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00화 (100/200)

황혼의 살인자. 100. 접촉자들.

100. 접촉자들.

거침없이 산을 차고 오르던 장철은 움직임을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어둠이 깔려 흉악한 마귀처럼 꿈틀거리는 심야, 저 속을 헤치며 오는 존재들이 있다.

호텔을 벗어나던 순간에 느꼈던 기운, 이젠 확실히 알겠다.

‘그런가.’

꼬리가 붙었다. 아니 꼬리를 잡혔다.

장철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추적해 오고 있다.

몸을 스치고 가는 바람의 노래는 셋임을 알려준다.

경찰이 아니다.

음울한 어둠과 공명하는, 깊은 곳의 울림을 들은 자들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

어둠을 응시하며 장철은 생각하고 생각했다. 현재 처한 상황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리고 지워버리고 다시 그렸다.

“내 길을 막는 다면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어둠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를 던진 장철은 그 자리에 앉아 백팩을 열었다.

25층에 뒀던 도배장비 가방 안에 넣었던 것, 특공대원을 업고 나올 때 가지고 나온 거다. 눈에 띨 것이란 예상을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검은색이라 특공대원 장비로 인식하길 바랐지만.’

백팩에서 꺼낸 구급약품으로 장철은 부상부위를 다시 치료했다. 자신과 같은 동류의 사내, 작두칼을 휘두르던 자의 공격에 갈라진 부위들이다. 임시로 동여맨 붕대들을 풀고 다시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조여 맸다.

“고초희.”

그 이름을 나직하게 뱉은 장철은 붕대를 강하게 조이며 붉은 눈을 빛냈다.

“이제 너 하나 남았다.”

그년을 죽여야 한다. 그러면 끝이다.

그런데 그년에게 갈 길을 막으려는 자들이 다가온다.

장철 자신과 같은 특별한 자들, 동류다.

누군지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갈 길을 막는다면 결론은 하나다.

“죽인다.”

어둠을 향해 그 말을 뱉은 장철은 바람의 출렁임을 봤다.

공명하는 노래가 아닌 귀곡성을 낸다.

저 어둠 속에서 올 자들을 환영하는 노래다.

* * *

-검단산입니다.

추적결과를 보고하는 팀원의 목소리에 황철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금니를 문채 뜨거운 숨만 몰아 내쉬었다.

현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위에선 계속 지켜보기만을 지시했다.

“상황주시하고 계속 보고해.”

팀원에게 뒤늦은 목소릴 던진 황철현은 폰을 내렸다.

건너편 호텔을 바라보며 허탈한 숨을 다시 내쉬었다.

귀신이 빠져나간 범죄현장, 저곳은 아수라장이다.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희롱당하고 얻어맞은 몸부림이다.

‘경찰특공대를 검단산으로 보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경찰의 현재 대응은 그거다.

앰뷸런스를 타고 빠져나간 귀신의 종적을 파악한 대응, 그러나 허둥거리며 시늉하고 있다.

고회장은 이미 죽은 거다.

그를 위해 경비원이 됐던 경찰에게 현재 상황은 피곤한 충격이다.

‘감당해야 할 결과 때문에 히스테리에 든 상황이기도 하고.’

창가로 붙은 황철현은 아래를 내려다 봤다. 지금 서 있는 이 공간을 내주고 간 자, 박인수경정이 보인다. 동료로 보이는 다른 남자와 함께 서서 호텔을 바라보고 있다. 귀신상황을 알려주자마자 바로 달려온 거다.

‘귀신을 추적해간 온누리정신연구소는……’

박인수를 보며 황철현은 그곳을 떠올렸다.

온누리그룹, 한용수회장이다. 온누리정신연구소는 그가 맡고 있다.

현황이 말해주는 건 분명하다. 한용수회장이 나선 거다.

부친 한대건의 복수를 위해서, 귀신을 잡으려고다.

‘승합차에 탄 자들로 귀신을 잡는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황철현은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가능성이 있는 건지 더듬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은 가능성이 없다이다.

그렇다면 추적만 하고 있다는 건가?

그런데 그걸 정말 잘해낸 결과로 보인다.

‘귀신이 호텔을 벗어나는 걸 파악하고 바로 붙었어.’

아주 작은 위화감, 그걸 움켜잡은 거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을 본 거다.

귀신이 경찰특공대원으로 둔갑해 부상자로 업고 나온 걸 포착했다.

그것만으로도 온누리의 대응은 다르다. 그런데 이젠 어쩌려는가?

“승합차 위치 포착했습니다.”

팀원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황철현은 돌아섰다.

* * *

앞을 막은 검문소를 응시하며 길한수는 쾌재의 미소를 지었다.

뒷북이지만 대응 중인 경찰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검단산 일대에 통제선을 만들고 이렇게 검문중이다.

요구하는 대로 신분증을 내주고 통과해 나왔다.

‘온누리정신연구소 차량이 이곳에서 뭘 하든 아무 상관없는 거야.’

호텔 앞에서 얼쩡거린 것도 드러날 거다. 그것도 상관없다. 그 시간에 거기서 뭘 한 거냐고 묻는 상황도 없을 테지만 어떤 대답도 가능한 거다.

‘결과만 기다리면 돼.’

길한수 자신은 다시 돌아가는 거다. 검단산에서 천미와 백경과 경일우가 귀신을 잡을 거다.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에게 맡기는 거다. 그래야 한다. 귀신에게 닿은 적이 없었던 거다.

‘번거롭지만.’

흥겨운 미소를 입가에 문채 길한수는 승합차를 몰고 도로를 달렸다.

* * *

‘검문소를 통과해서 돌아간다?’

미간을 깊게 찌푸린 황철현은 생각했다.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승합차가 검단산 일대를 벗어나 용인 방향으로 돌아가는 중인걸 확인했다.

광주를 거쳐 모현면으로 이동하며 바로다.

승합차엔 한명만 타고 있었다 한다.

‘경찰 무전통신에 의하면 그런데……’

아귀가 맞지 않는다.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승합차는 분명 귀신을 추적했다.

검단산에 버려진 앰뷸런스를 찾은 거다.

그런데 그냥 돌아간다? 혼자만 타고 있다?

그냥 갈 리가 없다. 혼자만 타고 있었을 리가 없다.

‘귀신을 쫓아갈 인력들이 내렸다?’

그게 말이 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R호텔에 귀신처럼 침투해서 고종환회장을 살해한 존재가 귀신이다.

가평에서와 똑같다.

그런 자를 잡겠다고 뒤를 밟는 거라는 말이 된다.

방법이 있는 건가?

‘지금이라도 전력을 다한 다면 귀신을 잡을 수 있어.’

검단산으로 귀신은 들어갔다. 이전처럼 산을 타고 도주하려는 거다.

예상을 넘은 범위설정으로 병력을 투입하는 거다.

모든 도로와 이동가능한곳을 통제하고 막는다면 귀신도 방법이 없다.

그러자면 시간이 생명이다.

‘빨리, 군대라도 동원해서.’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위에선 지켜보기만을 지시하고 있다. 경찰은 본질적으로 의지가 없다.

그러니 이게 무슨 수작이고 꼴인지 모르겠다.

귀신을 잡겠다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끝이 어떨지 보자는 건가?

“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황철현은 아래를 봤다. 박인수경정과 동료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 * *

폰을 귀에 대고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박인수는 폰을 내리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최재우를 돌아봤다. 이어내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린다.

“검단산이야.”

귀신이 간 곳이다. 그곳에 앰뷸런스를 버렸다. 본청 정보과의 동기로부터 현황을 들은 거다. 이결과가 어떤 결론으로 치달을지 박인수는 말한다.

“최팀장 말대로겠지.”

군대를 동원해서 산자락을 다 포위하고 뒤지지 않는 이상 못 잡을 거야, 란 박인수의 독백은 허무하게 흩어진다. 그런데 그 때 폰이 울었다.

“응?”

번호가 국정원 그임을 인지한 박인수는 눈동자를 응축하며 전화를 받았다.

“예, 박인숩니다.”

-여기서 보입니다.

박인수는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최재우도 그랬다.

-귀신이 검단산으로 도주한 상황 인지하고 계십니까?

“방금 알았습니다.”

박인수의 대답이 나갔는데 황철현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게 이상해 최재우와 눈빛을 교환한 박인수가 다시 입을 열려는데 반응이 나왔다.

-귀신을 뒤쫓아 간 차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박인수는 최재우와 다시 눈을 맞췄다. 스피커폰으로 해놓진 않았지만 볼륨이 커서 황철현의 말을 들은 최재우는 눈썹을 세웠다.

“경찰이 추적중인 거 말고, 다른 차량을 말하는 겁니까?”

직전과 같진 않지만 이번에도 사이를 둔 황철현의 대답이 건너왔다.

-그렇습니다. 두 분이 계시던 곳에서도 보였을 겁니다. 옆 빌딩의 자동차대리점에서 나간 승합차입니다.

박인수와 최재우는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기억해 냈다. 귀신이 탄 앰뷸런스가 막 호텔 앞을 벗어난 직후다. 분명히 승합차가 떠나갔다.

“그 차가……”

-온누리정신연구소 차량으로 파악됐습니다.

폰에 귀를 댄 박인수도 가까이 얼굴을 댄 최재우도 동시에 눈을 치떴다.

* * *

멈춰선 경일우는 산비탈에 떨어져 있는 걸 잡았다.

피 묻은 붕대, 귀신 장철이 버린 것이다.

귀신은 이곳에서 상처를 다시 살폈다.

흔적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 버리고 갔다. 그렇다는 건 자신들의 추적을 안다는 거다.

“재밌어지는데?”

피식 웃음을 흘리는 경일우의 눈은 섬뜩한 빛으로 번득인다.

톰슨가젤을 물어뜯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를 시작한 사자의 눈동자와 다르지 않다.

아니 그보다 위험하고 무섭다.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난 빛이 더 있다.

“우리더러 쫓아오라는 거야.”

표정 없는 얼굴로 천미가 말했다. 서늘한 빛의 눈동자만 빛내는 천미는 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현 위치는 퇴촌면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야.”

그렇다, 검단산과 이어진 마지막 산자락이라고 해야 할 군월산이다.

불과 한 시간 만에 귀신은 검단산을 벗어나 여기까지 이동한 거다.

접촉자이기에 가능한 결과, 경찰의 움직임은 글렀다. 절대 귀신을 못 쫓는다.

“어떤 자라고 생각해?”

백경이 물음을 냈다.

천미와 경일우는 동시에 백경을 봤다.

원래 말이 없는 사내, 주변상황에 의문을 표시하는 자가 아니다. 그런데 묻는다.

귀신이 어떤 존재 같으냐는 물음.

어떠한 마음인지 모를 수가 없다.

그는 접촉자다, 자신들처럼 연구소에서 이뤄진 존재가 아니다.

자연발생한 존재다.

그런 자들이 있다. 이자는 그중에 특별하다. 그래서 흥분된다.

“붙어보면 어떨지를 묻는 건가?”

경일우가 되물음을 내자 백경은 잠시 시선을 맞췄다가 말한다.

“그렇게 되면 죽겠지. 그게 나는 아닐 거야.”

무심한 목소리와 목소리로 입을 연 백경은 짧은 사이를 뒀다가 뒷말을 이어냈다.

“귀신, 그자가 접촉한 경로가 어떤 건지 궁금하다는 거야.”

천미와 경일우는 알아들었다.

채널링으로 통칭하지만 접촉의 방법은 다양하다.

귀신 장철이 그중에 어떠한 경우인지, 그가 어디까지 간 것인지 궁금한 거다.

물론 자신들처럼 깊은 곳은 아닐 거란 확신하의 의문이다.

“직접 물어보고 대답을 듣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겠지.”

경일우의 냉소 섞인 반응에 이어 천미가 입을 연다.

“예상을 넘는 자일 수 있어.”

백경과 경일우는 동시에 미간을 꿈틀하며 천미를 응시했다.

“귀신이 호텔을 벗어나는 순간 그를 느꼈어.”

흰빛이 섞은 눈썹을 모은 천미,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뒷말을 낸다.

“소름이 돋는 것 같던 감각이었어, 아주 짧아서 착각한건지도 모른다고 여길 만큼. 그런데 내 감각에 착각 같은 건 없어. 분명 귀신의 울림이었어.”

경일우가 응축한 눈동자로 입을 연다.

“그 순간에 놈도 너를 느꼈다는 소린가?”

천미는 경일우가 아닌 백경을 응시하고 대답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해.”

백경은 반응하지 않고 깊고 어두운 눈동자만 꿈틀거렸다. 경일우는 뭔가 말하려다가 숨을 삼켰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를 보다가 움직였다.

* * *

경안천을 건너 원당리와 무갑리 사이로 들어섰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일부러 찾아가는 걸음은 하지 않고 있는 곳, 마음의 빚을 진 그곳을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다.

‘무갑산과 관산의 사이, 소리봉.’

나아가는 곳의 위치를 헤아리며 장철은 느꼈다.

뒤를 쫓아오는 자들, 그들과 어디에서 인사할 것인지를 그렸다.

이젠 그래야 할 때,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과 봐야 한다.

그들의 끝이 어디로 붙었는지도 알아야 한다.

‘누구라도 상관없지만.’

바람의 노래 속에서, 그 흐름에 오른 장철은 소리봉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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