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10화 (110/200)

황혼의 살인자. 110. 폭풍을 예비한 고요.

110. 폭풍을 예비한 고요.

이동차량에 탑승하던 황철현은 문득 건물을 돌아봤다.

회색의 단충건물, 천진암민속연구소라고 꾸민 저 지하에 비밀이 있다.

이제 황철현 자신도 알게 된 비밀이다.

그런데 비밀의 전부를 알게 된 건 아직 아니다.

‘저 안 구석구석에서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 다 보지 않았으니까.’

조중건 국장은 얼개만 알려줬을 뿐이다.

그것으로 지금은 충분하다고 여긴 거다.

다 알게 해 달라고 보챌 일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자신과 팀원들은 본래의 역할이 있다.

말살, 종말, 그걸 만드는 게 일이다.

‘이 일에 투입됐을 때도 그런 줄 알았지.’

호텔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결국은 그렇게 귀결될 줄 예상했다. 하지만 감시라고 주시하란 명령만 이어졌다. 그래도 귀신을 포착하면 사살하라는 명령은 있었다. 때문에 바렛 저격라이플을 쥐고 기다렸다.

‘사살이 아니라 박살의 결과.’

대구경탄환에 격중 된 인간은 온전한 형상을 유지할 수 없다.

귀신은 그렇게 될 자였다. 그를 확실하게 포착하기만 하면 그렇게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포착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포착했어도 어려웠다.

‘그는 귀신, 채널러니까.’

최재우가 알려준 내용, 그것이 진실임을 이젠 부인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조중건국장이 알려준 더 강력한 진실, 현실이 뭔지 이젠 안다.

채널링은 실재하고 채널러들이 존재하며, 그 힘은 괴이하고 무서운 것이다.

‘총탄을 피하고 육체를 강철처럼 만들고 염력을 구사하고.’

팀원들과 넋이 나간 채 영상을 봤다. 이곳 g6에서 연구 양성한 채널러들의 영상이다.

총을 피하는 모습에선 숨이 막혔다.

조작영상이 아니기에 눈을 떨었다.

채널러들, 그들은 이제 조직의 일원이 돼 활동 중이다.

‘어디서 누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니다. 아직은 현장에 투입이 안됐을 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직은 불확실 해.’

확실한 것과 불확실한 것의 경계에서 황철현은 귀신 장철을 떠올렸다.

‘귀신.’

그는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가늠이 안 된다.

채널러라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재우의 이야기를 전하진 않았지만, 국장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아니라면 온누리의 채널러들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증폭장치.’

국장이 언급한 게 사실이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이겠지만, 온누리는 채널링 증폭장치를 개발하고 완성해 운용하고 있다. 그건 분명히 채널러들의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장치가 맞다. 그랬는데도 결국 당하고 말았다.

‘증폭장치가 불량품이거나 허접한 게 아니라면 귀신이 너무 강해서인 거지.’

새삼 소름이 돋는 등골에 힘을 주던 황철현은 시동 걸리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팀원들이 이미 타 기다리고 있다. 차에 올라탔다. g6를 벗어나며 폰 속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고초희, 눈이 번쩍할 미모의 아가씨.

‘여태 이 얼굴을 철저하게 숨겨왔는데……’

최고정보기관인 국정원에서도 고초희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학생 때의 사진이 고작이었다. 고종환이 그렇게 만들어서기도 하지만 고초희가 철저하게 대응한 결과다. 그랬는데 저렇게 얼굴을 냈다.

‘이젠 더 숨길 필요 없다는 건가?’

고초희의 정확한 의중이 뭔지 모르지만 결과가 그렇다. 고종환회장의 뒤를 이어 세경개발의 주인에 오르는 미모의 여자, 아름답고 슬픔과 비통에 찬 저 얼굴을 전국민에게 보였다. 누구나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으로.

‘응?’

폰의 울림에 미간을 좁힌 황철현은 발신자를 확인했다. 박인수다.

“예. 황철현입니다.”

-황팀장님, 바쁘신데 전화해서 미안합니다.

바쁜 걸 눈으로 보기라도 한 건가, 황철현은 피식 실소했다.

-고초희 기자회견 보셨습니까?

“예, 봤습니다.”

-에, 전화한건 다른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

뜸을 들인 박인수는 전화한 용건을 꺼냈다.

-어차피 나는 이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처지라서요, 황팀장님과 국정원에서 사건에 가장 가까이 움직이는 상황인 것 같으니까 말씀드립니다. 고초희 말인데요, 파악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온라인 상 밤의 여신……

이어지는 박인수의 이야기를 황철현은 들었다. 놀람을 삼키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이사이에 물면서, 고초희가 만든 살인사건들을 인지했다.

-이복오빠 고재춘 부부의 죽음도 고초희의 소행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현재로선 밝힐 수도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고초희는 보이는 걸로 보면 안 됩니다.

뜨거운 침을 삼키며 황철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초희의 얼굴이 뭔지 이제 명확하게 알았다.

호텔에선 본 얼굴, 그게 진짜다.

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흥겨워 하는 것 같던, 아니 그게 확실하다.

-이런 소리 해봐야 무슨 도움이 될지, 도움이 안 될 거란 생각을 합니다만, 그래도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힘 빠진 박인수의 목소리 끝에 황철현은 힘내시라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고초희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뚫어지게 봤다.

* * *

“한용수회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네.”

발랄한 이십대 아가씨의 전형 같은 웃음.

고초희가 돌아서는 순간 민승환은 아찔함을 느꼈다.

가슴과 뇌리를 파고드는 이 느낌, 참기 힘든 애욕, 참아야 한다.

이건 고초희가 일부러 이렇게 만드는 거란 걸 안다.

‘으.’

어금니를 으스러지게 악문 민승환은 고초희가 재밌는 걸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지나가는 동안 시선을 들지 않았다. 낭랑히 던지는 말만 들었다.

“날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계산이 복잡할 거야.”

창고 입구에서 고초희는 멈춰 섰다. 그리곤 옷을 훌훌 벗는다. 아찔한 나신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민승환은 더욱 이를 악물고 고갤 숙였다.

‘피 묻은 옷.’

고초희는 지금 피범벅이다.

끌고 온 조직 간부 세 놈을 난도질 한 결과다.

고깃덩이로 변한 저놈들은 가드들이 처리 할 거다.

가드들은 고초희의 옷도 준비했다. 하얀 나체를 물티슈로 정성스럽게 닦아내고 있다.

‘저놈들……’

고초희가 데려온, 비밀리에 만든 저 가드들이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다. 해오름파를 위시한 세조직의 간부놈들을 잡아온 걸로 능력은 인정된다. 그런데 고초희를 향한 저 모습은 맹목적인 충성, 신앙처럼 보인다.

‘여왕을 받들어 모시는.’

어느새 숙였던 고개를 든 민승환은 고초희가 새 옷으로 갈아입는 걸 지켜봤다. 손 한번만 대봤으면 원이 없을 것 같은 나신은 이제 안 보인다.

“궁금하지?”

갑자기 뒤돌아본 고초희의 눈을 피해 민승환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뭐가 궁금하냐는 건가?

그렇긴 하다, 고초희라는 존재 자체가.

“이친구들은 내가 오래전부터 찾아내서 교류해 왔어.”

가드들에 대해 고초희는 말한다. 민승환은 침을 삼키며 들었다.

“여려 곳에서, 여러 친구들을 찾아냈지. 쉬운 일은 아닌데, 나는 그럴 수가 있거든.”

쉬운 일이 아니란 건 무슨 의미고 그럴 수 있단 건 어떤 의미일까.

“민이사가 날 도왔듯이 이 친구들은 날 도왔지, 앞으로도 그럴 거야.”

죽을 때까지, 라는 말을 민승환은 속으로 삼켰다.

“이번일, 시작부터 참 재밌었어.”

이번일이란 의미를 민승환은 더듬었다.

귀신의 일, 시초다. 역시 말한다.

“한진수 그 병신이 핸들을 돌리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못하도록 잡았지. 아이가 하늘로 떠올랐는데, 그 순간 정말로 짜릿했어.”

고초희는 어깨를 떨었다.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려서다. 그런데 정말로 전율에 겨워한다. 지난 일인데, 사람을 난도질 하는 여자가, 괴이한 모습이다.

‘사람을 개잡듯이 죽이면서 어린아이 하나를 해친 기억으로 저런 얼굴인건 뭐지? 그 일이 되새겨 생각할수록 그런 거라고? 특별하고 짜릿한?’

고초희가 이어 말한다. 이유를.

“왜 그럴까? 아니 왜 그랬을까?”

중얼거리듯 목소리를 흘려내며 고초희는 허공을 올려다본다.

“안 거야.”

알다니, 뭘 알았다는 말인지 민승환은 미간을 좁혔다.

“그날, 3월 24일, 그 아이를 치어버리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안 거야.”

고초희는 허공을 보며 웃었다.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미소를 뿌렸다.

* * *

화이트 일색인 실험실 안을 보며 한용수는 고초희를 생각했다. 대담하게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으로 찾아온 년, 제 아비의 죽음은 손톱만큼도 연연하지 않는 년, 그년은 어쩌면 이런 결과를 원하고 그렸는지 모른다.

‘고종환의 딸년이니까.’

위험한 년이란 걸 오늘 확실히 인지했다.

한용수 자신을 찾아와서가 아니다. 그런 대답함이 아니라 그년의 속이다.

온누리정신연구소에 대해, 한용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알고 있다.

그년이 손잡고 귀신을 잡자 한다.

“시작합니다.”

길한수의 목소리에 한용수는 현실로 돌아왔다. 눈에 힘을 주고 실험실 안을 응시했다. 이단계로 들어가는 채널러, 그의 관자놀이에서 빛이 난다.

‘심안.’

파란 빛을 발산하는 증폭장치, 그 결과가 보이고 있다.

의자에 앉은 채널러가 부들거린다.

간질환자가 발작하는 것 같은 모습, 일어서 날뛴다.

“괜찮은 건가?”

한용수가 물음을 던지자 길한수가 흠칫하며 돌아본다.

“괜찮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 상태를 통과하지 못하면 이단계는……”

갈수 없는 나라다. 그렇다는 걸 한용수도 안다.

-크아악!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온 비명, 아니 괴성.

채널러는 제 몸을 쥐어뜯고 있다.

팔과 다리와 몸통과 얼굴을 막 할퀴고 뜯어낸다. 피가 튀고 살점이 튄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채널러의 두 눈이 갑자기 터졌다.

“헉!”

한용수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렇기는 길한수도 마찬가지.

-크아아아!

채널러의 괴성이 무섭게 터져 나오는 가운데 종말이 왔다.

소리 지르던 체널러의 입이 벌어졌다.

스스로의 의지로는 벌릴 수 없는 크기로 벌어졌다.

혀가 튀어나온다.

흡사 뽑아버린 것처럼 바닥에 떨어진다.

“썅!”

길한수의 욕설, 이단계 진입 실험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소리다.

“어떻게 좀 해 봐!”

한용수는 소리 질렀고 길한수는 버튼을 눌렀다. 실험실 안으로 가스를 불어넣는 장치다. 가스가 금방 가득 찼다. 그런데 채널러가 몸부림친다.

가스로 인해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 실험실, 그 안에서 채널러의 형상은 뒤틀리고 꺾이기 시작했다.

우드득 부득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격하고 소름끼치는 그 과정은 끝났다.

그 순간 채널러는 폭발했다.

“으헉!”

길한수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왜 그런지 한용수는 알았다.

봤다.

실험실안에 뭔가 있다.

붉은 외눈을 한 존재가 있다.

‘뭐!’

영혼까지 얼어붙은 상태의 한용수를 붉은 외눈이 바라본다. 그러나 찰나, 피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 *

저녁식사 후에 tv앞에 붙게 만든 뉴스가 흘러나온다.

-귀신 장철의 소행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조웅과 이영숙은 심각한 눈을 하고 무거운 숨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곁에서 장철은 담담히 뉴스를 봤다.

-피살자들은 해오름파와 오성파, 남천파의 간부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귀신이 이들을 살해한 이유는 아직 명확히 조사되지 않았지만 호텔사건의 연장선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귀신의 위험성이 더 커진……

개새끼들, 이란 조웅의 목소리 뒤로 이영숙이 말한다.

“누가 저런 걸까요? 설마 경찰이 꾸미는 걸까요?”

아무리 막가는 세상이래도 그런 일은 아니겠지? 라는 야영숙의 눈은 바람으로 무겁다.

“난도질을 해서 양평동 폐공장에 버렸다……”

중얼거림을 낸 조웅은 미간을 찡그리고 다시 목소릴 이어냈다.

“그 동네가 맛집이며 카페며 핫플레이스로 바뀐 지가 언젠데, 아직도 공장이 남아 있던 거야? 거길 들어가서 시체들을 버렸다? cctv에 아무 흔적도 안남기고? 시체 옆에 귀신이 했다는, 나는 귀신이다라고 써놓고?”

황당한 수작이어서 조웅은 분노와 헛웃음을 흘려냈다.

“그렇게 할 만한 누군가 한 거잖아요? 그렇죠?”

이영숙의 물음을 돌아본 조웅은 고개를 끄덕이고 장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온누리 아니면 고초희야.”

뉴스 화면을 말없이 바라보던 장철은 확신의 한마디를 냈다.

“고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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