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79화 (79/200)

황혼의 살인자. 79. 누가 무엇을 품었는가.

79. 누가 무엇을 품었는가.

“아 냄새 정말 지독하네.”

당직실에서 나온 유지건은 새벽공기를 밀어내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안개와 더불어 가득 찬 이 냄새는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된다.

분명히 축사냄새다.

신명시의 자랑스러운 것 중에 하나, 공장냄새와 바로 이 냄새다.

“씨바, 십년을 살았어도 똑같네, 변하는 게 없어 이 엿 같은 동네는.”

새삼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유지건은 넌덜머리를 냈다. 매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아니 어떤 때는 밤부터 아침까지, 또 어떤 때는 하루 온종일 이 냄새를 맡아야 한다. 특히 날이 더워지는 여름철이면 아주 찬란하다.

“민원을 넣어도 아무 소용없으니, 이건 뭐.”

분노 뒤로 오는 체념이다. 그러게 누가 이런 도시에, 이런 동네에 살라고 했냐 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네가 능력만 좋으면 다른 곳에서 살면 되지, 강남 에선 왜 못 사냐 라고 비웃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그런데서 사는 사람들이야……’

정해져 있다. 이젠 그런 세상이 됐다. 개인의 능력으로 노력해서는 그 리그에 낄 수가 없다. 그러니 유지건 자신 같은 이들이야 밀리고 밀려 이런 변두리 도시에 사는 거다. 없는 사람들이 살기엔 정말 좋은 곳이다.

‘그래서,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서 이런 건지도 몰라. 아니 그게 맞겠지.’

그런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니까.

“쓰방.”

숨으로 욕을 뱉던 유지건은 다른 이의 욕을 들고 돌아섰다.

“뭐가 쓰방이야 이 씨방새야.”

송치호다. 출근시간 전인데 왔다. 아침거리를 들고 온 걸 보니 웃음이 피어난다.

“역시 송선배 밖에 없다니까.”

포장해온 음식을 내밀며 송치호는 인상을 구긴다.

“씨방이긴 하네, 오늘도 변함없이 신명시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구나.”

“그렇죠? 아 지독해요. 이거 분명히 축사들이 새벽에 가축분뇨 같은걸 불법으로 처리하는 거 같은데요, 확실하죠? 청담천에 폐수 버리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저기 청명계요, 저기 왜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 걸까요?”

유지건은 신명서에서 저편으로 바라다 보이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도시조성의 거의 마지막 구역인 신회지구의 중앙에 홀로남아 있는 건물이다. 닭고기 가공공장인데 아직 운영 중이다. 저게 왜 가능할까?

“나도 그게 의문이다. 토지보상이고 뭐고 다 끝난 게 언젠데, 아무 것도 안 남기고 다 헐어버렸는데 왜 저것만 저대로 있는 거야? 얼마 전에 보니까 직원모집공고까지 냈던데? 이거 분명히 비리가 있는 거 맞지?”

“딱 봐도 견적 나오잖아요? 신명시 신도시 지정되고 개발한지가 벌써 얼마예요? 십오년도 넘었잖아요? 그런데 청명계만 저런 건 빼박이죠.”

“그러게 말이다. 시장도 병 걸려서 병원에만 누워 있다가 이번에 바꿨잖아? 시정을 돌볼 처지가 아니면 사퇴를 했어야지, 병원에 누워서 명목만 유지하는데 시가 제대로 돌아가? 다 당리당략 때문인데, 에이 거지같은 정치충들 생각만 하면 열불이 나네. 이런 식이니 늘 이 모양이지.”

“아 뭐든 이 냄새나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네요, 골이 다 아프잖아요?”

“누가 아니래냐, 원래 이곳에 살던 토박이들이야 크게 개의치 않겠지. 하지만 신도시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어쩔 거냐고? 신왕지구 신읍지구 사람들이 민원 넣고 장난 아니라던데, 그래도 시청에선 시늉뿐이지.”

유지건은 강한 쌍시옷 욕을 터트리고 투덜거렸다.

“감동 신명시가 아니라 감똥 신명시죠. 전국에 자랑할 지역특징, 도시의 상징으로 딱입니다요. 신명시 초입에 세운 캐치프레이즈를 바꿔야 해요.”

“야 그 말 들은 말 같다, 음, 어디 소설에서 읽은 것 같은 기억이 흐릿하게 나는데, 왜 반복 되는 기시감 같지? 어쨌든 뭘로? 감똥 신명시로?”

“시청게시판에는 그 말이 이미 대명사더라고요.”

“그러냐? 누가 생각했는지 신박하네.”

피식 웃은 송치호는 들어가서 아침이나 먹자라며 돌아섰다. 그렇게 둘이 들어가는데 비상출동이 떨어졌다. 살인사건으로 추정되는 변사체 신고다.

* * *

안면이 일그러진 지도 모른 채 최재우는 사체를 내려다 봤다.

중년 여자다.

부릅뜬 눈은 뭐가 그렇게 원통한지 하늘을 보고 있다.

아침이 돼가는 하늘, 봄이 익어가는 파란 하늘이다. 곁에선 전철이 지나가고 있다.

허릴 세우고 돌아선 최재우는 급행열차가 막 지나가는 신계역 철로를 바라다 봤다.

신왕역 다음 역인 신계역엔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다.

아침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만 운행되는 급행, 사람들을 품은 열차는 빠르다.

‘서울로.’

시야에서 사라진 전철을, 철마가 달려간 교각을 눈에 넣은 최재우는 주변을 돌아봤다. 신계역을 중심으로 거의 완성이 되어 가고 있는 신도시의 한부분이다.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이전 모습을 모르겠다.

‘공사 현장에.’

사체를 유기했다.

누가 무슨 의도로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대담하다.

‘현장에 들고난 차량들.’

그 중에 사체를 싣고 온 차가 있을 거다.

피살자는 이곳에서 살해된 게 아니다.

비닐로 포장돼 있다.

사체 주변엔 아무런 유류품도 살해상황을 유추할 만한 흔적도 없다.

분명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여기 버려졌다.

‘저렇게 비닐로 포장했으니 이동해온 차량에도 흔적 같은 건 없겠지.’

예감이 든다. 이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고.

‘사체를 싼 비닐에서도 뭐가 나오진 않을 거야.’

지문한조각도, 비닐의 출처가 어딘지도 밝혀내기 힘들 거다.

살인자는 누구인지 계획적으로 행동했다.

현재까지 사체를 싣고 이동했을 차량이 특정되지 않고 있다.

공사장출입차량들 전부를 체크중이지만 그렇다.

‘현장 내에서도 카메라가 없는 이곳에,’

철근이 쌓여 있는 곳이다. 자재를 도둑맞을 염려가 있으니 카메라를 설치했어야 맞지만, 워낙에 현장이 커 오히려 그런 부분이 무시되고 있다.

“신원이 나왔습니다.”

다가온 홍인구의 얼굴로 시선을 돌린 최재우는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진양자, 56세, 가사도우미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가사도우미?”

미간을 뒤틀 듯이 좁힌 최재우는 불현듯 떠오르는 것을 잡았다.

상계직업소개소, 백운호수 등이다.

그 일들에서도 이 직업의 사람들이 얽혔었다.

사건과 직접 관계되진 않았지만 배경으로서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피살자의 거주지는 홍은동입니다. 다세대 반지하에 세 들어 사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른 결과다.

피살자에게서 신분증이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더 혼란과 의문이 생기고 살인자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일하던 곳이 어딘지도 알아봐야지.”

“예. 피살자의 마지막 행적, 중요하죠. 현재 관할서에 협조를 요청해 놨습니다. 유형사가 출발했고요.”

투덜거리며 갔을 유지건을 떠올리며 최재우는 쓴웃음을 삼켰다.

‘교살인데.’

피살자를 다시 보며 최재우는 살인의 흔적을 더듬었다.

목에 선명히 남아 있는 저 흔적은 목을 조른 밧줄 같은 것이 남긴 것이다.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 했으면 액살(縊殺), 저것은 줄로 졸라 살해한 교살이다.

‘목에 줄을 거는 걸 막지 못한,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

피살자는 그랬던 걸로 추측된다.

약물에 취한 상태였을 거다.

손목과 발목에 남은 흔적은 의자 같은 곳에 묶여 있었다.

그런 상태가 되기 전에 약물에 당했을 거다. 그렇지만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엔 저항했다.

‘눈을 부릅뜨고.’

그게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끝내 원통함을 눈에 담고 절명했다.

‘누구냐? 뭘 노리고 이런 거냐?’

살인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장막 뒤에 선 살인자가 누구인지, 최재우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안개 속, 그런데 한 가지 예감이 치민다.

‘한 부분.’

지금 내려다보는 살인사건, 이것이 여태 부딪쳐온 것의 일부분이란 예감이다.

귀신 사건, 그로인해 퍼져나간 무서운 현실, 그 한조각인 것 같다.

‘무슨?’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하는 최재우에게 전화가 온건 그때다.

* * *

힘이 없어 떨어뜨리는 것처럼 폰 잡은 손을 내린 박인수는 최재우가 놀란 것처럼 새삼 놀람과 충격을 삼켰다. 지금 바라보는 사건현장, 숯덩이가 돼서 나오는 사체들의 신원이 그렇게 만든다. 오동철과 오동진 형제다.

‘여기다 이렇게……!’

장위동 재개발구역, 문형철이 살해된 다세대로부터 불과 삼십미터 떨어진 빌라 지하다. 거주자가 없는 이 건물에 오씨형제 사체를 가져다놨다.

‘저렇게 잘 구워서……’

두 사람과 삼총사로 불린 다른 시체 세구, 총 다섯 구의 시체는 형체를 분간하기 어렵게 탔다. 누가 누군지 구분이 가능한건 숯덩이가 된 사체 위에 각자의 신분증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친절한 살인자다.

‘여태 병원 냉동고에 있었을 테니까.’

온누리병원이다. 그곳에 있었다는 걸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안다.

오동철과 삼총사는 백운호수에서, 오동진은 상계동에서 옮겨 놓은 거다.

오동진의 죽음은 합수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덮였다.

이제 개봉하는 거다.

“과장님.”

부하형사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박인수는 현실로 돌아왔다. 오씨형제의 사체가 발견됐다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역삼동에서 이곳까지 달려왔다.

‘그래, 계속 여기 있을 순 없지.’

관할서의 눈치도 눈치지만 깡패새끼들을 감시하러 다시 가야 한다.

‘어쨌든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구나.’

그림이 뭔지 보인다. 북부지검 부부장 검사 문형철이 살해된 곳이다. 부랄친구인 현진써큐리티 대표 오동철과 동생 오동진이 여기 죽어 있다.

‘검사와 한 덩어리가 된 오동철 조직을 다른 조직이 손본 거지.’

이 그림은 그거다. 여봐란 듯이 사체들을 전시하고 신원을 공개해 놓았다. 일부러 충격을 던지려는 거다. 귀신사건과 연관 없는 사건으로서다.

“개새끼들.”

낮게 욕을 뱉은 박인수는 거칠게 돌아섰다.

* * *

“가사도우미의 신원을 통해 경찰조사가 들어 올 겁니다.”

김부장의 담담한 보고를 고종환은 덤덤히 들었다.

“귀신의 소행으로 결론이 날 겁니다.”

앨범을 넘기던 손을 멈칫했던 고종환은 다시 사진에 시선을 박았다. 딸 고초희의 사진, 천사처럼 어여쁘던 어린 시절의 모습, 저 웃음이 그립다.

“한용수회장이 장례가 끝나면 찾아뵙겠다고 합니다.”

고종환은 고개만 한번 끄덕였고 김부장은 물러갔다. 덩그마니 빈 공산, 넓은 거실에서 고종환은 사진첩을 계속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덮었다.

뒷짐을 지고 소파에서 일어선 고종환은 거실창으로 다가갔다.

“초희야.”

딸의 이름을 부른 고종환은 딸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가사도우미는 결국 죽여야 했다. 그 입이 불안해서라기보다도 필요해서지. 네가 오빠 재춘이를 죽인 게 아니어야 해서다. 그래, 네가 한 게 아니라 귀신, 그놈이 한 거지. 원래는 다른 모양이 되었어야 할 일인데 계획을 바꿨다. 귀신이 내 가족을 해친 모양으로 꾸미는 게 좋겠거든.”

흐릿한 미소를 지은 고종환은 다시 목소릴 냈다.

“너는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야. 내가, 아빠가 그렇게 만들 거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고종환의 목소리만 조용히 퍼졌다.

* * *

엄청난 결과가 드디어 현실로 드러났다.

오동철과 오동진을 비롯한 삼총사의 사체가 발견됐다.

문형철이 살해된 장위동이다, 그 생각에 점심 먹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전화가 또 충격을 준다.

“뭐? 고재춘?”

칼날처럼 곤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최재우는 느꼈다.

-예, 그렇습니다.

유지건의 목소리도 긴장으로 곤두서 있다.

-진양자씨가 마지막으로 일한 집이 세경 고재춘 사장집입니다. 구기동의 저택인데요. 지금 현재 아무도 연락이 안 되는 상탭니다. 서초동 세경개발 본사에서도 사장이 부재중이라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만 합니다.

불길한 예감이 확 곤두서 최재우는 몸을 경직했다.

‘이거……’

진양자씨의 사체를 본 순간부터 품게 된 예감, 그것이 확 달려온 느낌이다.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거다. 그러니 이건 예상치 못한 게 아니다.

“고재춘 사장 집으로 가! 관할서에 협조요청해서 개문하고 들어가!”

버럭 소리치듯 말한 최재우는 의자를 넘어뜨리고 일어서며 나갔다. 그 뒤를 송치호와 홍인구가 따라갔다. 신명서 밖의 하늘은 해가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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