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06. 대면.
106. 대면.
박인수가 부하형사들과 잠복해 있던 공간을 최재우는 말없이 돌아봤다. 지금 얼굴 좀 보자고 부른 상대, 황철현이란 국정원팀장과 부하들이 차지한 곳이다. 총기로 짐작되는 물건을 담은 케이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격.’
머리에 떠오르고 깨달아진 것으로 인해 최재우는 순간 숨을 경직했다.
국정원은 여기서 귀신을 저격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못했다.
아니 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귀신의 도주를 가장 먼저 인지한 이들이다.
‘여기서 하나하나 지켜봤어.’
호텔의 상황 변화를, 귀신의 도주를.
‘귀신이 경찰특공대원으로 가장해 앰뷸런스를 타고 도주하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확신했다면 죽였을까? 여기서 방아쇠만 당기면 끝장이……’
그랬으면 어땠을지 상상하며 최재우는 소름을 삼켰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귀신을 뒤늦게 인지했고 결국 놓쳤다는 게 핵심이다.
처음엔 귀신인줄 몰랐던 거다. 그렇다고 말했고 거짓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국정원이 총력 대응을 했더라면……’
그랬다면 귀신의 도주는 성공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이건 우리 일이 아니니 지켜보기만 한다처럼.
그런데 솔직히 국정원이래도 별수 없지 않나하는 생각도 곤두선다.
‘그는 귀신이니까.’
창밖으로 호텔을 노려보던 최재우는 황철현의 목소리에 돌아섰다.
“처음부터 귀신 사건을 수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황철현의 묵직한 눈동자를 응시한 최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윤완규가 일으킨 교통사고가 시작이죠.”
정확하겐 한진수가, 그 뒤엔 고초희가 있었지만 이란 말을 최재우는 삼켰다.
“전체 그림을 보는 데 도움을 받길 원합니다.”
결론을 말한 황철현은 조금 더 명확하게 밝혔다.
“사건 초기부터 귀신을 추적해온 사람이 나보단 확실히 더 많이 잘 알겁니다. 모르는 부분이 뭔지, 알아야할 것이 무엇인지, 도와주십시오.”
눈빛은 강건한데 도와달라고 청하는 목소리가 부조화스럽다. 저런 모습이 현장에서 굴러먹은 국정원팀장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도움이 된다면 뭐든 도와야죠.”
적극 협력하겠다는 최재우의 대답에 이어 박인수가 한마디를 냈다.
“국정원에서도 귀신에 대해 확실하게 대응하는 게 맞습니까?”
이곳에 처음 온 이유가 야락칭이라는 몽골살인자들 때문이다.
황철현은 그렇게 밝혔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귀신이 무엇보다 위험하다. 그러함을 정부에서도 더는 회피하지 못할 상황, 추궁하듯 또 묻는다.
“여태까지 미적미적 대는 건 무슨 이유가 있는 겁니까?”
날 선 박인수의 물음에 황철현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시키는 일만 하는 놈이라 그런 건 모릅니다.”
눈썹을 꿈틀하며 더 말하려던 박인수는 인상을 구기며 입을 닫았다. 엄밀히 황철현의 말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장팀장이 대답할게 아니다.
“귀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죠.”
접이식 의자를 가리키며 황철현은 먼저 앉았다. 최재우가 마주 앉았고 박인수도 마지못한듯한 모습으로 앉았다. 황철현은 최재우를 응시했다.
명백한 종용, 네가 아는 게 뭔지 말해보란 거다. 뭐든 이야기 하란 거다.
“귀신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입을 연 최재우를 황철현도 박인수도 바라봤다.
* * *
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한용수는 이 사이로 숨을 뿜어냈다. 뭔지 모를 야릇한 감정상태, 기이한 흥분과 긴장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여 온다.
‘고초희, 네가 날 보자고 했단 말이지?’
세경개발 법무이사 민승환 변호사가 전화했다. 비서실을 통해 지금 막 그 내용이 들어왔다. 소재를 알려주면 당장 달려온다는 내용, 알려줬다.
이제 고초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년이 뭐라고 지껄일지 정말 궁금하다.
‘아비가 귀신에게 살해당한 날 아침에.’
고초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한건 그년이 아버지의 죽음 따위에 연연하는 년이 아니란 거다.
슬픔 같은 건 없는 거다.
여태 숨어서 지켜보다 나타났다. 아버지 자리를 차고 들어간 첫 행보다.
‘그런 거지, 이 그림은.’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에 대한 인지감속에서 한용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 일어날 일들을 더듬었다. 고종환의 죽음으로 인한 여파, 고초희로 이어지는 세경, 귀신의 대응, 고초희와의 대면에 취해야 할 핵심.
‘고초희, 네년이 뭔지 이제 진짜로 보겠구나.’
밤의 여신으로 확실시 되는 존재, 그년이 보자고 오는 이유가 뭔지 한용수는 헤아렸다. 원하는 게 있으니까 오는 거다. 그게 뭔지 아직 모른다.
“그래, 네 입으로 말하는 걸 들어보자.”
허공을 노려보며 한용수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 * *
벽을 응시하며 장철은 그년의 얼굴을 되새겼다.
고초희.
호텔 앞 취재진들에게 비통한 모습을 연출하던 년.
사악한 얼굴을 숨긴 악귀 같은 년.
‘영이를 죽인 년.’
진실의 정수가 그것이다.
윤완규의 차를 운전한건 한진수, 영이를 발견하고 운전대를 돌리려던 그놈의 손을 잡은 것이 고초희다.
일부러 그랬다.
영이를, 그 작은 아이가 죽는 걸 보려고다.
그년은 그러면서 웃었다.
‘이!’
치밀어 오르는 격노를 제어하지 못해 장철은 전신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다스렸다. 냉정함 속으로 분노를 갈무리했다.
‘밤의 여신.
그런 껍질을 만들어 쓰고 막후에서 돌을 던졌다.
고초희가 그렇게 한 의도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유희이고 희롱이란 건 안다.
고종환도 그년의 농간에 놀아났다.
처음부터 고초희가 밤의 여신이란 걸 알았던 게 아니다.
‘아버지가 죽은 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놀아보겠다는 거냐?’
움켜쥐어지는 주먹을 내려다 본 장철은 다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주먹의 힘을 풀고 현안을 직시했다.
모든 게 제대로 흘러가고 있다.
고종환을 죽였고 고초희는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그년을 죽이면 된다.
‘온누리정신연구소.’
그들도 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위험을 품었다. 장철 자신과 같은 존재들을 보냈다.
그런 자들이 더 있다. 이 상황의 폭과 깊이를 모른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부딪쳐야 할 것들은 부딪친다.
결과는 변함없다.
‘죽인다. 전부.’
벽을 노려보던 눈을 감은 장철은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 * *
“채널링?”
미간을 좁히며 의문을 드러내는 황철현, 역시 비슷한 얼굴인 박인수에게 최재우는 이야기했다. 자신이 파악한 내용들, 귀신 장철이 어린 시절 형제보육원에서 당한 불법적인 비밀실험, 그로인해 만들어진 현재.
“그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거듭 튀어나오는 황철현의 반응, 예상한 것이기에 최재우는 담담히 답했다.
“뭐가 뭐라고 정확하게 대답해줄 처지가 아닙니다. 저도 모르는 건 마찬가집니다. 제가 파악한 내용으로는 그렇다는 겁니다. 자문을 구하고 자료를 얻은 교수님들에 의하면 엄연히 실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거짓은 아닌 겁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건 별개의 문제고요.”
입을 헤 벌린 박인수를 돌아봤던 황철현은 다시 황당한 감정을 드러냈다.
“무당이 신 내림 받을 때 작두 타는 거하고 같은 게 절대로 아닙니다. 귀신이 정말 그런 과정을 통해 보통사람과 다른 자가 된 거라면……”
말하다 말고 황철현은 입을 다물었다.
제 입으로 결론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귀신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여태 만든 일들이 그렇다.
보통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저 호텔에서의 일만 해도 너무 명확하다.
‘혼자서……’
죽이겠다고 진을 친 함정 속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던 놈들을 모조리 죽였다.
너무나 엄청난 결과,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그는 해 낸다.
‘가평에서도, 그 이전에 다른 놈들을 죽이고 도망칠 때도.’
예측을 뛰어넘는 결과, 귀신은 그런 존재다.
최재우가 말한 게 들어맞는다.
그런데 믿기 힘들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채널링이란 걸 통해 미지의 존재와 접촉한다니, 그런 연구들이 실재한단 것이.
“제가 말한 내용들이 진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귀신은 있는 그대로 봐도 상식을 넘은 사람입니다. 그를 죽이려고 한 시도가 다 무산됐습니다.”
시선을 박인수에게서 황철현에게 이어 돌린 최재우는 뒷말을 냈다.
“예, 귀신이 그렇게 만들었죠. 그런 사람인데…… 포기를 안 합니다.”
포기 안하는 쪽이 어딘지 박인수도 황철현도 안다.
온누리정신연구소에서 귀신을 뒤쫓았다. 황철현이 포착한 것처럼 귀신을 포착하고 쫓은 거다.
그들은 광주시 퇴촌면의 산에서 죽었다. 변함없는 결과인 거다.
“온누리 한용수회장,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시도했던 방법으로는, 기왕의 수단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 텐데도 했습니다. 정말 바보가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그냥 복수심과 분에 겨움을 참지 못해서? 란 최재우의 의문을 박인수와 황철현은 읽었다. 자신들도 가진 의문이다. 죽은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이라는 걸 파악했습니다.”
대답하듯 입을 연 황철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뒷말을 이어냈다.
“온누리정신연구소의 길한수소장이란 자와 그룹 전략기획실장 최길준이 왔습니다. 시체들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현장에 없었던 겁니다.”
국정원에서 파악한 내용, 듣고 있던 최재우와 박인수는 서로를 봤다. 자신들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부분이다. 알게 된 건 길한수란 인물이다.
“온누리정신연구소가 정확하게 뭐하는 곳인지 아십니까?”
최재우가 물음을 던지자 황철현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모릅니다.”
굵직한 눈빛을 흘려낸 황철현은 뒷말을 뱉었다.
“알아봐야겠죠.”
* * *
연구소 정원으로 들어오는 대형세단을 한용수는 지켜봤다.
중앙화단을 돌아서 현관 앞에 멈췄다. 조수석 수행자가 나와 뒷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그년이 나온다.
고초희,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채 주변을 돌아본다.
‘왔구나.’
고초희를 노려보던 한용수는 순간 흠칫했다.
정확하게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봐서다.
그렇지만 필름이 붙어 있어 안이 안보일 터다.
그런데 더 진하게 웃음을 짓는 저년의 얼굴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보는 것 같다.
‘저년이……!’
알 수 없는 열패감으로 한용수는 뜨거운 숨을 거듭 삼켰다.
* * *
“잡아!”
뒤에서 소리치는 송치호에게 욕을 하며 유지건은 전력으로 달렸다.
‘이새끼!’
골목을 막 돌아간 놈을 쫓아 간 유지건은 멈춰 섰다. 놈이 도주를 포기하고 멈춰서다. 골목 끝이 막혀서다. 그래서 택한 게 손의 저 칼이다.
“그거 버려라.”
유지건은 참착하지만 강력한 힘이 실린 목소리를 던졌다. 하지만 놈은 권유를 들을 생각이 없다. 지난 밤 유흥주점에서 칼부림을 저지른 것처럼 하려 한다. 갑자기 현타가 온다. 유지건 자신만 뺑이치는 이 현실에.
‘팀장이란 작자는 딴 데 정신이 팔려 있고 팀원이라는 작자들은 도움이 안 되고! 나 혼자 범인 쫓으면서 이렇게 칼빵 맞을 짭새놀이나 하고!’
버럭 치밀어 오르는 울화의 힘으로 유지건은 걸음을 냈다. 그 순간 놈이 칼을 쥐고 달려든다. 아래로 뿌려 펼친 삼단봉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악!”
손목이 부러져 주저앉는 놈,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
뒤로 벌렁 넘어진 놈에게 다시 발을 올리는데 뒤에서 송치호가 소리친다.
“그만해 새꺄!”
멈칫한 유지건은 발을 내리고 수갑을 꺼냈다. 고통스러워하는 놈에게 수갑을 채우는데 송치호가 헉헉거리며 옆에 왔다. 그리고 홍인구도 왔다.
“야! 이거 봐라!”
홍인구는 헐레벌떡 달려와 폰을 내민다. 정부의 대국민성명 뉴스다.
-정부는 이 상황을 종식시키겠습니다. 혼란과 충격의 현재 상황을 테러시국으로 규정하겠습니다. 귀신이란 범죄자로 인해 야기된 불안을, 원인을 없애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은 안심하십시오.
세 형사는 주저앉은 범죄자 앞에서 폰만 정신없이 들여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