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19화 (119/200)

황혼의 살인자. 119. 최후라는 것은.

119. 최후라는 것은.

최길준 실장이 방금 전 귀신에게 죽었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이젠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용수회장은 뭘 하고 있나.

‘이대로 있다간 죽어!’

몸을 옥죄는 충격 속에서 길한수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다.

벽 너머의 한용수회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지다.

국정원비밀공작팀의 국장이란 자와 함께 있으니 괜찮은 걸까?

‘처음부터 잘못 됐어! 귀신에 대해서 잘못 판단한 거야!’

손이 부들거린다. 심장이 떨려 온몸이 후들거린다.

귀신이 채널러들을 다 죽였다.

불완전 접촉자들, 그 위험한 존재들이 괴물의 형상으로 변했는데도, 처음 본 그 모습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이는 데도, 전부 죽였다.

‘최실장까지……!’

유탄발사기를 난사한 그도 죽었다.

그는 정말 용감했지만 부하들과 같이 최후를 맞았다.

무모한 죽음이다. 가치 없는 종말이다. 그렇겐 안 죽는다.

‘절대로!’

흔들리는 눈동자에 힘을 주며 생각하고 생각하던 길한수는 혀를 물었다. 짜릿한 통증 속에서 잡은 길, 국정원의 대응을 보고 행동한다는 거다.

‘아직은……’

결과를 모른다. 귀신에게 당하는 건지 귀신이 당하는 건지. 국정원이란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게다가 최후엔 치안 병력들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와중이라고 해도 여차하면 빠지는 거다. 그럴 준비는 늘 해 왔다.

‘채널링 연구자료만 가져가면……!’

다시 이를 물던 길한수는 모니터 속 귀신을 보고 숨을 멈췄다.

놈이 통로를 달려온다. 그런데 그 방향이 이쪽이다. 뭘 아는 것처럼 질주해 온다.

‘저!’

본능적인 반응으로 길한수는 권총을 잡았다. 모니터 앞의 부하들 둘도 파랗게 경직된 얼굴로 돌아 일어섰다. 그들도 손에 권총을 움켜잡았다.

* * *

“진입해!”

조중건은 격하게 소리쳤다.

흥분과 두려움으로 튀어나온 반응, 귀신이 달려오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젠 안심이다.

지시를 받은 폰 너머 g6요원들이 연구소로 들어올 것이다. 황철현 팀도 종말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고초희 따위 잡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런 상황이다. 연구소 밖에 그년이 와있든 어떻든 지금은 귀신을 상대해야 한다. 현재가용병력만으로 모자랄 수 있다.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접니다.”

폰을 귀에 대고 벽으로 돌아선 조중건은 작은 목소리로 현황을 보고 했다. 무장병력이 더 필요하다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거절이다.

-거기서 해결해라.

“예? 아니 현재 상황이……”

-g6의 효용성을 증명할 시간이다.

조중건은 흠칫하며 숨을 멈췄다.

귀를 파고든 말, 효용성을 증명하라는 소리가 전신을 억누른다.

그렇다, 실전투입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수십 년간의 투자와 연구를 결과로 보이는 거다. 지켜보겠다는 거다.

-채널링 연구는 우리만이 아니다. 엄밀히 우린 후발주자야. 우리 현주소가 어딘지 정확히 확실히 알아야 다른 국가들의 능력을 가늠하겠지.

이어 나온 말에 조중건은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는 귀신이란 존재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은 거겠지. g6가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 채널러의 능력에 대해서.’

뜨거워진 숨을 머금은 채 조중건은 뒤늦은 대답을 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조중건은 벽을 보고 뜨거운 숨을 뱉었다.

‘자칫하면 여기서……’

귀신의 능력치 검증 시험물로 최후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하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원천적인 회의를 동반한 감정이다.

그런데 그게 소용없고 허무한 것이란 걸 잘 안다.

‘이 바닥에 발을 들인 때부터……’

다시 큰 숨을 들이켠 조중건은 돌아섰다. 한용수가 시선을 던지고 있다.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눈동자, 짐작하기 어려운 빛을 내고 돌아간다.

쾅 하는 충격이, 소음과 진동이 닥친 것은 그때다.

한용수가 돌아선 채 말한다.

“중앙통제실, 모니터룸입니다. 길소장이 있는 곳입니다.”

* * *

팀원들에게 좌우로 흩어지라는 수신호를 보낸 황철현은 다시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구소 정문을, 철문을 몸통으로 받아 부수며 진입한 자들이다.

g6에서 온 채널러요원들이다, 모두 일곱 명, 숨 막히는 기세다.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낭랑한 목소리, 고초희의 빛나는 눈동자를 황철현은 돌아봤다.

“채널러들이죠?”

역시 안다. 고초희는 다 알고 있다.

“저들이면 귀신을 잡을까요?”

이편에 던지는 건지 제 자신에게 하는 건지 모호한 물음.

“귀신이 저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건 확실하네요.”

고초희는 아름답게, 사악하게 웃는다. 직전에 뱉은 의문의 결과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실히 알겠다는 미소다. 귀신이 살상을 저지르고 있는 결과, 그걸 연구소 측은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고 국정원이 가세한 현실.

“국정원 같은데서 채널링 연구를 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긴 했어요.”

낭랑한 목소리를 이어 뱉은 고초희는 시선을 연구소로 돌렸다.

“정말로 궁금하고 흥분되네요.”

뭐가 어떻게 될지, 이 밤의 결과가 어떠할지, 고초희의 눈은 이글거린다.

‘사악한 년.’

다시 한 번 고초희에 대한 살의를 삼킨 황철현은 소총을 움켜쥐고 돌아섰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거나 돌아가라는 경고 따윈 하지 않았다. 오늘 밤의 이 자리, 이곳에서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책임지는 거다.

‘스스로.’

이 악문 숨을 삼키며 황철현은 연구소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 * *

폭발하는 것처럼 부서져 들어온 출입문, 강철문의 최후를 인지한 순간 길한수는 권총을 난사했다. 통제실을 운용하던 두 명의 부하와 함께 발작했다. 빗발쳐 날아간 총탄들은 안쪽 벽과 바깥 복도 벽을 헤집었다.

“컥!”

“큭!”

부하들이 낸 소리가 뭔지, 왜 그런지 길한수는 알았다.

흐릿한 형상이 덮쳤기 때문이다.

부하 둘은 통제실 안쪽을 차지한 모니터들에 박혔다.

“우와아아!”

몸을 돌린 길한수는 괴성을 터트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에 남은 총탄들이 폭발해 나갔다. 그런데 바로 철컥거린다.

흐릿한 형상은 눈앞이다.

‘헉!’

화끈한 가슴의 감각에 길한수는 경직했다. 그런 속에서 봤다. 자신의 얼굴 앞에 얼굴을 마주한 남자, 귀신이란 존재의 붉은 눈동자를 똑똑히 봤다.

“너라고 다를 건 없어.”

온몸에서 일어난 경련을 주체하지 못하며 길한수는 또 다른 모습을 봤다.

자신과 부하들의 총격으로 부서진 문 옆의 거울, 거기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귀신의 팔이 가슴을 뚫고 들어가 등으로 빠져나가 있다.

‘최길준처럼 죽는 구나.’

그 생각을 품는 순간 귀신의 팔이 빠져나갔다.

‘귀신.’

그 이름을 부르고 싶었는데 길한수는 그러지 못했다.

돌아나가는 귀신을 보며 허물어졌다.

시야가 어두워지는 가운데 걱정했다. 숨겨둔 자료들을.

* * *

“들어갔습니다.”

이메일 전송을 클릭하고 돌아선 한용수를 조중건은 무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온누리연구소의 연구자료, 원하던 것을 이렇게 얻을 줄은 몰랐다.

귀신이 코앞에 닥쳐온 위기상황의 결과, 그러나 그 이상이 있다.

“어차피 공유해야 했을 것들입니다. 이제 온누리정신연구소는 폐쇄될 테고요.”

그게 다른 연구시설을 만들겠다는 건지, 모든 걸 포기한다는 건지 모호하다. 한용수의 지금 저 눈은 후자로 읽힌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우리요원들이 진입했습니다.”

한용수는 조중건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직한 말도 냈다.

“귀신은 바로 밖에 있고요.”

통제실을 거쳐 귀신이 오고 있다. 한용수의 저 말처럼 바로 밖인 거다. 그 의미가 새삼 피부에 소름을 돋게 한다. 정말 최후가 될지 모른다.

“귀신을 잡아 주십시오.”

최후의 대사 같은 말을 뱉은 한용수는 돌아서 서가를 밀었다. 벽 뒤에 드러난 문, 비밀통로다. 안쪽에 놓아뒀던 HK416소총을 꺼내고 비켜선다.

“본관 뒤로 나가게 됩니다.”

조중건은 알아들었다. 저 문, 비상출구로 나가라는 거다. 그런데 한용수는 같이 갈 생각이 없다. 저 눈은 여기서 죽든 살든 끝장을 보겠는 거다.

“한회장님.”

단호한 음성으로 조중건이 반응하자 한용수는 더 단호하게 답했다.

“시간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 진동이 실내공간을 울렸다.

* * *

팔괘장, 그 묘리를 온몸과 영혼으로 체화해내며 장철은 오른 손을 뻗어냈다. 은행의 금고문과 같은 강철문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아직 이다. 최소한 두 번은 더 강타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기운은 뭔가?

‘다른 채널러들.’

그러한 존재들이 다가오고 있다.

모두 일곱이다.

연구소에게 겪은 자들과 다르다. 아주 잘 정제된 기운이다.

저들이 오기 전에 끝장내야 한다.

‘한용수.’

커다란 숨을 들이마신 장철은 문을 향해 격류의 힘을 터트렸다.

* * *

“흥분돼서 쌀 거 같아.”

중얼거림을 흘려내며 연구소를 바라보는 고초희, 그녀의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번질거리는 걸 민승환은 분명히 봤다. 소름끼치는 눈동자다.

‘사람을 죽일 때보다 더……!’

고초희는 지금 그런 상태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흥분해 있다.

원인은 귀신, 그가 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잡기 위해 국정원 요원들도 들어갔다.

온누리 측의 대응이 소용없다는 방증, 살이 떨리는 밤이다.

“들어가서 보고 싶어, 내 눈으로 직접.”

고초희는 흥분을 참지 못한 아이처럼 걸음을 내디뎠다. 그래서 민승환은 경직했고 한경석과 운전하던 놈도 움찔했다. 하지만 고초희는 멈췄다.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냈던 걸음을 다시 뒤로 물린 고초희는 입술을 물며 연구소를 바라봤다.

* * *

육중한 강철문이 안으로 쓰러져 들어온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용수는 기다렸다. 서가를 등지고 서서, 비밀통로로 빠져나간 조중건 국장의 생각은 잊은 채, HK416을 겨누고 서서 귀신이 다가오는 걸 바라봤다.

“이런 순간이 오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한용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앞에 멈춰선 자, 귀신 장철은 말없는 시선만 던졌다. 그러다 한마디를 뱉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 것을.

“영이를 해친 순간 정해진 거다.”

그렇다, 한진수가 죽었다. 그걸 막으려던 한대건도 죽었다.

그 죽음에 분노한 한용수가 죽을 차례다.

외면하고 포기했으면 안 일어났을 일이다.

“귀신……”

뮈라고 말하려던 것일까, 귀신을 부른 한용수의 눈동자가 그 순간 응축했다. 겨누고 있던 HK416의 방아쇠를 당겼다. 불벼락이 터져나간다.

총격음이 실내를 메우고 총구화염이 퍼지는 그 찰나, 귀신은 흘렀다.

한용수의 총 아래로 귀신처럼 붙었다.

허리를 잡고 휘돌아 굴렀다.

그 속에서 한용수는 비틀렸다.

손목과 팔과 어깨와 허리와 목이 다 꺾어졌다.

* * *

통로 저편에서 들려오는 총격음에 멈칫한 조중건은 돌아봤다.

울림으로 닥쳐온 저소리가 마치 단말마의 비명처럼 느껴진다.

최후의 소리다.

‘한용수회장……!’

그가 귀신과 맞닥뜨린 결과가, 최후가 어떠할지를 그리며 몸을 떤 조중건은 다시 움직였다. 출구로 나가 바깥 공기를 마시며 폰에 대고 말했다.

“귀신을 반드시 죽여라.”

어둠 저편에서 달려오는 그림자가 황철현임을 안 조중건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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