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75. 살아 있으면 안되잖아.
75. 살아 있으면 안 되잖아.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여자를 문형철은 돌아봤다. 하얀 어깨의 굴곡을 드러낸 채 깊이 잠들었다. 삼진토건에서 지난밤 안겨준 여자, 지금 몸을 뉘인 이 작은 호텔 지하의 룸살롱 여자다. 정말이지 잘 잔다.
‘저렇게 잠들 수 있다는 게……’
부럽다. 부러워할 일이 아닌데 그렇게 됐다.
문형철 자신과는 상관없던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오동철과 오동진이 죽은 후 부터다.
그들의 얼굴이 떠올라 잠들 수가 없다.
오동진과 병원에서의 마지막이 생생하다.
‘씨발.’
가슴이 아프게 뜨거워져 문형철은 손으로 세차게 문질렀다.
하지만 더해만 질뿐, 침대에서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셨다. 벌컥거리며 다 비웠다.
그렇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쓰레기다.
‘비겁한 쓰레기 새끼.’
정확히 그거다, 지금 보고 있는 문형철 자신은 그런 존재다. 부랄 친구 오동철이 죽었는데, 친동생이나 같은 오동진이 귀신에게 죽고 말았는데, 외면하고 돌아서서 이렇게 술만 처마시고 있다. 죽을까봐 두려워서.
‘귀신……!’
그 자는 정말로 귀신이다.
그자에게 온누리그룹 총회장 한대건마저 죽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를 초유의 사건과 현실이다.
귀신에게 걸리면 죽는 거다.
그자는 사신인 거다.
오동철과 오동진은 그걸 몰랐다.
“그래서냐? 사신에게 사형선고를 받을까봐 두려워서 이러고 있냐?”
거울을 향해 문형철은 조소를 던졌다. 비웃음을 흘려내고 있지만 두려움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비겁한 얼굴, 저 눈동자의 주인이 자신이다.
‘동철아, 동진아, 미안하다……!’
고개를 떨군 문형철은 어깨를 부들거렸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비통이 고통스러운 기억과 섞여 숨을 힘겹게 한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오동철, 문형철 자신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던 친구는 이제 세상에 없다.
“으응.”
여자가 뒤척이며 내는 소리에 문형철은 현실로 돌아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침대를 봤다.
시트를 밀쳐낸 여자는 달덩이 같은 둔부를 드러낸 모습으로 계속 잠잔다.
그 모습을 보다 벗어놓은 옷을 잡았다.
흩어져 있던 옷을 하나하나 다시 입은 문형철은 서류가방을 잡았다.
속이 빈 가방이다.
어젯밤에 삼진토건이 원하는 것을 넣어 전했다.
파주시의 개발현장에서 저지른 그들의 비위사건을 무마하는, 대가도 받았다.
‘살아 있어야 이런 걸 누리는 건데……’
그러고 있었다. 오동철과 오동진과 같이 그렇게 살기 위해, 더 높고 크게 날기 위해 준비해 왔었다. 그런데 귀신을 만나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살아 있어야.”
악문 어금니 사이로 중얼거림을 뱉은 문형철은 문을 열고 나갔다.
흐릿한 호텔복도의 조명 속을 걷노라니 냄새가 맡아진다.
인간들의 흔적, 그들이 뱉어낸 욕망과 정욕의 숨결, 지독하게 배어든 악취가 진동한다.
흡하며 숨을 멈춘 문형철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하주차장을 눌렀다. 새삼 엘리베이터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고급스럽고 특별하게 보인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미아사거리 일대에선 이름난 호텔답게 해 놨다.
땡 소리로 멈춘 엘리베이터 밖으로 문형철은 나갔다.
차가 어딨는지 몰라 리모컨은 눌렀다.
일차로 마신 일식집에서 삼진토건 직원들이 끌어다 놨다.
그들은 술 안마시고 대기하는 직원들을 꼭 대동하고서 나온다.
‘갑질에 초과근무의 부당노동.’
문제가 될 일들이다. 요즘은 언론에서 거의 매일 보도하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삼진토건은 해당 안 된다. 철옹성과 같은 그들의 시스템은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걸 허용 안한다. 그들의 세포가 된 직원들은 순응한다.
‘안 하면 죽을 테니까.’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다.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다.
회사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는 순간 식물이 되는 거다.
퇴사하면 그만이 아니다.
관련업계 취업 같은 건 꿈 꿀 수 없다. 철저하게 보복 당한다.
‘저깄구나.’
리모컨에 반응하며 불을 깜빡이는 차를 향해 문형철은 걸어갔다.
신형 아우디가 반겨준다.
전기차다. 이걸 선물해 준 곳이 삼진토건, 맘에 든다.
새끈한 바디와 파워풀한 주행능력은 탁월한 미모를 가진 여자와 같다.
“자, 오늘도 날 흥분시켜다오.”
차문을 열고 앉으며 문형철은 중얼거렸다. 아니 차에게 애정을 속삭였다. 호텔방에서 오동철과 오동진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건 이 순간 잊었다. 살아 있다는, 그렇기에 만끽하는 현실을 즐기며 운전대를 잡았다.
‘괜찮겠지.’
아직 술이 깨지 않았다. 어젯저녁에 시작한 술자리는 이차로 이 호텔 룸살롱에서 새벽 한시에 끝났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잠도 제대로 못잔 마당에 술이 깬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렇지만 운전은 할 수 있다.
‘음주단속하는 위치는 다 알고 있으니까.’
뭣보다 오늘은 음주단속이 없는 날이다. 한다고 해도 시간이 새벽 4시다. 정말 재수가 없어서 추돌사고 같은 게 생기면 모를까 위험요소는 없다.
‘가자.’
시동을 건 문형철은 소리 없는 전기차의 숨소리에 새삼 만족을 삼켰다. 부드럽게 차를 출발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하나가 차 앞에 뛰어든다.
“뭐야?”
놀라서 급정거한 문형철은 여자가 차문을 열고 타자 황당한 얼굴을 했다.
“가. 얼렁 가라고.”
혀 꼬부라진 목소리, 조수석에 탄 여자는 만취상태가 분명하다. 마스크를 벗는다. 눈이 확 떠지는 미모다. 미니스커트 아래 다리는 훌륭하다.
‘이런 여자가 있었어?’
호텔룸에 남아 있는, 어젯밤 함께한 여자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 여자에겐 새 발의 피다. 일급, 아니 특급이다. 왜 이런 여자를 안 붙여준 건가?
“얼렁 가라니까.”
택시기사로 생각하는 건지 여자는 명령한다. 그 모습이 귀엽고 예쁘다.
“예, 갑니다.”
미소를 품은 얼굴로 문형철은 차를 출발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기사 흉내를 내며 문형철은 물었고 여자는 반 감은 눈으로 대답했다.
“우리 집으로 가.”
여자는 주소를 말한다. 문형철은 내비에 주소를 입력했다.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
여자 집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기대와 흥분을 삼키며 문형철은 차를 몰았다. 장위동 고개를 넘어가 광운대학교를 가기 전에 다다랐다.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동네 한복판이다.
‘이런데 살아?’
아직 철거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구옥 다세대다. 띄엄띄엄 차들이 서 있는 걸 보니 확실히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누가 갖다 버린 건지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깨진 창문이론이 딱 들어맞는 광경이다.
‘누군가 버리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여자가 차문을 열고 내리자 문형철은 현실로 돌아왔다.
바로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갔다. 비틀거리는 여자를 부축했다.
여자는 오히려 안긴다.
곧바로 반응하는 몸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갔다.
여자는 현관문에 키를 꽂는다.
“드가자.”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걸까.
피식 웃은 문형철은 안으로 들어갔다.
“환영해.”
앞서 들어가던 여자가 뱉은 목소리.
문형철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만취해 비틀거리며 내던 혀 꼬부라진 소리가 아니다.
또렷한 목소리다.
‘뭐?’
예감이 엄습하는 순간 문형철은 봤다.
발을 들인 이곳, 다세대 이층집의 안이 어떤지를 깨달았다.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사는 공간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하나도 안 보인다.
그걸 안 찰나 여자가 돌아섰다.
여자의 손과 같이 휘돌아 나오는 것, 쇠뭉치가 턱에 작렬했다.
충격을 안고 뒤로 넘어 갔다.
그런데 쓰러지기 전에 여자가 붙잡는다. 그 손에 집혀 거실 바닥에 누웠다.
여자는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서 웃는다.
‘뭐야 이건?’
여자가 웃는 얼굴, 좋아서 죽겠다는 듯이, 흥분해 미칠 것 같다는 듯이 웃는 모습을 문형철은 바라봤다. 미모가 저렇게 흉악하고 끔찍해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동시에 깨달은 건 여자가 자신을 노렸다는 것이다.
‘누구야?’
부들거리는 경련 속에서 문형철은 공포를 삼켰다.
턱이 박살난 게 분명한 일격,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권투선수들이 카운터펀치 같은 걸 맞은 거하고 같은 거라는 걸 안다.
뭐로 그랬는지 보인다.
“이게 아주 효과만점인 물건이야.”
여자는 사악한 미소로 쇠뭉치를 쓰다듬는다. 정확한 모양은 짧은 쇠몽둥이다. 헬스장에서 덤벨 원판을 끼우는 용도의 물건, 저걸로 후려쳤다.
“제법 무거워서 백 속에 가지고 있기가 불편했어.”
여자가 말하는 백, 저런 게 들어가기 충분한 크기였던 가방을 문형철은 떠올렸다. 만취한 행색으로 조수석에 올라타면서 품고 있던 것이다.
“강렬했지?”
여자가 효과를 확인한다는 듯 묻는다.
대답을 못하는 지금 처지가 답이다.
강력한 정도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었다.
여자는 일부터 턱을 쳤다.
“맞아, 이제부터가 진짜야.”
친절한 미소를 풀어낸 여자가 돌아서는 걸 보며 문형철은 몸을 꿈틀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여자가 다시 돌아섰다. 쥐고 있던 쇠뭉치를 내리친다.
콱, 무릎에 내려앉은 충격에 문형철은 경직했다. 턱이 부서져 비명도 못 지르고 눈만 부릅떴다. 그런데 여자가 다른 무릎에도 쇠몽둥이를 내리친다.
꿈틀하는 반응 후에 경련하는 문형철, 여자는 흥겨운 얼굴로 속삭인다.
“이래야 재밌잖아.”
소름끼치는 미소를 흘려내고 여자는 다시 돌아섰다.
아무집기도 없는 집 안의 방안으로 들어간다.
파란 비닐뭉치를 들고 나온다.
바닥에 비닐을 깐다.
우비 같은 비닐의복을 착용한다.
얼굴엔 방역용 고글을 쓴다.
“시작할게.”
여자의 속삭임에 몸서리치며 문형철은 버둥거렸다. 움직일 수 있는 두 팔을 휘젓고 허릴 뒤틀어 몸을 굴렸다. 그런데 여자가 척추를 때린다.
‘헉!’
못 지르는 비명을 전신으로 발산하며 문형철은 늘어졌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여자에게 끌려 비닐 위로 올려가는 동안 들었다.
여자가 누군지.
“내가 밤의 여신이야.”
문형철을 뒤집어 위를 보게 한 여자, 밤의 여신은 바로 뒷말을 냈다.
“고초희가 나야.”
경악과 공포로 눈동자를 부들거리는 문형철에게 여자, 고초희가 미소를 던졌다.
“친구들이 다 죽었는데 너만 살아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 * *
눈을 뜬 장철은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가 막 넘어갔다.
적막한 고요가 해룡산과 왕방산의 숨결로 밀려와 있다.
그 평화를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잠이 들지 못했다.
고초희가 살아 있을 가능성만 붙잡고 있었다.
‘연은수.’
그녀가 고초희로 온누리병원에 있었을 가능성이다.
일견 황당한 주장이지만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이 교묘한 우연과 단서들은 분명 진실을 따로 두고 있음이다.
그것이 뭔지 알아봐야 한다.
희롱당한 것인지를.
‘그년은 분명 해치웠어.’
백운호수에서, 분명히 관자놀이에 칼을 꽂았다.
그런데 그 대상이 고초희였는지는 모른다.
그년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였다.
아무도 그년을 모른다. 그러니 고초희가 아니라 연은수를 친 건지도 모른다.
그럼 당한 거다.
“후우우.”
길게 숨을 뿜어낸 장철은 속에서 일어나난 분노를 제어했다. 고초희에게, 세경에게 농락당한 걸 수 있다는 현실, 삼켜내고 대응을 더듬었다.
“정말 살아 있다면 죽여야지.”
살아 있어선 안 되는 년, 반드시 죽여야 할 년, 끝을 내는 거다. 한 대건과 한진수를 끝냈듯이 고초희와 고종환을 끝내는 거다.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의문이다.
세경은 왜 이런 일을 꾸민 건가?
그들도 몰랐던 건가?
‘진실인지부터가 밝혀 낼 부분.’
가부좌를 풀고 일어선 장철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새벽운동을 위해 집을 나서 다시 산에 올랐다.
살아 있으면 안 될 것을 품고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