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96. 누가 죽고 누가 사는가.
96. 누가 죽고 누가 사는가.
엄청난 충격 속에 김부장은 뒹굴었다. 아니 휘날렸다.
룸 문을 부수고 안쪽으로 처박히고서야 감각이 찾아왔다.
온몸에서 피어나는 격통, 파편이 박혀서다.
구천동이 터트린 폭발, 그 속에서 터져 나온 것들이다.
‘방검복!’
그것이다. 폭발원인이 그거다.
구천동이 호텔로 가지고 들어온 것 중에 있던 방검복 두 개.
귀신을 상대하는 데 필요하지 않겠냐던 것, 반입을 허락했다.
총기도 아니고 겨우 방검복이었기에 그랬다. 그것에 당했다.
‘이런 수작에 당하다니……!’
치 떨리는 감정 속에서 김부장은 부들거렸다.
그런데 정작 자신도 방검복을 입고 있다.
구천동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서 착용한건 아니다.
귀신이란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해서다. 그자와 부딪칠 최후를 대비했었다.
‘구천동, 오냐, 네 덕분에 이정도구나……!’
전신에서 피어나는 격통을 무시하고 김부장은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에 박힌 폭탄의 파편들, 쇠구슬이 분명한 것들이 느껴진다. 아니 엄밀히 그냥 통증이다. 불꼬챙이로 쑤시는 것 같은 감각, 그런데 몸은 괜찮다.
‘방검복이 완충해줬어.’
몸통으로 파고든 쇠구슬들은 방검복이 어느 정도 막아줬다. 그래도 관통해 살을 파고들었지만 심각하지 않다. 심각해도 지금은 움직여야 한다.
“개새끼.”
낮은 숨으로 분노를 뱉어내며 김부장은 룸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총소리를 들었다.
드르르륵 하며 자동으로 난사하는 소리, 그 결과를 봤다.
구천동은 방아쇠를 거칠게 당겼다.
m4a1카빈 소총, 몸에 들어오는 반동을 희열로 삼키며 탄창을 비웠다.
이미 피범벅이 된 놈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배신한 조직의 보스놈들, 김부장의 부하들, 그리고 이 새끼들.
“꿈에도 생각 못했을 거다! 으하하하!”
팔다리가 끊어져 꿈틀거리고 있는 전두칠과 지경호에게 구천동은 미친 듯이 총을 쐈다. 탄창이 비자 떨어진 다른 총을 주워 또 난사했다. 세 번째로 총을 잡았는데 파편에 의해 부서진 것이었다. 네 번째를 주웠다.
‘응?’
그 순간 구천동은 봤다.
룸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김부장이다.
놈이 총을 겨누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런데 철컥, 총이 고장이다. 그리고 터진다.
총신이 터지는 순간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김부장, 그를 향해 구천동은 총을 쐈다. 괴성을 지르면서, 파괴된 벽과 천장과 복도를 훑으며 나갔다.
“으아아!”
* * *
최고한과 얽히는 순간 공격해오는 두 그림자, 민음서와 음혜군을 시야에 넣으며 장철은 순간 눈동자를 빛냈다. 핏빛처럼 붉은 안광을 풀어냈다.
그 찰나에 회칼이 바람을 일으켰다. 정확하게 바람의 흐름을 따랐다.
장철은 최고한을 스치듯 지나갔다.
음혜군의 작두칼을 솨파이프로 받아내고 민음서의 팔괘장에 회칼을 쑤셔 넣었다.
그 뒤에서 최고한은 쓰러졌다.
목과 어깨와 팔과 가슴과 안면에 무수한 칼자국을 드러내면서.
‘왜?’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면서 최고한은 물었다.
답을 해줄 이가 없는 물음.
자신이 왜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는 것인지, 야락칭 동료들이 왜 저렇게 죽은 건지, 귀신이란 존재가 무엇이길래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진 최고한의 죽음 뒤에서 죽음의 바람이 얽혔다.
* * *
“나와! 쥐새끼야!”
소리치며 구천동은 총을 긁었다.
드르르륵 하며 룸안의 집기들이 부서진다.
펜트하우스 내의 룸, 화려하고 호사스럽다. 그 바닥을 김부장이 긴다.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다. 그걸 보며 구천동은 웃었다.
철컥, 탄창이 비는 소리가 난 순간 김부장은 일어섰다.
그런데 그게 페인트였음을 알았다.
빈총을 다른 손에 잡은 구천동이 웃고 있다. 그걸 버리고 다시 총을 쏜다.
몸을 던지며 테이블을 엎었지만 관통해 버린다.
‘개 같은!’
이 갈리는 분노 속에서 김부장은 웅크렸다. 그런 속에서 구천동의 목소리를 들었다.
“개자식아! 내가 끝까지 등신일 줄 알았냐! 죽여 달라고 목을 내밀 줄 알았어? 천만에! 나 구천동은 그런 놈이 아니다! 이렇게 되갚아주는 놈이지!”
빗발치는 총탄 세례 속에 구천동의 외침은 거듭 들려온다.
“난 죽을 각오로 온 거다! 너하고 고회장을 저승길동무로 삼으려고 왔다 이거야! 맛이 어떠냐? 짜릿했지? 정말 어렵게 구하고 만든 폭탄조끼다!”
고갤 박은 채 김부장은 의문을 삼켰다.
정말로 구천동이 어떻게 저런 물건을 가져 왔는지다.
저런 건 분쟁현장에서나 사용되는, 테러범들이 만드는 거다.
한국 내에서 저런 물건을 구할 순 없다. 분명 만든 거다.
“세상이 바뀌어서 맘만 먹으면 뭐든 가능해!”
구천동은 자랑하듯 계속 소리친다.
“인터넷엔 폭탄 제조부터 총을 어떻게 만들고 구하는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이거야! 뉴스에 나왔지? 주택가 골목길에서 폭탄 만들어서 터트린 놈? 그런 어리버리가 아니라 군에서 폭발물을 취급한 놈에게 시킨 거다!”
분노와 치욕으로 부들거리며 김부장은 기억을 더듬었다.
구천동이 확인해보라며 방검조끼를 내밀던 때다, 받아서 확인했다.
순수한 방검조끼였다.
그걸로 끝냈다. 두 번째 방검조끼도 확인했어야 했는데 안했다.
“김부장! 네가 뭘 실수했는지 이제 알겠냐! 으하하하!”
구천동의 비웃음은 뜨겁게 이어졌다.
“크하하하!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눈꼽만큼도 예상 못했을 거다!”
정말이다. 상상해 본적 없다. 김부장 자신과 고회장에게 생길일이 아닌 거다. 한국에선 없을 일이다. 그런데 생겼다. 이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개자식아! 나와서 덤벼봐! 내 목을 따보란 말이다!”
구천동은 다시 총을 난사했다.
* * *
민음서는 이해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팔괘장을 맞은 상대는 아무 제약이 없는 상태로 보인다.
내가중수법에 의한 타격인데 저럴 수가 없다.
움직이지 못하지만 움직인다면 피토하고 쓰러져야 맞다.
‘달라.’
그래서 위험하고 무서운 상대라는 걸 민음서는 다시 깨달았다.
합격하고 있는 음혜군도 무서운 자인데 귀신은 더 무서운 존재다.
음혜군과 함께 공격하는 게 아니라면 상황이 달랐을 터다.
야락칭들처럼 됐을 거다.
‘맹수 같은 자들을 짧은 순간에 다 죽였어.’
아홉이란 숫자의 살인마들, 그 숫자로 함께하기에 더 무섭고 강했던 살인귀들을 다 죽였다. 야락칭들은 저희가 죽였던 대상들처럼 죽고 말았다.
‘쥐를 잡아 죽이던 고양이가 호랑이를 만나 찢어발겨진 것처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부딪치면 죽음이 당연한, 그런 존재와 싸우고 있다.
귀신은 야락칭들을 먼저 죽였다.
민음서 자신과 음혜군의 합공이 만만치 않아서라고 생각되지만, 어쩌면 이게 귀신의 수작인지도 모른다.
‘내 공격을 맞고도 저렇게 움직이는 자.’
위험한 예감을 품은 민음서는 기력을 모았다. 휘돌리고 거둬들이고 다시 펼치고 돌아가는 움직임 속에서, 오른 손에 모든 힘을 모아 응축했다.
‘일권천붕.’
의식을 집중하고 민음서는 주권(走圈)을 펼쳤다.
탑돌이를 하는 것 같은 팔괘장 특유의 움직임, 귀신을 두고 돌았다.
상대와의 직접충돌이 아닌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화경(化境)으로, 피정타사(避正打斜)의 근본으로.
귀신의 눈동자가 붉은 빛을 내는 찰나, 음혜군의 작두칼이 시린 칼바람을 터트리는 순간, 민음서는 권력을 터트렸다. 귀신의 가슴을 향해서.
* * *
“개새끼야, 개처럼 뒈지는 게 어떤 건지 느껴봐라……!”
이가는 분노를 흘려내며 구천동은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 찰나에 튕겨 일어서는 김부장을 향해 난사했다. 그런데 몸을 던지는 김부장에게서 뭔가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피했지만 화끈한 감각이 뺨에서 피어난다.
“이!”
벽에 박힌 나이프.
그것이 가른 얼굴의 피를 닦을 생각도 잊은 채 구천동은 총을 쐈다.
김부장이 달려가 몸을 숨긴 욕실의 형상을 바꿔버렸다.
그렇게 빈 탄창을 떨구고 새 탄창을 삽입했다. 그런데 뒤가 서늘하다.
‘뭐?’
섬뜩한 예감이 곤두서는 순간 구천동을 몸을 돌렸다. 그렇게 그를 봤다.
고종환회장, 구순의 늙은이, 그가 리볼버 권총을 겨누고 있다.
나직하게 중얼거리듯 말하는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사람을 무는 개는 죽여야지.”
구천동은 소총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런데 천둥이 쳤다.
충격.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각에 이마 한가운데 느껴졌다.
암흑이 밀려든다.
* * *
음혜군은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 본 것, 귀신의 움직임이 그렇게 만들었다.
자신의 작두칼 두 자루를, 그 공격을 장단 맞추는 것처럼 받아내던 자가 민음서의 공격을 받았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회오리치는 버들잎과 같은, 태풍 속에서 춤추는 갈댓잎과 같은, 그러한 느낌의 공격이었다. 그 속에 피할 수 없는 결정타가 들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귀신은 그 공격을 품고 휘돈다. 민음서의 팔을 휘감고 돈다.
‘불가능해.’
그런 거다. 팔괘장의 달인 민음서가 평생 고련한 정화를 터트리는 거였다. 그게 어떤 건지 완벽하게는 몰라도 이해하고 느끼는, 엄청나고 무서운 것이다. 그런 것을 귀신은 받아낸다. 아니 동화한다, 다르지 않다.
‘화경.’
귀신은 그것을 민음서에게 돌려줬다.
민음서가 주려했던 것에 제 힘과 의지를 더해서다.
팽이처럼 휘돈 민음서는 허공을 날아가 벽에 충돌했다.
움푹 들어가 갈라진 벽을 손으로 짚고 일어선다. 토혈하며 부들거린다.
“어떻게……?”
민음서가 낸 물음, 그것에 답을 주지 않은 귀신이 돌아본다.
음혜군 자신을.
저 눈은 말하고 있다.
이젠 정말로 전력을 다하라고.
그래야 한다고.
음혜군은 대답했다. 하얀 미소로. 작두칼을 휘돌리며 다시 움직였다.
* * *
“좋아 보이지 않는 구나.”
고종환은 김부장을 향해 무심히 말했다. 손에 잡고 있는 리볼버권총을 던지면서다. 그걸 받아든 김부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결과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쯧, 하고 혀를 찬 고종환은 쓰러진 구천동을 응시하고 복도로 나갔다. 폭발에 휩쓸리고 총에 맞아 죽은 자들을 바라봤다. 지경호와 전두칠의 처참한 형상, 조질 보스들과 심복부하들, 맥없이 당한 김부장 부하들.
“아주 제대로 당했어.”
분노를 삼키며 고종환은 걸음을 옮겼다. 구천동이 폭탄을 터트린 자리에 섰다.
‘제 심복에게 입혀놓은 방검복, 폭탄조끼를 여기서 터트렸어.’
폭발력은 등 뒤에 선 구천동을 제외하고 180도로 퍼져나갔다.
‘누굴 탓하겠나. 당한 놈이 등신이지.’
부득 소리 나게 이를 문 고종환은 김부장을 향해 돌아섰다.
“28층 상황을 더는 볼 수가 없다.”
왜 그런지 김부장은 이유를 들었다. 귀신이 싸우는 와중에 던진 돌멩이들이 카메라를 부쉈다. 그놈이 15층에서 움직일 때 한 것처럼이다.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 알 수가 없어.”
다시 귀를 파고든 고회장의 목소리, 그 의미를 김부장은 현실로 절감했다.
‘귀신이 산다면……!’
구천동이 떨군 소총을 잡은 김부장은 고종환에게 고갤 조아렸다.
“확인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회장님은 피하십시오.”
소총을 잡고 돌아서는 김부장을 고종환은 제지하지 않았다. 눈으로만 좆았다. 김부장의 모습이 비상계단 철문을 닫고 사라진 후에 돌아섰다.
* * *
장철은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울음을 들었다.
전신을 치고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그 공명에 전율했다.
그런데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서슬이 시퍼런 작두칼을 양손에 잡고 다가온다. 미소품은 입으로 말한다.
“누가 주고 누가 살까.”
붉은 눈동자를 빛낸 장철은 마주 나갔다.
공간을 가르고 들어오는 작두칼의 할큄 속에서 흘렀다.
그에 맞춰 흘러나오는 작두칼, 그 속으로 쇠파이프를 던졌다.
동강나 튕겨 나가는 찰나에 회칼도 던지고 춤췄다.
화경과 피정타사, 팔괘장이다.
장철은 여태 당한 팔괘장을 펼쳤다.
음혜군의 작두칼을 흘려내고 비껴내며 주권으로 돌았다.
그 중심에 갇힌 음혜군은 놀라고 분노했다. 보고 배우는 것은 자신의 특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기에 음혜군은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칼 하나가 휘말렸다. 귀신의 휘도는 움직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이 허전하다.
‘이!’
눈을 부릅뜨는 그 찰나 음혜군은 봤다.
비상계단 철문을 열고 나타난 남자, 김부장이다. 그가 총을 난사한다.
귀신의 등을 향해서, 자신을 향해서다.
그런데 눈앞에 있던 귀신이 사라졌다.
총탄들이 온몸을 때린다.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난 음혜군은 벽 앞에 무너진 민음서를 봤다.
귀신에게 당한 그의 몸을 총탄들이 헤집었다. 흐릿해지는 눈으로 그가 말한다.
“졌어……”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민음서의 곁에 음혜군은 주저앉았다. 그리고 들었다, 귀신이 내는 소리를, 그가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죽음의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