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92화 (92/200)

황혼의 살인자. 92. 귀신이 왔다 3.

92. 귀신이 왔다 3.

“호텔 내부 상황이 어떤지 전혀 파악이 안 되는 건가?”

자정으로 달리는 시간, 폰을 확인하며 한용수는 물음 아닌 물음을 냈다. 반응하는 건 역시 최길준, 호텔을 주시하고 있기에 바로 대답한다.

“고회장측에서 강하게 단속하고 있어서 내부로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출입자들을 체크하고 있고 호텔 내부인원들은 대부분 내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작업인력들을 들이는 등의 구멍은 열어 뒀고요.”

어둠에 잠긴 온누리병신병원의 전경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서 있는 한용수, 뒷짐 진 저 모습은 마치 한대건회장과 같다고 최길준은 생각했다.

“구멍은 열어뒀다…… 귀신도 그걸 알 테지만 들어갈 테지.”

그게 오늘밤이라면, 이란 소리는 작은 중얼거림으로 이어 나왔다.

“경찰이 외부경비를 서 주는 꼴인데, 제법 관전하는 맛이 납니다.”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 길한수의 얼굴엔 차가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 눈의 차가움까지 본 최길준은 왠지 싫은 느낌이 들어 주먹을 쥐었다.

“어떨 거라고 생각하나?”

결과가 어떨지를 묻는 한용수. 최길준보다 길한수가 먼저 대답했다.

“귀신은 접촉자가 확실합니다. 그런 존재와 싸운 다는 건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겁니다. 고종환회장이 무슨 준비를 했는지 몰라도 죽을 겁니다.”

접촉자, 저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길한수가 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최길준은 직감했다. 그런데 그 말보다 귀를 파고든 말이 있다.

‘죽는다.’

단호하게 확신을 뱉는 길한수, 그의 얼굴을 최길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 돌려 봤다. 그렇거나 말거나 차가운 미소를 품은 길한수는 이어 말한다.

“귀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우린 봤습니다.”

가평에서, 총탄을 피하는. 최길준이 뜨거운 침을 삼키는 데 목소리가 또 들린다.

“귀신과 같은 존재가 그들에게 없다면 싸움은 해보나 마나입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뜨거운 침이 따갑게 느껴지는 가운데 최길준은 입을 열었다.

“단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길한수가 돌아본다, 미간을 옅게 찌푸린 얼굴이다. 그리고 한용수가 돌아섰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눈으로 묻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고종환회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새삼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답을 내는 최길준, 굳은 얼굴과 딱딱한 음성으로 속을 헤아려보지만 한용수는 여전히 무표정이다. 하지만 지금 들은 말의 의미는 안다, 너무나 잘 안다. 고종환, 그 인간과 절대 부딪치지 말라고 아버진 말했었다.

“여태 귀신을 겪었습니다. 한대건회장이 어떻게 죽었는지 봤습니다. 물론 귀신이 총탄을 피하는 자라는 건 모를 테지만, 그 자는 고종환입니다.”

그자는 고종환이다, 그 말이 모든 걸 포함한 답이란 걸 한용수는 안다.

‘그래, 그 늙은이는 그런 존재지, 흡혈귀영감.’

최길준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고 귀신에게 당할 거라고 확신하는 건 지나치다고 봅니다. 고회장이 정확히 뭘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아니 표면적으론 보입니다. 전국의 조폭들을 불렀습니다. 예, 폭력배들이죠. 그런 자들이 귀신을 잡을 거라고 보는 건 코미디일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조폭이란 겁니다.”

정말로 조폭, 그 의미가 뭔지 헤아리려 길한수는 미간에 내천자를 그린다. 입을 열어 물음을 내려했지만 최길준은 무시하듯 내쳐 이야기 한다.

“말 그대로입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조직폭력배들, 그들은 역사와 뿌리는 가진 집단입니다. 동네 양아치들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양아치들이 더 무섭다고 말합니다. 앞뒤 없이 칼을 휘두르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한용수의 눈을 응시하며 최길준은 한 박자 쉰 목소리를 이어냈다.

“폭력조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군대처럼 명령에 죽고 삽니다. 모든 걸 도외시한 무모한 충성과 폭력, 역사와 뿌리를 가진 그자들의 속을 다 알 순 없습니다.”

“핵심이 뭔데?”

한용수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나는 걸 응시하며 최길준은 대답했다.

“드러내지 않고 숨겨온 것들, 그것을 이번에 드러낼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숨겨온 것들?”

미간 좁히는 한용수의 의문을 길한수가 대신한다.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겁니까?”

그래, 당신은 전략기획실장이지? 라는 길한수의 눈.

“국정원 쪽으로부터 정보를 캐치했습니다.”

무거운 숨을 삼키며 다시 입을 연 최길준은 한용수의 눈빛변화를 응시하며 이야기했다. 남천파가 고용한 살인자들과 그 밖의 정보들의 내용을.

* * *

비상계단을 차고 오르며 장철은 인지했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열린 영혼으로 밀려들어오는 외부의 감각, 27층의 숨소리들이다.

수십 명이 칼날 같은 기운을 풀어내고 있다.

장철 자신을 대비한 자들, 부딪칠 것들이다.

‘얼마든지.’

26층을 지나 27층으로 달려 올라간 장철은 비상계단 문을 온몸으로 받았다.

* * *

“응?”

거칠게 미간을 뒤튼 김부장은 폰을 봤다. 호텔내부카메라들과 연동된 cctv화면, 이상이 생겼다. 25층의 복도카메라들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무슨 일이야?”

다급히 폰에 대고 물음을 던진 김부장은 숨을 멈췄다.

-2507호에서 나온 자가 카메라를 파괴했습니다!

드디어 시작했다.

귀신이 온 거다.

이미 와 있었고 이제 움직였다.

2507호에서 나온 자라고 한다.

25층엔 도배인력들 밖에 아무도 없었다.

‘역시!’

귀신은 그 속에 스며들어온 거다. 철저하게 신원확인을 했다지만 얼마든지 가능할 터다. 이편에서도 그러한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기다렸다.

“25층 아래로 봉쇄해라.”

단호하게 명령을 내린 김부장은 메시지를 던졌다.

[귀신이 왔다]

짧고 명료한 문자, 보스들에게 알리고 긴 숨을 비로소 내쉬었다. 전율을 삼키면서다. 심장이 거칠게 뛴다. 이제 진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 *

“야락칭?”

최길준의 이야기 끝에 한용수는 이름을 뱉었다.

지금 들은 대로라면 흉악무도하다는 말로는 모자라는 놈들이다.

아홉이서 조직들을 쓸어버렸다는 건 언듯 이해가 힘든 부분이다.

그만큼 무섭고 강한 놈들인 거다.

“해오름파 구천동이 품고 있는 자는 더 위험하다고 판단합니다.”

확언하는 표정의 최길준, 이유를 이어낸다.

“국정원에서도 뒤늦게 파악한 내용입니다. 배경은 말씀 드린 대로입니다만……”

민음서라는 이름을 가진 자, 삼합회와 충돌해 쫓기는 인물.

“팔괘장의 고수라는 이자는 측량이 쉽지 않습니다. 그자의 손에 죽은 삼합회 조직원들의 면면도 그렇지만, 동북삼성지역을 헤집고 다닌 능력은……”

“삼합회의 추적을 받으면서, 그것들을 박살내면서?”

한용수의 반응에 최길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팔괘장이란 게 뭡니까?”

길한수가 끼어든다. 차가운 눈동자엔 의문과 옅은 조롱이 들어 있다.

“중국무술입니까? 태극권 같은 거요?”

조롱은 입가의 미소로 번져 나온다.

“그런 자가 무섭다는 겁니까? 아 미안합니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길한수는 미소를 참는 얼굴로 계속 말한다.

“이젠 상식이나 같은 건데, 중국무술 말입니다? 중국무술이라는 게 화려한 무용과 다를 바 없다는 건 주지의 사실 아닙니까? 이종격투기 선수들에게 참혹하게 박살나는 영상은 인터넷에 수두룩하죠, 그런 걸 걱정……”

“총이라고 다 같은 총이 아닙니다.”

툭 튀어나온 최길준의 말에 길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립니까?”

“잡은 자의 손에 따라 물총이 될 수도 있고 엽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건……”

“이종격투기에서 승자가 누굽니까? 그들은 뭘 익힌 것 같습니까? 맹수처럼 싸우는 그들이 피땀 흘려 수련한 근본이 바로 무용 같은 것들입니다.”

표정을 경직한 길한수에게 최길준은 강한 음성을 던졌다.

“상대를 경시하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경직해 있던 길한수의 얼굴이 스르르 풀리며 다시 미소가 피어난다.

“최실장님의 우려, 십분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작 최실장님은 우리 힘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뭐 그럴 겁니다.”

한용수에게 시선을 돌린 길한수는 물음을 냈다.

“어떻게 할까요?”

길한수와 최길준을 말없이 바라보던 한용수는 다시 창을 향해 돌아섰다. 자정을 넘긴 심야의 어둠이 깔린 연구소, 정원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준비시켜.”

길한수는 희열이 어린 미소를 뿌리며 바로 돌아섰다. 그의 얼굴과 한용수의 뒷모습을 번갈아 본 최길준은 불안을 삼켰다. 귀신에 대한, 길한수의 액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아직 다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는 거다.

‘오성파 전두칠이 품은 살인자는……’

모호한 정보만이 있을 뿐인 존재, 그래서 더욱 불안한 숨을 쉬게 된다.

‘방아쇠는 당겨졌어.’

눈을 감은 최길준은 길고 긴 숨을 내쉬었다.

* * *

방화철문을 복도 안쪽으로 터트리며 그 위를 구른 장철은 붉은 눈동자를 순간적으로 번득였다. 복도에 모여 반응하는 자들, 일본도로 무장한 조폭들에게로 달려갔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놈의 칼 속으로 들어갔다.

쾅, 어깨로 받아버린 놈이 튕겨나가는 순간 일본도를 낚아챘다.

“죽여!”

누구의 외침인지 모르지만 조폭들은 달려든다.

오로지 장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일본도로 난도질하기 위해 덤빈다.

그런데 눈빛들이 다르다.

충혈 된 저 눈알들에 든 맹목적인 살의는 약물로 인한 게 분명하다.

좌우에서 갈라 들어온 칼을 받아친 장철은 휘돌았다.

바람을 타고 떨어지면 휘도는 낙엽의 흐름처럼 나아갔다.

그 흐름으로부터 조폭들은 튕겨나갔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몸통이 갈라져 피바다 속에 쓰러진다.

* * *

“불필요한 소모를 하는 군요.”

가라앉은 민음서의 목소리엔 인간애 같은 게 들어있지 않다.

27층에서 시작된 싸움, 귀신에게 희생되는 조폭들을 위한 말이 아니다.

옅은 짜증이다.

상대의 힘을 소모한다고 저러는 대응이 맘에 들지 않을 뿐이다.

“필요한 일이야.”

구천동은 차갑게 눈을 번득였다. 무엇 때문에 필요한 일인지를 말한다.

“남천파와 오성파 놈들이 우선 죽을 거다.”

민음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스무 개 조직에서 필수인력 다섯 명씩을 호텔에 들였다.

그중에 남천파와 오성파 조직원들을 말함이다.

떠밀려 귀신 앞에 나가든 등에 칼을 맞든 그런 거란 소리, 전쟁은 시작됐다.

“우리 희생도 불가피 한 거고.”

불가피하단 말에 든 진짜 뜻이 뭘까 민음서는 헤아렸다. 오성파와 남천파를 제외한 다른 조직들과 손을 잡았지만, 종국엔 그들도 다를 바 없다.

‘왕좌는 하나, 복종해야할 신하들이 지닌 칼은 낡고 금이 간 것이면 좋겠지.’

깊은 숨을 들이마신 민음서는 순간 등골에 돋는 소름을 느꼈다.

‘응?’

지척이다.

자신이 숨 쉬고 있는 이곳, 28층의 다른 곳에서 나오는 기운이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섬뜩함이다.

‘음혜군.’

그다, 그라는 것을 확신한다. 곁에 앉았어도 간파하지 못했던 그의 진면모가 이제 드러난 거다. 귀신의 출현에 반응해 나온 거다. 이건 진짜다.

“그렇구나……!”

뜨거운 숨으로 중얼거림을 흘려내는 민음서, 구천동은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 * *

지옥으로 변한 27층, 피가 흐르는 속에 누워 꿈틀거리는 조폭들을 돌아보며 장철은 일본도를 휙 뿌렸다. 촤악하고 핏물이 바닥에 떨어진다.

‘오십? 육십?’

정확히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그만한 숫자를 갈랐다.

그런데 아직 룸에서 나오지 않고 숨 쉬는 자들이 있다.

사십여명은 되는 것 같다.

저렇게 숨어있고 덤비지 않는다면 놔둔다.

그런데 뒤에서 덤빈다면 죽인다.

붉은 빛이 어린 시선을 복도로 던지던 장철은 일본도를 던졌다.

회오리처럼 돌아간 칼을 복도 중간 열려 있던 룸 문에 박혔다.

그 소리가 경고처럼 퍼졌다.

덤비는 놈들은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원하면 덤비라고.

몸을 돌린 장철은 라디에이터를 발로 찼다. 튕겨나간 그곳에서 파이프를 뽑아냈다.

손안에 착 감기는 굵기, 길이는 오십센티 정도로 딱 맞다.

다른 손엔 회칼을 주워들었다.

양손에 잡은 무기들을 가볍게 부딪쳤다.

“간다.”

비상계단 방화철문을 향해 말한 장철은 28층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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