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90화 (90/200)

황혼의 살인자. 90. 귀신이 왔다 1.

90. 귀신이 왔다 1.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던 승합차를 우선 멈춰 세운 것은 경찰이다. 오야지는 준비해둔 서류와 신분증을 제시했다. 그 속엔 배규철이란 장철의 위장신분증도 들어 있다. 경찰검문팀은 일일이 얼굴을 확인했다.

“수고하십시오.”

통과란 말이 나오자 오야지는 깍듯하게 인사하고 창문을 올렸다. 그러며 견찰새끼들이라고 중얼거리는 말은 승합차 안에 확실하게 퍼졌다. 차는 그대로 지하주자창에 이르러 두 번째 검문을 받았다. 호텔경비팀이다.

“연락드린 대로입니다.”

이미 잡혀 있던 일정, 증빙서류를 다시 내미는 오야지 앞에서 호텔경비팀은 날카로운 눈을 번득인다. 태블릿으로 확인하고 무전기로 통화하며 인부들을 확인한다. 오야지를 포함해 총 일곱 명, 하자는 발견 못한다.

“조용히 작업해야 할 겁니다.”

경비팀은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보다시피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조심하란 소리, 이유를 설명하진 않는 고압적 태도다. 자칫 터질듯한.

“아예, 조심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허리까지 굽힌 오야지를 따라 장철과 인부들은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검색을 마치고 돌려받은 장비가방을 메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직원전용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해당층에 다다랐다.

25층, 작업할 룸들이 있다.

“자, 다들 분위기 봐서 알 겁니다. 최대한 빨리 끝냅시다.”

오야지의 앞선 걸음을 따라 복도를 이동한 인부들은 룸을 배정 받았다.

모두 세 곳, 작업인원을 나눠 작업에 들어갔다. 경력자들은 둘씩, 장철은 오야지와 함께 셋이 한방을 맡았다. 룸에 들어가니 냄새가 진동한다.

“미친 것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들을 한 거야?”

오야지는 황당하단 눈으로 욕을 했다. 다른 인부도 같은 눈으로 벽과 천정을 봤다. 변색된 오물이 벽지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발라져 있다.

“저게 똥인가요?”

“그런 것 같아. 지들 똥구멍으로 뽑아낸 거겠지.”

“그것만이 아니라 목초액 같은 것도 뿌린 모양인데요?”

“확실히 그렇네, 이 냄새는 똥냄새보다 지독하니까.”

“냄새 배면 오래가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오야지는 이렇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녀 투숙객들이 세 개의 룸을 빌렸다는 거다.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고 파티룸에서 잘 논 것들인데, 체크아웃하고 보니 룸 세 곳이 이렇게 된 거다.

“호텔에서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던 것들이 아니었다는 거지.”

그래서 호텔 체크인을 거부하지 못했다는 거다. 호텔들은 악성 투숙객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는데 그 안에 없었던 거다.

“이유가 뭔데요?”

정말 궁금해서 나온 동료인부의 물음에 오야지는 인상 쓴 얼굴로 대답했다.

“미친 거지. 그냥 지들 재밌으니까 하는 거야.”

정확한건 오야지도 모르는 거다, 호텔 측도 모른다.

경찰이 검거해서 자백을 받기 전까진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 추측이 맞을 것 같다는 건 공통된 예감이다.

지금 보고 있는 룸 안의 정경엔 희롱과 유희가 선연하다.

‘내부 집기를 파손한건 하나도 없으니까.’

호텔에 원한을 가졌거나 유사한 이유라면 화재를 저지르는 등 다른 범행을 저질렀을 터다. 그런데 이렇게 오물로 더럽혀 놓기만 했다. 투숙해서 잘 놀고 즐긴 후, 돌아가기 전에 한 짓이다. 엿 먹으라고 한 짓이다.

“다 가라 신분이었겠네요?”

“그렇지, 그런 게 문제야, 요즘은 인터넷에서는 주민등록증을 판다면서?”

“그렇다네요. 하 미친 세상.”

장철은 배규철이란 신분을 새삼 상기했다.

조웅이 구해온 신분, 누군지 모른다.

오야지에게 넘긴 주민증과 같은 얼굴로 꾸미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래서 긴장한 것 같은 표정으로 보이지만 탈이 되지는 않았다.

“자 시작해 보자고.”

오야지가 도배지를 펼치며 재단을 시작했다. 장철은 보조를 맞추며 덤덤히 움직였다. 그러나 머릿속은 경주마처럼 달렸다. 호텔전체를 누볐다.

* * *

펜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보는 강남거리의 찬란함은 비교할 데가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 생활할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과천의 여유를 택했다.

‘초희야, 여긴 너한테 어울리는 곳이다. 네가 쓰면 돼.’

딸 고초희를 떠올린 고종환은 새삼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정말 딸 밖에 안 남았다.

고종환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물려줄 존재다.

아들 고재춘이 살아 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네 손으로 그렇게 만들었구나.’

딸이 아들을 죽였다.

그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지만 마음을 짓누르진 않는다.

비통에 눌려 통곡하고 절망하지 않는다.

자식들을 잘못 키운 자로서의 자책,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감정 같은 건 전혀 없다.

‘잘 못 키운 건 맞지, 그러나 어쩔 수 없었어.’

그러니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다.

여태 그렇게 살아왔다. 후회스런 삶이 아니었다.

숨 쉬는 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온 인생이다.

그래서 지금을 이뤘다. 그런데 조금 나쁜 결과도 있는 거다.

자식들의 일이 그런 거다.

‘사자는 절벽에서 새끼를 밀어 떨어뜨린다고 했던가.’

그 일이다. 지금 하는 일, 벌어지고 있는 일이 그거다.

고종환 자신의 일은, 여태 숨 쉬며 해온 일은 보통의 생각과 담력으로는 할 수가 없다.

아들 고재춘도 버거워 할 일이었다. 그런데 딸 고초희는 할 수 있다.

‘널 그렇게 만든 건 나와 재춘이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딸 고초희는 원래 그런 존재였다고, 고종환 자신의 뒤를 잇기 위해서 태어난 거라는 생각이다.

그렇다, 고초희야 말로 고종환 자신을 닮았다.

어쩌면 이건 즉위식인 거다.

‘왕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한.’

크게 숨을 들이마신 고종환은 강남거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너만이 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조용한 중얼거림이 퍼지는 그때 김부장이 들어왔다.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와 보고한다.

“아직까지 이상상황은 없습니다.”

핵심을 말한 김부장은 현재 호텔 내의 상황을 부연해 보고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이 어떠한 자들이며 무슨 일 때문인지, 어디서 뭘 하는지.

“인테리어 설비팀은 3층에서, 도배팀은 25층에서 작업 중입니다. 신원확인은 물론 반입물품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확인했습니다. 경찰 경호팀에 이어 호텔경비팀의 이중검색입니다. 이상이 있다면 걸러질 겁니다.”

고종환은 돌아서 김부장을 응시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김부장은 고회장의 눈길을 받은 채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귀신이라면 그런 건 장애가 안 되겠지요.”

고종환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피워냈다가 지운 후 다시 돌아섰다.

“그래, 귀신 그놈은 그런 놈이다. 그렇다는 걸 우린 알아.”

느릿하게 뒷짐을 진 고종환은 느릿한 숨으로 목소릴 이어냈다.

“귀신, 그놈은 이미 와 있는 지도 모른다.”

* * *

“단단히 챙겨.”

최고한은 스산한 눈빛으로 동료들에게 주의를 던졌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만찬을 즐길 때의 웃음 같은 건 사라진 얼굴, 그래야 할 때가 돼서다.

“귀신이란 놈은 절대로 만만하지 않아.”

새삼 귀신을 언급하며 다시 입을 연 최고한은 야락칭 동료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췄다.

“온누리그룹에서 고용한 미국용병놈들도 쓸어버린 놈이야.”

안 겪어봤어도 미국용병놈들이 어떤지 알지? 란 의미의 최고한의 시선을 야락칭들은 받아냈다. 귀신은 절대로 경시해선 안 될 존재라는 걸.

“이번 일을 제대로 해내면 한국에 뿌리 내릴 수 있어. 이 기회를 잡아야 해. 보라고, 한국이란 데가 얼마나 좋은 덴지? 여기서 살아보자고.”

최고한의 미소는 야락칭 동료들에게로 번졌다. 그런데 한 놈이 말한다.

“귀신이 언제 올지 모르잖아? 계속 이렇게 무장한 채로 기다려야 하는 건가?”

오늘 밤에 안 오면? 이란 소리다. 고회장이 호텔로 들어온 첫날이니 가능성이야 있지만, 확인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너무 피곤한 거 아니냔 의미.

“귀신만이 아니야.”

최고한은 바로 반응하며 목소릴 이어냈다.

“여기 모여 있는 놈들 전부란 말이지.”

그걸 몰라서 다시 확인시키려는 거냐 하는 험악한 눈빛.

“정말 핵심은 그거다.”

동료들의 험악함을 맞받듯이 최고한은 눈은 번득였다.

“귀신을 잡은 후에 할 일, 다른 놈들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이거지.”

야락칭 동료들은 만찬자리의 인물들을 떠올렸다.

다른 조직에서 동원한 살인자들, 긴장해야 할 자들이란 걸 본능으로 느꼈다.

그들과 싸워야 하는 거다.

또 조직보스들을, 호텔 안에 있는 놈들을 다 죽이는 거다.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일이야. 그런 자리가 마련됐어.”

동료들과 다시 눈을 맞춘 최고한은 마지막 결론을 뱉어냈다.

“호텔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리자고.”

야락칭들은 웃었다. 소리 없이 함께 웃었다.

* * *

빔포인터로 룸 벽의 길이와 높이를 확인했다. 도면으로 인지했던 거소가 일치했다. 오야지는 열심히 벽지를 재단했고 장철은 풀을 준비했다.

그 시간만 한 시간이 갔다. 어느새 자정으로 흐르는 시간, 참을 먹었다.

“쉴 때는 확실하게 쉬고 일할 때는 확실하게 일하는 거지.”

단팥빵을 크게 베어 먹으며 말한 오야지는 우유를 마셨다. 그러며 룸을 새삼 돌아본다.

“여기 하루 숙박비가 얼마나 되나? 우리 일당하고 비슷하려나?”

빵을 거의 다 먹은 동료인부가 입을 연다.

“모르는 게 속편합니다. 이런데 올 일도 없죠. 같이 뒹굴 여자라도 있으면 모를까요. 그러면 미친척하고 돈 쓰겠죠. 그러고 나서 후회하겠지만.”

“그런가?”

오야지와 동료인부가 쓴 웃음을 나눌 때 장철은 일어섰다.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오야지와 동료인부가 다가와 당황해 묻는다.

“갑자기 왜 그래?”

“뭐야? 먹은 게 잘못된 건가? 괜찮아요?”

장철은 괜찮다는 듯 뒤로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계속 구토했다. 그 모습이 절대로 괜찮게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오야지와 동료는 서성거렸다.

* * *

가방을 연 민은서는 철환을 닦기 시작했다. 은백색의 강철고리 여섯 개, 양 손목에 세 개씩 나눠 차는 거다. 드디어 이걸 착용할 시간이 도래했다.

‘피를 볼 시간이다.’

강철고리를 향해 말하듯 마음속으로 말한 민음서는 손을 모아 오므렸다.

고리를 밀어 넣고 손을 펴자 명징한 소리를 낸다.

저희끼리 부딪치며 내는 울음, 피를 달라는 종용 같다.

그건 마음속의 소리란 걸 안다.

‘내 속의 짐승이 내는 울음.’

삼합회와 싸우며 깨달았다.

민음서 자신은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는 것을, 진정한 모습은 속에 감춰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동생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면서 희열을 퍼마시던 거다.

‘귀신.’

그 존재가 온다.

언제 올지, 안 올런지도 모를 불확실한 기다림이지만 시작됐다.

민음서 자신을 이곳에 부른 자들이 확신하는 것처럼 귀신이 올 거란 걸 예감한다.

그래서 흥분되지만 피가 끓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야락칭.’

그놈들과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흉악한 짐승놈들, 어떠한 놈들인지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놈들과 목 따기 시합을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놈들만이 아니다.

옆으로 앉았던 놈, 하연얼굴에 은테안경잡이도 있다.

‘오성파가 데려온 살인자.’

그놈이 야락칭들보다 위험하다는 걸 직감했다.

그런데다 그놈들이 함께 행동하리란 걸 안다.

오성파와 남천파, 그들은 해오름파를 부수고자 한다.

그런 패권싸움이야 어떻든 상관없는데 이판에서는 그렇지 않다.

‘구천동은 나름대로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 것 같긴 한데……’

자세한 이야기는 안했지만 그에겐 준비가 확실히 있다.

아마도 다른 조직들일 거다.

오성파와 남천파를 제외한 전국의 조직들, 보스들이 이 호텔에 같이 있다.

열일곱 조직 중 절반만 동료로 끌어들였어도 확률은 높다.

‘그렇게 했겠지.’

그래서 보이는 자신감이다.

그런 준비가 없다면 구천동 같은 인물이 액션을 취할 리가 없다.

그런데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이 모든 일을 꾸며 밀어붙이는 인물, 고종환이란 늙은이는 절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뭐가 되든, 전력으로 하는 거야.’

어차피 구천동이란 배에 올랐다. 암초와 부딪치고 파도에 휘청거려도 난파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 죽는 다면 그것도 괜찮다.

“귀신, 붙어보자.”

양 손목을 부딪쳐 소리를 강하게 낸 민음서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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