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81. 살인자들의 축제.
81. 살인자들의 축제.
갸름한 하얀 얼굴, 모호하게 응시하는 눈동자, 은빛을 흘리는 안경테, 해가 있는 곳이 아니라 도서관이나 연구소에만 머무르는 자의 얼굴이다. 누가 보더라도 순하고 예의 바를 것 같은 모습, 그런데 전혀 아니다.
‘사람 죽이는 걸 즐거워하는 새끼.’
마주 앉은 젊은 남자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숨기며 전두칠은 커피를 마셨다.
자신의 룸으로 찾아오도록 지시한, 그렇게 마주한 자는 음혜군이다.
조직의 그늘아래 묻어두고 있지만 늘 찝찝하고 불안한 존재인 거다.
‘널 이제 제대로 써먹을 때가 되긴 했는데……’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음혜군이 아무리 살인을 즐기는 최악의 살인자라도 해도, 이놈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는 말이 뭔지 실감하는 게 당연한 결과라는 걸 알지만, 상대는 전설의 귀신인 거다.
‘뭐 상관없지.’
남천파 고래 지경호가 낸 아이디어에 발을 맞추는 거다. 모나게 굴이유가 하나도 없다. 귀신을 상대할 다른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음혜군이 귀신에게 당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결과가 될 터다.
‘지경호나 구천동이 같은 놈들을 제거하는데 쓰자면……’
그런 생각으로 품어두고 있는 존재가 음혜군이다.
그런데 생각과 현실은 다르다.
전두칠 자신과 같은 생각을 그들도 품고 있다.
늘 서로를 견제하며 조심하고 있다. 그러니 때를 만들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거다.
“다른 조직에서도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귀를 파고든 담담한 목소리, 음혜군의 물음에 전두칠은 시선을 들었다. 커피가 찰랑대는 머그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삼키며 대답을 냈다.
“남천파에선 몽골놈들을 불러들인 모양이다.”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전두칠은 대답을 이어냈다.
“해오름파에선 누구를 호출한 건지 정확이 모르겠다만, 너하고 비슷한 놈이 아닐까 예상한다. 구천동도 숨겨둔 칼 한 자루가 있겠지. 그 칼이 어떤 건지 이제 알게 될 테고. 그렇기는 그놈들도 다를 게 없는 거고.”
음혜군 너를 알게 될 테니까, 라는 전두칠의 눈은 서늘하게 빛났다.
“귀신을 상대할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물음을 낸 음혜군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걸 전두칠은 분명히 인지했다.
새벽하늘에 빛나는 샛별 같다. 왜 저런지 안다.
기대와 흥분이다.
전설의 귀신을 상대한다는, 그 존재를 죽일 거라는 흥분이 차고 있다.
‘이놈은……’
두려움이란 게 없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조직 산하에 있던 업장에 난입해 부하들 다섯을 병신으로 만들었다.
그래놓고 도망가지도 않고 웃고 있었다.
회칼 한 자루를 들고 팔다리 근육을 자르면서 즐거워했다.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현장에 가서 봤다.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그걸 기대하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연장을 들고 제압하려던 부하들이 똑같이 당하는 걸 보고 알았다.
지금 보고 있는 놈은 괴물, 타고난 살인자라고.
재능, 악마가 준 재능이었다.
그날 이후로 음혜군은 재능을 꽃피웠다. 전두칠 자신이 자양분을 공급해줬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즐거워하는 일, 살인을 하도록 해줬다.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음혜군의 손으로 치웠다.
‘욕하고 때렸다는 이유로……’
음혜군이 회칼을 잡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편의점에서 조직원 중의 한 놈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물론 조직원 놈의 일방적인 행위였다.
뭔가 음혜군의 모습이 눈에 거슬려서였다고 나중에 말했다.
그게 화를 부른 거다.
‘안 죽은걸 행운으로 여겨야지.’
그날 음혜군에게 당한 놈들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마 그럴 거다. 그 이후로 음혜군이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인지하고 있다. 결과를 보면 음혜군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던 걸 모를 수 없다.
“귀신과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전두칠은 되물음을 냈다. 음혜군은 하얀 얼굴의 미간을 옅게 찡그렸다.
“전투기계 같은 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평에선 죽였다는 미국용병들은 총기로 무장한 전문가들이죠. 총을 가진 그런 놈들까지 인형 부수듯이……”
음혜군은 말하다 말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눈동자는 빛나고 입가엔 웃음이 걸렸다.
그런 존재를 상대한다는 게 생각만 해도 짜릿한 얼굴이다.
“그런 놈을 상대할 자신이 있는 거냐?”
다시 나온 전두칠의 물음에 시선을 든 음혜군은 씨익 웃는다.
“자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귀신같은 자와 싸우는 건 승패의 문제도 아니죠. 찰나의 문제입니다. 누가 찰나를 잡느냐로 모든 게 좌우될 겁니다.”
모든 거, 승패와 생사.
“그걸 묻는 거다. 그 찰나라는 걸 잡을 수 있겠냐고.”
너만이 아니라 다른 조직의 칼들도 함께 움직이는 현실이란 소리.
“회장님께도 잡아야 할 찰나가 있다는 걸 압니다.”
전두칠은 미간을 꿈틀했고 음혜군은 미소품은 얼굴로 계속 말했다.
“전국 스무 개의 조직이 참여하는 일이죠. 그 중에 남천파와 해오름파와 오성파가 전면에 나선 거고요. 단순하지 않은 일이란 걸 압니다. 이번 일로 인해 얻게 될 게 뭔지, 취해야 할게 뭔지, 다들 분주해 보입니다.”
꿈틀거리던 미간을 다스린 전두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전쟁이다.”
음혜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미소로 한마디를 낸다.
“축제죠.”
* * *
민음서,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평범치 않은 이름이다. 한자가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걸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불가근불가원, 그걸 지켜야 할 존재다. 그렇지만 오늘은 이렇게 마주 앉아야 한다.
“오성파에서 누군가를 불러 올렸는데, 신원파악은 못하고 있다. 한 놈이라는 것만 알아. 반면에 남천파에선 대 놓고 하고 있다. 몽골놈들을 아홉놈이나 불렀지. 국내에 들어와 있던 놈들이 확실하다. 누군지도 알아.”
날선 기운을 간간히 보이며 말하는 자, 해오름파 보스 구천동을 마주 앉은 자는 무심히 응시했다. 민음서란 이름을 가진, 대륙에서 온 살인자다.
“들었습니다.”
민음서가 짧은 반응을 내자 구천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몽골 현지에서 피바다를 만든 놈들이지. 경쟁조직들을 박살내는 과정에서 백 명도 넘게 죽였다는 놈들, 그 일을 시킨 조직까지 쓸어버린 도살자들이지. 검거하려는 군경까지 해치우며 도주한 놈들, 악귀들이야.”
민음서는 나작하게 한마디를 보탠다.
“야락칭.”
구천동도 안다.
ЯРГАЧИН(야락칭)은 도살자, 백정, 살인마의 뜻이다.
검색을 통해서 알았다. 남천파 고래가 국내로 들여온 놈들은 그런 놈들이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랬는지 궁금해 하는 건 바보나 할 짓이다.
“야락칭이란 그놈들이 지금 호텔에 들어와 있다. 우리가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고래와 마주보고 있겠지. 물론 오성파 전두칠도 마찬가질 테고.”
이러한 현실의 배경, 귀신 장철을 잡으려는 원천의지를 구천동은 말했다.
“귀신을 잡는 거다. 동시에 기회를 잡는 거지. 그래, 이건 기회다. 오성파 전두칠, 남천파 지경호, 그놈들이 머리를 드러내 놓고 있는 거다. 귀신을 잡기 위해 모여 있지. 지금처럼 저놈들하고 가깝게 있어본 적이 없다.”
민음서는 나작하게 한마디를 냈다.
“구지가가 생각납니다.”
“뭐?”
머리를 내놓고 있다는 말.
“구하구하 수기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한 구천동의 미간 찌푸림 앞에서 민음서는 뜻믈 말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구천동은 이제야 이해했다. 하지만 민음서가 지껄인 한시 같은 것의 원전이 무엇인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헤아려볼 생각 같은 건 전혀 없다.
“핵심이 그거다. 머리를 치는 거. 그 기회를 잡는 거.”
흐름과 배경의 전체를 조망하는 눈으로 민음서는 묻는다.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머리는 어디까집니까?”
순간 구천동은 눈동자를 경직하듯 멈췄다. 하지만 그건 찰나, 입을 연다.
“머리는 머리지.”
민음서는 서늘한 눈빛을 흘려내며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 * *
도살자들, 정말로 냄새가 난다.
백정이 있다면 이런 냄새가 아닐까 싶은 냄새다.
죽음과 피의 냄새다.
기분 때문이 아니라 코로 맡아진다.
이렇게 냄새가 풍길 정도면, 이놈들은 정확히 얼마나 되는 사람을 죽인 걸까.
“언제 하는 겁니까?”
최고한, 물음을 내는 놈의 이름이다. 야락칭 아홉 놈 가운데 일인, 아버지가 한국사람이다. 그래선지 한국프로를 많이 봐선지 한국말이 제법이다.
“많이 기다리게 되진 않을 거다.”
대답을 던진 지경호는 얼굴의 흉터를 실룩거리며 야락칭 전원을 훑어봤다. 딱히 리더가 따로 있지 않은 살인마무리, 현재로선 상황에 맞춰 최고한이 리더다. 이들의 정체에 대해 이젠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귀신에 대해 알고 있을 테지만……”
느릿하게 입을 연 지경호는 아홉 명의 눈을 차례로 응시하며 이야기했다. 귀신장철의 위험성, 그가 어떻게 시작을 했고 어떻게 사라졌었으며 왜 다시 나타난 건지, 그렇게 저지른 사건들과 결과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죽일 놈들을 죽였네.”
혼잣말처럼 말한 최고한을 지경호는 강한 눈으로 응시했다.
“죽일 놈들을 죽인 거 맞다. 그런데 우린 아니야. 귀신의 칼을 봐야 할 이유가 없지. 피해를 입어야 할 이유는 더욱 없고. 그래서 하는 거다. 피해는 없애고 이익을 갖기 위해서, 비즈니스지. 너희가 여태 해 온.”
최고한은 동료들에게 몽골말로 전하며 씩 웃는다.
“맞습니다. 비즈니스죠.”
지경호 당신이 원하는 비즈니스, 그렇게 웃는 눈이다.
‘사람들을 개처럼 잡아 죽이는 놈들이 비즈니스라니, 웃기는 구나.’
지경호는 속에서 치미는 감정을 억눌렀다. 야락칭 아홉 놈이 어떤 존재들이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필요한 거다. 이젠 정말 중요한 때다.
‘한판.’
승부를 낼 때가 왔다.
귀신이란 지렛대를 이용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기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지경호 자신만 하는 게 아닐 터다.
구천동도 전두칠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흡혈귀영감도 알고 있을 거다.
‘정말로 목숨을 건 승부……!’
그렇게 해야 할 일이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거다.
서울에 발을 디딘 이상 한다.
남은 생을 사는 동안에는 그 누구에게도 조아리지 않을 거다.
“원하시는 대로 될 겁니다.”
미소와 같이 나온 최고한의 결론, 지경호는 흉터를 실룩거리며 받았다.
“그래야지,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해. 우리 모두를 위해서.”
지경호의 이글거리는 눈을 보며 최고한과 야락칭들의 눈도 꿈틀댔다.
* * *
“두목놈들의 호텔 투숙전후로 호텔에 드나든 자들입니다. 일부는 현재 투숙중입니다.”
부하형사가 내미는 사진들, 파일이 든 태블릿을 박인수는 손가락으로 넘겼다. 사진속의 인물들 하나하나를 눈에 넣으며 현실을 새삼 절감했다.
‘이 중에 분명 조직에서 부른 놈들이 있을 텐데.’
수상한 놈들만 추려 놨다.
주로 혼자이거나 남자들만, 커플이라고 해도 눈여겨 볼만한 이들이다.
체크아웃하고 호텔을 떠난 자 중에 수상한 자들은 조사 중이다.
그런데 한계가 있다. 투숙객 신원을 알 수가 없다는 거다.
“더는 협조하기가 힘들다 했다고?”
“예, 아무래도 다른 압력이 들어간 모양입니다.”
부하형사의 대답을 들은 박인수는 무거운 숨을 이사이에 물었다.
‘나는 이대로 두고 일하기는 어렵게 만들겠다 이거지.’
박인수 자신이 하는 일 자체를 막지는 않는다. 위험한 조폭보스들이 모여 있는 걸 감시하는 일인 거다. 그렇지만 속을 캐는 건 어렵게 하는 거다.
‘고종환으로부터.’
가스는 그렇게 풀어져 나온 거다.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하는 게 화가 난다. 그냥 모른 체 돌아서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
“과장님, 국정원에서 회신이 왔습니다.”
a4용지를 내미는 부하형사, 박인수는 받아들고 내용을 읽었다.
‘야락칭.’
서두부터 나오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박인수는 긴장을 삼켰다. 혹시 몰라 국정원에 몽골인 위험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부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왔다. 아홉 명의 극악한 살인자들, 충격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혹시 이놈들?’
뒷골이 저릿하게 조여 오는 느낌 속에서 박인수는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