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77. 혼돈을 꿰뚫는 핵심은.
77. 혼돈을 꿰뚫는 핵심은.
“한마디로 혼돈상태야.”
정말 오랜 만에 마주앉은 과장 이왕길, 합수부의 박인수경정이 대단한 양반이라고 존경을 보인 이의 목소리는 무겁다. 그 무게를 최재우 자신도 느낀다. 총체적인 혼돈, 지금의 상황이다. 아주 죽탕이 돼 가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가 살해되고 일등 재벌기업 총회장이 살해된……’
오늘은 북부지검 부부장 검사 문형철이 살해된 사건이 더해졌다.
혼돈 속에 폭탄 하나가 더 던져진 거다.
문형철 사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선 그동안의 음모와 진실이 가일층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밤의 여신.’
그 존재가 문형철을 살해했다. 남규덕을 살해한 수법과 동일하다.
현장을 보진 못했지만 똑같을 거다.
지독한 악의와 유희가 깃든 살인인 거다.
‘네 정체는……’
궁금해 속이 타들어갈 지경인데 알 수가 없다. 처음부터 사건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존재다. 백운호수의 진실을 언론에 제보한 걸 시작으로 계속 가스를 흘리고 있다. 귀신이 손 안댄 사건관련자들을 살해하고 있다.
‘남규덕과 문형철 뿐일까?’
밤의 여신이 살해한, 그 여자에게 살해당한 이들이 더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살해수법으로 봐선 지독한 싸이코패스로 추정된다.
여태 가장 끔찍했던 유형철이나 강호순 같은 놈들과도 비교 못할 살인수법이다.
‘그런 것들은 참지 못해.’
사람 죽이는 걸, 이란 말을 씹다 삼키던 최재우는 과장 이왕길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행안부장관이 드디어 나섰다. 총리실을 통해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논의가 되는 모양이다. 온누리그룹 총회장이 살해된 사건이니 당연하겠지.”
최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황의 육중함을 새삼 절감했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사안은 아니지만.’
법과 질서를 흔드는 중대사건임에는 분명한 거다.
사회질서가 흔들리면 안 된다.
공권력의 권위가 의심받게 되고 법의 준엄함을 무시하게 된다.
그로인한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거다.
그게 정부의 일이다.
그런데 그걸 빌미로 저지른 악행들이 있다. 엄연한 역사다.
‘공권력의 개입……’
그 의미와 충격이 어떠할까를 곱씹으며 최재우는 현실을 삼켰다.
‘그렇지만 이 일은 개인들 간의 사적 원한으로 인한 사건.’
딜레마가 없을 수 없다.
개입할 것인지,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일지를 논의 중일 거다.
어떻든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폭발은 진행 중이다.
덮어둔 오동철과 오동진의 죽음에 이은 문형철의 죽음, 어떠할까.
“문형철의 죽음을 공개할 거로 보십니까?”
최재우가 묻자 이왕길은 식어가는 커피잔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일회용 안 쓰는 건 정말 잘 하는 거야. 그렇지?”
생뚱맞은 소리, 이어진다.
“날이면 날마다 쌓여가는 플라스틱쓰레기, 끝이 안 보이잖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우리 목을 조일 거라는 걸 다들 알잖아? 이제라도 대응하는 건 정말 잘하는 거지. 그런데 여전히 안 그런 인간들도 있는 거고.”
최재우는 유지건을 떠올렸다. 커피라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반드시 맛봐야 하는 성미, 일회용기에 테이크아웃 해 오는 건 습관이다. 송치호나 홍인구가 쓰레기에 대해서 말하지만 입만 실룩거릴 뿐 호응이 없다.
“세상사가 다 다른 것 같아도 속을 들여다보면 같아.”
이건 무슨 소린가 최재우는 미간을 좁혔고 이왕길은 목소릴 이어냈다.
“쓰레기를 치우는 자가 있으면 버리는 자가 있듯이, 해결을 원하고 진실을 원하는 자가 있으면 그 반대인 자도 있는 거지. 각자의 위치에 의해서.”
이해관계, 힘의 얽힘과 구도. 최재우는 비로소 이해했다.
‘귀신 사건을, 현재 상황을 인식하며 대응 하는 차이.’
그건 합수부가 됐든 행안부가 됐든 총리실이든 대통령실이든 다를 바 없다는 거다.
핵심은 명확하다.
누구도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자가 없다는 것.
그게 진실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실이다.
“그럼……”
입을 열던 최재우는 흠칫했다. 포켓 속에 든 폰이 몸부림쳐서다.
꺼내보니 박인수 경정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받아보니 놀라운 말을 한다.
-고종환이가 전국의 조폭두목새끼들을 불러 모았다.
* * *
무슨 생각으로 전화를 한 건지 모르겠다. 충동적이었다고 할까, 아니 그것과는 다르다. 저 흉악한 놈들이 고종환과 꾸미는 음모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괴감, 분노가 시킨 거다. 박인수 자신만 아는 이 상황의 분노.
‘최팀장 네가 안다고 해서 달라질게 있기야 하겠냐만.’
뭔지 모를 반발과 기대감으로 전화를 했다. 나는 못하지만 네가 라는. 아니 나 대신 네가 라는, 그게 아니더라도 그저 하소연하는 마음으로.
‘비루하게.’
어금니를 물었다 풀며 박인수는 망원카메라에 눈을 댔다. 어제 모였던 장소, 방배동의 한옥집, 요정과도 같은 고급음식점에 저놈들이 모여 있다.
‘시간상 아침식사 자리.’
조금 전에 고종환도 들어갔다. 문형철이 살해된 걸 인지한 반응으로 보인다. 귀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확신할 테지만 관련사건, 곤혹스러울 터다.
‘밤의 여신이란 존재가 누구며 뭘 노리고 이러는지.’
귀신만으로도 돌아버릴 지경인데 밤의 여신까지 설쳐대니 분노가 치밀 거다. 물론 밤의 여신이 저지른 사건들은 저들에게 직접 피해가 없는 일, 그렇지만 전체의 테두리 안에 있음이다.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방에 똥이 있으면 밟지 않을 수 없으니까, 피해로 변하기 전에 결론 내려고 하겠지.’
렌즈에서 눈을 뗀 박인수는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렇게 답답한 가슴의 무게를 덜어내며 여망했다. 이 혼돈이 어서 종식되기를.
‘그러자면……’
혼돈의 핵심을 꿰뚫는, 부숴버리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뭘까.
‘귀신?’
불현 듯 뇌리에 떠오른 생각, 박인수는 몸서리치듯 머리를 흔들었다.
* * *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박인수경정이 알려온 정보, 이 현실을 어떻게 대응하고 처리해야 할지다.
떠오른 것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으로 망설여진다.
이렇게 해도 될 것인 지다. 그런데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
‘하자.’
폰을 잡은 최재우는 전화를 걸었다. 신호 세 번 만에 상대방이 받는다.
-아이고 최팀장님, 기레기한테 웬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최기자 잘 있었나?”
-그러문요, 같은 해주최씨 일가한테까지 차가운 최팀장님 덕분에 잘 지냈죠.
“지랄, 그놈의 해주최씨 소리 좀 작작 해라.”
-왜요? 얼마나 자랑스러운 가문인데요? 고려를 쥐고 흔든 집안 아닙니까? 최충헌을 시작으로 최우, 최항, 최의까지 사대 육십년동안 빛나는……
“됐고. 정보가 있다.”
-정보요? 지금 정보라고 했습니까? 최팀장님이 정보를 준다고요?
“싫어? 그럼 전화 끊자.”
-아 아닙니다!
다급히 반응하는 최기자에게 최재우는 현재의 진실을 말했다.
“전국의 조폭두목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호출한 인물은 세경의 고종환회장, 확인해 보면 알 테지만 확실하다. 현재 그들의 위치는 방배동……
-자, 잠깐! 이거 확실한 거죠?
“아니면 이달치 월급 최기자한테 준다.”
-어, 어딥니까? 방배동 어디요?
“방배역에서……”
최재우가 박인수에게 들은 위치, 최기자는 전화 너머에서 소리친다. 취재팀을 어서가라고 질러대는 소리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다시 묻는다.
-조폭 두목들이 왜 모였는데요? 고종환회장이 불렀다고요?
그 늙은이가 불렀으면 가능한 일이지 란 최기자의 물음에 최재우는 다시 답했다.
“귀신에 대한 대응.”
-예에?
앞에 있다면 최기자가 눈을 크게 뜨는 걸 봤을 텐데, 최재우는 목소릴 이어냈다.
“그게 아니면 뭐겠어? 온누리그룹 한대건 회장까지 당한 판국인데 그 영감이 뭐든 못할까? 이런 시기에 전국 조폭보스들을 왜 불러 모아?”
-아 그게 그렇죠. 흐름상 당연하다고 하겠네요.
침 삼키는 소리 뒤로 최기자는 바로 물음을 냈다.
-그런데 조폭들로 귀신을 잡는 게 가능 할까요?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게 조금 황당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고종환회장 입장에서야 쥐고 흔들 패가 그것 밖에 없다면 그렇겠지만, 온누리는 용병들을 고용했다던데요?
최재우가 미간을 찌푸리는 데 최기자의 목소리는 계속 넘어왔다.
-확인되지 않은 온라인상의 루머입니다만, 제 생각엔 그렇다고 봅니다. 한대건회장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가평에서 귀신을 기다렸을 리가 없죠. 예, 앞으로도 확인하기가 힘든 내용이지만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용병들까지 동원했는데도 당한 결과, 조폭들로 되겠냐는 거다.
그런데 온라인이 그런 진실의 파편을 흘린 건 밤의 여신이다.
가평 현장에 갔던 최재우 자신도 정황만 눈치 챘지 진실은 알지 못하는, 그 내용을 깠다.
‘온누리와 세경의 내부자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내용.’
밤의 여신이 확실하게 알아서 퍼트린 건지 짐작을 퍼트린 건지는 모른다. 어떠하든 밤의 여신 입장에서는 온누리와 세경측을 흔드는 효과를 보는 거다. 더불어 귀신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 분노를 키우는 거다.
-밤의 여신 말입니다.
반응이 없는 최재우에게 최기자는 다시 목소릴 던졌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원하는 게 뭐길래 이러는 걸까요? 단순히 관종이라고 보기엔 여태 던진 것들이 간단치가 않잖습니까? 주장대로 고초희가 정말로 귀신에게 당한 걸까요? 세경은 그걸 숨겨왔던 거고요?
숨 삼키는 소리와 더불어 최기자의 목소리는 거듭 넘어왔다.
-지금 반응으로 보면 그게 맞는 게 확실한 건데, 연은수라는 인물과 얽혀 나온 새로운 정보는, 음, 확인 안 된 루머입니다만, 어쨌든 정황이……
“핵심을 보라고.”
-예?
“혼란스러운 상황이 확산되고 있지만 중심은 하나야. 귀신의 복수지.”
-어 그게……
“귀신을 가운데 두고 벌어지는 일들이야.”
입술에 침을 바르며, 자신에게 하듯 최재우는 남은 말을 냈다.
“그걸 놓치고 주변 숲이 흔들리는 거에 시선을 뺏기면 산을 못 보게 돼.”
* * *
차에 오르며 보스들의 인사를 받은 고종환은 김부장의 목소리에 인상을 구겼다.
“기자들이 붙었습니다.”
“어떻게?”
정말 어떻게다.
보스들이 모인다는 걸 언론이 무슨 수로 알아서 붙는가.
보스들이 상경할 때 주시하던 해당 지역 경찰들이 원천으로 먼저 떠오르지만 그건 아닐 터다. 경찰청장 라인으로 단속을 하고 있던 것이다.
“확인중입니다.”
김부장의 고개 숙인 대답, 고종환은 분노를 삼켰다.
“상관없어. 차라리 잘됐다. 저 놈들이 모여 있는 걸로 세간의 이목을 잡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는 사이에 준비된 칼들이 움직이는 거고.”
받아들이고 대응을 말하는 고종환, 김부장은 역시 하며 허릴 숙였다.
“가시죠.”
고종환의 차에 올랐고 김부장은 조수석에 탔다. 차가 나가는 뒤에서 보스들은 허릴 숙였다. 그중에 한사람, 해오름파 보스 구천동이 입을 열었다.
“마무리 지으면서 해결하라는 건데, 싸질러 놓은 똥을 우리가 치우라는 거군.”
오성파 전두칠이 바로 반응하며 입을 연다.
“오동철이 오동진이를 문형철하고까지 엮어서 하라는 건데……”
문형철의 죽음을 인지하자마자 아침식사자리로 호출된 결론이다. 현진써큐리티가 다른 조직과의 분쟁 끝에 오동철과 오동진이 살해된 결과를 만드는 거다. 문형철도 당연히 그 일로 인해 살해당한 걸로 꾸미는 거다.
“구회장이 중심에 서야 할 것 같은데.”
끼어든 목소리, 남천파 고래 지경호다. 얼굴의 흉터를 실룩거린다.
말인즉슨 고종환회장의 지시를 이행하는 일에 해오름파가 나서야 한단 거다. 수도권을 제패한 조폭조직, 현진과의 갈등은 누가 봐도 그럴듯한 거다.
피식 미소를 흘린 구천동, 고래 지경호의 눈이 번득이고 흉터가 꿈틀댄다.
“구경이나 잘해.”
구천동이 먼저 차에 오르는 걸 시작으로 보스들은 차례로 떠나갔다.
* * *
폰을 들여다보며 장철은 바람을 맞았다.
오지재의 공터, 전신을 치는 바람 속에서 기사를 읽었다.
속보로 나온 기사다.
방배동 모처에 전국의 조폭보스들이 모였다는 이야기다.
배경은 세경의 고종환회장이란 소리다.
‘그렇게 준비하고 있나.’
이런 기사가 나온 배경이 궁금하다. 은밀히 움직였을 텐데.
‘상관없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장철은 폰을 갈무리 하고 바람 저편을 봤다.
푸르게 변해가는 산자락들, 바람의 노래가 속삭인다.
깊은 곳을 향하라는.
정오로 올라가는 태양 아래서 장철은 눈을 감았다.
깊은 곳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