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98. 탈출.
98. 탈출.
-상황발생이다!
겨우 잠들었던 최재우는 박인수의 전화소리에 일어나 잠을 쫓아냈다. 아니 박인수가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 귀를 파고드는 말들이 일어서게 한다.
-경찰특공대가 호텔로 진입했어!
허둥거리며 최재우는 옷을 입었다.
웅 하며 돌아눕는 아내 유인주가 깰까봐 흠칫하며 멈췄다가 서둘러 나갈 준비를 마쳤다.
현관을 조용히 열고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야 숨을 돌렸다.
이 엄청난 현실이 가슴을 누른다.
‘귀신……!’
그가 정말로 고종환을 찾아갔다. 고회장이 호텔로 들어간 날 바로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뜨거운 침을 삼키며 최재우는 으르르 소름을 털어냈다. 여태 귀신 장철이 만든 결과들을 생각해서고, 지금 일의 끝을 짐작하기 힘들어서다.
아니 짐작은 된다.
피와 죽음이 난무할 거다.
그게 누구냐가 문제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호텔을 어떻게 빠져나갈 건가.’
호텔의 외부엔 경찰이 있다. 경찰특공대가 지금 막 호텔로 진입했다.
거기다 호텔 건너편에선 국정원에 감시하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 박인수에게 상황을 알려준 거다. 국정원 팀장이, 박인수의 간절한 부탁으로다.
‘명령으로 돌아가지만 상황은 꼭 알고 싶다고.’
그 말을 한 박인수 심정이 어땠을지 모르겠다. 정말 감사한건 국정원 팀장이 그걸 들어줬다는 거다. 박인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간 미안함 때문인지, 고생한 국가기관 동료로서의 마음인지, 어떻든 알려줬다.
‘호텔을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엘리베이터 숫자판이 느리게 바뀌는 걸 초조한 눈으로 보며 최재우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귀신 장철이 호텔을 못 빠져나올 걸로 예상이 된다.
‘경찰력이 에워싸고 있는데, 경찰특공대가 진입했는데……’
그런 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는 없다.
고종환회장 측과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무자비한 조직폭력배들, 고회장의 본래 부하들, 귀신도 정상이 아닐 걸로 예상된다.
성공했다 해도 부상을 입었다면 더 힘들다.
“하.”
답답한 숨을 크게 내쉰 최재우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귀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다.
그는 살인범죄자인데, 경찰이 잡아야 할 대상인데, 어째서 그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생각일까.
“내가…… 후우.”
다시 큰 숨을 들이 내쉰 최재우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갤 들었다. 지하주차장으로 나가 차를 향해 리모컨을 누르며 어금니를 물었다.
‘일단 가보는 거야.’
그렇다, 일단 가보는 거다. 강남 R호텔로 간다. 오라는 사람 없었고 가는 것 자체가 명령위반이 될 상황이지만 간다. 가서 눈으로 봐야겠다.
“귀신……!”
그 이름을 뜨거운 숨으로 부른 최재우는 차를 몰고 나갔다.
* * *
계속 주시만하라는 지시다. 하지만 저격수를 배치하라는 명령도 함께다.
호텔 밖으로 나온 귀신이 포착되면 사살하라는 확실한 명령이다.
그런데 그 명령은 거의 확률이 없는 거다.
귀신이 호텔을 나올 방법은 없다.
‘고회장.’
직접 본적 없는 그 인물의 얼굴을 떠올리며 황철현은 현실을 삼켰다.
흡혈귀영감, 그가 있던 곳으로부터 신호가 왔다.
경찰특공대를 호텔 안으로 들이는 신호다.
귀신이 왔기 때문, 저희가 처리하지 못할 상황인 거다.
‘야락칭 같은 놈들을 전부 처리한 건가?’
그런 결과가 분명하다.
호텔 안엔 고회장과 조폭보스들이 선발한 정예들이 있었다. 귀신을 기다렸다.
손뼉치고 웃으며 환영해 주려고가 아니다. 죽이기 위해서다.
저희가 할 수 있다고 준비했다. 그런데 안 된 거다.
“호굴 속에 들어간 귀신.”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그 표현을 황철현은 중얼거렸다. 저격라이플을 견착하고 있던 팀원들이 힐긋 돌아본다. 모르는 체 하며 호텔만 바라봤다.
‘어떻게 들어간 걸까?’
지금 따져봐야 부질없는 거지만 궁금증이 인다. 귀신장철이 호텔로 진입할 방법은 확인이 될 것이다. 필경 호텔로 들어간 외부인력들 속일 거다.
‘이젠 나오는 게 문제.’
고회장이 아직 무사한지도 알 수 없지만, 만에 하나 귀신이 고회장을 죽이는 미션을 성공했다면 탈출이 문제다. 불가능한 장소와 환경인 거다.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경찰특공대는 안 돼.’
고도로 훈련받은 최정예다. 호텔과 같은 저런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최적화된 전사들인 거다. 장비는 말할 것도 없다. 귀신은 끝장날 거다.
‘그래도 만에 하나 호텔을 빠져나온 다면.’
그때는 황철현 자신이 나설 거다. 귀신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개인이든 의심쩍은 차량이든, 호텔을 벗어나는 움직임이 드러나면 제지할 것이다.
‘12.7mm의 저격탄이.’
M82 바렛에 한 몸처럼 붙어 있는 팀원 둘을 힐긋 돌아봤던 황철현은 다시 호텔을 응시했다. 고회장이 있는 최상층과 아래층, 28층까진 여전히 안 보인다. 창문을 가린 셔터들이 내려진 저곳에 귀신이 있는 거다.
* * *
경찰특공대가 움직였다.
귀신 때문이다.
이제 호텔에 귀신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봤다.
그런데도 밀고 들어갈 순 없다. 그러자면 경찰들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거다.
엄연한 이 현실을 한회장은 지켜보라고 한다.
‘빌어먹을.’
치미는 감정과 그걸 다스려야 한다는 냉철함 사이에서 길한수는 호흡했다.
어떠하든 귀신의 실재를 확인했다.
놈이 호텔 안에 있다.
아닌데 경찰특공대가 들어갈 이유가 없는 거다.
그렇다는 건 실패를 의미한다.
‘고회장이 준비한 것들이.’
귀신에게 부서진 거다. 귀신을 잡아 죽이려던 놈들이 뒈진 거다.
야락칭이니 팔괘장의 달인이니 떠들던 최길준이 생각난다.
물론 그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진 않는다.
그런데 최실장은 정말로 우리에 대해 모른다.
‘귀신을 잡을 수 있는 건 우리야.’
천미와 경일우와 백경, 저 셋이면 게임 끝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지켜봐야 한다.
경찰과 충돌할 수 없다.
그런데 저 상태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시가전과 대테러작전에 특화된 최정예 경찰특공대가 들어 간 거다.
‘저대로 끝나는 거라면……’
헛걸음 한 거다. 이렇게 구경만 하다가 돌아가야 한다. 그럴 지도 모른 다는 예상 속에서 움직인 거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습게 된다.
“귀신, 잘해 봐라.”
호텔을 향해 중얼거림을 던진 길한수의 뒤에서 세 존재의 눈동자가 번득였다.
* * *
28층으로 내려온 장철은 음혜군과 민음서의 시체를 바라봤다.
이름도 모르는 자들, 보통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자들이었다.
특히 음혜군은 동류였다. 저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는 말을 남기고, 깨닫고 죽었다.
‘칼을……’
양손에 쥐고 있는 작두칼, 장철은 버리지 않았다.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서 이곳에 다시 내려왔다.
칼 주인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찾기 위해서다.
빠른 움직임으로 룸으로 향했다. 칼 주인이 나왔던 룸이다.
‘있구나.’
침대 위에 펼쳐져 있는 가죽을 확인한 장철은 칼을 갈무리했다. 둘둘 말아 끈을 조인 후 어깨에 멨다. 옛날 드라마에 학생이 책보를 메듯이다.
‘이젠 나간다.’
돌아서 룸을 나간 장철은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를 잡았다.
비상계단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데 그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경찰 특공대.’
바람을 탄 귀신처럼 장철은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 * *
‘귀신.’
어금니에 문 그 존재의 의미를 새삼 상기하며 한용수는 태블릿을 들여다봤다. 호텔 건너편 빌딩, 자동차 대리점 안에 있는 길한수가 촬영해 보내는 실시간 영상이다. 경찰차들과 앰뷸런스들이 번쩍거리고 있다.
‘거기서 잡히거나 죽진 않겠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야 한다고 바라지만 모를 일이다.
고회장은 실패한 걸로 짐작되지만 내용은 모른다.
그 흡혈귀영감이 준비한 게 귀신에게 어떤 데미지를 입혔는지, 아니면 거의 성공한 건지도 모른다.
‘마무리를 위해서 경찰을 진입하게 한 걸 수도 있어.’
저희가 마무리까지 할 상황이 안돼서다. 그렇지만 귀신은 거의 잡은 거다.
그런 상황이라면 헛수고 한 게 된다.
물론 이 밤에 귀신을 잡을 거라고 생각한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호텔까지 길한수등을 보낸 기대도 있었다.
‘귀신을 잡을.’
다시 어금니에 힘을 실으며 한용수는 태블릿 영상을 응시했다.
* * *
한마디로 삼엄하다, 호텔 앞은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다.
아니 호텔을 에워싸고 포위중이다. 이런 곳을 빠져나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는 귀신이다. 여태도 불가능한 일을 했다.
만일 이곳도 빠져나간다면?
‘또 귀신입장의 생각.’
머리를 흔든 최재우는 호텔 앞 상황을 바라보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박인수의 전화가 왔다. 잠시 후에 그의 차가 다가와 멈췄다.
“제길, 우리도 경찰인데 여기서 봐야하나?”
호텔 맞은편, 박인수는 위를 올려다본다. 국정원팀이 있는 곳을 눈으로 더듬는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옆 빌딩을 본다. 자동차대리점이 있다.
“저기가 더 좋아 보이는데 옮길까?”
박인수의 목소리를 따라 최재우는 시선을 던졌다. 정말로 자동차대리점 앞에 나아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거기다. 굳이 옮길 필요까진 없다.
“상황파악은 안 되는 겁니까?”
최재우가 물음을 던지자 박인수는 거절하는 걸로 알아듣고 대답했다.
“조금 전에 특공대하고 귀신이 충돌했다는 거야.”
“그래요? 어떻게 됐습니까?”
“황당한 거지, 말 그대로 귀신처럼 특공대들을 쓰러뜨리고 있대.”
허, 하는 숨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낸 최재우는 박인수의 뒷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빠져나오진 못해. 귀신이 이동하는 곳마다 차단하고 몰고 있어.”
24층을 중심으로 복도며 환기구며 다 차단중이란 이야기. 룸마다 섬광탄을 던져 제압하고 있다는 거다. 귀신이란 존재를 확실히 죽이려는 거다.
‘장철 당신은……’
흔들리는 눈길을 호텔로 던지던 최재우는 그 광경을 봤다.
경찰특공대 부상자가 앰뷸런스에 실리는 모습이다.
동료를 업고 나온 대원과 함께 이동한다.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퍼트린 앰뷸런스는 강남을 뚫고 간다.
* * *
앰뷸런스를 돌아본 장철은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를 넘어 두시로 달려가고 있다.
25층 룸에서 찾은 가방 속의 옷은 제대로다.
도배사이기에 갈아입을 옷을 지니는 건 당연한 일, 그렇게 준비한 걸 갈아입었다.
‘기절한 것뿐이니까.’
앰뷸런스에 누워 있는 경찰특공대와 구급대원들을 잠시 생각한 장철은 산을 향해 움직였다. 가장 자신 있는 것, 산을 타고 이동하는 거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산을 타는 방법은 이미 드러나 있다.
‘쫓아올 거야.’
그 시간이 아주 빠를 것이라 판단한다.
귀신이 경찰특공대로 가장해 호텔을 빠져나온 것, 앰뷸런스가 이곳 검단산에 버려진 게 드러나는 건 곧이다.
장철 자신의 옷을 입고 창고에 박힌 특공대 때문이 아니라 흐름이다.
‘더 멀리, 훨씬 빠르게 이동해야 해.’
계획을 다시 더듬이며 장철은 산을 향해 걸음을 냈다.
검단산과 망덕산의 사이를 주파해 군두레봉과 군월산을 지나간다.
중부고속도로 광주ic를 지나쳐 퇴촌면까지 가는 거다.
거기서 곤지암으로 우회해 돌아간다.
‘아침이 되기 전에.’
장철의 걸음은 달림으로 변했다.
산을 차고 오르는 움직임은 바람이 밀어주는 것처럼 나아갔다.
정말로 그렇다고 말하듯이 바람은 울며 불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