거냐?”

장철은 조웅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물음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어서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숨만 쉬는 시체가 된 거 말고, 온전하게…… 에이 봐라.”

조웅은 폰을 내민다. 받아든 장철은 유튜브방송을 봤다.

“다 헛소리 전문으로 하는 새끼들이긴한데……”

장철은 조웅에게 폰을 넘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폰으로 유튜브방송을 다시 봤다. 고초희와 연은수란 이름을 뇌리에 박으며 석상이 됐다.

* * *

“이게 무슨 소리 같아?”

아내 유인주의 얼굴에 든 의문, 최재우는 답할 수가 없었다.

밤의 여신이 흘린 정보를 유튜버들이 받아 확대재생산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전혀 헛소리만은 아니다.

밤의 여신은 처음부터 사건의 진실을 알던 존재다.

“고초희 대신 연은수란 여자가 귀신에게 당했을 수 있다는 거잖아? 알아, 이런 말자체가 황당한 거긴 한데, 떠드는 것처럼 기묘한 우연과 단서들이 겹치잖아? 정말로 고초희가 무사한 걸까? 연은수가 당한 거고?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최재우에게 연은수는 거듭 의문을 퍼붓는다.

“세경은 알고서 그런 걸까? 연은수를 고초희로 가장해서 온누리병원에 뒀던 거야? 애초에 자기들은 사건과 무관하고 아무 일 없었다고 했잖아?

유인주는 흥분했다.

“그게 아니란 걸 밤의 여신인가가 까발리긴 했지만 증거는 없는 거였고. 그런데 온누리병원에 여태 숨겨뒀던 거라고? 고초희라고 여겼던 연은수를? 세경은 뭣 때문에 그런 건데? 귀신을 속이려고? 아님 몰라서?

한숨을 내쉰 최재우는 입을 열었다.

“이런 주장들이 진실이라는 전제하에서만 가질 수 있는 의문인 거야. 애초에 전제가 잘못 됐어. 확인된 진실과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 마당에……”

“근데 그게 아니란 거 자기도 알잖아?”

빤히 바라보는 아내 유인주의 시선을 최재우는 마주 보지 못했다.

“이 늦은 시간까지 날 기다린 게 이렇게 괴롭히려고야?”

“뭐래?”

웃기는 소리 하시네 란 얼굴로 유인주는 자신의 맥주 캔을 들어 마신다.

“이렇게 밤마다 맥주 마시면 똥배 나온다. 알고 먹어.”

“닥치셔.”

시원하게 캔을 비운 유인주는 최재우를 째려본 후 다시 입을 연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네.”

아직 마시지 않은 최재우의 맥주를 힐긋 거리며 유인주는 뒷말을 냈다.

“밤의 여신인가 하는 년이 노리는 게 있다는 거.”

미간을 좁히는 최재우의 눈을 응시하며 유인주는 핵심을 뱉어냈다.

“고초희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

최재우는 무겁고 뜨거운 숨을 흘려냈다.

* * *

불콰한 얼굴로 술냄새를 숨으로 뿜어낸 고종환은 중얼거렸다.

“뭘 어쩌고 싶은 거냐……”

연못의 잉어들은 대답이 없다.

새벽으로 달려가는 밤의 출렁임만 깊어갈 뿐이다.

이 밤의 어느 곳인가에 딸 고초희가 있다.

칼을 움켜쥐고서다.

‘아비가 뭘 어떻게 해야 되겠니……’

흔들리는 눈길을 연못에 담그며 고종환은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딸이 바라는 게 뭔지 알고 있다.

파멸, 고종환 자신의 파멸이다.

모든 것의 파멸이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도 상관없다.

‘모조리 파괴할 수만 있다면, 제 자신을 불살라서.’

딸 고초희가 하려는 게 그거다.

그걸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얼굴을 봐야 한다.

그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건 귀신이다. 놈을 잡으면 된다.

딸은 귀신에게 강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놈을 잡으면 올 거다.

‘그러지 못하면 지금처럼 계속……’

숨어서 조롱하고 장난 하고 칼을 그어댈 것이다. 못하게 해야 한다. 귀신을 잡아 딸을 단속하고 외국으로 보내는 거다. 그렇게 끝내면 되는 거다.

‘고래, 그놈의 생각대로면 될 거야.’

남천파 보스 지경호, 그놈이 말했다.

진짜 살인자들을 쓰면 될 거라고. 여태 귀신을 상대한 놈들이 가짜 살인자들이어서란 말이 아니다.

귀신을 상대할 만한, 아니 잡아 죽일 수 있는 능력자들, 악귀들을 말함이다.

‘국내에도 있고 국외에도.’

그런 악귀들이 있다고 한다.

피에 굶주린 진짜 살인자들, 그런 것들을 부르겠다고 했다.

귀신만 잡는 다면 돈이야 얼마가 들어가든 상관없다.

‘기회도 생긴 상황이야.’

딸 고초희가 건드려 놓은 일이 기회다.

연은수를 언급하고 고초희가 무사할지도 모른다는 가스가 풍긴 상황.

귀신은 필히 행동에 나설 거다.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다.”

단호한 목소리를 뱉어낸 고종환은 연못에서 돌아섰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그 모습을 밤의 출렁임이 휘감았다. 바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 *

‘개자식들이……!’

R호텔을 노려보며 박인수는 이가는 숨을 삼켰다.

그야말로 초유의 상황이다.

수도권을 장악한 해오름파 보스 구천동과 남부를 대표하는 두 조직의 보스 남천파 지경호와 오성파 전두칠이 한 호텔에 투숙한 거다.

‘세경의 소유.’

최재우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거다. R호텔에 저놈들이 투숙한 배경이기도 하다.

조금 전까지 룸살롱에서 이차를 마신 뒤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여자들을 끼고서다. 뜨거운 숨소리가 여기서도 들리는 것 같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눈 거냐?’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

서로 한자리에 앉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 놈들이 모였다.

어떤 얼굴들이었을까, 술잔을 나누고 긴 시간 이야기를 했다.

‘방법들은 있는 거냐?’

고종환회장으로 인한 결과, 회동의 목적은 고회장을 경호하고 귀신을 잡는 거다. 그런데 온누리 한대건도 실패하고 죽은 마당, 무슨 수를 낼까.

“후아.”

새삼 자괴감이 밀려와 박인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합수부에서도 떨려난 마당, 이 밤중에 이러고 있어서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

저놈들은 흉악한 조폭들,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범죄를 막아야 한다.

“과장님, 고초희가 살아 있을 수도 있을까요?”

갑자기 귀를 파고든 부하형사의 물음에 박인수는 시선을 돌렸다. 조수석에서 폰을 보던 부하형사는 보고 있던 폰을 내민다. 그게 뭔지 봤다.

유튜브다. 밤의 여신, 장막 뒤의 그 존재가 풀어낸 가스가 퍼지고 있다.

-백만분의 하나의 가능성으로, 만일 고초희가 살아 있다면……

어금니를 문 박인수는 뱉어내는 숨이 떨리는 걸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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