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16화 (116/200)

황혼의 살인자. 116. 채널러.

116. 채널러.

“아 궁금해, 보고 싶어 미치겠어.”

안절부절 하는 고초희를 보며 민승환은 거듭 침을 삼켰다. 지나친 긴장과 두려움으로 목구멍이 따끔거린다. 그런데 그걸 못 느끼는 상황이다.

‘귀신과 한용수회장의 싸움.’

그것이 시작됐다. 예기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상황발생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예정된 일이기도 하다.

귀신은 복수하러 올 자였다.

‘그걸 대비하고 유인한 자들을 다 죽인.’

귀신은 그런 존재다. 그가 용인의 온누리정신연구소에 침투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의 결말들에 비춰보면 불길하다.

“채널러들을 보낸 게 원인이야.”

이어 나온 고초희의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졌다. 미소품은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렇지만 저 미소가 악마의 미소라는 걸 민승환은 잘 안다.

“채널러, 그것들을 귀신에게 보냈거든? 한용수회장이.”

무슨 소릴 하는지 몰라 민승환은 미간을 좁혔다.

‘채널러?’

의문을 해소해주는 이야기가 고초의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온누리정신연구소는 채널링을 연구하는 곳이야. 거기 지하에 채널러들이 웅크리고 있어. 거기 갔을 때 예상을 넘는 기운에 놀랐지. 피부를 옥죄고 째버리는 것 같더라고. 그건 채널러들이 괜찮은 수준이란 거지.”

도대체 무슨 소린가.

“채널링이란 게 있어. 인간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 미지의 존재와 접촉하는 거야. 무당이 접신하는 것 같은 거. 그게 되면 다른 존재가 돼. 무당이 되는 게 아니야. 무당이 보통사람과 다른 것처럼 되는 거지.”

아직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걸 고초희가 어떻게 아는지 민승환은 새로운 의문을 품었다. 피부를 째는 기운을 느꼈다는 건 또 뭔가.

“어떻게 아냐고?”

환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고초희는 말했다.

“나도 그렇거든.”

* * *

20분 정도 후면 도착한다. 이제 막 백운호수를 지났다. 과천의왕간 고속도로엔 밤이라 그런지 차량통행이 한적하다. 이대로 달려 북수원으로 나가면 금방이다. 그런데 백운호수를 지나온 길이 새삼 기묘한 느낌이다.

‘귀신이 사건을 만든 곳.’

백운레이크타운하우스 사건.

세간에서 그렇게 이름붙인 일의 내막을 더듬으며 황철현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고초희가 귀신에게 당한 걸로 알려진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건 꾸며진 일, 고초희는 멀쩡하게 나타났다.

‘오동철과 삼총사란 놈들이 거기서 죽고……’

그 후에 동생 오동진이 상계동에서 죽었다.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게 또 고초희다. 현장 최일선에서 조사한 형사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렇다.

‘박인수경정이 알려준 내용이 가장 확실하겠지.’

물론 고초희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명백한 진실이다.

‘악마의 얼굴을 숨기고 있는 년.’

호텔에서의 미소를 떠올리며 황철현은 새삼 소름을 피워 올렸다.

‘그년 생각 할 때가 아니야.’

황철현은 소름을 털어냈다. 생각의 갈래를 현안에 집중했다.

어떠하든 지금 현재 상황의 초점은 귀신이다. 한용수회장을 노리고 기습했다.

‘이번엔 힘들어.’

불길한 예감이 희미하게 너울거리지만 황철현은 확신했다.

온누리정신연구소는 정말로 다르다.

그곳엔 귀신 장철과 같은 채널러들이 있다.

정확히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십 수 명 이상일 거다. 그들과 싸우는 거다.

‘그들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

드러나지 않게 준비한 것들이 있을 터다.

그것이 무기가 됐든 경찰력을 동원하는 것이 됐든 한용수회장은 만반의 준비 속에 있는 거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조중건국장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달려가고 있다.

‘g6에서도 움직였어.’

황철현 자신 같은 종말팀이 아니다.

‘분명 채널러들이야.’

현장에 투입하는 거다.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었을 걸로 생각된다.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채널러들에 그림자의 채널러들.’

합쳐지는 거다. 이런 판국을 귀신이 뒤집을 순 없다.

‘귀신은 무덤으로 들어간 거야.’

깊은 골의 미간으로 차창 밖을 보던 황철현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뭔지 모를 기묘한 감정이 차오른다. 지나가는 창밖의 어둠처럼 불명확한.

* * *

총격으로 초토화된 뒤쪽의 먼지에 밀리듯 장철은 그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레이컬러의 환자복 같은 걸 입은 자들이다.

가슴엔 숫자가 있다.

4부터 8번까지, 다섯 명이 다가온다.

이편을 보는 눈동자는 핏빛이다.

‘불완전한 접촉.’

어떠한 자들인지 장철은 깨달았다.

깊은 곳으로 내려간 자들, 그곳에서 미지의 존재와 접촉한 자들이다.

그런데 숨결만 드리웠다. 완전한 합일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한 상태, 의식의 반은 깊은 곳에 잡혀있다.

‘존재해선 안 될 것들.’

장철은 냄새를 맡았다.

다가오는 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피 냄새, 죽음의 냄새다.

그건 깊은 곳의 접촉으로 인해서가 아니다.

저들의 본래 냄새다.

저렇게 되기 전에 사람을 죽인 자들, 목적이 아닌 유희의 살인이다.

‘없앤다.’

장철은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다섯 명이 벼락처럼 공격해 왔다. 아무 무기도 없는 맨손들, 그렇지만 그 어떤 무기를 지닌 것보다 위험하다.

장철의 형상위로 채널러들의 형상이 겹쳤다.

폭풍 같은 공격이 휩쓸었다. 그러나 다섯 명 중 그 누구의 손발도 섞이지 않았다.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완벽하다.

그런데 그 공격을 장철은 흐르며 피해낸다.

흘러.

깊은 곳의 울림처럼 장철은 흘렀다.

벽을 부수는 손이 다가오면 그 곁으로 휘청, 바닥을 꺼지게 하는 발이 닥쳐오면 그 옆으로 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잎처럼 흘렀다.

그렇게 이동하는 곳은 다 부셔져 나갔다.

* * *

cctv모니터에 눈을 박은 조중건은 움켜 쥔 주먹을 부들거렸다.

미니건의 총격을 피한 자, 그걸 갈라버린 존재, 귀신장철은 귀신처럼 움직인다.

다섯 명의 채널러들이 벽과 바닥을 부수며 내는 손발을 피하고 있다.

‘저들도……!’

오인의 채널러들, 한용수가 보낸 저들도 엄청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두부처럼 박살낸다.

기계처럼 맞물린 합격은 경악스럽다.

그런데도 귀신은 피하고 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인 것 같다.

“멈춰!”

한용수의 외침에 조중건은 흠칫해 돌아봤다.

핏발이 선 눈으로 한용수는 소리친다.

“귀신! 난 한용수다!”

* * *

스피커에서 터져 나온 소리, 멈추란 명령에 다섯 명의 공격자들은 일제히 물러났다. 즉각적인 저 반응을 장철은 더듬었다. 제어되지 않는 존재들인데 제어가 되는 거다. 그게 뭣 때문인지 관자놀이 돌기로 이해했다.

‘파란 빛.’

멈추란 명령이 터지는 것과 같이 저것이 빛을 냈다.

소리봉에서 겪은 자들에게도 있던 거다.

그때는 저렇게 드러나지 않았었지만 저것이다.

저것에 대해 나중에야 생각했다. 계속에서 불길한 예감을 품게 했다.

‘확실하구나.’

저게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저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뇌파증폭장치로 짐작된다.

저것으로 저지력을 발휘하는 거다.

그런데 불안하다. 접촉자체가 불안한 저들은, 저 붉은 눈동자들은 폭발직전의 것이다.

-아버님이 네 놈 손에 살해되고 난 맹세했다!

한용수, 그의 목소리가 증오로 터져 나온다.

-네놈을 반드시 잡아 죽이리라고! 간을 꺼내 씹을 거라고 맹세했다!

장철은 다섯 명을 응시하며 미동 없이 들었다.

-그동안 잘도 목숨을 부지했다만 오늘은 다를 거다! 네놈이 채널러라는 걸 알고 있다! 마주선 그들도 채널러다! 관자놀이의 파란 빛을 내는 돌기가 보이지? 그게 우리가 연구개발한 심안이다! 능력을 증폭시켜주지!

설명해주는 건가 싶게 말하던 한용수는 다시 원한을 쏟아냈다.

-그들은 다른 채널러들과 다르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오늘 은 안 될 거다! 그들이 진짜 힘을 사용하면 너는 갈가리 찢어지고 말거다!

듣고 있던 장철은 한마디를 뱉었다.

“해라.”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왜 안하고 있냐는 거다. 그게 귀신이란 존재를 산 채로 잡기 위해서, 한용수 네가 직접 목을 따기 위해서라면 하란 거다.

그러나 힘들 거란 대답이다. 그렇다는 걸 느꼈기에 멈추게 했겠지만.

-이 갈아 마실 새끼가……!

한용수의 이가는 반응 속에서 장철은 그들만을 바라봤다.

다섯 명의 적들, 이들의 정체성, 이제 확실히 알았다.

소리봉에서는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위치만을 알아내느라 다른 내용들에 대해 부실했다.

‘불완전한 접촉자.’

저들은 이제 제어가 풀릴 것이다. 저 붉은 눈동자는 폭발직전이다.

‘그게 진짜 힘.’

한용수측도 제어하지 못하는, 그것이 이제 드러날 것이다.

-죽여 버려!

발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오인의 채널러들이 다시 움직였다. 폭발직전의 붉은 눈동자들이 확 하고 터지듯 팽창하는 것과 같이다.

* * *

연구소로 이어지는 외길을 질주하는 속에서 최길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귀신을 맞닥뜨릴 시간인 것이다. 가평에서 그가 한대건회장을 살해하고 도주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솔직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늘이라고 다를 건 없어.’

총기로 무장했지만, 총을 지니고도 귀신에게 당한 피터윤의 팀처럼 될 수 있다. 그들과 비교한다면 당연한 일일 거다. 그러니 귀신을 상대하는 건 채널러들이다. 이미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은 한용수회장의 보호다.

‘같은 일을 또 겪을 순 없어.’

눈을 뜬 최길준은 연구소 정문을 시야에 넣으며 폰을 잡았다.

“나 최실장이다, 문 열어라.”

* * *

경비팀에 걸려온 최길준 실장의 전화, 길한수는 어서 문을 열라고 손짓했다. 눈은 모니터에 박은 채로다. 귀신과 채널러들의 싸움, 숨 막히는 흐름이 이어지다 멈췄다. 한용수회장으로 인해서다. 다시 이어진다.

‘제어를 풀었어.’

오인의 채널러들, 저들은 이단계의 실패작들이다.

육신이 부서지고 뭉개져 죽는 실패는 아니지만 실패다.

저들은 제어되지 않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자칫 연구소가 사라질지도 모를 그 힘을 막은 게 심안이다.

그런데 심안의 제어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저들에게 계속 약물을 주입하고 가둬뒀었다.

이제 그 금제가 다 풀리는 거다.

귀신을 잡기 위해서다.

이 결과가 어떠할지 정말로 살 떨리는 흥분이다.

‘저!’

길한수는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뜨고 숨을 멈췄다.

화면에 보이는 채널러들, 4번부터 8번까지, 저들이 변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형상이 되고 있다.

* * *

뒤틀리며 변하는 자들, 오인의 채널러들을 장철은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봤다. 우두둑 두둑하는 소리를 내며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하고 있다.

아니 기본은 인간의 형상이다. 그 위로 다른 존재의 모습이 씌워졌다.

‘도깨비.’

그거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엄청난 거구가 됐다.

팔다리는 강철같은 근육이 불거졌다.

그냥 근육이 아니라 굴껍질이 덮은 바위 같은 몸이다.

머리엔 회오리 무늬가 있다.

붉은 눈과 눈 사이, 핏빛으로 빛을 낸다.

‘깊은 곳의 숨결이 작용하고 있구나.’

채널러들의 상태를, 저 모습의 전후를 깨달으며 장철은 양 손을 뿌렸다. 여태 쥐고만 있던 것, 작두칼의 시퍼런 은빛을 터트리며 걸음을 냈다.

* * *

숨 쉬는 것을 잊은 채 조중건은 그들을 봤다. 형상이 변해버린 자들, 채널러들이다. 한용수회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저렇게 변했다. 그런데 그게 한회장의 명령으로 인해서가 아니란 느낌, 예정된 거란 생각이다.

‘저건 대체 뭐야?’

부들거리는 눈 주위를 제어하지 못한 채 조중건은 겨우 숨을 이어냈다. 거구의 괴물 같은 것으로 모습이 변해버린 채널러들, 저렇게 된 건 짧은 순간이었다. 저건 대체 뭔가? g6에선 한 번도 저런 걸 본적이 없다.

“도대체 뭐……”

물음을 내던 조중건은 한용수의 떨리는 눈을 보고 깨달았다. 자신과 같다는 것을, 한 번도 저런 걸 본적이 없다는 것을, 경악을 삼킨다는 것을.

파괴적인 소리에 조중건은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귀신과 채널러들이, 괴물이 된 자들이 격돌하고 있다. 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온다.

‘귀신……!’

떨리는 호흡을 잡으려 애쓰며 조중건은 싸움을 지켜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