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80. 거짓과 진실의 파동.
80. 거짓과 진실의 파동.
-경찰은 폭력조직들 간의 분쟁으로 인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진써큐리티는 외형상 경비용역업체지만 실상은 달랐다는 게 관련자들의 증언과 회사운영상의 실태파악을 통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오동철대표와 동생 오동진이 살해된 건 그런 맥락에서이며 문형철 검사의 죽음도……
“아주 소설을 쓰고 있구나.”
냉소를 뿌리는 조웅의 곁에서 이영숙도 고개를 끄덕인다. 진실이 뭔지 알기 때문, 뉴스에서 저렇게 보도하는 배경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황망하다고해야 할 엄청난 사건입니다. 현직 부부장검사를 살해한 겁니다. 이 사건의 내막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합니다. 문형철검사와 현진써큐리티 오동철 대표는 죽마고우입니다. 당연하게 유착관계에 있던 그들의 세 확장을 우려하던, 분쟁관계의 조직에서 살해한 사건인 겁니다.
“그래서 그게 어느 조직인데?”
다시 나간 조웅의 비웃음 곁에서 장철은 조용히 뉴스를 응시했다.
-현재 용의선상에 오른 조직들의 수사에 착수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유력한 곳으로는 k사가 있습니다, 현진처럼 경비용역사업을 하는 업체지만 실상은 폭력조직인 겁니다. 범수도권 조직인 해오름파 산하의 조직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진써큐리티는 해오름파의 세력 밖에서 저항하던……
그러한 세력 구도 하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이야기.
-사체들은 불에 타서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 결과는 일종의 경고라고 범죄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적을 잔인하게 처단……
“그렇게 해 놓고 누군지 알 수 있도록 신분증을 사체 위에 올려뒀다고?”
다시나온 조웅의 황당하단 음성 속에서 장철은 그때를 떠올렸다.
현진써큐리티 오동철과 싸우던 순간, 백운호수의 그때다.
오동철과 삼총사를 처리한건 자신이다. 그런데 저렇게 떠든다.
구분과 가중의 이중수다.
-귀신장철로 인한 흉악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 국민들의 불안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입니다. 이러한 사회불안의 때에 편승하는 것인지 조직 간의 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북부지검의 현직 부부장 검사까지 살해한 사건입니다. 치안당국과 정부는 철저하고 단호하게 사건을 해결……
귀신을 언급해 현실의 위험을 가중하면서도 귀신이 소행이 아님으로 분리하고 있다.
저렇게 하는 목적이 뭘지 더듬어 보지만 모호하다.
그냥 귀신의 소행으로 만드는 게 쉽고 좋을 텐데, 이미 때를 놓쳐서 그런 건가?
‘행불상태.’
오동철과 오동진, 형제는 그런 상태였다.
언론과 유튜버들이 추적 중이었다.
그러니 언제까지 숨겨두고 있을 순 없었을 터,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해야 했을 거다.
그걸 한 건데 저 그림의 뒤엔 다른 노림수가 있다.
‘시선을 그렇게 돌리게 하고 다른 걸 못 보게 하려는.’
그런 예감이다, 그런데 뭘 못 보게 하려는 건지를 모르겠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뉴스 속 앵커는 긴장한 눈동자로 속보를 이야기한다.
-신명시 아파트공사현장에서 피살된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경찰의 빠른 대응으로 신원확인이 이뤄졌는데, 홍은동에 사는 진양자씨인 걸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피살자 진씨가 가사도우미로 일한 곳이……
이어져 나온 이야기에 장철은 호흡을 멈췄다.
-세경개발 고재춘사장의 구기동 저택입니다. 세경개발은 고종환회장이 세운 기업으로……
“저게 무슨 소리야?”
황당한 놀람으로 엉덩이를 들썩이는 조웅.
-화면에 보이는 곳이 고종환회장의 아들인 고재춘 사장과 부인이 사는 저택입니다. 지금 현장에 취재진이 급히 나가 있는 상황입니다만, 경찰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고재춘 사장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던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저택 안의 상황이 어떤지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장철은 멈췄던 숨을 고요하게 이어내며 뉴스에 집중했다.
* * *
몰려든 취재진을 바라보며 최재우는 확신했다.
‘꾸몄어.’
일이 이렇게 되도록 처음부터 계획한 거다.
진양자씨의 사체를 신명시에 전시해서 이곳에까지 이르도록, 그리고 저렇게 언론에서 달려오도록 꾸몄다.
그게 아니라면 취재진들이 저리 귀신같이 달려왔을 리가 없다.
‘언론에 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역이용한다는 거지.’
그런 의도와 목적을 가진 이들의 소행이다.
그게 어딘지 알지만 정말로 그런 거냐는 충격과 회의가 든다.
피살자가 고재춘과 부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종환회장의 혈육이다. 혈육의 죽음까지 이용하는 일이다.
‘짐작이 맞다면.’
틀리지 않을 거다. 이곳 관할경찰들이 현장을 봉쇄하면서 합수부에서 달려왔다. 그러며 하는 말이 귀신의 범행이란 거다. 고초희가 장영의 죽음에 개입돼 있다고 믿는 장철의 복수란 거다. 누구라도 믿을 말이다.
‘그건 아니야.’
피살자들을 본 최재우 자신의 판단은 다르다.
고재춘과 그 부인의 죽음은 참혹하지만 귀신의 짓이 아니었다.
거실 바닥에 전시해 놓듯 늘어놓은 사체들은 생선토막 같았다.
그런 끔찍함은 남규덕의 죽음과 같았다.
‘밤의 여신.’
그년의 소행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하면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귀신이란 말부터 하고 있다.
현장 자체가 이상한데도, 여태 귀신이 발을 디뎠던 현장과 전혀 다른데도 그러고 있다.
이상한건 깨끗한 현장이다.
‘피 한 방울 없는.’
거실에 전시 해 놓은 고재춘과 그 부인의 죽음은 참혹하지만 깨끗했다. 그렇게 살인하기까지 난장판이 됐어야 맞는데 그게 아니다. 남규덕의 집과 전혀 달랐다. 이 집에서 일어난 살인에 얽힌 그림이 뭔지 모르겠다.
‘누군가 고재춘 부부를 죽였어, 그걸 인지하고 있던 고종환 회장은 아들의 죽음을 귀신의 소행으로 뒤늦게 공개한 거야. 그렇게 흐름이 보여.’
사체엔 온기가 전혀 없었다. 냉장고에 보관한 것처럼 차가웠다. 일반적으로 죽음 후에 진행되는 사후경직과도 달랐다. 사망 시간이 더 전인 거다.
‘아들 부부의 죽음을 발견하고 현장을 치웠어.’
고종환회장의 무서움이 새삼 치 떨리는 순간이다.
그는 아들 부부의 죽음을, 그분노와 원한을 억누르고 이렇게 이용하고 있다.
분명 이용이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 목적이 뭔지가 문제다.
뭘 위한 건지.
‘이 살인을 귀신의 소행으로 만들어서 고종환 회장이 얻을 건?’
모르겠다.
귀신의 살인으로 인한 동요를 덮어보고자 양석훈사건까지 만든 자들이다.
그들이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밝혀내지 못한 짐작일 뿐이지만 확신한다.
그런데 이건 그 반대다. 귀신에게 덮어 씌워 키웠다.
‘이젠 그러는 게 유리해서? 그래야 해서?’
미간을 꿈틀거리고 있던 최재우는 홍인구가 내미는 폰을 봤다.
“이거 보셔야겠습니다.”
사건보도를 내고 있는 뉴스다.
-현진써큐리티 오동철대표와 갈등관계에 있던 k사의 b대표를 경찰이 추적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조직 간의 분쟁이 만든 살인으로……
황당한 눈을 감추지 못한 채 최재우는 눈썹을 떨었다.
‘이런 거냐?’
문형철과 오동철 오동진 형제의 죽음을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북부지검 부부장검사와 한 몸으로 유착이 된 현진, 그 세력확장에 불만을 품은 경쟁사인 k사가 저지른 범행인 거다. 조직 간의 살인사건인 거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고 있구나.’
복잡한 진실이다.
오씨형제는 귀신 장철에게 죽었다.
문형철은 밤의 여신이 살해한 게 분명하다.
그들의 죽음을 세경은 이렇게 그림 그렸다.
‘이곳 구기동에선 또 다른 스케치. 이렇게 해서 뭘 노리는 걸까.’
얽히고설킨 그림의 어지러운 풍경 속에서 최재우는 휘청거렸다. 밤의 여신은 누구며 뭘 노리는 건지, 새경의 의도와 진실한 목적은 무엇인지.
‘밤의 여신이 고재춘 부부를 살해한 거라면 고종환회장의 입장에선 귀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 밤의 여신은 무슨 이유로 고종환 회장을 적대하는 건지, 고종환회장 쪽에선 이 살인을 귀신의 소행으로 몰고 가는 이유가 뭔지, 그래야할 분명한 목적이 있는 건데, 시선을 돌리게 할 이유가……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이 저택처럼 경비 시스템이 완벽한 곳을 밤의 여신이 어떻게 침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도착해서 유지건의 놀람을 보고 현장을 보고 경직했던 얼마 후, 합수부에 의해서 쫓겨나왔다.
‘유형사가 아니었대도……’
막무가내로 개문을 요구하는 유지건과 같이 관할서 경찰들이 저택으로 진입했다. 그렇게 발견된 살해현장이지만, 공개되도록 준비됐던 것이다.
‘꼭두각시처럼 놀아난 건데, 엄한 희생자를 만들어서……!’
최재우는 분노를 삼켰다. 진양자씨의 죽음 때문이다.
그녀는 아무런 관계없는, 말 그대로 희생자다.
고재춘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게 죄라면 죄겠다.
이 일을 꾸민 자들에게 진양자씨 같은 이는 도구일 뿐인 거다.
“개 같은 것들……!”
뜨거운 숨으로 욕을 뱉는 최재우의 곁에서 유지건과 송치호와 홍인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구경꾼들처럼 저택을 바라만 보고 있는 분노다.
* * *
-합수부는 귀신 장철의 범행으로 단정 짓고 검거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충격적인 사실을 새경의 고종환회장에게 전달하고……
뉴스를 응시하며 고종환은 찻잔을 들었다.
향기로운 국화차를 음미하며 해야 할 일을 헤아렸다.
우선적으로 아들 부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이다.
‘언론에 얼굴을 보이며 침통하고 분노해야겠지.’
아들내외를 잃은 아버지로서 당연한 거다.
실제로 분노가 치밀어 못 견딜 지경이다.
대상은 귀신이다.
그놈이 없었다면 애초에 없었을 일인 거다.
‘아니, 그건 아닐지도 몰라.’
찻잔을 거실 테이블 위에 내린 고종환은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부지 간에 나오는 이름은 딸 고초희다, 이 악문 숨으로 그 이름을 잡고 허덕였다.
‘닥칠 일이 닥친 거지.’
새삼 깨닫는다.
딸 고초희가 만든 일들, 정해져 있던 것이다.
그 아이의 속에 쌓여온 것들이 터진 것이다.
그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자신이다.
‘이제라도 수습하면 돼. 할 수 있어.’
고개를 든 고종환은 힘이 들어간 눈동자로 뉴스를 봤다.
‘초희 너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야.’
결의를 다졌다. 딸 고초희가 만든 살인을 귀신의 것으로, 조직 간의 분쟁으로 치환했다. 이미 생겨난 일들, 수습해야 할 일들, 이렇게 하는 거다.
“회장님.”
다가와 고개 숙이는 김부장, 진행을 보고 한다.
“칼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칼들, 귀신 장철을 상대할 진정한 살인자들 그것들이 모이고 있다.
“다들 그대로 있지?”
보스들의 동향, 김부장은 바로 대답했다.
“호텔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합수부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은 강남서의 형사과장 한 놈이 주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박인수 경정이란 놈입니다.”
신경 쓸 거 없다는 듯 고종환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이제 일만 확실하게 꾸미면 되는 거다.”
일, 김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정말로 중요한 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귀신을 잡는 일이다. 놈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놈이 와야 한다.
온누리 한대건이 그렇게 죽었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회장님……!’
고종환은 결심을 굳혔다.
돈을 따기 위해선 걸어야 한다는 걸 알기에 하는 거다.
달리 다른 방법이 있지도 않다.
귀신에겐 남은 가족도 없고 약점으로 잡을 만한 게 전혀 없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찾아봐야 한다.
“구체적인 건 김부장 네가 해라.”
담담히 말하고 tv에 시선을 고정한 고종환, 그 모습을 응시한 김부장은 그게 고개 숙이고 돌아섰다.
* * *
세경개발 고재춘사장 내외를 살해한건 귀신 장철, 장위동 현장에서 살해된 문형철과 역시 그런 걸로 된 오동철과 오동진은 경쟁조직의 소행, 이 구분의 결과가 고종환측에 어떤 이득이 있을지 장철은 계속 생각했다.
‘어떤 이득을 취하고 어떤 걸 감추기 위해서냐?’
눈을 감은 장철은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의 노래는 귓가에 맴돌이 치고 있다. 이제 닥칠 일들을 속삭이며.
* * *
짱 박혔다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거다.
호텔에 들어간 깡패두목새끼들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취재진도 여전히 분주하다.
장위동 사건과 구기동 사건의 여파로 더욱 그렇다. 머리가 정말 무겁다.
‘으, 골이 아프네, 진통제라도 먹을까?’
현안의 무게에 눌려 박인수는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그러는데 보고가 올라왔다.
“외국인투숙객들이 들어갔습니다.”
이상할건 없다. 호텔에 여행객들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몽골인들이다.
남자만 아홉 명이다.
코로나 사대의 빗장이 풀렸다고는 해도 이런 시기엔 이례적이다.
특히 몽골인들이라면 다른 호텔에 가야 정상이다.
‘강남의 특급호텔에?’
부하형사는 염려를 말한다.
“호텔 내의 협조가 계속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수상한 정황을 알려주는 협조.
“한 시간 있다 철수하게 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하자.”
현실을 삼키며 박인수는 부하형사들과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며 몽골 투숙객들에 대해 곱씹었다. 왜 그런지 불안이 스멀스멀 뒷덜미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