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21화 (121/200)

황혼의 살인자. 121.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121.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시간흐름이 모호한 날들이다.

귀신 장철이란 존재가 그렇게 만들었다.

매일 매시간이 사건의 연속이다.

지나온 달력을 보면 정말 그렇다.

귀신이 손녀를 잃은 3월 24일부터 지금까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18일.’

월요일이란 개념을 새삼 머리에 그리며 황철현은 장례식장을 봤다.

온누리병원, 먼저 죽은 자들이 장례를 치른 이곳에 흡혈귀영감도 누워있다.

고초희는 비탄에 젖은 얼굴로 조문객들을 받는다.

이건 정말 코미디다.

‘새벽까지 용인에 있던 년이.’

증오를 이사이에 물고 황철현은 고초희가 있는 쪽을 노려봤다. 조문을 하러 들어가 본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누가 본다 해도 동정할 모습이었다. 타고난 무기인 미모가 그렇게 만들고, 악마의 숨결이 그렇게 한다.

‘진짜 얼굴을 숨긴 년.’

태연하게 황철현 자신의 조문을 받았다. 새벽에 온누리정신연구소에서 대면한 일 같은 건 없었단 듯이, 그게 무슨 상관이냔 눈으로 바라봤다.

“하아.”

새삼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온 한숨을 뿜어낸 황철현은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고초희라는 존재도 그렇지만 귀신에게 당한 결과가 너무 황당하다. 그는 연구소 경비대원 복장으로 시체가 되어 앰뷸런스에 실렸다.

‘뺏어 입은 경비대원 것을 벗고 다른 걸로.’

경비대 락카에서 꺼낸 것을 입었다. 명찰까지 달린 복장이었다.

피에 절은 시체들 사이에 쓰러진 그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g6 채널러요원들이 그를 찾아내야 했는데 못했다.

귀신은 완벽하게 죽어 있었던 거다.

‘심장을 정지시켰다고?’

g6요원들의 말, 추정이다. 아니 확신하는 결과다.

귀신은 자신을 시체와 구분할 수 없는 가사상태로 만들었다는 거다. 그걸 구분하지 못했다.

‘귀신을 찾아야 한다는 긴장과 다급함 속에서 시체들의 상태를, 구체적인 사인까지 확인 못한 결과. 아무리 g6요원들이라고 해도 그렇게 까진……’

못했다. 그렇지만 g6요원들이니 했어야 했다. 그런 결과여야 맞는 거다.

‘결국 농락당한 거지.’

귀신에게 또 당했다.

그는 송파의 경찰병원을 나와 cctv가 안 보이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게 더 황당하다.

이 나라는 거리의 모든 곳에 카메라들이 있다. 그런데 그걸 다 피해 도주한 거다.

마치 느껴서 피한 것처럼.

‘정말 그런 걸지도 몰라.’

귀신이니까. 채널러 요원들마저 죽은 상태로 속였으니까.

‘이런 걸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는 거겠지.’

허탈한 숨을 다시 내쉬던 황철현은 다가오는 팀원 김충식의 손을 봤다. 커피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모습, 병원 커피숍이 유명하다면서 가져왔다.

“드셔보십쇼.”

슥 내미는 커피를 힐긋 본 황철현은 받아 들며 김충식의 말을 들었다. 자신처럼 허망한 무력감과 자괴감에 젖은 목소리, 간밤의 일을 말한다.

“g6요원들이 오면 다를 줄 알았더니 결국 똑같네요.”

똑같다, 그 말이 가진 전혀 다른 의미를 황철현은 속으로 삼켰다.

‘온누리채널러들처럼 됐다면 정말로 똑같은 거였겠지.’

그들처럼 귀신에게 모조리 죽었다면.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g6요원들은 일반 채널러들이 아니다. 황철현 자신팀과 같은 훈련을 거친 존재들이다. 대응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렇지만 못 잡았다.

“고초희 저년은 정말 무서운 년입니다, 생각할수록 소름끼칩니다.”

이어 나온 김충식의 말, 고초희를 저년이라고 칭하는 목소리엔 증오와 두려움이 배어 있다. 황철현 자신이 이년 저년해선지 팀원들도 그런다.

애초에 그렇게 부르게 된 건 박인수와 최재우, 그들에게 내막을 알아서다.

“이제 고초희를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국정원의 대응, 아직 지시 받은 게 없다.

조국장은 g6요원들과 같이 홍천으로 돌아갔다.

무슨 논의를 할지 모르지만 귀신에게 당한 결과에 충격을 받은 건 분명하다.

여태 남들이 당하는 걸 본 것과는 전혀 다른 거다.

“어떻게 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고초희가 조문객들을 받는 장례식장 쪽을 바라보며 황철현은 뒤늦은 대답을 냈다.

“고초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그렇다고 해도 그건 검경의 영역이지. 다만 우리가 주목하는 건 고초희와 귀신의 관계, 한용수회장과의 선인데…… 연구소로 고초희가 왔다는 부분을 파야겠지.”

“이후의 대웅을 위해서요?”

고초희를 국정원이.

“그래, 죽일지 살릴지 이용할지 버릴 건지. 위에서 결정하겠지.”

그런 건데, 그렇게 돌아가는 판의 세상인데, 고초희라는 존재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안다. 위에선 고초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커피 식습니다.”

김충식의 목소리에 쥐고 있던 커피를 본 황철현은 입에 댔다. 뜨겁고 향기로운 커피가 입안에 들어차는 걸 느끼며 수많은 생각을 더듬었다.

* * *

선지해장국의 매큼한 국물을 들이켜고 조웅은 장철을 응시했다.

“완벽하게 처리될 거야, 차로 인해서 꼬리 밟힐 일은 전혀 없어.”

이곳 동두천까지 장철을 태우고 온 차, 그건 이제 평화폐차장에서 윤철진의 손에 사라질 것이다. 그 이전에 장철은 제 행적을 감췄을 것이다. 조웅 자신과 만나는 장소까지의 이동경로에 대해 걱정할 건 없다.

‘물어보나 마나한 거지만.’

그래도 란 마음으로 조웅은 물음을 냈다.

“나하고 만나기로 한 곳까지 오는 동안은, 걱정 안 해도 괜찮은 거지?”

뚝배기를 들고 국물을 마신 후 내려놓은 장철은 명료하게 답했다.

“괜찮아.”

귀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게 어떻게 괜찮은 건지는 몰라도 그런 거다. 거리와 도로에 깔린 수많은 카메라들도 귀신을 잡진 못하는 거다.

황당한 생각이고 불가능한 현실이지만 귀신이니까 가능할 거란 확신.

“아직 뉴스에는 안 나오고 있어.”

식당 tv를 돌아보는 조웅, 그의 말처럼 뉴스는 간밤과 새벽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아직 내막을 모르는 거다. 그건 다시 말해 현장에 있던 자들이 함구중이란 거다. 그러나 끝까지는 아니다.

“거기 다른 자들이 있었다고?”

조웅의 이어 나온 물음으로 장철은 그들을 떠올렸다. 뒤늦게 닥쳐온 채널러들, 아주 잘 정제된 기운을 풀어내던, 날을 벼린 칼과 같던 존재들.

‘그들은……’

누군지 모른다. 그렇지만 온누리는 아니다.

“경찰은 확실히 아닌 것 같았다고? 그럼 국정원 같은데 아니야?”

귀를 파고든 조웅의 말, 짐작에 장철은 미간을 깊게 좁혔다.

‘국정원.’

가능성이 있다.

비밀스런 힘을 가진 국가조직, 그들이라면 채널러들을 양성했을 수 있다.

온누리정신연구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엔 끈이, 연구교류와 같은 관계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럼 말이 된다.

“뭐가 됐든 국정원에서도 널 잡으려고 움직이고 있는 건 분명해.”

조웅은 한층 긴장한 얼굴로 숨죽여 말한다.

“나라에서 널 테러범으로 규정하고 잡겠다고 공포한 마당이니까.”

그러니 이런 시간에 이렇게 해장국집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변장을 했다. 둘 다 허름한 차림의 노동자들인 거다. 노동판을 도는 일용직들이 일 없는 모습이다.

-고종환회장의 장례식이 엄수되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조문객들이……

tv에서 흘러나온 뉴스에 반응하며 장철과 조웅은 고갤 돌렸다.

‘고초희.’

그년이 보인다.

장철은 수저를 우그러뜨리는 줄도 몰랐다.

tv화면에 잡힌 고초희의 슬픔과 비탄에 젖은 얼굴을 보며 뜨거운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런데 정말 모른다. 고초희가 온누리정신연구소에 왔었던 것을.

* * *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조중건은 허탈한 눈을 허공으로 올렸다. 그 시선을 따라 좌명균도 눈길을 올렸다. 지난밤과 새벽사이의 일을 떠올려 보면 저 말이 정확하다.

‘귀신이 곡할 노릇.’

귀신 장철에게 당했다. 그는 자신의 팀이 도착하기 직전에 해야 할 일을 마쳤다. 한용수회장을 죽였다. 그리고 시체들 속에 섞여 사라졌다. 정말로 사라졌다. 그가 경찰병원을 나와서부터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동안 훈련하고 땀 흘린 결과가……’

채널러가 되어 해온 모든 노력의 결과를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1팀 전체가 투입되어 귀신을 잡지 못했다. 아니 찾지 못했다.

‘그와 대적하는 상황이었다면……’

가정의 결과, 가늠이 어렵다. 좌명균 자신과 다른 팀원 여섯이 합세했다면 귀신을 제압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냐는 건 다른 문제다. 귀신이 여태까지 해온 싸움의 결과를 본다면.

‘우릴 흩어놓고 각개격파 했을 수도 있지.’

그렇든 어떠하든 간밤에 귀신 장철이 만든 결과는 엄청나다. 온누리정신연구소의 모든 채널러들을 처리했다. 특히나 그 영상은 압권, 충격이다.

‘이단계 불완전 접촉자들.’

그들이 귀신을 상대했다. 처음 본 형상으로 변한 자들이었다.

그걸 뭐라고 할까, 흡사 도깨비의 형상 같았다.

거구의 그들이 발휘하는 괴력을 귀신은 깨부쉈다.

그런 존재가 귀신이다. 가늠이 소용없는 채널러다.

“이제부턴……”

다시 입을 열던 조중건은 폰의 울림에 반응하며 바로 잡았다.

“예.”

무거운 표정으로 귀에 댄 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지시를 듣던 조중건.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폰을 내린 조중건은 좌명균을 응시했다.

“온누리정신연구소, 이제 공개한다.”

위쪽의 결정이다.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검토한, 귀신의 영상을 보고 난 후의 결정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의 뉴스엔 사건이 나올 터다.

* * *

충격으로 경직한 최재우는 뉴스를 보며 힘겹게 침을 삼켰다.

-지난밤 살해된 한용수회장은……

귀신, 그가 또 살인을 저질렀다. 역시 복수의 대상 중 하나, 온누리자동차의 한용수회장을 죽였다. 저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결국 됐다.

‘복수를 포기했더라면, 귀신을 포기했더라면.’

하나마나한 소리고 생각이다. 한용수회장은 R호텔에서부터 귀신을 쫓았다. 그 결과를 안은 것이다. 복수를 위해 달리는 두 기차가 충돌한 거다.

‘한용수회장의 기차가 파괴된 결과.’

뜨거운 침을 다시 삼킨 최재우는 뉴스보도를 들었다.

-온누리정신연구소는 현재 경찰의 봉쇄 속에 있습니다. 한용수회장 외에 많은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숫자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귀신은 이번에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건으로……

진실을 몰라, 최재우의 입에선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 * *

어디서 저런 체력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고초희는 조문객들을 맞아 비탄에 젖은 얼굴로 동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저 얼굴 뒤에서 웃고 있을 얼굴을 생각하면 소름끼친다.

그런 진실을 세상이 알면 어떻게 될까.

‘그럴 일은 없어.’

민승환은 혀끝을 물며 새삼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고초희에게 잡힌 가련한 짐승이다.

진실을 토설하고 싶은 마음조차 두려워하는 신세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눈치 채기라도 하면 그날로 죽일 것이다.

‘차라리……!’

죽어버릴까란 생각을 민승환은 바로 버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살려야 한다. 자살하고 나면 처자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어떻게든 살아서 보호해야 한다. 고초희의 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게 없을 거라는 게……!’

부들거리며 고개 숙이던 민승환은 한경석을 봤다. 여경의 시체를 처리하고 돌아온 게 분명한데, 고초희에게 보고하는 얼굴이 무겁게 긴장했다.

‘어?’

고초희가 손짓한다. 민승환은 바로 다가갔다. 고초희가 말한다.

“용인일, 온누리연구소 사건이 뉴스에 나오고 있어.”

민승환은 흠칫했다.

언제 나오나 하던 일, 국정원이 쥐고 있다 이제 놓은 거다.

“날 찾아올 거야.”

이미 왔다. 연구소 앞에서 본 국정원 남자가 문상을 했다. 아직 밖에 있다. 그런데 그런 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위의, 높은 곳에서 오는 거.

“법적인 절차를 빨리 마무리하도록 해.”

고초희가 세경그룹의 진짜 주인이 되는 모든 절차.

“알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돌아선 민승환은 그 찰나의 고초희를 봤다.

차가운 미소를 뿌리는 악녀의 얼굴, 아니 마녀의 모습이다.

등골에 소름이 곤두선다.

걸음을 재촉하며 나간 민승환은 국정원 사내들과 마주쳤다. 하지만 서둘러 갈 길로 갔다. 그 모습을 국정원 사내들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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