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02화 (102/200)

황혼의 살인자. 102. 누가 보냈나.

102. 누가 보냈나.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이다. 배설물들이 있고 수풀이 갈라져 있다.

아직은 메마른 수풀, 그러나 곧 푸르고 무성하게 변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귀신, 잡아야할 사냥감이 저 앞에 있다.

‘느껴져.’

다시 잎이 덮이기 시작한 관목 숲 저편이다.

귀신은 저곳에 웅크리고 있다.

천미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을 기다리는 건지, 그저 숨을 돌리고 있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존재라면.’

천미 자신이 느낀 감각을 귀신도 느낀 거라고 보는 게 맞다.

호텔 앞에서의 그 짧은 순간, 어쩌면 귀신은 일부러 존재를 드러낸 건지도 모른다.

‘내가 던진 감각의 그물에 걸린 순간 역으로.’

동료들에게 긍정으로 표시한 그 부분이 지금 이 순간인 거다.

귀신은 자신들처럼 강렬한 충동과 호기심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여태 실패한 적이 없는 자다.

호텔에서도 다 죽이고 나왔다.

‘현장을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그렇게 했어.’

고종환회장이란 늙은이가 애초에 잘못 생각한 거다.

접촉자를 조폭 따위들로 상대하려한 건 도대체 어떤 머리인 건가?

물론 그 내막을 상세히 모른다.

호텔 안에서 귀신을 상대한 놈들 중엔 강한 놈들이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결과는 같아.’

차가운 눈빛을 흘려내며 전진하던 천미는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응?’

사라졌다.

귀신의 느낌이 감각 안에서 흩어졌다.

분명 저 앞에서, 관목 숲 안에서 숨결을 흘려내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뭐?’

흰빛이 섞인 눈썹을 확 곤두세운 천미는 그 순간 들었다.

“누가 보냈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다가온 목소리, 그런데 바람은 안 불고 있다.

때문에 냄새로 인한 포착의 걱정은 안했다.

그렇지만 귀신은 천미 자신을 찾았다. 등 뒤로 다가올 동안 전혀 몰랐다.

천미는 돌았다.

벼락같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게 몸을 돌렸다.

동시에 칼을 후려 그었다.

날 길이 30cm의 특수전 나이프, 칼등의 톱날이 번득인다.

충격, 손을 통해 온몸으로 들어온다. 귀신이 작두칼로 나이프를 막아서다.

불꽃이 튄다.

이 찰나를 천미는 감지했다.

위험함이다.

귀신이 등 뒤로 다가온 걸 몰랐다는 게 첫 번째고, 자신의 일격을 작두칼로 막았다는 게 두 번째며, 작두칼이 빙글 돌아 뻗어 나오는 게 세 번째, 피해야 한다.

‘흣!’

사력을 다해 천미는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런데 화끈한 감각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관목 숲을 뒹굴어 몸을 일으키고서야 가슴을 봤다.

검정색 특수전복 사이로 뜨거운 피가 흘러나온다. 오른쪽가슴이 갈라졌다.

“이!”

수치와 분노, 그리고 충격으로 천미는 경직했다.

귀신과의 충돌, 단 일격으로 부상을 당했다.

더군다나 가슴, 여자로 스스로를 여긴 적은 거의 없지만 여자인 거다.

아무리 절벽이라 해도 여성성의 상징인 거다.

“어디서 왔나?”

다시 날아온 귀신의 물음, 천미는 이 악문 뺨을 풀어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의 부상이 얕지 않지만 쓰러져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제 곧 동료들이 올 거다. 혼자서 무리라면 그들과 함께 잡는 거다.

“생각대로 될 거 같으냐?”

세 번째로 목소리를 던진 귀신, 그가 움직인다.

인지한 순간 천미는 마주 나갔다.

경일우와 백경이 다가오는 걸 알지만 지금 이 순간을 피할 수 없어서다.

속에선 분노와 투기 터져 나온다. 두 번 당하진 않을 거다.

‘죽인다!’

특수전 나이프를 휘두르며 천미는 깊은 곳의 울림과 공명했다.

자신의 특기, 감각의 그물을 펼쳐냈다.

귀신의 움직임과 작두칼의 공격방향을 읽었다.

그 흐름 사이로 나이프를 긋고 쑤셨다.

그런데 귀신도 똑같다.

‘이 새끼!’

나이프의 진퇴를 가로막는 작두칼, 그래서 필연 부딪치고 불꽃을 피우는 결과, 두 개의 작두칼로 나오는 귀신, 그 힘과 기세에 밀려 후퇴한다.

‘내가……!’

천미 자신이 누군가와 대결해서 이렇게 밀리는 건 처음이다. 나이프 파이팅 기술이 압도적이어서기도 하지만, 그걸 뒷받침 하는 건 채널링의 감각열림 때문이다. 어떤 상대라도 움직임을 예측하고 박살내는 거다.

‘내 능력이!’

소용없는 상황이다.

귀신은 천미 자신처럼 감각이 열린 자다.

채널링을 통한 모든 접촉자가 그렇긴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특화된 감각열림이다.

천미 자신이 그 경우다.

그런데 귀신도 그렇다.

저 칼이 무섭다.

‘총이 있었다면……!’

정신없이 밀리며 천미는 총 생각을 간절히 했다.

감각열림으로 쏘는 사격은 그 무엇도 못 맞추는 것이 없다.

귀신은 분명 총탄을 피할 것이다. 그렇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천미 자신이 쏘는 총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 총이 지금 이 순간 필요한데 없다.

가져오지 않았다.

총기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신경 쓴 건 작은 부분, 자신감으로 인해서다.

셋이면 귀신을 잡을 거라는 확신이다.

그런데 귀신을 과소평가한 게 분명하다.

“흑!”

어께에서 터지는 피를 보며 천미는 몸을 던졌다. 굴욕적이지만 이 순간 그래야 해서다. 그런데 귀신이 귀신처럼 쫓아온다. 작두칼을 내리친다.

“썅!”

분노를 터트리며 천미는 작두칼을 막았다.

특수전 나이프로 올려 막은 그 순간 작두칼이 튕겨져 나간다.

귀신의 손이 휘돌아 손목을 잡았다.

‘어!’

일부러 작두칼을 튕겨버린 결과, 두 번째 작두칼을 막지 못하게 하려는 것임을 천미는 깨달았다. 그래서 손목을 빼려 했지만 족쇄처럼 잡혔다.

바로 그 순간 두 번째 작두칼이 왔다. 반사적으로 왼손을 내밀었다.

“크악!”

팔을 가르고 내려온 작두칼, 엄청난 그 감각 속에서 천미는 봤다.

백경과 경일우, 둘이 시야에 들어왔다.

백경이 탱크처럼 달려오고 경일우는 소리친다.

귀신은 경직했다. 그 찰나에 발을 내질러 귀신을 밀어찼다.

* * *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한용수회장에게 보고 하러 들어간 길한수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길준은 무거운 숨을 흘려냈다. 귀신을 추적중이다. 연구소가 배출한 자들, 채널링이란 걸 통해 보통사람의 범위를 벗어난, 그런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

‘검단산은 이미 벗어났을 텐데.’

경찰이 뒤지고 추적중인 범위에 귀신이 없음은 확실하다. 그건 그들의 문제, 길한수가 보낸 접촉자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궁금하고 초조하다.

길한수는 그들을 풀어놓고 혼자 돌아왔다. 결과를 의심치 않는 거다.

‘사냥개를 풀어놓고 온 것처럼.’

승리한 자의 미소를 품은 길한수는 생각하며 최길준은 다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정확한 감정이 뭔지 모를 것, 고개 흔들어 흩어내고 현황을 짚었다.

호텔의 상황이다. 귀신이 분탕질하고 떠난 그곳은 아비규환이다.

‘고종환회장, 당신도 결국 당했군.’

흡혈귀영감, 장막 뒤의 실력자.

그도 귀신의 손에 죽었다. 귀신을 죽일 거라고 자신한 결과가 이것이다.

허무한 감정 뒤로 솟아나는 건 소름이다.

한대건회장에 이은 고종환회장의 죽음, 귀신에게 덤비면 죽는 거다.

‘귀신 그자는……!’

숨이 막히는 느낌에 최길준은 생수병을 따 급하게 들이켰다.

* * *

“귀신을 포착하게 되면 연락할 겁니다.”

보고하는 길한수를 돌아보지 않고 한용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요동치는 심장을 달래면서다. 결국 고종환을 죽인 귀신, 놈을 쫓고 있다. 거의 따라잡았다. 곧 연락이 올 거라 한다. 그게 귀신이 죽는 시작시간이다.

“천미와 경일우와 백경, 셋이면 결과는 정해진 겁니다. 아침이 되기 전에 귀신의 시체를 가지고 돌아올 겁니다. 호출하는 장소로 달려갈 준비……”

“산채로 데려 올 수 있다면 그게 좋겠는데.”

길한수는 멈칫하며 말을 멈췄고 한용수는 느릿하게 돌아섰다.

“그렇게 할 수 있겠나?”

다시 나온 한용수의 목소리, 저 눈에 담긴 의미를 길한수는 깨달았다.

‘직접……!’

귀신을 직접 죽이고 싶은 거다. 저 눈은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아 예, 할 수 있습니다.”

한 박자 늦은 대답을 낸 길한수는 폰을 잡았다. 그런데 이내 미간을 찌푸린다. 천미와 경일우와 백경, 셋 중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 * *

여자의 왼팔을 가른 순간 다른 자들이 엄습해 오는 걸 알았다.

그런데 반응할 수가 없었다.

달려오는 자 말고 소리친 자 때문이다.

외침으로 퍼져 나온 힘이 몸을 붙잡았다.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찰나에 여자가 발길질을 했다. 복부를 강타당해 물러났다.

그 바람에 여자의 왼팔에 박혀 있던 작두칼이 뽑히며 피가 비산했다.

달려온 자가 그 피를 맞으며 부딪쳤다.

몸을 일으키는데 럭비선수처럼 어깨로 받았다.

엄청난 충격 속에 굴러가며 장철은 생각했다.

여자 외에 다른 두 명, 저들의 힘과 능력이다.

어깨로 받은 자는 탱크 같다. 그런데 그보다 소리친 자가 위협적이다.

그의 능력은 목표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거다.

‘속박, 깨지 못하면 당한다.’

눈동자에 붉은 빛을 물들인 장철은 굴러 일어났다.

그 순간 탱크 같은 자가 다시 닥쳐왔다. 번개처럼 빠른 펀치를 뻗어낸다.

피하는 순간 또 외침이 들린다.

뒤쪽에 선 자의 속박의지, 탱크의 펀치를 피할 수 없다.

턱을 맞은 장철은 빙글 돌아서 쓰러졌다.

해머로 맞은 것 같은 충격, 시야가 흐릿하다. 하지만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탱크는 발차기를 이어낸다. 주먹처럼 빠른 그 발이 관목 숲을 초토화한다.

‘칼은……’

없다.

소리친 자의 속박에 걸려 충돌하고 얻어맞는 와중에 다 놓쳤다.

맨손, 맨몸뿐이다.

상관없다.

그런데 뒤쪽 저자의 외침이 관건이다.

“죽여 버려!”

여자가 발악 같은 분노를 터트릴 때 탱크 같은 자는 무섭게 공격해 왔다. 뻗어내는 손과 발이 흉기인 자, 그걸 피하며 휘청거리는 데 다시 소리가 날아왔다. 몸이 얼어붙는다. 탱크의 주먹이 안면으로 꽂혀 들어온다.

흘러.

울림, 장철은 전신에 공명하는 그 의미를 좇았다.

그물에 덮이고 사슬로 손과 말을 묶어 버린 것 같은 경직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물코 사이로, 사슬의 사이로 흘러나갔다.

얼굴로 들어오는 탱크의 주먹을 흘렸다.

뺨을 스치고 지나간 주먹, 봄바람의 스침 같은 그 느낌 속에서 장철은 손을 움직였다.

탱크의 놀란 얼굴을 향해, 오른손 훅을 꽂아 넣었다.

콱하고 박히는 감각, 탱크가 휘청하고 물러나는 데 왼손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으왁!”

속박자 놈이 또 소리 지른다, 연속해서 질러댄다.

하지만 장철은 움직였다.

속박의 사이로 흘러나갔다.

너울거리는 나비처럼 탱크놈을 쫓아가며 손발을 박았다.

그 움직임 속에서 떨어뜨린 작두칼을 걷어올려 잡았다.

“피해!”

여자가 외치는 소리, 탱크놈의 눈동자가 경직하는 찰나 장철은 칼을 후렸다.

양손으로 잡은 칼, 두 개의 작두를 휘돌리며 돌았다.

뒤로 물러나는 탱크놈에게 서릿발의 회오리를 안겨주며 나갔다.

피와 살이 튄다.

* * *

미간을 좁히는 한용수의 시선 속에서 길한수는 불안을 삼켰다.

셋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전화를 안 받는다. 예측컨대 귀신과 충돌한 것 같다.

그런데 그럴 상황이면 보고가 먼저다. 하지만 이쪽 연락도 안 받고 있다.

“뭐야?”

드디어 나온 한용수의 물음, 길한수는 전화를 내리고 우물거렸다.

“아마도, 귀신과, 싸움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한용수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보고가 먼저라면서?”

“예, 그것이…… 걱정 마십시오.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길한수는 돌아서며 다시 폰을 올렸다. 그 모습을 한용수는 바라봤다.

* * *

경일우는 눈을 치뜬 채 얼어붙었다. 그렇게 만드는 건 자신의 능력인데 숨 쉬는 것도 잊었다. 백경이 쓰러졌다. 귀신의 칼질에 산산조각 났다.

이게 현실이 아닌 꿈이라 믿고 싶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귀신!’

그가 돌아본다. 걸음을 옮겨 다가온다.

소리쳐도 소용없다.

저자는 속박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몰라도 그렇다.

이건 악몽이다.

“대답 안 할 건가?”

귀신이 목소리를 던졌다, 천미에게다. 천미는 경직했던 숨으로 소리친다.

“죽여!”

누구의 죽음을 말하는 건가.

천미는 벼락처럼 일어서 귀신을 공격했다. 온전한 오른손으로 특수전나이프를 휘둘렀다.

그 팔이 귀신의 작두칼에 떨어져 나갔다.

천미의 머리도 그렇다.

몸뚱이가 옆으로 허물어진다.

“어디서 왔나? 누가 보냈나?”

귀신의 질문을 받은 경일우는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

그런데 그 순간 웅웅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 없는 천미의 몸에서 나는 소리, 귀신이 잡았다.

천미의 폰이다.

액정에 뜬 발신번호의 명칭을 소리 내 읽는다.

“연구소.”

귀신이 다시 바라보는 순간 경일우는 뒤돌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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