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87. 붉은 외눈, 그것은.
87. 붉은 외눈, 그것은.
별이 보인다. 어느새 이렇게 된 걸까, 산자락을 내리비치는 별빛이 찬란하다.
‘10시가 됐구나.’
시간을 확인한 장철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돌아보니 오지재를 통해 해룡산과 왕방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의 불빛이 보인다.
야간산행을 위해 세워둔 차들은 바로 아래쪽에 가지런하다.
산의 적막은 감미롭다.
‘나는……’
옆에 내려놓았던 배낭을 내려다본 장철은 떠올렸다.
깊은 곳에서의 조우.
붉은 외눈의 존재들이 집어삼키던 순간, 그 전율의 감각과 충격이 선연하다.
전신의 세포하나하나가 두려움과 흥분과 환희에 젖었었다.
‘하나가 된 건가.’
그렇게 하라는 울림을 따라 간 결과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뭔가 달라진,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그러기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장철 자신에게 지금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적어도 외형상.
‘무엇이든.’
두 손을 확인하듯 응시하던 장철은 시선을 들었다. 심중의 의혹과 긴장을 털어냈다. 그렇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상관없다. 이것은 장철 자신이 선택한 결과다. 어떠한 후과가 닥쳐오든지 감당해 내야 할 것이다.
‘남은 일을 위해, 그걸 끝낼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없어.’
흐읍 하고 큰 숨을 들이마신 장철은 길고 힘차게 뱉어냈다. 배낭을 집어 등에 메고 돌아섰다. 공터를 가로질러 하산 길로 향했다. 그런데 숲에서 파란 눈이 번득인다.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쏜살같이 달려온다.
캬아웅!
공격해온 것의 정체가 뭔지 장철은 알았다.
비호같다는 말이 이런 때 쓰는 거라는 걸 알려주듯 달려든 놈은 삵이다.
어둠속의 놈은 빠르지만 다 보인다.
놈의 물려고 몸을 날린 순간 가볍게 발울 굴러 점프했다.
허탕치고 돌아서는 삵을 허공에서 보며 장철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4미터가 넘게 도약했다는 사실이다.
체조선수처럼 휘돌아 착지하며 또 깨달았다.
이런 육체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인, 붉은 외눈과의 조우다.
캬아아아!
삵이 포악한 흉성을 드러내며 운다.
공격이 무산된 것에 대한 분노.
저 눈에 든 것은 원천적인 본능이다. 적을 향해 드러내는 전투의지다.
저놈이 왜 저러는지 모르지만 짐작한다.
장철 자신의 변화가 놈을 이끈 거다.
‘내게서 냄새를 맡거나 기운을 느낀 거지.’
붉은 외눈으로 인한, 그들과 하나가 된 장철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것을 뭣이라 하든 저 야생동물이 반응하는 거다. 야수의 본능인 거다.
그런데 상대의 크기를 잘못 쟀다. 삵과 같은 짐승이 덤빌 존재가 아니다.
“가라.”
무심하고 작게 장철은 삵에게 말했다. 움찔한 반응을 순간적으로 보인 삵은 다시 이를 드러내고 털을 세운다. 그래서 장철은 분노를 발산했다.
“가!”
오지재를 쩌렁하고 울린 목소리, 삵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파랗게 곤두세운 눈동자와 가시처럼 세운 털을 부들거린다. 마치 사자나 호랑이 앞에 선 것처럼, 두려움으로 경직한 채 떤다. 그러다 돌아서 달려간다.
나타날 때처럼 빠르게 숲으로 사라진 삵의 자취를 눈으로 좇던 장철은 걸음을 다시 냈다. 등산객들을 위한 화장실을 지나 차들이 가지런한 간이 주차장을 벗어나 포천 쪽 도로를 따라 걸었다. 차들이 간혹 지나간다.
‘삵까지 사는 줄은 몰랐는데.’
포천의 산들이니 가능한 일일 거다. 멧돼지나 고라니는 흔하디흔하다. 군부대가 정상 부근에 있는 해룡산등의 지형적 특성이 더 깊은 산의 숨결을 형성했을 터다. 야생동물들은 등산객을 피해 저희 세상을 산다.
‘세상 모든 게 그렇다면 좋겠지만.’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그 안전한 세상들이 어우러지는 큰 세상, 그런 것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것이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른 자의 세상을 빼앗고 짓밟아 사는 자들이 있다.
‘그게 세상.’
언제나 그렇게 흘러왔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누군가는 타인의 삶을 뜯어먹으며 살고 누군가는 뜯어 먹히며 산다.
그러한 세상의 희생양이 됐다.
딸과 손녀가 제물이 됐다.
아니 사냥감이 됐다.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
“모조리 찢어 죽인다……!”
걸음을 멈추고 목소릴 낸 장철, 칼날의 물결이 파문을 일으키듯 원한이 퍼진다. 그 눈동자가 피웅덩이처럼 붉은 혈안인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
* * *
“역시 혼자 간 게 아니네.”
입술을 비죽이며 내미는 아내 유인주의 폰, 그 속의 사진을 최재우는 봤다. 여수에서 휴가를 즐기는 처남 유한상, 여자의 흔적이 드러났다.
“사진 왼쪽에 잘린 이 여자, 분명히 같이 간 여자야.”
최재우가 보기에도 그렇다. 노천탕에서 바다를 보며 찍은 셀카인데 여자가 찍힌 거다. 물론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어깨의 일부다.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사진 속 저 장소가 공중탕이 아닌 건 누가 봐도 확실하다.
“뭐 어때? 처남도 그러는 게 당연한 거잖아?”
“뭐가 당연해? 여자하고 여행가는 게? 물론 그럴 수 있지, 오빠가 동성애자도 아닌데 여자랑 가지 남자랑 가겠냐? 그런데 왜 말 안했냐는 거야?”
“아 그거야 뭐……”
“그거야 뭐?”
“아니 내말은 그러니까……”
“도둑 연해 하는 게 짜릿해서? 즐길 때까지 즐기다 깨끗하게 해어지려고? 남자놈들은 다 그러냐? 그래서 아무한테도 안 알려? 동생한테도?”
제법 성질내는 아내 유인주를 보며 최재우는 한숨 쉬었다.
“각자의 사정을 누가 알겠어? 그리고 만나고 헤어지는 건 일상다반사잖아? 요즘 연애가 다 그렇잖아? 남자가 일방적으로 그러는 세상이 아니라고? 여자도 마찬가지지? 요즘 숫총각 숫처녀로 결혼하는 사람 있어?”
“무슨 소리야? 논점이 엇나가잖아?”
“논점은 무슨? 애초에 이게 논의였어?”
“맞아, 내가 화나는 건, 하나뿐인 여동생인 나한테까지 왜 속인 거냐고?”
“아아, 난 모르겠고 처남한데 따져.”
손사래를 친 최재우는 tv리모컨을 눌렀다. 뉴스가 바로 쏟아져 나온다.
-용인의 장지로 묻힌 온누리그룹 한대건 회장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온 인물로서 대한민국 기업계의 선두마차와 같은 역할을 해온 존경……
앵커의 목소리는 흘려버리고 최재우는 화면을 응시했다. 한대건 회장과 한진수가 땅에 묻히는 광경, 아들 한용수 한경수가 지켜보는 영상이다.
‘이제부터는 뭐가 어떻게 될까.’
불안과 흥분이 증폭하고 있다.
한용수회장과 한경수회장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제발 여기서 포기하고 끝이 나기를 바라지만 안 될 것 같다.
‘귀신 당신은……’
장철이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그는 남은 원수를 죽일 생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다. 고종환회장, R호텔에서 팔을 벌리고 있을 그에게 갈 거다.
‘내일 고재춘 부부의 장례가 끝나고 나면.’
시간은 그렇게 될 터다.
장례식을 마치고 고종환회장이 호텔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카운트다운이다.
장례식 도중은 아니다. 그럴 환경이 안 된다.
‘저격 같은 걸로……’
깨끗하게 한방에 끝내는 거다. 그런데 그건 귀신의 스타일이 아니다. 고종환회장 측에서도 아닌 걸 예상하지만 그런 위험에 대해 대비를 할 터다.
‘누가 생각해도 사지인 호텔로, 함정이 분명한데도, 가는 거지.’
그게 귀신이다.
그는 특별한 존재다.
어떻게 특별한지 최재우 자신은 진실의 속을 엿봤다.
채널링.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아직도 모르지만 확인했다.
장철이 귀신이 될 수 있었던 건 형제보육원에서의 그 일이었다.
‘터무니없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그런데 명확한 증거가 있다.
바로 귀신 장철이다.
그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터무니없다고 부정하게 되는, 채널링이라는 그것이다.
“후우.”
최재우는 무거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혼자만 알고 있는 이 진실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다.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말 한다고 해도 누가 믿어줄지도 모를 내용, 답답함만 커져 간다.
“왜 그래 자기?”
걱정스러운 눈으로 유인주가 손을 잡는다.
“일 때문에 그래?”
“아 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이젠 합수부도 아니잖아?”
부드럽게 속삭이며 유인주는 최재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며 눈동자를 빛낸다. 그 변화를 감지한 최재우는 뜨끔했다. 본론이 귀를 파고든다.
“우리 들어가자.”
귀에 대고 뜨거운 입김을 속삭이는 아내 유인주, 그 손이 이끌려 소파에서 일어난 최재우는 안방으로 향했다. 그러며 소리 없이 또 한숨 쉬었다.
* * *
붉은 벽돌의 외형,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전경을 눈에 넣으며 한용수는 커피를 음미했다. 따듯한 블랙커피의 향과 맛이 정신을 깨워주는 것 같다.
“조경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만 늘 부족하네요.”
곁으로 다가온 자, 길한수소장을 돌아본 한용수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아버지가 지금의 모습을 좋아하셨으니까.”
연구소의 정원과 주변을 정갈하게 가꾸는 걸 한대건 회장은 정말로 좋아했다. 노후를 이곳에서 보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못했다.
“밤공기가 제법 서늘합니다. 들어가시죠.”
길한수의 권유를 따라 한용수는 몸을 돌렸다. 연구소 본관로비로 들어섰다. 정신병원이었을 때의 흔적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공간, 그 속을 파고들어 지하로 갔다. 실험시설들과 연구자들이 숨 쉬는 공간으로.
“심안의 컨트롤은 이제 완성단계입니다.”
길한수가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들으며 최재우는 한곳으로 시선을 박았다.
‘심안(心眼).’
유리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물체, 흡사 무선 이어폰 같은 크기와 형태의 저것은 말 그대로 마음의 눈이다. 관자놀이에 부착하게 돼 있다.
‘전기자극을 뇌에 보내 육체를 활성화 하는 장치.’
그냥 활성화가 아니다, 강화다. 그 정도가 상식을 뛰어넘는다.
한마디로 저것을 장착하고 훈련한 인간은 무기가 된다.
휴먼웨폰, 새로운 무기다.
“채널링을 통한 연구는 결과를 어느 정도 내고 있나?”
물음을 던진 한영수를 힐긋 응시했던 길한수는 시선을 내리고 대답했다.
“현재까지 답보상태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매진한다면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심안의 개발이 채널링을 통한 결과였듯이 라는 말을 길한수가 하고 싶었다는 걸 한용수는 안다. 정말이다. 시작이 그것이었고 원천이 그것이다.
‘채널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던 때에 잡게 된 것이다.
‘사물인터넷과의 연동으로……’
생각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전제품들을 운용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이미 VR이나 증강현실 같은 건 일반적인 것이 됐다. 그보다 나아간 게 필요했다. 그런 게 뭐가 있을까 고심하다 종교와 비과학에 눈을 돌려 찾았다.
‘어둠 속을 더듬다가 움켜잡은 게 호랑이 꼬리였던 거지.’
이제 호랑이를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채널링을 통한 뇌파의 변화와 전기신호를 분석연구 해 심안을 만들었다. 증폭장치이며 접속스위치다.
‘강화인간.’
그 의미를 곱씹는 한용수에게 길한수가 말한다.
“보시겠습니까?”
한용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길한수는 앞섰다. 연구자들과 시설들을 지나 다른 공간으로 넘어갔다. 강철 차폐벽이 열린 공간, 몇 사람이 보인다.
“백경.”
길한수가 호출하자 한 남자가 반응하며 돌아본다. 팔에 쇠뭉치 같은걸 착용하고 있던 자다. 보통 체구다. 그런데 한용수의 눈엔 크게 보인다.
그게 백경이란 사내의 특질이란 걸 안다. 저자가 가진 능력이 그런 거다.
“보자.”
길한수가 미소로 던진 지시, 백경이란 사내는 바로 움직인다.
손에 착용한 쇠뭉치, 마치 권트글러브 같은 걸 떨어뜨리고 벽으로 다가간다.
회색의 콘크리트 벽이다. 그 중심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엄청난 파워로.
쾅, 지하공간을 울리는 굉음이 퍼진 가운데 결과가 나왔다.
콘크리트벽이 거미줄 같은 균열을 일으키면서 부서졌다.
그런데 그 뒤에 드러난 것은 강철벽이다. 그것에도 백경이 주먹을 꽂았다. 강철벽은 우그러진다.
대포를 연속해서 발포하는 것과 같은 충격음.
백경이 후려치는 주먹질을 바라보며 한용수는 전율을 삼켰다.
그렇게 다른 자들을 돌아봤다.
백경처럼 심안을 착용한 자들, 휴먼웨폰들, 저들이 귀신을 잡아 죽일 것이다.
“귀신, 널 잡을 마귀들이다.”
한용수는 웃었다, 소리 없이 하얗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