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20화 (120/200)

황혼의 살인자. 120. 두 번째 금선탈각.

120. 두 번째 금선탈각.

STR-24 소총을 움켜잡은 황철현은 팀원들과 소통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연구소 출입구 좌우로 흩어진 둘은 저격을 준비 중이다.

만일을 상정한 액션절차, 아마 할 일은 없을 거다.

‘g6 팀원들이 들어간 이상.’

그렇기를 바란다, 귀신을 그들이 제압해 주길 정말 원한다.

귀신과 같은 존재들, 채널러들이니 가능할 거다.

하지만 귀신은 그런 자들을 죽였다.

소리봉에서 그랬고 지금 이곳 온누리연구소에선 더 많이 죽였다.

‘확실한 결과는 내 손으로……!’

그래서 지금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

차세대소총으로 개발한 SRT-24를 쥐고서다.

기왕의 5.56mm탄이 아닌 6.8mm탄을 사용하는 소총이다.

더 강력한 살상력을 가진 총, 아직 보급되지 않은 특별한 무기다.

‘귀신, 여기가 마지막이 될 거다.’

시큰거리게 어금니를 문 황철현은 조중건국장의 말을 떠올렸다.

지원은 더 없을 거라는, 위에선 귀신의 난동을 끝까지 지켜보려는 것 같단 말.

그게 g6의 효용성을 증명하라는 것에 더해진 핵심 의도라고 했다.

‘어설픈 만용으로 개죽음 같은 건 안 해.’

조중건 국장이 마지막으로 당부, 주의시킨 것이 그거다. 귀신의 위험성을 피부로 겪은 그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한용수회장이 죽었다고 했다.

‘최후를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다. 조국장이 빠져나온 비밀 통로를 통해 들어간다.

등 뒤엔 팀원이 따르고 있다.

그의 눈 역시 황철현 자신과 같다.

매복한 다른 두 팀원과 같은, 그림자의 종말팀으로서의 전투의지다.

“멈춰.”

수신호가 아닌 목소리를 내며 멈춘 황철현, 등 뒤의 팀원이 던지는 시선을 느끼며 문을 응시했다. 조중건이 빠져나온 비밀출구, 손을 뻗었다.

빠르게 열고 총을 겨눴다. 자세를 낮춘 머리위로 팀원의 총구가 나왔다.

‘역시.’

없다. 조국장이 있던 공간에 남은 건 시체뿐이다.

‘한용수 회장.’

그의 참혹한 죽음이 보인다. 몸뚱이가 비틀린 최후다.

도대체 뭘로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까?

펜치로 잡은 엿가락을 비틀었달까? 그런 형상이다.

‘목부터 발까지……!’

휘어지고 틀어지고 꺾였다. 부릅뜬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는 한용수, 저 얼굴과 눈은 자신의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후우.”

멈추고 있던 숨을 뒤늦게 내쉰 황철현은 허무한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보고 있는 이결과가 그렇게 만든다.

한진수와 한대건회장에 이어 한용수도 죽었다.

이렇게 될 걸 알았다면 했을까? 귀신에게 죽을 걸 알았다면?

‘자신은 다를 거라고 여긴……’

그 결과가 한결 같다.

귀신은 덤벼든 적을 반드시 죽인다.

모조리 죽였다.

‘다른 점이라면, 한용수 회장은 최후를 알면서도 했어.’

귀신이 닥치기 직전에 온누리정신연구소의 연구자료를 넘겼다. 그리곤 조국장을 비밀통로로 내보내고 귀신을 맞은 거다. 최후를 피하지 않았다.

“팀장님.”

팀원이 부르는 소리로 상념에서 벗어난 황철현은 다시 총을 앞세우며 움직였다.

강철문이 부서져 들어온 복도로 나가 좌우를 살폈다.

역시 cctv 카메라들은 부서져 있다. 귀신이 이동하면서 파괴한 것이 분명하다.

‘어디로 간 거냐?’

어금니를 다시 힘줘 문 황철현은 g6요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외부에서 조국장과 합류한 지원차량에서 보내주는 위치신호가 폰에 떴다.

붉은 점 일곱 개.

채널러 요원들은 연구소의 이곳저곳을 맹렬히 뒤지고 있다.

‘설마……’

R호텔에서의 일을 떠올린 황철현은 불안한 예감을 털어내고 다시 움직였다.

* * *

더 이상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연구소는 평화로운 심야 속에 잠든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 귀신이 저안에서 날뛰고 있고, 그를 잡기 위해 국정원요원들이 달려 들어간 상황이다. 채널러들이라고 했다.

‘귀신같은 것들……!’

고초희가 말해준 내용으로 판단하면 그런 거다.

아직도 전체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맥락과 핵심은 안다.

채널링이란 것을 통해 변한 인간들이다.

보통인간들이 아니다. 그런데 고초희는 자신도 그런 존재라 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뜨거운 침을 삼키던 민승환은 고초희가 돌아서는 걸 보고 움찔했다.

무슨 생각인지 고초희는 차로 돌아가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렇다고 돌아갈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텀블러에 든 커피를 마시며 연구소를 바라본다.

“끝은 난 것 같은데……”

고초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내용은 연구소 안의 상황이다.

귀신으로 인한 상황이 끝났다는 말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게 귀신이 죽었거나 제압된 걸 말하는 것도 분명 아니다.

고초희의 눈동자는 모호하게 빛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 좋은데?”

뭐가 안 좋다는 걸까. 답은 고초희의 중얼거림으로 이어 나왔다.

“귀신, 전혀 안 느껴져.”

그렇다는 거다, 그러면 지금까지 귀신이란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는 건가? 그랬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고? 귀신이 죽은 게 아닌데 그렇다고?

‘뭐……’

연구소로 시선을 돌린 민승환은 축축한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 * *

몇 시나 됐는지 모르겠다. 선잠에 시달리던 눈을 결국 뜨고 말았다. 깊은 잠을 제대로 자야 피곤이 풀릴 텐데, 요사이는 매일 이런 잠이다. 그게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라면 억울하다. 이제 마흔 넘었으니 한참이다.

‘끄음, 마음은 그렇지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최재우는 잠든 아내 유인주를 돌아보고 안방을 나갔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잔에 따른 뒤 베란다 앞에 서서 마셨다. 그렇게 내다보는 아파트 중앙정원의 놀이터엔 그림자들이 서성거린다.

‘술.’

아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소위 말하는 불량청소년들이다.

저 중엔 정말로 불량한 아이들도 있을 테지만 호기심과 충동에 어울린 아이들도 있을 거다.

그래서 저런 때가 중요하다. 이쪽과 저쪽의 갈림길인 거다.

‘개개의 사연과 생각들을 다 알 순 없지만.’

새벽 4시다.

이런 시간에 놀이터에서 소주병을 기울이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전부 알 순 없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현실이다. 그래도 안타깝다.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고 이끌어 주고 싶다. 하지만 그게 오지랖이다.

‘요즘 세상에선.’

자칫 훈계라도 했다간 칼 맞는다. 그런 희생자들의 뉴스가 나오는 세상이다. 그래서 경비 아저씨도 모른 체 외면하고 있는 거다. 소란스럽다면 경찰에 신고할 거다. 그것도 후환이 두려워 바로 하지 못하는 거다.

“하아.”

한숨을 내쉰 최재우는 그를 떠올렸다.

귀신,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 * *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귀신은 정말 연기처럼 꺼진 것 같다.

한용수회장을 죽이고 복도로 나와 카메라들을 부수고 움직임을 가렸다.

그게 끝이었다.

외부로 나간 종적이 없다.

조국장과 요원들이 주시하던 상황이다.

“내부에 아직 있는 겁니다. 못 찾은 것뿐입니다.”

황철현은 조중건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R호텔에서 귀신이 빠져나간 결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힘이 들어간 황철현의 눈을 응시하던 조중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g6요원들을 돌아봤다. 일곱 명,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받는다.

“진입직후까지 귀신의 존재감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리더의 대답, 황철현은 의아함을 삼켰다.

귀신의 존재감을 느꼈다는 부분이다.

저들은 그렇다는 거다.

인간레이더라도 되는 것처럼 느낀다는 거다.

채널러라서가 분명할 터다, 흡사 무협소설의 기감인지 같은 거다.

“사체들을 확인해야 합니다.”

황철현이 말하자 조중건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 죽은 게 확실해 보이는데 심장이 뛰는 자가 있으면 귀신이다.”

황철현과 g6요원들을 보며 조중건은 남은 말을 냈다.

“발견하는 즉시 처리한다.”

* * *

“집에 가자.”

고초희가 드디어 돌아가자고 말한다. 차안에 앉아 연구소를 바라보던 시선도 거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낯빛이 가라앉아 있다.

어쨌거나 이젠 돌아가는 거다.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들이 다가오고 있다.

‘후.’

안도의 숨을 몰래 내쉰 민승환은 차에 올랐다. 감히 고초희를 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앞만 봤다. 조수석의 한경석도 자신과 같은 모습이다.

‘후속조치.’

지나쳐 달려가는 앰불런스와 경찰차들을 보며 민승환은 연구소의 결과를 가늠했다. 귀신이 죽여 버린 시체들을 치우고 사후처리에 들어간 거다.

그런데 귀신이 어떻게 된 건지를 모른다. 국정원에서 그를 잡은 걸까?

‘아니야.’

고초희를 보면 절대 아니다.

흥분과 즐거움으로 흘려내던 미소가 사라졌다.

저 얼굴과 눈동자에 들어찬 것은 무거운 현실인지, 두려움이다.

그래서 돌아가는 거다.

연구소 앞에 계속 있으면 닥칠지 모를 위험으로부터다.

‘처음 봤어.’

고초희의 저런 얼굴은 정말 처음이다. 저렇게 만든 것이 귀신인 거다.

‘이 밤에 귀신이란 존재에게서 두려움을 처음 느낀 거야.’

여태까진 그렇지 않았는데 그런 거다. 연구소 안의 결과가 어떠한지 정확히 모른다, 귀신의 생사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를 피해 달아나는 거다.

‘귀신.’

사진으로 본 장철의 얼굴을 떠올리며 민승환은 눈을 감았다. 옆에선 고초희가 내는 숨소리가 마녀의 그것처럼 차갑고 소름끼치게 흘러나왔다.

* * *

허탈한 분노 속에 황철현은 앰뷸런스를 바라봤다. 사망자들이 담긴 바디백을 싣고 가는 뒷모습, 새벽 어둠속에 경광등 빛을 뿌리며 멀어진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안 된다.

귀신은 연구소 안에서 사라졌다.

그에게 희생된 사체들 속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꾸민 게 아닐까 했는데 없다.

‘결국 또 놓친 건가?’

g6 요원들이 사체들을 검사했다.

생체기운을 감지하며 구분했지만 귀신은 없었다.

그렇게 구분한 사체들을 앰뷸런스가 싣고 갔다.

그럼 귀신은 연구소 안에 있어야 한다, 설마 조국장이 빠져나온 것 같은 경우인가?

‘또 다른 비밀통로? 그걸 찾아서 빠져나갔다?’

아니다. 연구소 도면에 그런 건 없다. 경비대와 연구자들로부터도 그런 시설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 그런데 귀신은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

허탈한 숨을 흘려낸 황철현은 STR-24을 내리며 뒷목을 문질렀다. 새삼 밀려오는 피곤과 무력함에 주저앉고만 싶다. 그런데 그럴 때가 아니다.

‘한용수회장마저 살해된 결과.’

숨길 수는 없는 일이다. 상부에선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다.

“귀신, 또 놓쳤구나.”

새벽어둠이 옅어지는 하늘을 향해 황철현은 허무한 시선을 던졌다.

* * *

지퍼를 열고 몸을 일으킨 장철은 시체실 안을 돌아봤다. 서늘한 냉기와 죽음의 기운만이 깔린 공간, 테이블을 벗어나 출입문 벽에 붙었다. 다시 심장이 뛰게 해 생체 기운이 돌아 퍼지는 몸을 가늠하며 들었다.

“씨발 이 새벽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투덜대지 말고 어서 들어가기나 해.”

시체실 안으로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흰 가운을 걸친 그들의 뒤, 벽에 붙어 있던 장철은 움직였다.

뒷목을 가격해 둘을 쓰러뜨리고 옷을 벗겼다.

입고 있던 온누리연구소 경비대 복장을 탈의하고 벗긴 옷을 입었다.

명찰까지 가슴에 패용한 장철은 시체실 문을 열고 나갔다.

태연하게 복도를 걸어 병원 밖으로 나갔다.

새벽어둠이 가시기 시작한 경찰병원, 그 밖으로 나가 폰을 켰다.

밤새 기다리던 조웅의 목소리가 반갑게 온다.

-기다려라, 곧 간다.

조웅의 음성을 귀에 담고 장철은 거리를 걸었다. 흰 가운은 벗어 의류함에 넣고, 송파구의 거리 카메라들 시선이 엇갈리는 속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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