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84. 과거로부터.
84. 과거로부터.
파일을 덮으며 최재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때면 전신을 어김없이 엄습해 전신을 억누르는 감정, 자괴감과 분노와 인간에 대한 회의다.
‘거부한다……’
진양자씨의 가족들이 낸 반응이다.
진양자씨는 자식이 없다. 젊을 때 만난 남자와 아이를 낳았지만 사고사, 결국 남자와 헤어졌다.
그 뒤로도 이런 저런 남자들을 만나고 살았지만 아이를 낳진 않았다.
가족이라면 피를 나눈 언니가 가양동에 살고 있다.
그 언니가 시신확인을 거부했다.
‘어떤 심정인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론 이해 안 돼.’
진양자씨가 살아온 삶을 다 알 순 없다. 그녀의 인생이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피해를 줬는지 모르지만 짐작은 간다.
그런 이유로, 과거로부터의 기억이 현재를 해칠까봐 두려운 거다.
‘결국 변사체로 발견된 종말……’
진양자씨 언니가 뱉은 말이 그거였다.
언제고 어디선가 그렇게 죽을 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더 이상은 진양자씨로 인해 골머리를 않고 싶지 않다고, 신분이 확실하게 밝혀졌는데 보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래도 동생인데……’
가사도우미 일을 하면서 성실히 살고 있었는데, 라는 중얼거림을 최재우는 입속으로만 웅얼거렸다. 당사자가 아닌 바에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거다. 진양자씨와 그 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그들만 아는 거다.
‘그로인해 어떤 결정을 내릴 지도.’
진양자씨 언니의 결정은 시신조차도 안보겠다는 거다. 죽은 동생으로 인해 자신의 현재 삶이, 가족들이 흔들리고 만에 하나라도 피해가 생길 것을 두려워하는 거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넌덜머리를 나게 함이다.
‘무연고자로 처리되겠군.’
진양자씨의 최후를 더듬으며 최재우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그녀의 죽음이 일어나던 순간을 더듬었다. 고재춘의 구기동저택에서, 살인현장을 목격했든지 그 후에 발견했든 지다. 후자가 확실할 터다.
‘이미 죽어 있는 고재춘부부를 발견하고, 알렸겠지.’
고종환회장 측에, 경찰이 아닌 그들에게 먼저 알렸다. 그래서 진양자씨는 죽음을 선물 받은 거다. 가사도우미 일을 열심히 한 대가가 그것이었다.
‘고재춘 부부의 죽음을 덮어야 한 이유는?’
그런 자들 손에 의해 진양자씨는 지워졌다.
귀신 장철의 소행이어서, 현장에서 범행을 목격해서 당한 게 아니다.
이건 귀신의 방법이 절대 아니다.
신명시까지 시체를 옮겨 드러나게 한 조작, 귀신으로 몰고 간 거다.
‘그게 귀신으로 연결되는 건지에 대한 건 상관없는 거지.’
구기동현장을 차단한 관할서와 합수부는 귀신으로 단정 짓고 발표했다. 본청으로부터 준엄한 지시가 내려왔다. 사건에 대해 함부로 예단 하고 발설하지 말라는 거다. 뒤로 입을 놀려 수사를 방해하면 엄벌한단 거다.
‘잘들 놀아라,’
중요한건 진양자씨를 죽여 진실을 덮어야 했던, 그 이유가 뭔지다.
‘고재춘 부부의 죽음이 귀신의 소행이 아니기 때문.’
그래서다. 그런데 귀신의 범행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진짜 살인자를 감추기 위해서다. 바로 그 진짜 살인자가 문제다. 최재우 자신이 현장에서 본 사체들은, 그 살해방법은 아는 것이었다. 밤의 여신이다.
‘밤의 여신, 그년이 분명해, 그런데 왜?’
고종환회장 측은 그 진실을 덮었다.
이유가 뭘까? 밤의 여신을 직접 잡아 죽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밤의 여신이 저지른 살인으로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문형철의 죽음도 그래서 그랬다?
‘계성가디언의 박철호가 오동철과 오동진을, 문형철을 죽였다고?’
개가 웃을 소리다. 문형철은 확실히 밤의 여신이 죽인 거다.
사건이 발생하던 당시 여자가 접근한 영상도 있다.
살해장소인 재개발 구역 내 다세대 이층을 세 얻은 것도 여자다.
그년이 바로 밤의 여신인데 덮었다.
‘뭣 때문에?’
미간이 거칠게 꿈틀거리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최재우는 생각에 집중했다. 복잡하게 난마처럼 얽히고 명멸하는 생각의 갈피 속에서 하나를 잡았다. 사건 초기의 것, 백운호수에서의 일, 고초희와 연은수의 존재다.
‘정말 고초희가 살아 있다면, 연은수가 고초희 대신 귀신에게 죽은 거라면, 그걸 알게 된 세경에서 완전무결하게 덮자는 거라면, 그렇지만 적대적인 밤의 여신을 보호하는 것 같은 정황은…… 혹시, 고초희가 밤의 여신?’
꿈틀거리던 눈썹을 멈춘 최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숨을 뱉어냈다.
* * *
귀신, 눈앞에 나타난 이 두려운 존재가 말하고 있다.
삼십오 년 전에 전도성 자신이 한 일이다.
가희, 하은주 그녀를 가지려했던 그 밤의 일이다.
‘그때……!’
술에 취했었다. 법정에 선 모든 놈들이 그렇게 말하듯이 그걸 변명하고 싶다.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고 싶다. 그날 밤에 전도성 자신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술 때문에……!’
가슴에서 꿈틀거리던 것을 그날 터트렸다. 가희를 찍어 누르고야 말겠다는 욕념의 발산했다. 모텔로 끌고 가서 허겁지겁 행동했다. 그런데 가희의 저항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결국은 주먹을 써 때려눕히고 말았다.
‘그때……’
가희는 침대에 누워 저항하지 않았다.
터진 입술의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눈을 보노라니 화가 더 치밀었다.
거칠게 그녀의 옷을 벗기고 침대에 올랐다.
그런데 안 됐다. 정작 그것이 죽었다.
치욕스러운 떨림으로 모텔을 박차고 나왔다.
그 밤 이후 가희는 벌떼클럽에 안 나왔다. 그러다 다시 나온 날, 희광이와 귀신이 날뛴 날이었다.
그러했던 과거, 그것이 현재로 닥쳐왔다.
귀신은 과거로부터 왔다.
“그날 밤 일에 대해 따지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귀신이 말하는 것은 그 밤의 그 일이 아니다.
떨리는 미간에 힘을 준 전도성은 귀신을 올려다봤다.
노인얼굴의 귀신은 고저 없이 말한다.
“은주에게 너 같은 자는 그냥 팔 한번 물고 가는 모기만도 못해.”
감정 없이 흘러나온, 귀를 파고드는 귀신의 말에 전도성은 경직했다.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자각, 하은주가 생각한 자신의 가치로 인한.
‘모기만도 못한……!’
그녀에겐 그런 거다. 그런 존재가 전도성 자신인 거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태 살아온 삶을 반추해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주먹으로 일군 인생, 남을 짓밟고 피를 빤 것으로 지금에 이른, 더럽고 하찮은 놈이다.
“그런데 모기에게 물려도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지.”
경직했던 숨을 풀던 전도성은 흠칫했다.
‘쓰러지는……’
있다. 분명히 있다.
전도성 자신 때문에 거꾸러진 인생, 하나 둘이 아니다.
그 중에 귀신이 말하는 건 여자다.
하은주와 친했던 혜림이다.
그녀도 다른 아가씨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했다. 그런데 그녀가 아이를 가겼다.
‘낙태수술을 받다가……!’
혜림이는 죽었다. 그랬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죄책감 같은 건 가지진 않았다.
술집아가씨, 누구의 씨를 품었는지 모를 일인 거다.
그런데 하은주가 전화했다. 혜림이가 전도성 자신의 아이를 가졌었다고 했다.
“모기를 볼 때마다 충동이 생기지.”
다시 나온 귀신의 목소리에 전도성은 흔들리는 시선을 들었다.
“벽에 붙어 있는 걸 손바닥으로 치고 싶은 충동.”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흡혈을 한 몸통이 무거워 벽에 붙어 쉬는 모기, 그걸 때려 터트리고 싶은 충동인 거다. 빨아먹은 피를 터트리고 죽는 걸 보고 싶은 거다. 누구나 가지는 충동이다. 귀신은 그걸 위해 왔다.
“죽을 때까지 안 봤을 수도 있어.”
누가 누구와?
귀신과 전도성 자신이다.
그런데 이렇게 봤다.
귀신이 찾아왔다.
시작은 윤완규와 한진수 때문, 원천은 전도성 자신이 조폭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었지만 이 뿌리는 씻어낼 수가 없는 거다.
“해오름파와 오성파, 남천파가 앞장서고 있다고 안다.”
역시다. 귀신은 그 일로 왔다. 전도성 자신이 그들에게 입을 놀린 게 어디까지인지, 그들이 현황이 어떤지, 무얼 준비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다.
‘이미 알고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좋은 거다. 귀신이 원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이상하게 편안해진 숨으로 전도성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고회장 쪽에 신경이 가는 가운데 최길준은 뒷골이 뻐근함을 느꼈다. 눈앞의 사내로 인한 거다. 온누리정신연구소장 길한수라는 남자, 미소가 기분 나쁘다. 뭐든걸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 같은 미소, 박살내고 싶다.
“고회장 쪽이 분주한 모양입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길한수의 눈을 응시하며 최길준은 입을 열었다.
“지닌 역량을 총동원하는 걸로 보입니다.”
“그렇죠?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봤다, 길한수는 귀신의 영상을 본 거다. 그렇다는 걸 최길준은 확신했다.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게 중요하겠지요.”
속마음을 감추고 최길준이 반응하자 길한수는 차가운 미소를 흘려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 걸로 보입니다만?”
눌러 두고 있던 걸 최길준은 풀어냈다.
“영상을 봤습니까?”
“아예, 회장님께 받아서 봤습니다. 귀신, 그가 가평에서 용병들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알겠더군요. 근접거리에서 발사한 총탄을 피하는 존재, 그런 비상식적인 능력을 가진 자와 싸워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렇죠?”
된숨을 삼키며 최길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두려움이나 놀람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비상식적인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유가 있는 겁니까?”
경어를 쓰고 있지만 날카로운 칼을 품은 최길준의 어투, 길한수는 미소로 받는다.
“이유, 있죠. 그런 능력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요.”
최길준은 미간을 확 좁혔고 길한수는 뒷말을 뱉어냈다.
“온누리정신연구소에서 하는 연구가 그런 겁니다.”
* * *
“야락칭이라고 부르는 흉악한 놈들이 호텔에 있다는 거, 확실한건 그 정도다. 오성파와 해오름파에서 준비한 건 뭔지 몰라. 비슷한 수준이겠지.”
편안해진 숨으로 이야기를 마친 전도성은 귀신을 응시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선만 던지고 있는 존재, 늙은 얼굴로 꾸민 저 눈을 봤다. 그 안엔 피할 수 없는 것이 들어 있었다. 전도성 자신의 죽음이다.
“생각해 본적 있나?”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걸 깨달았기에 받아들인 현실, 죽음 앞에서 초연해진 전도성은 물었다. 언제부턴가 가슴 속에 품어 왔던 것이다.
“다르게 살았으면 달랐을까?”
모호한 물음, 그러나 무슨 의미인지 장철은 알아들었다.
‘다르게 살았으면.’
이자, 전도성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거다. 과거가 달랐다면 지금이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바람 같은 걸 한구석에 품었던 거다.
‘그랬다면……’
정말로 달랐을 거다, 정말로 원하던 거다. 은주와 웃으며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민지의 장난 속에 나이를 먹고 영이의 재롱 속에서 늙어가는.
‘꿈으로만 남은.’
손에 쥔 나이프를 새삼 내려다본 장철은 전도성에게 대답했다.
“달랐겠지. 그런데 그러질 못했어.”
전도성의 눈가가 순간적으로 경련했다. 그리곤 미소를 풀어냈다.
소리 없는 웃음, 이까지 보이며 웃는다.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리고 말한다.
“그렇지.”
장철이 움직이려는 그때 전도성은 다시 목소릴 냈다.
“내가 하겠다.”
장철은 눈을 빛냈고 전도성은 시선을 맞추며 뒷말을 냈다.
“부탁한다.”
말없이 전도성을 눈을 들여다보던 장철은 그대로 돌아섰다. 문 안쪽에 기대놓은 지팡이를 잡고 나갔다. 그 뒤에서 전도성은 책상 위 총을 잡았다.
“미안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빈사무실에 그 말을 던진 전도성은 권총을 입에 박았다. 두 손으로 총을 잡고 눈을 감았다가 뜬 뒤, 방아쇠를 당겼다.
쾅.
총소리가 사무실을 울리고 건물로 퍼졌다. 그 소리에 밀리는 사람처럼 장철은 거리로 나섰다. 강북구 수유리의 오전은 햇살 속에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