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08. 비밀.
108. 비밀.
‘저 년은 알고 있어.’
정원을 빠져나가는 대형 세단을 바라보며 한용수는 눈동자의 응축을 겨우 풀었다.
고초희와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게 경직했다.
아니 긴장이라고 해야 맞을 터다. 저년이 가진 위험을 안 방어기제다.
‘저런 년인 줄은……!’
예상이상, 아니 그런 표현으론 부족하다.
고양이인줄 알았더니 사자다.
저년은 확실하게 제 아비 고종환의 피를 이어받았다.
장막을 뚫어본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내가 뭘 했는지 알아.’
전체를 다 아는 거 같지는 않지만, 지난밤에 한용수 자신의 지시로 이뤄진 일은 안다. R호텔을 주시하던 온누리측이 움직였다는 것, 광주시 소리봉에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 시체 세구를 수습해 갔다는 내용이다.
‘경찰 안에 저것들 눈과 귀도 당연히 있을 테니까.’
고종환이 죽었어도 그게 작동하는 거다.
기왕의 라인이 아니라 고초희가 민승환을 통해 만든 라인이 분명하다.
지금의 결과가 그렇다. 내막을 인지하자마자 한용수 자신에게 왔다.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온 거다.
‘셋만으로 귀신을 추적해 덤빈 게 뭔지.’
그게 맞는 데 그 이상이란 예감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고초희가 사악하게 웃으며 흘려내던 눈빛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네가 하는 짓을 안다고,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를 안다고, 그년은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든 한용수는 벽장의 술병을 꺼내 글라스에 가득 채웠다.
아침도 거른 빈속이지만 술을 넘겼다.
화끈하게 훑어 내려가는 감각 속에서 다시 생각했다.
고초희가 말한 것들, 그년의 눈빛, 뭔가 있다.
‘채널러들의 존재를 아는 것 같은……’
그럴 수가 없다는 걸 다시 고개 흔든 한용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거듭해서 내쉬며 가슴 속의 것들을 몰아냈다. 술을 넘기고 다시 생각했다.
‘세경의 자금력을 총동원하겠다……’
고초희의 제안은, 핵심은 그것이었다.
세경에 대해 세상이 아는 건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상상하지 못할 자금이 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일을 하자면 돈이 드는 건 당연한 법, 부족한 걸 메워주겠다는 거다.
‘귀신을 잡기 위한.’
자신도 모르게 부득소리를 낸 어금니에서 힘을 빼며 한용수는 중얼거렸다.
“흡혈귀는 가고 악의 여왕이 등극하는 건가.”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정원엔 벚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흩어져 내렸다.
* * *
홍천강의 강변엔 노지캠을 즐기는 차량과 텐트들이 있다. 띄엄띄엄 보이는 저 풍경이 여름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며 이곳의 풍경을 바꾼다.
이 속에 g6가 있다.
이름만 숙지하고 있을 뿐 내용을 모르는 곳, 왔다.
“거의 다 왔습니다.”
강변을 지난 차는 마을과 떨어진 외진 곳으로 진입했다.
숲을 지나가자 단층의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별장이라 하기엔 크고 외관이 단조롭다.
입구에 세워진 쇠사슬 차단기가 내려가 있다. 입간판이 보인다.
‘천진암 민속연구소?’
입간판을 속으로 읽으며 황철현은 옅은 황당을 품었다. 회사에서 조성한 기밀거점 가운데 한 곳인 이곳의 외형이 저런 거다. 물론 여기로 접근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민속연구소라니, 전혀 예상 못했다.
“천진암은 광주시 경안에 있는 거 아닙니까?”
부하팀원의 목소리에 황철현은 된숨만 내쉬었다. 맞다, 천진암은 한국 초기 가톨릭 역사와 관련된 곳이다. 그 이름을 가져다 쓴 건지 뭔지 모른다.
“내리자.”
팀원들과 하차한 황철현은 회색건물 입구로 걸어갔다. 그러는 동안 누구도 나오거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지만 외부카메라가 돌고 있다. 안에서는 황철현 자신이 도착해 다가오는 걸 지켜보고 있다. 문이 열린다.
자동으로 열린 강화유리문을 통과한 황철현은 드디어 사람을 봤다. 목례를 하고 바로 돌아서는 젊은 남자, 이곳 g6의 일원이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안내한다. 단층건물에 왜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궁금할 건 없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자 황철현은 팀원들 넷과 같이 올라탔다. 남자는 B3버튼을 물렀고 엘리베이터는 느리게 내려갔다.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가 움직이기 전에 황철현은 봤다. 엘리베이터 밖에 서 있는 국장, 조중건이 시선을 던진다.
“고생했다.”
짧은 말로 인사를 대신한 국정 조중건은 돌아선다. 그 뒤를 따라 황철현은 팀원들과 같이 걸었다. 그러며 놀랐다. 밖에서 짐작한 것보다 훨씬 넓고 큰 시설이어서다. 국장 조중건은 브리핑 룸 같은 곳에 멈췄다.
“우선 알아야지.”
뭘 알아야 한다는 건가.
의문을 삼키며 황철현은 국장을 따라 들어갔다.
전면에 화면이 있고 좌석들이 배치돼 있다.
팀원들과 같이 앉았다.
“보자.”
국장이 지시하자마자 화면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황철현은 숨을 경직했다. 채널링, 영상 시작에 나온 보고서글자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 * *
‘이단계.’
그게 뭔지 모르지만 더 강력한 조치라는 건 모를 수 없다.
한용수회장은 그걸 명령했고 길한수는 이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최길준 자신은 이러고 있다.
호텔사건으로 인한 파장, 검경내부의 변화를 주시하는 중이다.
‘테러.’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던진 게 그거다.
귀신 장철은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테러범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치안력을 동원해 잡겠다 한다.
그게 될지 안 될지의 문제는 차후다. 국민들의 동요를 막는 거다.
‘뭘 어떻게 할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그러한 결과는 자신이 속한 곳도 마찬가지다.
길한수가 할 일이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겠다.
일차로 보낸 접촉자들이 귀신에게 당했다.
그들은 심안이라는 증폭장치를 단 존재들이었다.
이단계는 그걸 말하는 것 같다.
‘심안이란 것의 이단계.’
짐작을 확신으로 품으며 최길준은 귀신을 떠올렸다.
정면으로 마주친 적 없는 자, 그러했기에 아직 살아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하는 존재다.
그자는 과연 어떤 자이길래 이런 결과들을 만들 내는지 모르겠다.
‘채널러라고 길소장이 부르는 접촉자들, 보통 인간 이상의 육체능력을 가진 그런 존재들을 죽이는 자, 너도 그건 거지. 정확하게 뭔지 몰라도.’
귀신이 총알을 피하는 영상을 떠올린 최길준은 깊은 숨을 삼켰다. 전략기획실직원들이 모니터링하고 있는 화면에선 모든 뉴스가 흘러나온다.
* * *
‘정말이구나……!’
영상을 보며 황철현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최재우팀장이 말한 내용, 그건 사실이었다.
채널링이란 건 분명 존재하고, 그로인한 결과들도 엄존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가들에선 오래전부터 해온 비밀연구다.
“잠깐 쉬자.”
화면이 멈췄다. 그렇게 지시한 조중건 국장이 돌아본다.
담담한 얼굴이지만 눈동자가 무겁다.
정확하게 황철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뭐가 똥이고 된장인지 이제 알겠지?”
꿀꺽 소리 나게 침을 삼킨 황철현은 물음을 냈다.
“여기가 거깁니까?”
여기가 거기, 밑도 끝도 없는 그 물음에 조중건 국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g6. 여기서 채널링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구만이 아니라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곳이지.”
결과물이란 말에 황철현은 물론 팀원들 넷도 눈을 빛냈다.
“채널러들을 양성하는 곳이란 말입니까?”
“채널러? 조금 알았다고 바로 써먹는 구나?”
피식 웃음을 보인 조중건국장은 뒷말을 이어냈다.
“맞다. 접촉자들, 채널러들을 여기서 만든다. 채널링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다하지.”
신중한 표정을 만든 조중건국장은 계속 이야기했다.
“채널링에 대해 우리가 인지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관련된 결과들이 해외에서 생겨나고 있어서 주시하게 된 거지. 그런데 이 채널링이란 건 제법 오래됐어. 인간사회에 퍼져 있는 자체의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야.”
무기, 전술로서의 의미란 걸 황철현은 알았다.
“미국과 구소련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했지. 물론 철저하게 기밀에 부쳤고.”
이어지는 조중건국장의 이야기를 황철현은 숨죽이며 들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대한민국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했다는 것이다.
무속과 종교와 정신수련자들,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이뤄졌다. g6에서 하는 거다.
“여긴 국정원내에서도 기밀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긴 건드리지 못해.”
그렇게 만들었다는 소리.
“그래야만 지속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맞는 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정책과 인물과 부서가 통폐합되듯이, 그렇게 놔둘 순 없는 거다. 그래선 원하는 걸 얻을 수가 없다. 잘못된 건 고치는 게 맞지만 그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 그걸 막은 거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해야 했기에 했다.”
결연한 눈빛을 흘려낸 조중건국장은 다시 화면을 향해 몸을 돌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멈췄던 영상이 다시 나왔다. 채널링 참여자들의 영상이다.
“헛!”
황철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릴 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렇기는 네 명의 팀원도 마찬가지, 화면에 나온 영상 때문이다.
채널러가 죽는 광경이다.
‘저……!’
명상에 든 것 같았던 채널러가 갑자기 몸을 뒤틀었다.
팔다리가 꺾어지고 근육이 찢어졌다. 눈동자가 파열되고 혓바닥이 뽑혀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다.
체널러는 육신이 고깃덩이처럼 변했다.
황철현 국장의 손가락이 다시 튕김 소리를 냈다. 영상은 다시 멈췄다.
“연구 중에 일어난 부작용이다.”
부작용이란 말을 저런 데에 쓰면 안 될 텐데 라는 말을 황철현은 삼켰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지만 국장이 말한 부작용이란 건 저런 것만이 아닐 거란 생각이다.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무섭고 끔찍한 부작용이.
“접촉의 부작용이지.”
접촉.
그 단어가 가진 의미를 황철현은 뜨거운 침과 함께 삼키며 되새겼다. 최재우팀장에게 들어서 인지했고 이제 이곳에서 본 연구자료영상들로 더 확실히 알게 된 내용이다.
채널링은 미지의 존재와 접촉하는 거다.
“뭐가 저렇게 만든 건지 확실히 모른다. 확실한건 접촉을 통한 결과라는 거지.”
가라앉은 눈으로 황철현과 팀원들을 응시한 조중건 국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접촉이 제대로 이뤄진 경우엔 저렇지 않다. 성공한 경우, 그들은 미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그건 강화된 신체능력이 가장 기본적이고 대부분이지만, 개중엔 더 특별한 사례들이 있다. 염동력이나 투시 같은.”
염동력, 투시, 그 말에서 황철현은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래야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그랬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비밀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비밀이 만든 결과들은 현실 속에 있다.
“우리는 국가의 안위를 목적으로 이 연구를 진행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 그런데 민간기업에서도 우리와 같은 일을 한다는 걸 알았다.”
황철현은 한 곳을 떠올렸다.
‘온누리정신연구소.’
이어 나오는 조중건국장의 목소리엔 날이 섰다.
“물론 그들이 국가의 안위를 생각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 철저하게 이익을 위해서, 사적인 목적 때문이지. 그걸 확실하게 포착한 게 지난밤이다.”
조중건국장의 강렬한 시선을 황철현은 받아냈다.
“온누리정신연구소, 그곳에서 채널러들을 움직였다. 셋을 귀신에게 보냈지. 결과는 황팀장 너도 알 테고. 그래, 그래서 더 황당한 마음이다만.”
귀신이 채널러들을 죽여 버린 결과 때문에.
“주목할 점은 온누리정신여구소가 채널링을 연구하는 곳이란 것, 그들이 심안이란 채널링 증폭장치를 만들었다는 거다. 그건 우리도 못한 거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접근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온누리정신연구소에 내부자가 있다. 그가 접근하는 한계다.
“정말로 엄중한 상황이다.”
다시 목소릴 낸 조중건 국장은 엄중함의 이유를 말했다.
“귀신, 그를 죽이고자 하는 온누리, 그들은 채널러들이다. 이게 만들어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예측이 힘든, 그 의미를 황철현이 더듬는데 뒷말이 귀를 파고든다.
“우리가 막아야 한다.”
황철현은 이제 깨달았다. 국장이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