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17. 변하는 건 없다 1.
117. 변하는 건 없다 1.
기어이 고초희는 집을 나선다. 민수경이란 여경의 피를 바른 집으로 다시 건너간다. 고종환회장의 저택, 이곳은 현재 이목을 받고 있기에 안 된다. 그래서 저편 집으로 이어진 터널을 건너가 외부로 나가는 거다.
‘방공호 용도는 분명 아닌데.’
고초희를 따라 터널을 이동하며 민승환은 더듬었다.
두 집 사이의 암반을 뚫어 만든 이 지하통로의 진정한 용도가 무엇인지다.
배수로라고 해도 될 것 같고 방공호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전자라면 제법 말이 된다.
‘이 부근에 물난리가 난적이 있지. 산사태가 휩쓴.’
고종환회장이 어떤 생각으로 이걸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고초희가 잘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건너갔던 저편 집에서 여경을 난도질했다. 그리곤 원래 집으로 돌아가 쉬던 중인데 전화를 받은 거다, 그래서 다시 간다.
‘이쪽 집을 통해 밖으로, 용인으로.’
이럴 때가 아닌데 참질 못한다. 아버지 고종환회장의 장례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러는 거다. 그런데 솔직히 고초희가 장례준비에 뭘 할 건 없다.
‘그래도 자중하는 게 맞을 텐데.’
고초희는 견디질 못한다. 한용수회장에게 찾아간 귀신이라는 현재상황, 이결과가 어떠할지, 거기서 무슨 일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고자 한다.
“뭐야? 아직도 안 치웠어?”
지하실로 들어간 고초희가 낸 첫말, 차갑고 섬뜩하다.
보통의 젊은 여자가 짜증이 밴 목소리를 내는 것과는 다르다.
등골을 칼로 저미는 것 같다.
민승환 자신과 같은 느낌일 한경석, 놈과 다른 놈들이 허릴 접는다.
“죄송합니다. 바로 치우겠습니다.”
하얗게 날 선 눈동자를 빛냈던 고초희는 민수경의 시체가 담긴 통을, 제 작품을 다시 본다. 죽이던 때를 생각해선지 흐릿한 미소를 머금는다.
“됐고, 지금 나간다.”
할 말을 하고 바로 계단으로 향하는 고초희, 그 뒤에서 민승환은 한경석에게 상황을 말했다. 알아들은 한경석은 차를 준비하기 위해 달려갔다.
* * *
스피드가 배는 빨라졌다. 원래의 형상에 도깨비라는 슈트를 착용시켜 놓은 것 같은 존재들, 흉악한 무기라고 해야 할 커다란 손발이 번개다.
그러나 그 흐름 속으로 장철은 흘렀다. 작두칼의 바람을 마주 안겨줬다.
불꽃이 피어나고 격렬한 쇳소리가 퍼진다.
도깨비들의 손과 발, 몸통에 작렬한 칼날이 만들어내는 울음이다.
경악하게도 도깨비들의 육신은 장갑과 같다.
작두칼은 그들의 몸뚱이 위로 그러져 흘러갈 뿐 가르질 못한다.
흘러 넘쳐.
울림을 따라 장철은 휘돌아 흘렀다.
칼바람을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된 형상으로 흐르고 흘렀다.
도깨비들의 손발이 터트리는 무지막지한 파워를 흘려내며 출렁대고 넘실거렸다.
격렬한 해일 같은 파도를 일으켜 냈다.
모습을 분간하지 못할 빠름으로 휘도는 장철, 도깨비들의 손과 발 사이에서 치솟아 칼을 후렸다.
해일의 힘이 더해진 작두칼이 도깨비의 어깨를 강타했다.
암반이 부서지는 것처럼 팔이 떨어져 나갔다. 파편들이 튄다.
* * *
“저!”
조중건은 경악도 못할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지금 본 광경이 너무 엄청나서다.
귀신이 분간 못할 스피드로 반격했다. 거구로 변한 채널러 중 한명의 어깨를 절단했다.
그런데 그게 자른 게 아니라 부순 것 같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저런 싸움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지만 저 결과는 더 그렇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충격적인 광경은 이제 시작했다.
* * *
대포처럼 튀어나온 도깨비의 발을 흘린 장철은 그 다리를 잡고 휘돌았다.
도깨비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고 그 바람에 다른 놈들이 물러섰다.
거리를 벌린 그 찰나의 순간, 장철은 작두칼과 같이 돌며 다릴 잘랐다.
회오리로 솟구쳐 일어선 장철은 돌개바람이 되어 다른 도깨비의 안면을 후려 찼다.
선풍의 벼락으로 흘러나간 훅킥은 도깨비의 얼굴을 뭉갰다.
그 순간 다른 두 놈의 도깨비가 덤벼들었다. 그들 사이로 휘돌았다.
* * *
한용수는 숨 쉬는 것도 잊었고 생각도 잊었다. 모니터를 통해 보고 있는 저 모습, 귀신과 채널러들의 싸움, 엄청난 저 격투의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귀신이 채널러들의 팔다리를 떼어내더니 칼로 후려치고 있다.
‘미친!’
경악이란 것으로 부족한 광경이다.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잘리고 안면이 뭉개진 놈 외에 남은 두 놈, 그들의 사이에서 귀신은 칼을 후리고 있다. 둘의 형상을 휩싸고 소용돌이처럼 돌며 불꽃을 피워내고 있다.
그렇다, 불꽃이다.
기괴한 형상으로 변한 채널러들의 육신은 장갑 같은 것이다.
귀신의 칼로 쳐도 데미지가 없는 거다.
그랬는데 이젠 아니다. 파도가 들이치듯 무수한 저 칼질은 채널러들의 육신을 쪼개는 중이다.
“이……!”
전신을 부들거리는 충격과 분노 속에서 한용수는 버튼에 손을 올렸다. 이것까지 사용하게 되리란 생각은 안했었는데,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
* * *
허릴 갈랐다.
수십 번의 칼질, 소용돌이의 흐름을 안겨준 결과다.
그런데 역시 피는 없다.
팔과 다리를 잘랐을 때 확인한 거지만 이들은 피가 없다.
“크아아!”
맨 처음 팔을 잘린 놈, 도깨비가 달려온다.
허리가 잘려 쓰러지는 동료 둘을 본 분노가 아니다.
본능적이고 맹목적인 파괴와 살육에의 충동이다.
제가 팔을 잘렸다는 분노가 더해졌다.
놈에게 작두칼을 선물해 주자.
앞으로 도약해 나가며 트위스트로 휘돈 장철은 작두칼을 뿌렸다. 돌림판에서 튕겨나간 모래알처럼 날아간 작두칼, 그것이 도깨비의 이마에 박혔다.
쩍 하는 소리로 머리를 가른 채 박힌 작두칼, 이빨나간 날빛이 푸르다.
장철은 그대로 달려 나갔다.
쓰러지는 도깨비를 지나쳐 다리 잘린 놈에게로 향했다.
겅중거리며 일어선 놈, 붉은 눈을 빛내며 맹수 같은 소리를 터트리는 놈 옆으로 흘렀다.
그리고 멈췄다. 남은 작두칼은 놈에게 있다.
목을 거의 가른 채 박힌 작두칼, 그걸 잡고 놈이 쓰러진다.
바로 그 순간 장철은 예감했다.
위험이 종말처럼 엄습하는 순간, 깨닫자마자 달렸다.
* * *
한용수회장이 누른 버튼이 뭔지 조중건은 알았다.
폭파장치다.
귀신 장철이 채널러들과 싸운 저 공간, 벽과 천장과 바닥에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채널러들이 부순 공격에도 폭발하지 않던 폭탄들이다.
‘역시!’
온누리의 준비는 간단한 게 아니다.
미니건 정도는 애교라고 할 대응이다.
저렇게 정교하고 강력한 폭발물들을 매설하고 있던 거다.
저런 폭발 속에선 귀신이라고 해도 살기 힘들다.
그런데 폭발로 카메라도 갔다.
‘죽었겠지.’
마지막에 위험을 감지한 게 분명한 귀신은 통로를 달렸다. 그렇지만 그 앞에서, 옆과 위와 바닥에서 폭발이 치솟았다. 저런 속에서 살수는 없다.
‘아무리 채널러라고 해도.’
뭔지 뭐를 아쉬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삼키던 조중건은 경직했다.
“b구역에 움직임이 있습니다!”
모니터 앞의 온누리직원이 내는 새된 소리, 조중건은 화면을 봤다.
‘귀신!’
그다, 그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서 있다.
폭발로 인해 낭패한 몰골이다.
그렇지만 살아 있다. 사지가 멀쩡한 모습이다. 돌아서서 다시 움직인다.
“이……! 남은 인원들을 모조리 붙여!”
한용수의 악에 받친 명령, 그것이 이뤄지는 광경을 조중건은 지켜봤다.
* * *
“뭐야 이 진동은?”
황철현은 놀란 눈으로 어둠 저편을 봤다.
이제 시야에 들어온 저곳, 온누리정신연구소가 근원이 분명하다.
오랜 현장 경험으로 이런 진동의 원인이 뭔지 안다.
분명 폭발물에 의한 것이다. 연구소에 폭발이 생긴 거다.
“국장님!”
다급한 움직임으로 폰을 잡고 전화한 황철현은 조중건의 목소리를 들었다.
-괜찮다. 도착한 거냐?
“아, 무사하시군요, 예, 지금 연구소 앞입니다. 그런데 g6에선 아직입니까?”
조중건이 말하지 않은 부분, 그러나 당연하기에 물었고 대답을 들었다.
-홍천에서 오는 거니까 조금 더 걸리지.
“그렇군요, 그런데 안에 무슨 일입니까? 폭발인데요?”
-연구소에서 준비했던 대응 중 하나다. 귀신은 아직 해결 못했다. 팀원들과 외부에 대기해라.
명료한 조국장의 지시로 황철현은 현황을 이해하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폰을 내린 황철현은 정지한 차 안에서 연구소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자신이 할 일이란 특별히 없다. 조국장의 말처럼 대기하는 거다. g6에서 채널러요원들이 오면 투입될 거다. 그런데 귀신은 대단하다.
‘채널러들과 싸웠을 텐데.’
온누리의 그 존재들과 싸웠다. 그런데다 저런 폭발까지 더해진 거다. 그런데도 아직 해결 못했다는 거다. 귀신은 저 안에서 귀신처럼 싸우고 있다.
“후우.”
거듭 한숨을 내쉰 황철현은 어둠 속의 연구소만 노려봤다.
* * *
“썅……!”
길한수의 이 악문 욕을 들으며 최길준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귀신, 그는 살아 있다.
통로를 없애버린 저 폭발을 우습게 만들었다.
‘정교하게 계산된 저 폭발을……!’
연구소의 구조물 전체엔 영향을 미치지 않게, 그러나 대상은 확실하게 멸살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 속을 귀신은 뚫고 나왔다. 저렇게 멀쩡하다.
저런 자를 누가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남은 자들로 가능한 건가?
“길소장.”
최길준은 고개 돌려 길한수를 봤다. 그 눈길의 의미를 안 길한수는 대답했다.
“남은 채널러들은 소리봉에서 귀신에게 당한 자들과 다를 게 없소, 그러니까 이대로는 안 되는 건데, 믿을 방법이라면 국정원이 도와주는 거요.”
“국정원?”
“몰랐소? 국정원이 찾아왔소. 그림자 조직의 국장이라는 자와 회장님이 함께 있소.”
최길준은 자신도 모르게 고갤 돌렸다.
벽 너머, 회장의 개인 공간이다. 그곳에 국정원 인물이 있다.
회장과 같이 이 상황을 보며 무슨 얘길 할까.
* * *
“채널러들을 전투 투입하고 연구소의 남은 화력을 집중하긴 할 겁니디만……”
한용수가 돌아보는 시선을 받아 조중건은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g6의, 국정원의 채널러들.
그런데 상황이 호전될지는 모르겠다는, 그 말과 생각을 조중건은 속으로 삼켰다.
이 순간의 솔직한 생각이다.
귀신은 이번에도 예상한 걸 뛰어넘고 있다.
손이 열 개면 하나보다는 확실히 낫겠지만 과연 그러할지.
‘아니, 어떻게든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 해.’
결심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조중건은 다시 폰을 잡았다.
“어디냐? 서둘러라.”
* * *
“뭐하고 있어! 달리란 말이야!”
고초희의 발악에 가까운 재촉에 가드놈은 움찔하며 악셀을 최대한 밟는다. 도로를 차고 나가는 벤츠의 속도는 몸을 경직하기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민승환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아랫배에 힘을 줬다.
“귀신은 거기서 안 죽을 거야, 틀림없어.”
바람인지 확신인지, 뒷자리의 고초희가 내는 목소리 속에서 민승환은 거듭 큰 숨을 들이켰다. 그러며 자신은 지옥에 떨어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설까, 차가 뚫고 가는 도로의 어둠은 지옥의 울음처럼 울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