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12화 (112/200)

황혼의 살인자. 112. 악마의 얼굴.

112. 악마의 얼굴.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들어오셨데?”

비아냥거리는 말투면서도 아내 유인주의 얼굴에 핀 미소는 기쁨에 차 있다. 불규칙한 출퇴근과 생활리듬, 경찰의 생활이란 것이 그런 것인 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내이기에 늘 안타깝고 애처롭다.

“참치김치찌개야? 음, 냄새 좋은데?”

코를 벌름거리는 최재우를 유인주는 욕실로 밀어 넣는다.

“강아지처럼 그러지 말고 어서 씻기나 해.”

“개라고 하려던 거 아니야?”

“됐다고 이양반아.”

아내의 눈째림을 받으며 최재우는 욕실로 들어갔다.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회를 동하게 하는 저녁식사가 식탁에 차려졌다. 아내와 마주보고 웃음을 나누며 저녁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후식은 과일이야. 이제 아이스크림 같은 건 안 돼.”

엄격한 눈으로 말하는 아내 유인주, 그녀의 시선이 배로 향한다는 걸 최재우는 알았다. 나이가 들면서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 배다. 최재우 자신보다 아내가 관리에 들어갔다. 밖에서도 해되는 음식은 금지다.

‘후, 지방간 조짐이 있다니.’

지난번 검사에서 그렇게 나왔다. 아무래도 밖에서 먹는 음식들과 술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이 정도는 대한민국 남자 거의가 해당할 거다. 그런데도 아내 유인주는 날선 반응이다. 늘 하는 말을 하면서다.

‘나이 먹은 남자 만나서.’

누가 그러라고 했나, 반발하는 마음을 최재우는 피식 미소로 흩어버렸다. 누구보다 아내 유인주가 자신을 걱정하고 위한다는 것, 이건 복이다.

“자, 뉴스 좀 봅시다요.”

과일접시를 들고 소파로 온 유인주는 최재우에게 포크를 내밀었다. 동시에 리모컨을 눌러 tv를 켰다. 뉴스전문 채널의 주요뉴스가 흘러나온다.

-세경개발은 고종환회장의 비보가 전해 준 충격에서 벗어나는 분위기입니다. 고초희씨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각종 루머 속에서 생사안위조차 확인 할길 없던 후계자, 그렇습니다. 고초희씨는 이제 세경개발의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세경개발의 모든 것을 이어 가겠다 선언했습니다.

자료화면이 나왔다.

오늘 아침 호텔 앞에서 고초희가 취재진에게 말하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공포 속에서도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다.

누구라도 혹할 미모가 저 슬픈 모습에 동정을 갖게 한다.

“무서운 년이네.”

툭 튀어나온 유인주의 목소리엔 차가운 증오와 경멸이 들어 있다. 알기 때문이다. 고초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최재우에게 들어 다 알고 있다.

“맞아, 정말로 무서운 여자지.”

깊은 숨으로 낸 최재우의 반응 뒤로 유인주는 다시 목소릴 이어냈다.

“저년이 꾸민 수작에 놀아난 걸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나. 밤의 여신이란 가면 뒤에서 얼마나 웃었을까?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론 웃고 있겠지. 제 존재까지도 대역으로 위장했던 년, 정말 소름끼쳐.”

분노위로 덮어 오르는 두려움을 털어내지 못하고 유인주는 어깨를 떨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곁에 두고 최재우는 고초희를 무섭게 노려봤다.

화면속의 저 악마 같은 여자는 정말로 악마의 얼굴을 감추고 있다.

‘경찰에 제보하면서, 온라인에 진실과 거짓을 흘려내면서.’

그동안 고초희가 한 짓들을 생각하면 정말 치가 떨린다.

‘저 대신 죽을 여자를 저로 만들어 놓고.’

아내가 증오의 목소리로 뱉은 것처럼 고초희는 그렇게 했다.

제가 백운호수에 있다는 걸 흘려냈다. 그리곤 강남역 별다방에서 오동진을 만났다.

귀신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준 거다. 그 결과가 어떨지 기다렸다.

‘즐거운 흥분 속에서.’

사건의 흐름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온라인에 정보를 흘려냈다. 경찰이 은폐한 상계동 사건의 진실, 양석훈의원과 차미경 사건의 진실, 그건 결국 제 아버지도 괴롭히는 것이었지만 즐겼다.

‘그런 거야, 분명히.’

고초희의 입으로 그렇다고 듣지 못했기에 짐작과 추론에 불과하지만 의심치 않는다. 사건과 관련해서 처음부터 경찰에 제보한 장본인이 고초희, 밤의 여신이다. 고종회회장도 나중엔 알았다. 그래서 덮으려 했다.

‘오씨형제의 사체, 문형철의 죽음으로.’

장위동 재개발 구역 내의 다세대 주택 안에 그들의 시체를 전시했다.

고초희가 문형철검사를 죽인, 이복오빠 고재춘부부를 살해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 역시 증거가 없는 추론이지만 의심할 여지없는 진실이다.

‘고초희.’

차에 올라 기자들에게서 멀어지는 고초희를 보며 최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그 몸짓에 돌아본 유인주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이러면 안 되는 거지만, 이제 우린 잊자. 자기 손에서도 떠난 사건이잖아.”

그렇다, 이젠 손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일이 됐다. 그러니 잊어야 한다. 원래처럼 신명서의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짭새짓을 하며 사는 거다.

그런데 마음은 그게 안 된다. 이렇게 흐름을 보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응?”

거실 테이블 위의 폰을 든 유인주는 문자를 확인하며 웃는다.

“헤, 이 기집애 봐라?”

“왜? 뭔데?”

“어, 수경이. 오늘 밤에 역사를 이룰 지도 모른다고 자랑질이네.”

“역사? 무슨 역사?”

“아 이 꼰대가 뭐라시는 거야? 젊은 여자가 밤에 이룰 역사가 뭐 있어?”

“어? 음, 그런 거야? 원나잇이라도 한다는 건가?”

못마땅하게 미간을 찡그리는 최재우를 흘겨보며 유인주는 대꾸한다.

“오빠 표정이 왜 그렇대? 기분 나빠? 왜? 웟나잇이든 투나이듯이든 수경이가 결정하고 하는 거야? 자기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니까.”

최재우는 더 대응 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아내 유인주와 설전만 벌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못마땅한 건 사실이다. 정말 짜증이 난다.

‘아무리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고 해도 그렇지. 저런 걸 자랑질 해?’

남자 만나 만리장성을 쌓을 거라고 문자로 자랑한 거다.

그럴 만큼 아내와 민수경은 친한 사이다.

상계지구대 소속의 그녀는 상계직업소개소 사건의 진실을 아내에게만 흘려줬었다. 그러나 명령 후엔 입을 닫았다.

‘더 깊은 진실을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아내 유인주가 문자 보내는 걸 최재우는 힐긋 넘겨다봤다.

[잘해라 이년아. 꽉 물어서 잡아 버려.]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문자내용에 최재우는 인상을 구겼다. 자신과 아내의 지난날을 생각하니 복잡한 생각이 든다. 아내도 저렇게 했던 걸까?

“왜 또 그런 얼굴이래?”

폰을 내려놓고 째려보는 유인주, 그 눈에 든 험악함을 감지한 최재우는 웃었다.

“아, 아냐, 이거 먹어.”

포크로 찍은 과일을 아내의 입에 물려주며 최재우는 실실거렸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저택을 주시하며 황철현은 현재 상황을 더듬었다.

용인의 상황, 조국장이 한용수회장을 만나러 간 상황이다.

자신이 여기서 고초희를 감시하는 동안 일이 그렇게 됐다.

이건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뭐 좀 드셔야죠?”

묻는 팀원의 눈은 내가 배고프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 먹을 것 좀 사와라. 이동 시엔 긴장하고.”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황철현은 주의를 줬다.

저택 주변에 고초희의 경호원들이 있다. 그들의 이목이 주변에도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아니지만 고초희가 문제다.

정말 조심해야 할 존재다.

‘그 얼굴은……’

호텔에서 본, 제 아버지와 다른 자들의 죽음 앞에서 웃던 얼굴은 소름이 돋는다. 그 얼굴을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악마의 얼굴이다.

“후……”

허탈한 한숨을 흘려낸 황철현은 왜 허탈한 마음인지를 곱씹었다.

겨우 여자 하나를 두고 자신이 이런 마음을 품고 있어서다.

국정원 그림자조직의 종말팀 팀장이 품을 마음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초희는 그렇다.

‘달라, 다른 존재야.’

심중의 확신을 더듬으며 황철현은 어둠 속의 저택을 응시했다.

* * *

고초희가 차를 몰고 들어왔던 것처럼 대형suv차량이 정원 중앙을 돌아 멈췄다.

차문을 열고 나오는 건 중년을 넘긴 모습이 남자다.

검정 양복을 잘 차려 입었다. 수행하는 다른 자들은 캐주얼한 복장이지만 매섭다.

‘국정원 요원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 국정원방문자들을 보던 한용수는 창에서 돌아섰다. 이제 저 문을 통해 조중건이란 인물이 들어올 것이다. 그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려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림자.’

국정원이 심어둔 간첩 송현아가 밝힌 이름, 그 조직은 더듬을 수가 없다. 이제 그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과연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것일까.

숨을 멈추고 있단 것도 의식하지 못하던 한용수는 노크 소리를 들었다. 곧바로 문이 열리는 걸 봤다. 검정양복사내, 조중건이란 자가 들어온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지인을 만난 것처럼 환한 미소로 다가오는 자, 조중건을 향해 한용수도 다가갔다.

“잘 오셨습니다.”

* * *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부끄러운 미소로 말한 민수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매력적인 미소를 뿌리고 있는 남자 한경석의 시선을 받으며 조심스레 화장실을 향가 갔다.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기에 한껏 자태를 뽐내며 걸었다.

‘뒤태는 자신 있어.’

키 170에 긴 다리가 자신의 최고 무기다. 그에 비해 가슴이 절벽이어서 늘 고민이지만 오늘은 괜찮다. 한경석이 반한 건 바로 자신의 긴 다리다.

“헤, 살아보니 이런 날도 오는 구나.”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낸 민수경은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거울 속 얼굴을 다시 살폈다.

입술을 다시 바르고 향수도 조금 더 뿌렸다. 그렇게 상상했다. 이제 다음 코스가 어떠할지.

‘와인을 곁들인 식사는 마쳤고, 이차로 가볍게 맥주?’

그리고 그 후엔 어디일까.

“으.”

짜릿한 상상을 민수경은 만끽했다. 때마침 화장실 안쪽에서 젊은 여자 손님이 나왔다. 거울 앞에서 이러는 민수경 자신을 보는 눈이 새침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수경은 다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잘해라 수경아. 정말 잘하는 거야.”

친구 유인주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그럴 거다.

정말로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났다. 이런 행운을 놓칠 순 없다.

무엇보다 상대가 먼저 데이트를 신청했다.

절도신고를 하러온 신고자였다. 처음 봤을 때 이미 가슴 뛰었다.

‘가자, 오늘 밤 내 운명을 맞이하러.’

예쁜 미소를 지어내며 민수경은 화장실을 나갔다. 이편을 바라보며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한경석을 보며 친구 유인주를 문득 생각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 제법 멋진 신랑을 자랑질 하던 그녀다.

‘이년아, 나는 훨씬 젊고 잘생긴 남자다.’

유인주에게 자랑할 걸 생각하며 민수경은 자리로 돌아왔다.

“어때요? 식사는 마쳤으니 가볍게 맥주한잔 하러 갈까요?”

예상한 한경석의 제안, 민수경을 배시시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한경석은 바로 일어섰다. 테이블을 돌아와 민수경의 봄코트를 잡아 준다.

수줍은 미소로 민수경은 한경석이 입혀주는 코트를 입었다.

한경석은 곧바로 카운터로 간다. 계산을 혼자 하는 것도 정말 멋지게 보인다.

“가시죠.”

스테이크하우스의 출입문을 열어주는 한경석,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민수경은 차로 걸어갔다. 그러다 슬그머니 한경석의 팔짱을 끼었다. 가슴으로 누르면서다. 그러다 아차했다. 뽕브라가 들통 나면 정말 창피다.

“이제 봄은 가고 여름이 오겠어요. 그렇죠?”

한경석은 팔짱을 빼 민수경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둘은 차에 올라 스테이크 하우스를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승용차 한 대가 따라 나갔다.

* * *

온누리정신연구소는 서용인 ic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 인가나 다른 시설들이 거의 없는 곳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요양원이 하나 있고 주유소가 있다. 하지만 역시 산등성이로 갈라진 위치다.

‘멱조산.’

등산이라고 할 것 없는, 트레킹 코스라고 맞을 산이 길게 펼쳐져 있다.

산을 통해, 정확히 등산로가 용인의 여려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이동을 해야 할 때엔 유리하다. 그러나 목표로의 침투가 용이하지가 않다.

‘위험.’

온누리정신연구소가 자리 잡은 산자락 아래쪽을 응시하며 장철은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이미 경험한 삼인과 같은 자들이 저곳에 숨 쉬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여기 왔다.

알기에 온 것이고 기다리지 않으려고다.

‘동백역에서 내려 여기까지 온 시간이……’

현재 시간 밤 10시, 전후를 가늠하며 장철은 산 아래를 응시했다. 바람은 음울한 떨림을 담고 불어온다. 그 속삭임 속에서 붉은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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