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03화 (103/200)

황혼의 살인자. 103. 아침을 기다리며.

103. 아침을 기다리며.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새벽은 물처럼 지나가 어느새 5시가 넘어갔다. 이제 두어시간 지나면 아침이다.

그래도 해는 굼뜨게 뜰 테지만 밝아진다.

어둠이 걷히면 모든 게 명확히 드러날 터다. 귀신이 찍은 발자국이.

“이제 수색범위를 넓히는 모양인데?”

박인수는 피곤과 긴장으로 충혈 된 눈을 비비며 목소릴 잇는다.

“경찰 자체의 결정이 아니야. 어디선가 가스가 들어왔어.”

최재우는 공감하며 경찰력의 변화를 주시했다. 검단산을 중심으로 정했던 범위를 광주시 퇴촌면까지로 확장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무전통화내용, 짜증과 긴장으로 소리치는 현장 지휘관의 목소리는 아주 선명하다.

‘지명을 특정했어.’

광주시 퇴촌면 소리봉이다. 거기에 뭔가 있는 거다. 귀신의 흔적이다.

‘역시.’

귀신이다. 그렇게 멀리까지 갔다.

그런데 그곳에 무슨 흔적을 남긴 걸까?

경찰력이 그곳으로 이동하도록 가스를 뿜어낸 곳은 어디일까?

고종환회장이 죽었으니 그쪽은 분명 아니다.

그럼 주시하던 국정원인가?

‘혹시?’

온누리그룹이 떠올라 최재우는 미간을 강하게 좁혔다.

한용수회장은 움직였다.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차량이 귀신을 쫓았다.

그들이 그냥 그렇게만 하고 물러났을 리가 없다.

귀신과 충돌한 거라면 그 결과일 수 있다.

“온누리 쪽에서 뭔가 일을 벌인 거 같지 않아?”

물음이 아닌 제 생각을 말하는 눈의 박인수, 최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귀신을 추적 중이었다면 그냥은 안 갔을 겁니다.”

“그렇지, 귀신의 뒤꿈치를 잡았다면 분명히.”

최재우와 박인수는 서로를 응시하며 입술을 굳게 물었다. 더는 목소리를 내 말하지 않아도 알 것들을 눈으로 교환했다. 확신하는 짐작, 그러나 눈으로 보지 않았기에 추정일 뿐인 결과, 그것이 초래한 현황의 변화.

“온누리정신연구소가 뭐하는 데 같아?”

다시 입을 연 박인수의 의문에 최재우는 미간 좁힘으로 답했다.

“글쎄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곳이야.”

말은 한대건회장이 은퇴 후에 인간정신에 대해 연구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진상은 모른다. 그냥 한회장의 노후거처 같은 곳이거니 다들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 한용수회장이 귀신에게 반응하며 움직인 곳이 거기다.

“한용수회장은 일련의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던 거야.”

박인수의 명확하게 전후를 짚고 있다.

“물론 이미 벌어진 일이고 국정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았기에 지껄이는 소리지만, 한용수회장은 귀신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고회장을 주시하고 있었던 거지. 고회장이 호텔로 들어가자마자 손을 뻗어서 더듬었어.”

귀신을. 그리고 그 더듬음은 움켜잡은 거다. 귀신을.

“어떤 자들을 움직인 건지 모르겠지만 귀신을 상대하려했다면 그만한 능력이 있는 자들일 거야. 물론 뒤만 밟고 만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박인수는 짐짓 미간을 찡그리며 뒷말을 이어냈다.

“그렇다고는 생각 안 들잖아? 최팀장도 그렇지?”

최재우는 어둠이 깔린 하늘 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주시 퇴촌 방향이다.

경찰병력이 이동 중인 저곳에 뭔가 있다. 그건 박인수의 짐작이다.

“귀신이 남긴 게 저기 있습니다.”

이제 가서 눈으로 보자는 최재우의 의지, 박인수는 강하게 고갤 끄덕였다.

* * *

“예, 예, 알겠습니다.”

득의한 미소를 흘리며 돌아왔던 얼굴과 다른 얼굴의 길한수, 하얗게 탈색된 것 같은 그 얼굴에서 시선을 돌린 최길준은 차문을 닫고 돌아섰다. 길한수가 한용수회장의 전화를 받으며 쩔쩔매는 동안 걸음을 옮겼다.

‘경찰 특공대.’

역시 이들이 제일먼저 달려왔다. 귀신의 흔적을 포착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귀신은 이미 없다. 그가 남긴 피와 죽음만 있다는 걸 절감한다.

‘접촉자들까지 죽인 건가.’

귀신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정으로 최길준은 소름을 삼켰다. 엄밀히 접촉자들이란 존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한용수회장과 길한수의 자신감이 어땠는지는 안다. 귀신에 대해 잘 아는 한용수가 확신했던 거다.

‘다를 게 없는 결과.’

이제 그걸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 위해 간다.

이 산을 올라가면 그들이 있을 거다.

길한수가 귀신을 잡기 위해 보낸 삼인의 접촉자,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질 못한 거다. 그래서 이렇게 이곳까지 오게 됐다.

‘폰으로 위치를 찾을 걸 알면서도 그대로 둔 거야.’

귀신은 그렇게 하고 갔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자신이 한 일을 보라는 거다.

너희가 이렇게 나왔으니 이제 나는 결정했다는 포고다.

‘타초경사, 이런 때 쓰는 말이 맞겠지.’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했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니 정확하게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틀린 것도 아니다.

안 건드려도 될 귀신이란 존재를 건드렸다.

복수라는 이편의 의도를 알렸다. 누군지도 가르쳐 줬다.

‘귀신……!’

뜨거워진 숨을 이사이로 뿜어내며 최길준은 산을 올라갔다. 경찰특공대가 안내하듯 열어주는 산길, 헬기를 타고 산중턱에 내렸으면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요란을 떨 수는 없는 일이다.

“후, 하아.”

가쁜 숨을 몰아 내쉰 최길준은 드디어 위치에 다다랐다.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암릉을 품고 관목 숲이 펼쳐진 곳이다.

피 냄새가 벌써 맡아진다.

특공대원들이 서 있는 숲 안이다. 그곳으로 걸어갔다.

‘흡.’

숨을 멈추고 최길준은 경직했다.

다져버린 고깃덩이처럼 된 시체가 쓰러져 있다.

복장과 남아 있는 형상으로 누군지 알겠다.

백경이란 자다.

‘이렇게……!’

부들거리며 나오는 숨을 삼키며 최길준은 뒤늦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뜨고 사체의 현장을 살폈다. 관목 숲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격투가 벌어진 결과다. 이곳에서 귀신은 백경과 싸웠다. 그리고 죽였다.

‘한용수회장과 길소장이 자랑하던 접촉자를……’

처참하게 다져버린 죽음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했는지 보인다.

‘작두.’

그렇게 보이는 두 자루의 칼이다. 천미라는 또 다른 접촉자의 앞에 떨어져 있다. 오른 팔이 잘려 떨어지고 왼팔을 갈라졌으며 머리도 잘렸다.

‘여자를 이렇게……’

순간 최길준은 표정을 기이하게 찡그렸다. 방금한 생각 때문이다.

천미라는 이 여자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귀신을 죽이려한 존재다.

귀신에게 적이었을 뿐인 거다.

여자니 뭐니 하는 생각 자체가 웃기는 거다.

“이런 씨……!”

이어져 나오는 욕설과 뜨거움 숨을 최길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길한수다. 헉헉거리며 올라온 그가 백경과 천미의 죽음을 확인했다.

경악과 충격과 분노, 말로 다 할 수 없는 심정이 느껴진다. 부들거리며 다가온다.

“경일우는……”

길한수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특공대 지휘관이 알려준다. 세 번째 희생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 한다. 그를 따라 다다른 산비탈에 경일우가 있다.

“이……!”

전신을 부들거리는 길한수의 옆에서 최길준은 세 번째 죽음을 봤다. 으스러진 호박덩이처럼 된 시체다. 해머로 짓이겨 놓은 것만 같은 최후다.

‘칼은 버렸고, 손과 발로.’

귀신이 경일우를 죽이던 광경을 떠올리며 최길준은 오한에 사로잡혔다.

* * *

실내가 두려워 떨듯이 소리가 퍼져 울린다. 그 소리를 낸 자신의 주먹을 한용수는 노려봤다. 테이블을 내려친 오른손, 화끈거리는 감각은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가슴속의 이 감각엔 아무것도 비할 수 없다.

‘또 당하다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귀신을 잡기 위해 보낸 자들이 어떤 자들인데 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체널러다.

미지의 세계에 접촉해 인간이상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당했다. 셋이나 갔는데 귀신을 잡지 못했다.

‘도대체 그놈이 뭔데?’

경련하는 숨을 다잡으려 애쓰며 한용수는 이결과를 곱씹었다.

길한수와 최길준의 알려온 내용대로 라면 귀신은 셋의 합공을 받았다.

천미가 귀신을 찾아내고 경일우가 속박하고 백경이 치는 거다.

그런데 당했다.

‘셋의 능력컬러가 달라도 근원은 채널러, 그것만으로도 귀신을 상대할 기준이 차고 넘치는 건데, 그놈이 아무리 같은 채널러라고 해도 이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무엇보다 경일우와 천미와 백경의 능력을 알기에 그렇다.

그런데 귀신은 그들을 죽였다.

그런 그는 뭔가?

‘그놈을 잡으려면……!’

부드득 소리가 가는 숨을 흘려내며 한용수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현실도 놓치지 않았다. 현장으로 달려간 이 상황이 초래할 결과들이 있다.

그건 최길준이 잘 봉합할 것이다. 소리봉에서는 아무 일도 없던 거다.

‘귀신이 도주한 흔적만 찾은 걸로.’

그렇게 될 테지만 이렇게 끝난 다는 것을 못 견디겠다.

귀신은 현장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놈의 도주로를 예상해 경찰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못 잡을 거란 판단이다.

그렇게 잡힐 놈이 아니다.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어서라도 한다.”

가라앉은 숨으로 결의를 뱉은 한용수는 돌아섰다. 벽장의 술병을 꺼내 잔에 가득 채웠다. 단숨에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그렇게 다시 맹세했다.

“귀신, 너를 반드시 죽이고 만다.”

* * *

호텔을 나선 황철현은 경직한 뒷목을 주물렀다. 그래도 풀어질 기미가 없는 목의 뻣뻣함은 가슴 속에 들어찬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귀신이 저지른 살인,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이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세경은 이제 끝난 건가?’

뒤돌아 호텔을 올려다본 황철현은 이결과가 던지는 파장이 어떨지를 더듬었다.

지하금융의 제왕 고종환, 흡혈귀로 불리던 존재는 이제 사라졌다.

그가 군림하던 대한민국이란 세상에 어떠한 충격이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아니겠지.’

이해관계에 따라서다.

세상 돌아가는 게 원래 그렇지만 이 일은 특히 그렇다.

‘고종환이란 존재와 어떻든 얽혀 있는 이들, 그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

새벽 속에 서 있는 호텔을 응시하며 황철현은 다른 걸 생각했다. 자신을 장기판의 말로서 움직인 상부, 그곳을 조율하는 힘, 실체가 무엇일지다.

‘고종환과 관계가 있어.’

확신하던 황철현은 차가 급정거 하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택시가 선다.

차문을 열고 나온 여자가 택시 안을 향해 지폐를 뿌린다.

택시 기사가 나와서 욕을 하는데 여자는 호텔로 향한다.

경찰들이 제지한다.

“놔! 난 이 호텔 주인이야!”

귀를 파고드는 여자의 외침에 황철현은 움찔했다.

주인, 미모가 눈에 확 띠는 젊은 여자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 의미가 충격으로 알아진다.

‘고초희!’

* * *

곤지암 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하는 차 안에서 장철은 마스크를 내렸다. 마지막에 죽인 경일우란 놈을 통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탱크 같던 놈은 백경이란 이름이다. 그놈이 휘두른 주먹에 맞은 얼굴은 붓고 있다.

‘연구소.’

그게 뭔지 알았다. 폰으로 검색한 교차 확인한 내용, 온누리정신연구소다. 용인에 있다. 경일우의 입을 통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곳은 장철 자신과 같은 존재들을 연구하고 만들어낸 곳이다. 오늘 겪은 자들이다.

‘두 번째.’

호텔에서 겪었다. 작두칼의 주인, 그자는 깊은 곳의 울림을 들은 자다. 그런 자들을 밤이 지나기 전에 셋이나 더 만난 거다. 하지만 모두 죽였다.

“한용수회장, 네가 결정한 걸 받아들인다.”

창을 향해 나직하게 중얼거린 장철은 눈을 감고 좌석에 몸을 묻었다. 버스는 곤지암을 벗어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맹렬하게 새벽을 질주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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