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14. 피와 살이 흐르는 밤 1.
114. 피와 살이 흐르는 밤 1.
화이트 일색은 지하연구시설을 둘러보며 조중건은 옅은 감탄을 삼켰다. 역시 온누리그룹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시설이다. 채널러들의 철저한 관리가 보인다. 개인별 지원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한용수, 이곳에 의지와 돈을 쏟아 부었구나.’
연구시설을 둘러보는 조중건은 감탄을 계속해서 삼켰다.
“심안을 보시죠.”
귀를 파고든 한용수의 말에 조중건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우린 생각만 하던 것……’
채널러들이 내면으로 들어갈 때마다 보이는 뇌파의 변화, 그 기록들을 쌓아 줄기를 찾아낸 거다. 더 쉽고 빠르게 내면에 이르도록, 그로인한 신체의 변화를 더 강력하게 만들도록, 심안은 그런 생각을 구현한 거다.
“이것이 심안입니다.”
연구원이 가져온 작고 네모난 상자를 한용수는 조중건에게 건넸다.
담뱃갑만한 크기의 상자다.
밀어 올리게 되어 있는 덮개를 열자 보인다.
‘이것이 심안……!’
심중의 흥분을 누르며 조중건은 심안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뭐라고 할까, 마치 블루투스 이어폰 같다고 해야 할까, 딱 그런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는 작은 크기다. 그런데 한쪽에 전극들이 있다.
뇌로 이어지는 거다.
“영상을 보시죠.”
담담하면서 차가운 느낌의 한용수 목소리, 조중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안의 효과는 확실합니다.”
화이트 벽에 바로 영상이 떠올랐다. 심안을 착용한 체널러들의 모습이다. 간단한 시술로 이뤄진다. 한용수의 말처럼 착용전과 후의 능력차이가 확연하다. 총탄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발포자를 단번에 제압한다.
‘배는 빠르고 강한 것 같은데……’
역시 증폭장치, 라는 생각을 삼키던 조중건에게 한용수가 현실을 말했다.
“저걸 착용한 채널러 셋이 귀신에게 당했습니다.”
조중건은 흠칫했다.
‘심안을 착용한 자들이었다고?’
소리봉에서 시체가 돼 살려간 자들, 신원 모를 삼인은 그렇다는 거다. 그들이 채널러일 거라는 건 당연한 확신이었지만 심안까진 예상 못했다.
한용수회장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술만 마신 이유를 이제 알겠다.
‘귀신……!’
그 존재에 대한 무게가 새삼 가슴을 누른다. 또 예상치를 넘어갔다.
“이단계에 들어가야 귀신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어쩐지 이를 무는 것 같은 숨소리로 말하는 한용수, 그 얼굴과 눈을 본 조중건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벽을 상기했다. 이들처럼 이단계로 칭하는.
“영상을 보시죠.”
한용수의 눈길을 따라 조중건은 다시 영상을 봤다.
이단계, 그 부작용이 나온다.
채널링의 진정한 결과인 미지의 존재와의 접촉, 채널러들이 부서진다.
참혹하게 뭉개지고 터지고 흩어진다. 국정원과 모두 똑같다.
“왜 저런 다고 보십니까?”
한용수는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다. 너희 국정원도 같은 일을 하고 있고 우리보다 먼저 오래했으니, 우리가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알려달란 거다. 나는 이제 패를 다 까보이고 있으니 당연한 요구란 거다.
“접촉에 실패했기 때문일 겁니다.”
모호한 대답을 낸 조중건을 한용수가 돌아봤다.
“우리도 이단계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서요.”
어깨를 으쓱하는 조중건, 못마땅한 감정을 숨긴 한용수의 시선은 다시 돌아간다.
“봤습니다.”
이번엔 조중건이 한용수를 돌아봤다. 미간 좁힌 눈은 뭘 봤냐고 묻는다.
“미지의 존재, 그걸 봤습니다.”
조중건의 눈은 더할 수 없이 커졌다.
* * *
화단 속에 경비원을 눕힌 장철은 검정색 경비원복장을 다시 살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하자 본래 모습을 알아 볼 길이 없다. 화단 밖으로 나가 카메라의 시선 안에 들었다. 저편에서 다른 자가 다가온다.
혀를 내밀고 킁킁거리는 개를 데리고 오는 경비원, 그와 가볍게 목례하며 지나쳤다. 그 순간 장철은 개를 주시했다. 장철 자신을 침입자로 인지한다면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개는 원래 주인의 냄새만 맡았다.
흘러.
울림을 따라, 동화하며 장철은 나아갔다. 경비원의 복장을 개가 그대로 인식하듯이, 카메라가 의심치 못할 움직임으로, 연구소 내부로 들어갔다.
* * *
“흐……”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가운데 민수경은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이 납치됐다는 현실이다.
한경석이란 저 잘생긴 남자는 개새끼였다.
아니 저놈이 들고 흔드는 고깃덩이를 덥석 문 자신이 개다.
정말 개 같다.
‘인주야……’
친구 유인주를 부르며 민수경은 참담한 두려움을 삼켰다.
매력적인 남자를 드디어 만나서 불같은 밤을 보낼 거라는 기대로, 그걸 자랑까지 했는데 이런 꼴이 된 거다.
오늘 밤 여기서 죽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년 눈이 살아났네. 됐어.”
귀를 파고드는 낭랑한 목소리, 민수경은 눈에 힘을 주고 여자를 봤다.
와이어로 결박된 자신을 의자에 앉혀놓고 내려다보는 여자, 예쁘다.
질투가 날 정도로 예쁜 저 여자가 누군지 안다.
고초희, 세경개발의 그녀다.
“내가 누군지 알지?”
남자라면 누구나 반할 미소를 피워내는 고초희, 저 아름다운 얼굴에 악의라곤 안 보인다. 그런데 저 눈,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저 눈은 사악하다.
“왜, 왜 나를, 여기는 어디……”
“말해 줄게.”
고초희의 명료한 대답에 민수경은 우물거리던 입을 멈췄다.
“여긴 과천의 내 집이야. 널 죽이려고 데려왔어.”
생글거리며 웃는 고초희,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민수경은 경직했다.
태연하게 죽인다고 지껄였다. 그러기 위해 납치했다는 거다.
한경석이란 개새끼를 시켜 일을 만든 거다. 왜 그러는 지 궁극의 목적도 말한다.
“널 죽여서 귀신이 한 짓으로 만들어 놓을 거거든? 조폭새끼들처럼.”
이 꽃을 꺾어서 네 머리에 꽂아줄게, 라고 말하는 친구처럼 고초희는 웃는다. 저 웃음과 눈이 소름끼친다. 아름다움 뒤에 감춘 진짜 얼굴이다.
“사, 살려주세요!”
민수경은 소리쳤다. 사력을 다해 외쳤다. 고초희는 역시 웃는다.
“안 돼. 헛일한 게 되잖아.”
고초희는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한경석이 그 손에 칼을 건넸다.
“살려줘! 인주야 살려줘!”
친구 유인주의 이름을 부르며 민수경은 처절하게 소리쳤다.
* * *
“수경아!”
소리치며 유인주는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최재우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내 유인주가 식은땀을 흘리는 걸 보고 눈썹을 세웠다.
“왜 그래? 괜찮아?”
“아, 그게, 꿈을 꿨나봐.”
“꿈?”
“어, 수경이가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꿈인데, 나한테 살려달라고, 하, 이게 무슨 개꿈인지 모르겠네. 그 기집애 지금 뼈와 살이 타고 있을 건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최재우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물 가져 올 테니까 마시고 자.”
안방을 나가는 남편 최재우를 보며 다시 침대에 누운 유인주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흥, 기집애야, 네가 어떤 남자를 만나도 내 남자 발끝도 못 따라 갈 거다.”
혀까지 낼름 내밀었던 유인주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꿈이 너무 생생하고 기분 나빠서다. 민수경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슨, 뼈와 살을 불사르고 있을 텐데.”
때마침 돌아온 최재우, 그가 건네준 물을 받아 마신 유인주는 다시 잠을 청했다. 남편 최재우의 몸을 꼭 부둥켜안고,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 * *
“붉은 외눈이었습니다.”
한용수의 눈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조중건은 알았다.
국정원에서 잔뼈가 굵은 몸, 그림자 조직에 평생을 바친 대가가 이런 것이다.
상대가 거짓을 말하는 지 아닌지 정도는 파악한다.
지금 이야기는 진실이다.
“이단계를 강행했습니다. 귀신을 상대하기 위해선 더 머뭇거릴 수가 없어서죠. 그런데 결과는 역시 같았습니다. 다른 거라면 채널러가 죽는 순간에 그것이 보였다는 겁니다. 붉은 외눈, 영상에는 안 잡혔지만 봤습니다.”
한용수만 본 게 아니라는 거다. 소장 길한수도 봤다는 거다.
그런 현상은 처음이었다 한다.
이단계 진입에 실패한 채널러들의 죽음은 무수했지만, 그 죽음 속에 다른 존재가 드러난 적은 없었던 거다.
미지의 존재가.
‘우리 g6에서도 그런 현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붉은 외눈이란 이미지를 그리던 조중건은 한용수의 목소리에 다시 깨어났다.
“실패는 분명하지만 이전의 실패와는 다른, 조금 더 전진한 걸로 판단합니다. 붉은 외눈, 그것이 미지의 존재라면 그 실체를 최초로 본 게 됩니다. 물론 미지의 존재라는 게 하나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것인 거죠.”
그것, 뭔지 정확히 모른다. 무당이 접신하는 그 신인지, 종교에서 말하는 존재인지, 다양한 민속신앙과 전설 같은 이야기들 속의 그런 존재인지.
“결론은 하납니다. 심안을 통해 계속 해서 시도하는 겁니다.”
이단계 진입, 미지의 존재와의 완전한 접촉.
“국정원에서 원하는 자료를 다 넘기겠습니다. 단, 나 역시 국정원의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겠습니다. 협력을 결정한 마당에 시야가 분명해야겠죠.”
한용수의 요구, 조중건은 묵직한 시선을 던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겁니다.”
그 순간 비상을 알리는 소리가 연구소에 울려 퍼졌다.
* * *
편의점발 커피가 주는 따스한 향기를 음미하며 황철현은 저택을 응시했다. 주변의 다른 주택들과 거리를 두고 위치한 고종환의 집, 이젠 고초희가 들어간 집이다. 문득 드는 생각은 지하통로 같은 게 있지 않나다.
‘그러면 우리 같은 감시자들 눈을 피해 마음대로 들고나겠지.’
황당한 상상이지만 황철현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망원카메라로 다른 집들을 살폈다.
부촌답게 다 집들이 좋아 보인다. 가장 가까운 집도 2층 집이다.
고초희의 집과 직선으로 이어보지만 역시 무리한 상상이다.
‘중간에 암반이 가로막고 있으니 저걸 뚫고는 무리겠지.’
새삼 한숨이 새어나와 황철현은 다시 커피를 마셨다.
‘국장님은 뭐하고 계시려나.’
한용수회장과 마주하고 있을 거다. 거길 간 일이 잘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섬뜩한 느낌이 목덜미를 스친다. 비명 같은 걸 들은 것 같다.
* * *
경련하고 있는 여자, 민수경이란 이름의 여경은 가진 걸 다 쏟아냈다. 몸속에 지니고 있던 것들 전부, 고초희의 손에 의해 밖으로, 바닥에 쏟았다. 그 냄새가 코를 찌른다. 뭐라고 형용하기도 어려운, 지옥의 냄새다.
‘으……!’
민승환은 부들거렸다.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보게 된다.
어릴 적 방구석의 어둠 속에 웅크린 귀신이 두려워 이불을 덮어쓰면서도 보게 되는 것처럼이다. 그런데 그건 실제가 아니지만 이건 실제다.
“치워.”
낭랑한 고초희의 목소리가 울렸다.
흠칫한 민승환은 얼른 움직였다. 준비하고 있던 물수건을 건넸다.
손을 닦는 고초희가 아닌 한경석을 봤다. 준비한 비닐에 사체를 싸고 있다.
이제 정해놓은 장소에 유기할 거다.
“추워?”
고초희의 물음, 민승환은 경직하며 눈을 맞췄다.
“아, 아닙니다.”
배시시, 누구나 반할 미소를 피워내며 고초희는 말한다.
“민이사 지금 그런 얼굴은 귀엽더라.”
등골에 돋아 오르는 공포의 소름을 억누르며 민승환은 고개 숙였다.
“가시죠.”
뒤따라오는 고초희의 시선 속에서 민승환은 터널을 걸었다. 저택과 이어진 지하터널, 고회장이 생전에 만들어 뒀다는 이곳은 고초희가 쓰고 있다.
‘이젠 전부 고초희거니까.’
자신 역시 그러하다는 자각 속에 민승환은 걸음을 냈다.
* * *
등에 가로지른 가죽파우치를 푼 장철은 작두칼을 양손에 잡았다.
‘작두칼.’
손에 차 깜기는 그립감이 좋다. 소리봉에서 버린 것과 거의 같다. 효율적인 사용과 만족감으로 같은 걸 원했다. 조웅은 언제나 그랬듯 구해줬다.
그런데 결국 이것 때문에 발각됐다.
카메라에 잡힌 모습, 당연히 이질적이다.
뭔지 모를 장비를 지닌 경비원을 다른 자들이 확인하는 건 당연, 그게 시작이다.
“와라, 난 이미 들어왔다.”
복도를 달려오는 경비원들을 향해 장철은 멈췄던 걸음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